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는 시민체육공원을 지은 뒤 이 활용 방안을 고민 중이다. 올해 말 완공되는 경기장의 조감도. ⓒ용인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집을 근사하게 지었다. 그런데 내부를 장식할 가재도구가 없다. 돈을 주고 사야한다. 하지만 내 돈을 내고 사기는 너무 아깝고 싫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집을 근사하게 짓지 말던가 작게 지었어야 한다. 결국 옆집 가재도구를 훔쳐왔다. 냉장고며 텔레비전이며 소파까지 다 들고 왔다. 왜? 우리 새 집을 예쁘게 채워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울고 있는 옆집 아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 뒤 이런 해시태그를 단다. ‘#앞으로_우리_가구들_내가_많이_사랑해줄게’ 물론 이건 범죄고 이런 행동을 하면 당연히 지탄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도둑놈이나 할 법한 일을 한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바로 경기도 용인시에 관한 이야기다.

용인시의 어이없는 당당함 “축구단 유치하겠다”

어제(29일) 단독 보도했던 것처럼 용인시는 제주유나이티드의 연고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상당히 말을 아꼈지만 그들이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취재 결과 제주유나이티드는 연고지인 제주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해 서운해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1순위는 제주와 계약 연장을 하는 것이다. 이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겠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그런데 용인시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1순위는 현재 제주도와 연고 협약 종료를 앞두고 있는 제주유나이티드를 용인시로 데려오는 것이지만 꼭 제주여야 할 이유는 없다. 어떤 팀이건 용인시에 유치할 팀을 찾고 있다. 그들은 지금 사정이 급하기 때문이다.

경기장 때문이다. 용인시는 무려 16년의 논란 끝에 용인 시민체육공원을 오는 11월 완공한다. 무려 3천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었고 이중 1,387억 원이 토지보상비로만 쓰였다. 하지만 공사 과정에서 재정 부족으로 보조경기장은 짓지도 못했다. 덜렁 종합운동장 하나만 우뚝 서게 됐다. 이렇게 국제 규격에 맞추지 못한 경기장은 국제대회에서 써먹지도 못한다. 교통 접근성도 좋지 않고 거기에다 이미 근처에 용인경전철 역시 있지만 경기장 앞에 역을 또 신설하겠다는 주장은 이기주의의 끝판왕다운 모습이다. 경기장을 지을 때부터 교통과 수익시설 등을 미리 구상해야 하지만 용인시는 일단 경기장부터 지어놓고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심지어 수익시설 입점이 가능한 곳은 낮은 층고 때문에 수익시설이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 망하려면 들어가라.

이 상황에서 그래도 3천억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놓고 그나마 욕을 덜 먹는 방법이 바로 프로축구단 운영이다. 지속적으로 경기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인시의 의도를 보면 기가 찬다. 지난 14일 용인시의회 예산결산특위에서 나온 축구단 유치 관련 질의응답을 보면 황당하다. 한 위원이 직장운동경기부 육성 지원금에 대해 물었고 예산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용인시 체육진흥과의 답변이 아주 쿨(?)하다. “프로축구단 유치를 검토하고 있다. 유치는 창단과 달라서 인건비라든지 그런 거는 다 구단에서 지출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돈을 쓰지는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뭐 하지만 어떤 특정 팀을 두고서 검토는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축구단을 운영할 건데 기존 팀을 데려오면 우리 돈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채무 제로를 선언한 정찬민 용인시장. 용인시는 참 알뜰하다. ⓒ용인시

도둑놈 심보 고약한 용인시

용인시 임병완 체육진흥과장이 직접 이런 말을 했으니 이게 용인시의 체육 진흥 정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거대 도시의 체육진흥과에서 “돈 안 들게 남의 팀 훔쳐오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황당하다. 다른 게 도둑놈이 아니라 이런 게 도둑놈이다. 말로만 ‘연고 유치’라는 그럴싸한 표현을 쓰는 것일 뿐 이게 남의 물건 빼앗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나. 애초에 경기장 활용 방안도 생각하지 않고 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경기장부터 지어 놓았으니 당연히 순리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경기장을 지어놓고 그 경기장을 쓸 팀을 물색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작은 단칸방 월세에 들어갈 때도 교통 따지고 생활비 따지고 다 하는데 지금 3천억 원짜리 경기장 지어놓고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용인시 스케일 한 번 크다.

