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렇게 거창했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09년 9월 축구계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이 창단한다는 뜬금 없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보통 축구단이 창단되면 한참 전부터 이야기가 오고 가고 그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는데 이 팀은 그렇지 않았다. 더군다나 서울시민이 주체가 되는 팀 창단이 숙원이었던 축구계에서는 이 단체의 깜짝 등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아침에 축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우리도 이제 FC서울과 함께 서울을 양분하는 구단을 보유해 서울 더비를 볼 수 있다는 꿈에 부풀기 시작했다.

“500억 원 모아 팀 만들겠다”

2009년 9월 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순 전서울시장을 비롯해 장재완 준비위원장, 이강두 국민생활체육협외의 회장 등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깜짝 놀랄 만한 발표를 했다. “잠실종합운동장을 홈으로 하는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을 창단하겠습니다.” 이미 2009년 2월 창단준비위원회를 발족해 5월에는 법인 설립까지 마쳤다는 소식도 전했다. 창단 기자회견 후 두 달 안에 발기인 대회를 열고 시민주 공모를 통해 창단 자금을 마련한 다음 11월에는 프로축구연맹 가입 승인을 마치고 12월에 창단식을 개최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발표했다. 조순 전서울시장은 물론이고 인기 가수 설운도 씨까지 참석하니 믿음이 갔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서울 연고 시민구단 창단이라는 숙원을 이루기에는 어딘지 찜찜한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을 연고하는 팀은 서울입성권리기부금을 내야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 부담금 100억 원을 냈고 50억 원을 유예 받았다. 그리고 서울에 2개 프로축구단을 유치 또는 창단해 75억 원씩 받기로 한 것이다. 이게 바로 서울 연고팀 창단에 걸림돌이 된 바로 그 돈이다. 2004년 안양LG는 서울로 연고이전을 하면서 협회에 50억 원, 연맹에 발전기금 25억 원 등 모두 75억 원을 냈지만 이 거액을 내고 서울로 들어올 만한 나머지 한 팀은 마땅치 않았다.

협회는 “홈 구장을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해도 서울에 입성하려면 75억 원을 내야한다”는 방침을 계속 고수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이 이 거액을 내기란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장재완 준비위원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6개 기업 컨소시엄을 통해 250억 원을 확보하고 나머지 250억 원은 시민주 공모를 통해 확보하겠다.” 창단 자금으로 총 500억 원을 준비하겠다는 엄청난 포부였다. 하지만 열망에 비해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시민주 공모만으로 250억 원을 모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진두생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서울시의회 의원 70여명이 창단에 뜻을 같이했다”고 했지만 이듬해 다가온 서울시장 선거와 맞물려 입장이 모호했다.

2011년 두 번째 창단 도전에 나선 서울시민프로축구단 발대식에 모시는 글.

다시 등장한 ‘서울 라이트’

더 찜찜한 건 이들 대부분이 정치적으로 한쪽에 쏠린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장재완 준비위원장은 한나라당 16대 대통령 후보 정무특보를 지냈고 한나라당 청년봉사단장과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2005년부터 뉴라이트 청년연합의 대표를 맡아 우익 활동에 앞장섰다. 훗날 박근혜 대표 지지모임(박지모) 회장도 맡았다. 창단준비위원회의 진두생, 이한성, 윤석용 의원 등도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었고 명예위원장으로 임명된 이강두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도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나라당 사람이었다. 시민구단 창단에 정치적인 입김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현실적으로는 정치와 축구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이 단체는 신뢰가 부족했다. 사전 작업 없이 너무 큰 야망을 들고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창단 기자회견을 하고 두 달이 넘은 상황에도 진척이 없었다. 이쯤 되면 재원을 마련해 창단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11월에 열리는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선수 우선 지명권을 얻을 수 있지만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은 조용했다. 심지어 구단 관계자는 75억 원의 서울입성분담금의 존재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이뿐 아니었다. 신생 구단이 창단될 때면 기존 시,도민구단에 자문을 구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 어떤 구단도 서울시민프로축구단으로부터 연락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다. 연맹 또한 서울 연고 프로팀 창단을 환영하는 입장이었지만 이 단체로부터 그 어떤 문의조차 받질 못했다. 서울시민프로축구단 창단은 기대에서 시작해 허무하게 끝나고 있었다.

역시나 창단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이 단체는 예정된 창단식 날짜인 2009년 10월까지도 창단을 하지 못한 채 잊혀졌다. “2009년 10월 19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발대식을 연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결국 발대식은 열리지 못했다. 창단 기자회견을 함께 했던 정,재계 인사들도 입장을 바꿔 이 단체와 선긋기에 나섰고 A대표가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단체는 이렇게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2년 뒤인 2011년 6월 또 다시 창단을 공식 선포한 것이었다. 이름을 아예 ‘서울라이트(Seoulite Football Club, 약칭 SLFC)로 정한 이 단체는 대규모의 발대식까지 했다.

2011년 두 번째 창단 도전에 나선 서울시민프로축구단 발대식에 모시는 글.

