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연맹전을 찾은 어린이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태백=조성룡 기자] 날씨도 뜨겁고 승부도 뜨거웠던 태백의 축구장에 모처럼 활력이 가득했다.

제 48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이 열리고 있는 태백 고원구장은 도심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다. 축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다. 축구 관계자와 팬들이 대부분이다. 추계연맹전을 통해 축구를 처음 접한다는 것은 굉장히 희귀한 경험이다. "나는 추계연맹전으로 처음 축구를 직접 봤어"라고 한다면 놀랄 사람들이 꽤 많을듯 하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 특별한 손님들이 먼 고원구장까지 찾아왔다.

인제대와 원광디지털대가 맞붙은 21일 오전의 고원 1구장도 그랬다.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 어지럽게 뛰고 있고 학부모들은 열띤 응원을, 구경 나온 나이 지긋한 태백 주민들은 나름대로의 전술 토론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여느 축구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마치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듯 뭔가 장내가 점점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가 환상적인 골을 넣은 것도 아니었다. 퇴장도 아니었다. 알고보니 그라운드 바깥의 일이었다. 경기장 한 켠에 어린이들이 줄을 지어 입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원 구장은 산 중턱에 위치해있다. 경기장 안에서는 이들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곤충 채집, 여름 소풍 등 다양한 주장이 등장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어린이들이 관중석에 앉기 시작했다. 이들은 축구를 보러 온 것이었다.

많은 관중들이 그들을 귀엽다는듯이 바라봤다. 그러자 그들은 갑자기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다. "하얀색! 하얀색!" 알고보니 흰색 유니폼을 입은 원광디지털대를 응원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사람들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특히 원광디지털대의 학부모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싱글벙글이었다.

내친 김에 한 어린이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왜 하얀색 응원해?" 그 아이의 입에서는 천진난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한국이잖아요!" 알고보니 원광디지털대의 하얀색 유니폼이 태극기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함께 앉아있던 다른 어린이도 말을 보탰다. "보니까 하얀색이 이길 것 같아서 응원했어요." 당시 원광디지털대는 0-3으로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 중이었다.

함께 동행한 보호자에게 물어보니 이들은 한창 학교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들이었다. 태백 관내 초등학교 학생들인 이들은 현장체험학습일을 맞아 오빠, 형들이 뛰고 있는 태백 고원구장으로 축구를 보러 온 것이었다. 대부분이 축구 경기를 처음으로 직접 보는 것이었다. 인제대와 원광디지털대는 본의 아니게 어린이들에게 하나의 추억을 선물했다.

"축구는 공이 아니라 사람을 잡아야지 짜식들", "아이고 저기 비었는데 찔러주지도 않냐"는 등 경기력에 일침을 날리던 속칭 '아저씨'들이 가득한 축구장에 어린이들이 등장하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이들은 골이 들어가는 것보다 공을 높이 차는 것에 열광했고 선수들 몸짓 하나하나를 신기한듯이 쳐다봤다. 물론 '하얀색 팀'도 응원했다. 이 응원에 힘입어 원광디지털대는 한 골을 만회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한 경기다. 기자에게도 이 경기는 이날 본 3경기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 경기장을 온 어린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 그들이 다시 축구 경기를 접하게 될 때 이 때의 경기를 추억하며 회상하지 않을까? 승부로 치열한 태백에서 잠깐의 힐링을 선사한 그들은 진정한 깜짝 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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