중앙대 최재영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2015년 10월, 우리는 저 멀리 칠레에서 날아온 소식에 환호했다.

당시 대한민국 U-17 대표팀은 칠레 U-17 월드컵에 출전했다. 첫 경기는 세계 축구 강호 브라질이었다. 누구도 쉽게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은 해냈다. 브라질을 1-0으로 꺾고 승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16강까지 진출해 나름대로의 성적을 거두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2년 뒤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후 우리의 뇌리 속에서 잊혀진 선수가 있다. 바로 최재영이다. U-17 대표팀의 중앙 수비수였던 그는 브라질과의 경기 전반전에 부상을 당해 교체됐다. 그리고 끝이었다. 그는 병원 진단 결과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더 이상 월드컵 무대에 나갈 수 없었다. 또래 선수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는 꽤 오랜 기간을 재활로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축구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포항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고에서 촉망 받던 선수였던 그는 이제 중앙대학교의 신입생으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흘러간 과거의 영광은 잊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앞을 향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꿈을 꾸고 있는 최재영을 제 48회 전국 추계대학축구연맹전이 열리고 있는 태백 고원구장에서 만났다.

아찔했던 U-17 월드컵의 악몽, 그럼에도 믿음 보낸 최덕주 감독

최근 그는 꽤 바쁜 경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최덕주 감독이 중용하고 있는 자원이다. "1~2학년 대회에서 8경기 가량을 소화하고 다시 추계연맹전에 나섰어요. 경기력은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는데 체력 부분에서 아직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처음 주목을 받았던 것은 역시 U-17 월드컵이다. 이승우, 조영욱 등 그 나이 또래 선수들처럼 그 역시 촉망받는 선수였다. 월드컵에 대한 기억을 물어보니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월드컵 무대가 처음이었어요. 첫 경기 브라질전에서 저희가 기분 좋게 이기긴 했어요. 그런데 제가 전반전에 십자인대가 크게 다치는 부상을 입었어요. 사실… 제게는 썩 좋지 않은 기억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재활에 전념해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무리할 때쯤 당한 부상이다. 학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교 3학년을 재활로 보내야했던 것이다. "부상을 당한 다음 해 7~8월 쯤에 복귀했어요. 다쳤다는 것에 대한 미련은 없었어요. 그저 잘 재활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중앙대학교 최재영 ⓒ 김다은

"부상을 당했으니 지난 고등학교 2년 동안 잘해온 것들이 모두 날아간 셈이었어요. 어차피 당한 일이잖아요. 재활에만 신경 쓰자고 생각했죠. 다행스럽게도 재활 센터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동료들이 굉장히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어요. 큰 걱정하지 않고 오직 재활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그가 말했듯이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온 것은 고3 여름이었다. 이미 한 해의 반 이상이 지나가 있었다. 프로 입단도 대학 입학도 쉽지 않았다. 그 때 손을 내밀었던 것이 최덕주 감독이었다. "다 날아간 줄 알았는데 2년 동안 열심히 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감독님께서 제가 2학년 때 경기 하는 모습을 보셨더라구요. 저를 믿어주셨기 때문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프로에 갈 수 있는 몸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8월에 복귀를 했잖아요. 체력도 경기력도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제가 보기엔 약 50% 정도?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에 가게 된다면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가겠다고 결론을 내렸고 중앙대로 오게 됐어요."

중앙 수비수? 이제는 여유 있는 미드필더 되고 싶어요

중앙대에 입학 후 그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자신 만의 포지션을 확실히 정한 것이다. 사실 그는 U-17 월드컵에서 중앙 수비수로 이름을 알렸지만 멀티 플레이어의 가치 또한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포지션을 찾아 전념하고 있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는 최덕주 감독의 철학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오른쪽 사이드백까지 맡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중앙 미드필더라는 제 자리를 찾아서 역할에 맞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은 더 배워야 합니다. 형들과 함께 경기에 나서면서 좋은 성과도 거두고 싶고 제 자신도 성장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싶어요."

중앙 수비수 최재영이 아닌 미드필더 최재영이 강조하는 것은 '여유'다.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여유를 강조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여유있게 하는 것이 저만의 장점인 것 같아요. 체력만 조금 더 끌어 올리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은 경기 막판이 되면 힘들더라구요. 체력이 보강되면 형들 사이에서도 더욱 여유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많은 경기에 나서면서 신입생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욕심이 날 법 하다. 과거 좌절로 끝난 태극마크에 대한 욕심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겸손하다. 웃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잘하면 뽑아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 한참 부족한 것 같아요. 아직은 더 열심히 해야죠."

세상은 그를 잊어도 그는 결코 축구를 잊지 않았다. 한 번의 사고로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듯 했던 그는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라는 것을 알았다. 조급해하지 않고 대학 무대에서 차근차근 꿈을 키우고 있다. 몇 년 후, 우리는 좌절했던 중앙 수비수 최재영이라는 이름 대신 '젊은데 노련한' 미드필더 최재영을 보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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