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부천SK 연고이전 반대 시위에 나선 이들. 하지만 SK축구단은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한국 프로축구 연고이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경기도 용인시가 제주유나이티드의 연고 유치를 검토한다는 <스포츠니어스> 단독 보도 이후 제주 구단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자 결국 제주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제주 팬들은 지난 16일 FC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응원을 하지 않고 항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연고 이전설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 구단에 대한 항의였다. 이후 제주 장석수 대표이사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연고이전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스포츠니어스> 단독 보도 이후 무려 20여일 만이다.

2005년, 전문가들이 모여 내놓은 결론은?

나는 한 가지 사안으로 여러 칼럼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상황을 전달했고 용인시의 움직임을 알렸다. 이후 연고 유치로 인한 후유증을 감안해 용인시에 “그럴 거면 팀 창단을 추진하는 편이 낫다”고 제안했다. 연고이전이 공론화 됐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의 여론을 알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석수 대표의 인터뷰를 보고 있자니 그가 뭔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은 30분 안에 접근 가능한 인구가 약 8만 명에 불과하다. 도민 전체의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그의 발언은 아직도 현실 파악이 안 된 것 같다.

“연고 이전을 추진한 적이 없다”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시장이 작다’고 징징대는 모습이 어쩐지 그들의 딱 12년 전 모습을 닮았다. 이 점 하나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미안한데 부천SK 시절 그들에게 그 시장을 버리고 제주로 떠나라고 부추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들이 수도권이라는 좋은 입지를 포기하고 제주로 도망치는 떠난 건데 지금 와서 제주월드컵경기장 접근성 운운하며 시장이 작다고 한탄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부천SK는 12년 전 사람들이 다 뜯어 말리고 팬들이 불매운동을 펼치는 사이 자기들이 짐을 싸서 그 작은(?) 제주로 떠났다.

더 황당한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대기업이 무슨 시장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이렇게 허술한지 모르겠다. SK축구단은 2005년 7월 한국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서울대 스포츠산업센터에 연구 용역을 맡겼다. ‘구단 운영 효율화 작업’이었다. 그런데 대기업과 엘리트들이 모여 내놓은 결론은 “평균 관중에서 꼴찌를 하는 등 구단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어 연고지를 더 큰 시장으로 옮겨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타겟으로 제주도를 삼았다. 제주도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85%이상의 도민이 프로구단 지지 의사를 표명했고 도민들은 10회 중 3.5회 이상 경기장을 찾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대기업과 엘리트들이 내놓은 결과가 야반도주였고 그 목적지도 척박한 제주도였다.

부천SK는 홈페이지에 이런 팝업창 하나를 남겨 놓고 제주로 떠났다.

제주도, 당신들이 택한 시장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정순기 당시 SK축구단 단장은 수도권이라는 좋은 입지를 자기 발로 차버리고 연고이전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부천과 인접한 서울, 인천에 프로구단이 생기면서 축구팬들의 누수 현상이 심해졌다.” 물론 그는 욕을 먹을까봐 텔레비전 방송 인터뷰는 거절했다. 그럴 거면 등 돌린 팬들을 다시 불러 모을 생각을 해야지 요리조리 재 가면서 연고지를 옮길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이 구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거다. 연구 용역으로 뭐 85%의 도민이 지지하고 10회 중 3.5회 이상 경기장에 온다고? 이 연구 용역을 주도한 이들이 아직도 SK에 남아 있거나 서울대에서 전문가인척 하고 있다면 당장 사표부터 써야한다. 애초에 제주도로 떠날 때부터 그 시장이 크지 않았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SK축구단은 주판알을 튕기고 제주로 간 거다. 제주도와 서귀포시가 각각 10억 원씩의 이전 지원금까지 SK축구단에 줬고 제주도는 구단에 클럽하우스 부지까지 푼돈에 내줬다. SK축구단은 자기들 스스로 이것저것 다 따져 본 거다. 부천에 남았더라면 접근성과 입지가 좋았을 텐데 그걸 포기하고 월드컵경기장을 쓰면서 지자체의 돈까지 받는 걸 선택한 거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이 시내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부족한지는 이미 2005년 7월 연구 용역 때부터 알지 않았나. 마치 처음부터 제주에서 탄생한 구단이라 어쩔 수 없는 입지의 단점을 안고 마케팅을 해야 하는 것처럼 코스프레하면 안 된다. 흙수저인 척 하지 말자. 꽤 잘 살던 집안에서 재산도 물려받았는데 괜히 주식 좀 해보겠다고 땅 팔아서 주식하다가 망해 놓고는 부모 탓하는 꼴이다.

