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나이티드는 과연 제주에 남을까.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자기야. 옆집 아줌마가 그러던데. 자기 혹시 바람 났어? 나하고 이혼할 생각인 거야?” 아내가 남편에게 묻자 남편이 이렇게 대답한다. “응. 그건 너 하는 거 봐서.” 부부 사이에 이런 황당한 대화가 오간다면 어떨까. 이런 대화를 하는 부부는 실제로 없겠지만 이 사이를 제주유나이티드와 제주 팬으로 바꾸면 말이 된다. 경기도 용인시가 제주유나이티드와 연고 협상을 벌인다는 <스포츠니어스> 단독 보도 이후 제주는 여전히 명확한 선을 긋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제주MBC는 <스포츠니어스> 단독 보도가 나간 뒤 “제주유나이티드가 원정 경기 비용 부담 등을 고려하고 있다. 연고 이전 제안이 오면 검토도 가능하다”는 구단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다른 여자와 바람이 아직 나지는 않았는데 기회가 되면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제주 팬들에게는 황당한 소식이다. 구단이 “연고 이전은 절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어도 믿을까 말까한 판국에 이렇게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외도를 해도 이렇게 당당하게 외도를 하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연고 이전이 협상용 카드인가?

앞서 보도한 대로 제주유나이티드와 서귀포시의 연고 계약은 내년 1월 31일에 끝난다. 2006년 경기도 부천에서 제주로 연고이전을 해 10년 연고 계약을 맺었던 양 측은 지난 2016년 연고 계약 2년 연장에 합의했다. 계약 종료를 앞두고 제주유나이티드 측에서는 서귀포시와의 연고 재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자 한다. 실제로 제주유나이티드가 제주를 떠나 용인시로 갈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까딱하면 다른 사람과 눈이 맞아 도망갈 수도 있다’는 위협 비슷한 메시지로는 이보다 더 적합한 게 없다. 구단은 경기장 이용료와 수익 배분 등에서 지금보다도 훨씬 더 유리한 입장을 점령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구단은 서귀포시가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정말 짐을 쌀 수도 있다. 그리 높지 않은 확률이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연고이전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령 이게 실제 연고 이전이 아니라 서귀포시를 향한 언론 플레이라고 해도 구단이 이러면 안 된다. 이게 다 팬을 볼모로 하는 협박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니어스> 단독 보도 이후 제주 팬뿐 아니라 K리그의 많은 팬들이 제주의 연고 이전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떤 팬은 서귀포시에 전화를 걸기도 했고 또 어떤 팬은 서귀포시에 이메일로 문의를 하기도 했다. 다들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구단이 “연고 이전은 없으니 안심하라”고 팬들을 진정시키는 제스처가 없는 건 물론이고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며 연고 이전을 암시하는 듯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팬들을 앞세운 협박이다. 제주유나이티드와 서귀포시 사이의 다툼은 자기들끼리 해결해야 한다. ‘마음에 안 들면 연고 이전을 하겠다’는 구단의 자세는 매우 불량하다. 연고 계약 종료는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팬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오히려 구단이 느긋한 자세로 지켜보고 있는 건 그림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제주유나이티드를 향해 팬들을 볼모로 내세우지 말라고 하는 거다. 용인으로 가지 않고 연고 계약 연장을 하더라도 지금 이 자세는 팬들을 위한 게 아니다. 연고 이전을 협상용 카드로 쓰는 건 프로 구단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제주유나이티드는 여전히 연고 이전 논란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프로팀, 연고 계약 자체가 우스운 일

그리고 이 상황에서 깊이 생각해 보면 웃긴 게 하나 더 있다. 애초에 프로 구단과 연고지 사이에 연고 계약이라는 자체를 맺는 게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시가 연고 계약을 맺고 이 계약이 끝나면 계약을 연장하거나 방을 빼거나 그런 일은 본 적이 없다. 그냥 그 지역에 자리한 팀은 그 자체로 인정받으면 된다. 그 지역 시민들에게 인정받으면 그 자체로 성장하는 거지 시장과 사진 찍고 시청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그 지역 팀으로 인정받는다는 게 웃긴 거다. 서귀포시와 제주유나이티드의 연고 계약이 종료돼도 그 선수들이 그 동네에서 공 찬다고 잡혀가는 것도 아니다.

