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현대는 K리그 통산 최초로 500승에 도전, 아니 이미 달성, 아니 뭐 복잡하다. ⓒ 울산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울산현대와 수원삼성이 격돌한 1996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챔피언결정전이었다. 1차전에서 0-1로 패한 울산은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극적인 3-1 승리를 따내고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 2차전에서는 무려 5명의 선수가 퇴장을 당하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당시 수원 소속이던 윤성효의 현역 시절 첫 퇴장도 이 경기였다. 이뿐 아니라 이 경기는 많은 기록을 남겼다. 최다 퇴장, 최다 경고(14회), 최다 반칙(57회) 등 프로축구 출범 이후 당시까지 14년 동안 가장 격렬했던 경기로 역사에 남았다. 또한 울산의 이날 승리는 의미가 더 컸다. 챔피언결정전 1차전 패배를 딛고 우승한 첫 팀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누락된 1996년 챔피언결정전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경기는 K리그 역사에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로축구연맹에서 이 경기를 공식 기록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 나섰던 선수들은 경기 출장 기록도 인정받지 못했다. 1996년 챔피언결정전에서 골을 넣은 김현석과 유상철, 황승주, 이기근 등의 골도 물론 연맹은 인정하지 않는다. 자랑스러운 기록은 아니지만 최다 퇴장을 기록하면서 엄청나게 격렬했던 이 역사적인 경기는 그냥 이벤트성 경기로 치부되고 말았다. 더 의아한 건 이날 윤성효는 프로 무대 처음이자 마지막 퇴장을 당했는데 공식적인 연맹 기록에는 퇴장이 단 한 번도 없던 선수로 남았다는 것이다. 뭔가 되게 이야기가 많은 경기였지만 연맹은 이 경기를 공식 기록에서 뺐다.

이뿐 아니다. K리그 역사를 논할 때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포철과 일화의 1995년 챔피언결정전도 연맹의 기록에서 제외됐다. 이 경기가 어떤 경기인가.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두 팀은 포항에서 열린 2차전에서 기가 막힌 명승부를 펼쳤다. 0-2로 뒤지던 상황에서 일화가 신태용의 두 골로 동점을 만들더니 후반 40분 고정운의 거짓말 같은 골로 3-2 역전을 만들어냈‘고든요’. 아니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기회에서 포항 서효원이 올린 크로스를 라데가 헤딩으로 일화 골문에 꽂아 넣은 것이다. K리그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경기를 꼽으라면 단연 이 경기가 꼽힌다.

결국 챔피언결정전 1,2차전을 통해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결국 중립 지역인 안양에서 벌어진 3차전을 통해 우승팀을 가렸다. 이 3차전에서 일화는 연장 터진 이상윤의 골든골로 극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이 대단했던 세 경기도 연맹의 기록에서는 삭제됐다. 연맹이 플레이오프 제도가 도입된 1997년 이전의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비공식 경기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1984년, 1986년, 1995년, 1996년 챔피언결정전과 1992년 리그컵 챔피언결정전 등 총 11경기가 기록에서 누락됐다. 윤성효의 처음이자 마지막 퇴장도, 라데의 극적인 동점골도, 이상윤의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도 모두 연맹의 기록에는 없다. 피터지게 싸우던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데 이건 그냥 비공식 친선전과 다를 게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500승 고지 점령을 위하 울산과 경쟁을 펼치는 포항스틸러스. ⓒ포항스틸러스

울산과 포항의 K리그 통산 500승 경쟁?

과거에 묻힌 기록의 보존에 대한 필요성은 칼럼으로 여러 번 이야기했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다. 나는 선배들이 일궜던 멋진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 잘 보존해야 한다고 이미 여러 번 주장했다. 그런데 이 기록을 누락한 건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도 잘못됐다.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몇몇 올드팬들을 위해 기록을 정정해 달라는 게 아니다. 이 기록이 누락되면서 역사의 퍼즐이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499승을 거둬 K리그 통산 첫 500승 달성을 눈앞에 둔 것으로 알려진 울산이 이미 500승을 돌파했다는 걸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울산은 현재 K리그 통산 499승을 기록하며 다가올 수요일(19일) 경기에서 승리하면 최초의 500승 고지를 점령하는 팀이 된다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 울산은 이미 500승을 넘어섰다.

