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은 신뢰를 쌓아가고 있을까.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인천=조성룡 기자] 김종혁 주심이 광주 박동진의 파울에 대해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렸다. 그렇게 K리그에 VAR(Video Assistant Referees) 시대가 열렸다.

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인천 유나이티드와 광주FC의 경기에서 첫 VAR 판독 사례가 등장했다. 전반 32분 광주 박동진이 인천 김용환에게 저지를 파울에 대해 김종혁 주심이 VAR 판독을 선언하며 역사상 첫 사례의 주인공이 됐다.

프로축구연맹은 1일 열리는 K리그 클래식 18라운드부터 VAR 전면 도입을 선언했다. 이날 대구, 인천, 울산에서 경기가 동시에 열렸지만 관심은 인천에 모아졌다. 오심의 대표적인 희생양으로 VAR의 조기 도입을 이끌어낸 인천과 광주가 만나기 때문이었다. 이날 주심은 김종혁. 젊은 심판이기에 VAR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있었다.

전반 32분 만에 등장한 첫 VAR 판독

첫 번째 VAR 판독은 비교적 빨리 등장할 뻔 했다. 전반 22분 페널티박스에서 광주 수비수의 손과 공이 접촉했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인천 선수들은 페널티킥을 선언해달라는 의미로 두 손을 번쩍 들었지만 김종혁 주심의 휘슬은 조용했다. 논란이 생길 만한 장면이었다. 그 이후 김종혁 주심은 갑자기 귀에 손을 댔다. 대기심 또한 귀에 손을 댔다. 무전을 통해 VAR 판독 여부를 논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VAR 판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약 10분 후 다시 한 번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이 나왔다. 전반 32분 광주 박동진이 빠르게 쇄도하던 김용환을 팔꿈치로 가격하며 저지했다. 김용환은 고통을 호소하며 나뒹굴었고 김종혁 주심은 박동진에게 경고를 꺼냈다. 그러자 인천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퇴장성 파울이라는 이야기다.

인천이 프리킥을 준비하는 동안 김종혁 주심은 다시 귀에 손을 댔다. 대기심 또한 무전을 듣기 시작했다. 재차 VAR 판독 여부를 논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이후 주심은 휘슬을 불더니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렸다. K리그 클래식에서 첫 번째 VAR 판독이 선언되는 순간이었다. 박동진의 파울을 다시 판단하는 것이었다.

VAR이 경기장에 가져온 낯선 분위기

주심이 그라운드 밖에서 판독하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그 동안 K리그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등장했다. 관중들이 하나가 되어 '퇴장'을 외친 것이다.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는 다른 종목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 축구장에서도 등장한 것이다. 전광판에는 '영상 판독 중'이라는 글귀가 처음으로 K리그 무대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VAR로 판정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영상을 확인한 김종혁 주심은 원심을 유지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신선했다. 선수들은 수분을 보충하는 등 막간을 이용해 휴식을 취했고 경기장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앞으로 각 구단들이 VAR 판독 상황에 대한 막간의 콘텐츠를 고민하겠지만 아무것도 없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인천에서는 한 번 더 판독이 이루어졌다. 후반 43분 웨슬리의 골이 VAR 심판대에 올랐다. 이 판정이 원심을 유지할 경우 인천은 승리가 거의 확실시됐다. 관중석은 다시 한 번 뜨겁게 '인천 골'을 외치며 원심 유지를 기원했다. 첫 판독에 비해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김종혁 주심은 휘슬을 불더니 크게 네모를 그리고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오심으로 인한 판정 번복이었다. 득점 상황에서 웨슬리의 위치가 오프사이드였다.

K리그 역사상 첫 VAR 판독 사례가 된 광주 박동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믹스드존에서 만난 그는 "파울 장면에서 나는 고의성이 없었기 때문에 VAR 판독을 통해서도 원심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면서도 "하지만 고의성 여부는 내가 없다고 해도 심판이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긴장되더라"고 얘기했다.

VAR, 이제 심판들의 손에 달렸다

인천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VAR은 기능을 발휘했다. 울산에서도 이종호의 두 번째 골이 VAR 판독을 통해 취소됐다.  이날 경기로 VAR의 긍정적인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명확히 드러났다. VAR로 인해 흐름이 끊기거나 경기가 지연되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신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주심이 해당 판정에 대해 빠르게 판단할 경우 경기가 크게 지연되는 것도 아니었다. VAR 판독이 어떤 부분에 대한 것인지 경기장 내 모든 구성원이 명확히 안다면 꽤 재밌는 광경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주심의 재량에 따라 VAR 판독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확실히 아쉬운 점이었다. 전반전 광주의 핸드볼 파울은 확실히 판독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주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VAR을 활용할 경우 판정에 대한 신뢰도가 꽤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VAR이 자신의 판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다른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K리그에 VAR 시대가 열렸다. 첫 도입을 통해 VAR은 충분히 판정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K리그 경기장에 새로운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우려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이제 모든 것은 주심의 손에 달렸다. 결국 VAR을 활용하는 것은 주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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