여러 사람들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류가 하나 있다. “K리그는 열악하니 그래야 돼. 이해해야 돼. 너는 이상만 높은데 나는 현실적이거든. 어쩔 수 없다는 거 정말 몰라?” 그런 이들이 보기에 K리그는 저변이 자리 잡은 유럽 축구가 아니니 연고지와 구단의 연고 협약이 반드시 필요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이런 되도 안 한 연고 협약이 오히려 K리그를 제자리에서 맴돌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천SK가 제주로 연고 이전을 할 때 10년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그 10년 계약의 이유는 구단과 시가 원활한 교류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황당하게도 향후 10년간 연고 이전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서귀포시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연고 협약의 이유가 연고 이전을 막기 위함이니 참 황당하다.

이게 무슨 프로 구단과 연고지의 계약인가. 10년간 계약 연애를 하는데 그게 그 기간 동안 다른 만남을 막기 위한 계약이라면 과연 합당한 계약인가. 과연 이런 연고 계약이 구단과 연고지에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 연고 계약이라는 게 더 황당한 건 시 보조금이 줄면 구단은 더 조건이 좋은 다른 지역을 기웃거린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계약이란 게 없으면 그럴 일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지금 연고 계약이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시스템에 묶여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자. 어제까지는 있지도 않던 팀이 하루아침에 통째로 옮겨와 “오늘부터 이곳 시민들을 위한 팀이 되겠습니다”라고 온갖 달콤한 소리를 하다가 계약이 끝나면 또 다른 동네로 가 앵무새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팀이 잘 된 역사는 본 적이 없다. 아, FC서울 빼고.

제주유나이티드는 여전히 연고 이전 논란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연고 계약서 한 장의 무거움

연고 협약은 홈 경기장 사용 편의를 위해 중요하다. 경기장을 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구단은 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 팬 많은 수원삼성도 수원시시설관리공단과 경기장 운영을 놓고 한판 붙기도 했다. 그런데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수원삼성이 정 수원월드컵경기장 사용에 애를 먹고 불합리한 처사를 당한다고 생각하면 수원종합운동장으로 가면 된다. FC서울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목동운동장으로 옮기면 된다. 구단이 힘을 키우고 팬을 모으면 시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런데 홈 경기장 사용에 애를 먹고 불합리한 처사를 당한다고 해 연고 계약 종료를 틈 타 아예 연고를 옮기는 건 다른 문제다. 정 서귀포시의 대우가 짜증나면 제주종합운동장으로 가면 된다. 그곳에서도 얼마든 축구를 할 수 있고 팬을 모을 수 있다.

지금 제주유나이티드의 자세가 잘못 됐다는 거다. 연고 협약이 끝나면 왜 다른 동네를 바라보는가. 그 지역 안에서 뿌리 내릴 생각을 해야지 여전히 선을 긋지 않고 연고 이전 여지를 줘서는 안 된다. 만약 제주유나이티드가 이번에 또 다시 연고 계약을 2년 더 연장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또 2년 뒤 연고 계약 연장을 할지 안 할지, 연고를 옮길지 말지 지금과 같은 일은 반복된다. 과연 계속 계약 마감을 앞두고 계약 연장을 하는 게 해결책일까. 구단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고는 늘 같은 식 아닐까. 이렇게 연고지를 계약으로만 대하는 자세라면 제주유나이티드는 언젠간 제주를 떠난다. 그게 당장 내년일지, 10년 뒤의 일일지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열정을 보내는 팬들이 사는 지역을 그저 계약서 종이 쪼가리 하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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