그런데 연맹이 1996년 챔피언결정전 기록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울산은 공식 기록이 아직 499승에 머물러 있다. 이 경기 2차전 수원전 3-1 승리는 연맹 기록에 없기 때문이다. 연맹이 공식 경기로 인정하지 않은 몇몇 경기들로 인해 기록은 굉장히 혼란스러워 질 수밖에 없다. 더 혼란스러운 건 현재 포항스틸러스가 울산을 바짝 뒤쫓고 있다는 점이다. 포항은 연맹 공식 기록 기준 498승을 거둬 500승에 단 2승만을 남겨놓고 있다. 그런데 포항도 498승이 아니라 499승을 기록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86년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박경훈의 결승골에 힘입어 럭키금성을 1-0으로 제압했지만 이 기록도 연맹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울산은 500승을 채웠고 포항은 499승을 거뒀는데 연맹 기록으로는 울산이 499승, 포항이 498승을 챙긴 걸로 돼 있다.

사상 최초의 K리그 500승은 이미 지난 주말에 극적으로 완성됐어야 할 역사적인 기록이다. 울산은 지난 15일 안방에서 열린 광주FC와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따냈다. 연맹 기록으로는 499승이었지만 실제로는 이게 500승이었다. 그리고 이날 포항은 안방에서 수원에 2-3으로 패하며 연맹 기록으로는 498승, 실제로는 499승에 머물게 됐다. 그런데 이미 지난 주말 극적으로 달성됐어야 할 사상 최초의 500승 기록은 연맹이 기록 집계를 일관적으로 하지 않아 엉망진창이 됐다. 가뜩이나 라이벌이라는 평가를 받는 울산과 포항이 사상 첫 500승 달성을 놓고 경쟁하는 것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있을까. 거기에다 올 시즌 시작 전까지는 포항이 울산보다 500승 달성에 유리했지만 올 시즌 두 차례 맞대결에서 울산이 포항을 연이어 잡고 결정타를 날렸다. 이런 500승의 기막힌 경쟁을 연맹의 엉터리 기록으로 망치고 말았다.

500승 고지 점령을 위하 울산과 경쟁을 펼치는 포항스틸러스. ⓒ포항스틸러스

울산은 이미 500승을 달성했다

500승 경쟁은 이처럼 대단히 극적이었지만 연맹의 모호한 해석 때문에 이 기록은 빛을 발하기가 어려워졌다. 과거 챔피언결정전 기록을 합산하면 울산은 이미 500승을 돌파했다. 그런데 이 기록이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만약 포항이 2연승을 거두고 울산이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역사는 뒤집힌다. 포항이 사상 최초의 500승을 거둔 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기록을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을까. 그냥 리그 경기도 아니고 챔피언결정전을 기록에서 지워놓고 그 덕분(?)에 먼저 500승 달성을 이룬 팀을 최초의 역사로 남기는 것도 문제가 있다. 과연 지금 연맹의 기록 집계 시스템은 합리적인가. 울산이 499승을 기록 중이고 포항이 498승으로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고 언론이 포장해도 될까. 이미 울산은 1996년 수원과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퇴장이 난무하는 혈투 끝에 귀중한 1승을 챙겼고 현재 500승을 넘었는데도 말이다.

기준이 참 애매하다. 연맹은 1997년 이후에 열린 챔피언결정전 포함 포스트시즌 경기는 또 공식 기록에 모두 포함시키고 있다. 거기에 승강제가 시행된 뒤에는 승강 플레이오프도 공식 경기로 간주된다. 하지만 1997년 이전 기록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아예 빼려면 다 빼는 게 낫고 넣으려면 다 넣어야 한다. 앞으로도 승강 플레이오프 등이 지속적으로 치러질 텐데 이 기록을 계속 누락하는 건 말이 안 되니 과거의 챔피언결정전 기록도 다 포함시키는 게 더 합당하다. 어떤 시즌의 챔피언결정전은 공식 기록에 포함돼 있고 또 어떤 시즌의 챔피언결정전은 공식 기록에서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연맹의 기록에는 그런 게 없다.

이 상황에서 500승 경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포항이 공식 기록 기준으로 500승을 극적으로 먼저 기록한다고 해도 온전한 축하를 받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록은 제대로 포장할 때 그 가치가 있다. 더군다나 라이벌 팀이 한 기록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면 그 기록은 더 제대로 집계돼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그 기록에 관심을 갖고 열광한다. 제대로 포장되지도 않은 기록을 가지고 대중의 마음을 흔들고 역사적인 감격을 선물할 수는 없다. 1996년 챔피언결정전을 공식 경기로 인정하고 울산의 사상 최초 500승 달성도 인정하자. 지금껏 누락된 5번의 챔피언결정전, 11번의 경기는 K리그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승부였다. 이 11번의 경기를 인정하지 않고도 K리그 역사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제는 역사의 퍼즐을 좀 제대로 맞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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