경기장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워야 한다. 시민들의 염원이 모여 팀이 만들어지고 그 팀이 더 좋은 환경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그 이후에 경기장이 세워져야 한다. 팀 창단 과정까지는 몰라도 경기장 건립은 인천유나이티드나 포항스틸러스가 모범적인 사례다. 그들은 팀 창단 이후 시민들의 사랑을 받다가 새로운 둥지로 옮겼다. 이게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쓸 데도 없는 거대한 경기장을 지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지역에서 사랑받는 팀을 주인으로 데려온다는 건 너무나도 이기적이다. 더 화가 나는 건 용인시에는 이미 내셔널리그 용인시청 팀이 있었지만 용인시가 지난해 12월 이 팀을 해체해 버렸다는 점이다. 용인시청을 프로화해 이 경기장을 쓰게 했으면 모양새가 좋았을 텐데 그들은 불과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팀도 해체시켜버린 곳에서 무슨 얼어 죽을 프로축구인가. 그냥 경기장에 물 채워서 시민들을 위한 수영장과 스케이트장으로 개방하자. 3천억 원짜리 시민들을 위한 공간 어떤가.

이런 도둑놈 심보 고약한 곳에서는 K리그가 열리면 안 된다. 축구단 운영 의지보다는 그저 경기장 활용을 위한 방안으로 연고 이전을 감행하겠다는 곳의 미래는 안 봐도 뻔하다. 스포츠라는 게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데 이런 불순한 의도로 운영되는 팀은 나쁠 때를 견디지 못한다. 성적이 떨어지고 여론이 좋지 않고 시의회에서 정치적으로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 그땐 손을 털어버리면 끝이다. 처음도 공정하지 않았는데 마무리가 공정할 거라고 기대하지 말자. ‘스포츠맨십’이 없는 지역에 멋진 스포츠팀은 사치다. 정 K리그에 그렇게 참가하고 싶다면 자기들 돈으로 팀 창단해서 K리그 챌린지부터 거쳐라. 비열해지지 말고 당당해지라는 뜻이다. 축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용인시가 때깔 좋아 보이는 K리그 클래식에 무임승차하는 건 절대 안 된다. 축구판에서 몹쓸 짓 그만하고 당당한 한 축이 되려면 창단하라.

채무 제로를 선언한 정찬민 용인시장. 용인시는 참 알뜰하다. ⓒ용인시

연고 유치? 그거 도둑질이다

용인시의 제주유나이티드 연고 유치는 이제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이미 기사로 공론화 시켜 버렸으니 조심스러웠던 양 측이 틀어질 가능성도 크다. 내가 이 기사를 일찍 공개해 버린 것도 그 이유에서다. 이런 추잡한 딜이 계속 뒤에서 몰래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취재할 거고 브레이크를 걸 거고 폭로할 거다. 두 번의 연고이전은 눈 뜨고도 당했지만 다시는 연고이전을 이렇게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인시는 제주유나이티드가 아니더라도 자꾸 누군가에게 추파를 던질 거다. 자기들 돈을 쓰지는 않으면서 경기장을 활용할 방안은 창단이 아닌 연고 유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용인시장은 재선에 성공하려면 치적을 쌓아야 한다. 지방선거 때까지 경기장이 놀고 있으면 표가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제주와의 협상이 틀어지는 순간 더 눈에 불을 켜고 다른 팀을 찾아다닐 게 뻔하다. 팀 경기력이 훌륭하고 프런트가 일을 잘하고는 연고 유치의 조건이 아니다. 일단 굴러가기만 하는 팀을 데려다만 놓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그들에게 중요한 건 멋진 경기력으로 용인시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게 아니라 이 답 안 나오는 경기장에서 뭐라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수순으로는 용인시가 이제 곧 해산될 내셔널리그에서 한 팀 정도 물어 흡수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어차피 해산될 내셔널리그 선수들이 뛸 곳을 찾아간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용인시 프로축구팀 따위가 이런 마인드로는 절대 잘 될 리 없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용인시와 제주유나이티드의 뒷거래를 이미 알고 있던 프로축구연맹도 그러면 안 된다. 연고이전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면서 연맹이 이걸 방관하고 더 나아가 양 쪽의 소통 창구 역할까지 하는 건 도둑질에 동조하는 거다.

또한 무엇보다도 용인시는 그런 마인드부터 버려야 한다. 내가 간절히 가지고 싶은 게 있거든 돈 주고 사야지 남의 걸 빼앗아 와서는 안 된다. 연고 유치? 그거 도둑질이다. 용인시에 있는 에버랜드를 다른 지역이 빼앗아 가면 정신을 좀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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