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떠나는 황의조에게 전달한 메시지.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성남=김현회 기자] 황의조가 성남FC를 떠났다. J리그 감바오사카로 이적을 확정지은 황의조는 오늘(2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누구나 다 겪는 이별이지만 성남 팬들과 황의조의 이별은 특별했고 뭉클했다. 단순히 선수 한 명을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그들은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마음으로,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저마다의 이별을 경험했다.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성남과 황의조의 작별 의식은 그래서 더 특별했다.

14세부터 성남과 함께 한 황의조

황의조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성남에 대한 의리가 있었다. 황의조는 사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에도 감바 오사카로부터 영입 제안이 들어온 바 있다. 2015년부터 감바는 황의조에게 군침을 흘리고 있었고 그를 지켜보다 2016년 거액의 이적 제안을 보냈다. 당시 성남은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됐고 이런 상황에서 그가 팀을 떠나더라도 당위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황의조는 결국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음에도 K리그 챌린지에 남았다. 당시 막 팀에 부임한 박경훈 감독도 구단에 적극적으로 황의조를 잡아달라고 부탁했고 황의조도 “다시 팀을 승격시켜 놓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는 성남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몰락한 명가’라는 소리를 듣던 성남이지만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은 황의조였다. 풍생중과 풍생고 등 성남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육성된 황의조는 2013년 성남에 입단해 줄곧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5년에는 K리그 클래식 34경기에 출장해 15골을 뽑아냈고 지난 시즌에도 37경기 출장 9골 3도움이라는 훌륭한 기록을 남겼다. 찬란한 영광을 보내고 힘든 시기를 겪던 성남에 황의조는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선수였다. 황의조는 2015년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는 등 성남의 자존심을 지켰다. 황의조가 부진하면 팀도 깊은 부진에 빠질 정도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성남에서 뛰는 걸 목표로 성장해온 황의조는 팀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거액의 이적 제안을 받았음에도 그 제안을 뿌리치고 K리그 챌린지로 떨어진 성남에 남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남은 더는 황의조를 의리와 애정만으로 잡아두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제주유나이티드 시절부터 선수들이 더 좋은 제안을 받으면 팀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보내주던 박경훈 감독도 황의조를 잡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끊임없이 황의조에게 구애를 보낸 감바는 또 다시 구체적인 이적 제안을 보냈고 성남도 할 만큼 한 황의조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황의조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는 팬들. ⓒ스포츠니어스

황의조의 희생, 그리고 성남의 도약

황의조는 많이 희생했다. 올 시즌 초반 박성호가 부상 당한 상황에서 황의조는 힘든 경기를 해야했다. ‘황의조만 막으면 성남 공격을 다 막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황의조를 제외한 공격 루트가 없었다. 상대 수비는 황의조에게 집중됐고 당연히 황의조는 고립됐다. 그러는 사이 성남은 사상 최악의 부진을 경험하며 K리그 챌린지에서도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는 사이 박성호가 부상을 털고 돌아왔다. 공격 자원은 둘이 됐다. 그런데 “황의조와 박성호 중 어떤 공격 자원을 앞으로 더 중점적으로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박경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둘 다 같이 쓸 거다.”

박성호가 최전방에 섰고 황의조는 그를 뒷받침하거나 날개로 나섰다. 박성호를 위해 황의조가 보이지 않게 희생한 결과였다. 황의조에게는 자신이 빛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팀이 하루라도 빨리 이 부진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황의조의 희생 덕분일까. 성남은 이후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뤘고 최하위에 머물던 순위도 어느덧 리그 5위까지 치솟았다. 황의조는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상황에서도 올 시즌 5골이나 기록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팀이 2부리그로 떨어졌다고 팀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더 좋은 제안이 온 팀으로 이적할 수도 있었지만, 국가대표까지 지낸 선수가 자신의 포지션에 뛰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황의조는 모든 걸 포기하고 희생했다.

이적이 확정되고 황의조는 일본 오사카로 날아가 계약서에 사인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감바가 오랜 시간 공들여 영입한 황의조가 일본으로 오자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계약서에 사인만 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성남 팬들에게 안방에서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성남 팬들도 중학생 시절부터 키워온 황의조를 대하는 감정이 남달랐다. 프로에서는 수 많은 이적이 있고 이 이적으로 누군가는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황의조는 성남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게 됐다. 황의조는 일본에서 돌아와 팬들과 만날 마지막 시간을 준비했고 팬들 역시 황의조를 더 멋지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황의조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는 팬들. ⓒ스포츠니어스

황의조와 성남의 아름다웠던 작별

2일 성남과 부천의 경기가 열리는 탄천종합운동장은 경기 전부터 들썩였다. 황의조가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경기장 입장 게이트에는 황의조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적는 이벤트가 열렸고 초등학생 팬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황의조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를 적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의 메시지는 감바에 가서도 열심히 하고 꼭 성남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한 팬은 이렇게 적었다. “의조 오빠 항상 응원할게요. 축구화 거꾸로 신지마요ㅠㅠ 사랑해 황의조” 한 팬은 “아들을 보내는 것 같아 걱정도 많이 된다”고 했고 또 다른 팬은 “딸내미를 시집 보내는 느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황의조가 행사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저기에서 황의조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황의조는 팬들과 기념 촬영 및 사인회를 열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 상황을 잘 모르는 한 꼬마 팬은 “아저씨 가지마요”라고 크게 외치기도 했다. 백여 명에 가까운 팬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황의조와 마지막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기다렸다. 황의조는 작별을 앞두고 성남에 위치한 한마음복지관에 3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황의조가 성남을 떠나는 건 단순히 한 명의 프로선수가 팀을 옮기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유소년 시스템에 의해 자라나고 이 팀의 좌절도 함께하며 의리를 지켰던 이가 작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투니스트로 유명한 성남 팬 샤다라빠는 이렇게 말했다. “(황)의조는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선수였다. 그가 팀을 떠난다고 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의조가 나가면서 K리그 챌린지 득점왕 출신 김동찬도 영입했고 외국인 선수도 영입한다고 한다. 의조는 많은 걸 주고 떠났다.” 운영비가 삭감돼 상황이 좋지 않은 성남 입장에서는 감바로부터 받은 황의조 이적료로 또 다른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다행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더군다나 황의조는 계약서에 '국내 복귀시 성남으로 복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황의조는 성남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넘친다. “ 성남으로 복귀하겠다는 조항은 구단과 함께 상의해서 넣었다. 성남은 고향 같은 팀이다. 꼭 성공해서 돌아와 팬들에게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황의조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는 팬들. ⓒ스포츠니어스

그들의 마지막은 아름다웠다

황의조는 이렇게 폭우 속에서도 팬들과 아름답게 작별했다. 하프타임에 열린 고별 세리머니에서 황의조는 자신이 플레이한 하이라이트 영상을 지켜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영상으로 보니 저는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였습니다. 그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아들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오빠였다. 그리고 성남의 자랑이었다. 팬들은 그가 작별 인사를 하자 이런 걸개를 들었다. “의조 오빠 잘 다녀와.” “아들이 사랑한다.” “성남, 우리의 자랑 황의조.” 성남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는 이렇게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다. 돈에 의해 좌우되는 프로의 세계에서 이런 아름다운 이별이 얼마나 될까. 황의조는 성남에 참 고마운 선수다. 많은 이들이 황의조와의 작별에 대해 아쉬워하며 이별하는 동안 같이 뛰었던 한 선배는 일본으로 떠나는 황의조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하자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의조야. 일본 가면 여자 조심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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