접근성 핑계대면 아무 것도 못한다. 전주시는 인구가 65만 명에 불과하지만 K리그 최고의 축구팀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주월드컵경기장의 접근성이 좋은가. 아니다. 경기장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바로 옆에 있어 전주시민들이 찾기에 상당히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관중은 꾸준히 경기장을 찾는다. ‘전통의 명가’ 포항도 인구가 50만 명 정도에다 경기장도 외지에 있다. 그런데도 이 팀들은 시장이 작다고 징징대지 않고 스스로 관중을 모을 방법을 찾아 성공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의 접근성이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자신들이 12년 전 스스로 선택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전북과 포항을 보며 채찍질해야 한다. 당신들이 선택한 일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 할 건가.

부천SK는 홈페이지에 이런 팝업창 하나를 남겨 놓고 제주로 떠났다.

팬과의 약속? 지자체 향한 압박?

어차피 제주도로 갈 때 그 정도는 각오하고 간 거 아닌가. 제주유나이티드는 연고 이전 후 평균 관중이 2006년 당시 뻥튀기를 포함해도 2,000명 수준에 머물렀다. 처음부터 딱 그 정도 시장이었고 구단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연고 이전 초창기에도 정순기 단장은 서귀포시의 시장 규모가 작은 걸 알고 “서귀포시와 제주시를 모두 공략하겠다”고 계속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홈 경기장 접근성이 떨어지고 어쩌고 그런 핑계대지 말자. 그리고 “홈경기장의 접근성이 부족하다”고 핑계 대는 건 12년 전 “부천 주변에 팀이 많이 늘어나 축구팬 누수 현상이 생겼다. 더 큰 시장으로 가겠다”던 부천SK 축구단 정순기 단장 발언과 너무나도 닮지 않았나. 12년 전이나 후나 이 구단은 아직도 주변 핑계나 대고 있다.

제주도와 서귀포시에서 12년 전 물가로 20억 원을 받고 클럽하우스 부지 저렴하게 제공받고 거기에 10년 동안 월드컵경기장을 싸게 썼으면 지자체도 할 만큼 했다. 제주유나이티드가 바보도 아니고 왜 홈 경기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 곳에 계속 있었을까. 그런데 이제 와서 제주 구단은 제주시의 접근성 좋은 곳에 적당한 규모의 전용구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플’까지 하고 있다. 서귀포시와 제주도는 제주시에 새로운 전용구장을 지을 이유가 전혀 없다. 어차피 SK축구단을 데려온 것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제주월드컵경기장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제주도가 제주시에 전용구장을 짓고 그걸 제주유나이티드에 쓰게 해달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 구단의 무리한 요구다. 경기장을 새로 지어달라는 건 전형적인 명분 만들기일 뿐이다.

제주 구단의 입장은 쉽게 말해 “우린 남고 싶은데 쟤네들(제주도와 서귀포시)이 이 정도까지는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몇몇 매체를 통해 대표이사를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한 결과다. 그런데 이게 과연 팬들을 위한 메시지일까. 팬들을 향했지만 지자체를 향한 압박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는 이런저런 다른 핑계 대지 말고 “제주유나이티드가 ‘연고 이전을 하지 않는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고 팬들과 약속하는 게 먼저 아닐까.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선택한 제주도에서 이제는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각오하고 연고이전을 감행한 것 아니었나. 홈 경기장이 서귀포 끝자락에 있는 걸 모르고 연고이전을 한 건 아닐 텐데 말이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