결국 사기로 막 내린 두 번째 창단 도전

아예 서울광장을 빌려 설운도와 장윤정, 데프콘, 씨스타까지 초대해 서울시민프로축구단 발대식을 연 것이다. 이번에는 김동심 회장까지 앞장서 연단에 섰다. 김동심 회장은 “시민의 땀과 열정이 녹아있는 축구는 서울의 또 다른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드 처럼 서울을 상징하는 국제적인 명문구단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유소년 및 청소년, 여성 및 장애인, 각종 아마추어 팀 등 다양한 계층의 클럽 팀을 운영하겠다. FC서울과 SLFC의 서울더비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창단 발표에 이미 한 번 속았던 이들이 두 번은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꽤나 솔깃한 이야기도 전해졌다. 발대식 보도자료에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한다”고 명시했고 홈페이지까지 열었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조그마한 사무실까지 열었다. 이번에는 진짜인가 싶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서울시에서 홈페이지에 이런 공지를 띄운 것이다. “금일 서울광장에서 창단식을 여는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은 서울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뿐 아니었다. 서울시 체육진흥과도 곧바로 반발했다. “잠실올림픽경기장 사용을 허가한 적도 없고 사전 협의를 나눈 적도 없다.” 거기에 잠시올림픽경기장 내 사무실 임대료도 이미 수백만 원이 밀려있었다. 협회와 연맹에서는 아예 SLFC의 존재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더 황당한 건 홈페이지였다. 홈페이지에는 세계적인 수비수 존 테리가 SLFC 로고가 박힌 조잡한 합성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 단체를 그래도 조금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던 사람들도 어이없는 합성 사진을 보고는 믿지 않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 번째 창단 해프닝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이 서울시민프로축구단 사기 사건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A대표가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지인에게 “임야를 매입할 예정인데 근저당권을 설정해주면 이를 통해 대출을 받아 잔금을 지급하겠다”면서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1팀은 “처음부터 매매 대금을 갚을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2011년 두 번째 창단 도전에 나선 서울시민프로축구단 발대식에 모시는 글.

세 번째 등장, 그리고 대중의 싸늘한 시선

또한 2011년에도 이 지인에게 분양대행권 일부를 넘겨주겠다는 조건으로 또 다시 2,700만 원을 받아 챙겼는데 이 사업 역시 추진 가능성이 없었다. A대표는 이후 이 지인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선분양해 돈을 마련하자고 역제안해 다른 피해자를 끌어들여 4천만 원을 더 챙겼다. 이뿐 아니었다. 그는 서울시민프로축구단 설립을 미끼로 2014년 2월에도 수억 원대 사기 행각을 벌이다 재판에 넘겨졌다. A대표가 사기 행각으로 챙긴 돈은 3억 원에 이르렀다. 팬들이 꿈꿨던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은 그렇게 비웃음만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2014년 2월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은 대표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을 홈으로 하는 서울이랜드가 2014년 4월 창단을 발표했다. 협회는 방침을 바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쓰지 않으면 서울 입성금 75억 원을 받지 않기로 해 서울이랜드의 창단은 수월해졌다.

하지만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은 또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서울이랜드 창단 발표 한 달 뒤인 2014년 5월 또 다시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이 등장한 것이다. 한 번의 창단 기자회견과 한 번의 발대식을 했던 이들은 이번에는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협동조합서울시민프로축구단 발족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몇몇 축구 원로도 자리했다. 그런데 이번에 협동조합서울시민프로축구단을 이끌 박준홍 총재 역시 정치색이 짙은 인물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형인 박상희의 아들, 그러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촌오빠였다. 1970년대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낸 그는 친박연합 대표를 지내던 2010년 비례대표 1순위 공천을 주겠다고 해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형과 추징금 3000만 원을 선고 받았던 인물이다.

이때도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은 거창했다. 박준홍 총재는 발족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민의 정성을 모아 발족하는 협동조합서울시민프로축구단은 서울시민과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선수단을 구성, 세계적인 명문구단인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 축구단을 모델로 세계적 명문팀으로 육성 하겠다.” 곧 서울시와 잠실주경기장에 대한 연고지 협약을 시작하고 6월부터 스카우트를 선임해 선수선발을 한 뒤 7월 감독 선임, 11월에 선수단 구성을 마무리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2015년부터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해 2016년 K리그 클래식에 진출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면서 전라남도 신안군 율도에 위치한 팬션형 리조트와 13만여평 규모의 전지훈련장 조성 등 투자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거창하게 출발해 책임감 없이 사라진 이들

하지만 발족식 이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다시 이 단체는 흐지부지됐고 그 사이 서울이랜드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이 단체가 추진하는 서울시민프로축구단에 속지 않는다. 늘 바르셀로나를 이야기하며 대단한 구단이 곧 탄생할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이 단체는 세 번이나 화려하게 출발해 책임감 없이 사라졌다. 서울에 더 많은 팀이 생기길 바라지만 이 단체가 만드는 팀은 아니다. 정치색을 띈 구단도 환영하지만 기본 바탕은 축구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이 단체와 함께 했던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들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했단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열정을 가진 직원들은 잘못이 없다. 그저 축구를 이용해 한 자리 차지하고 이득을 보려는 이들의 잘못이다.

이제 이 단체가 추진했던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은 안주거리가 됐다. 처음에는 기대했고 두 번째는 ‘혹시나’ 했고 세 번째는 ‘역시나’ 했던 이 단체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퇴장했다. 혹시 이들이 또 네 번째 등장해 “바르셀로나 같은 팀을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만들겠다”고 하면 어떨까. 이제는 아마 사람들이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진정성과 신뢰가 중요하다. 진성정이 있다면 이보다 더 열악한 단체도 응원하겠지만 더 이상은 이 단체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기가 어렵다. 아무도 이 단체가 추진하는 서울시민프로축구단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일단 나부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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