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린 팬이 오래 오래 K리그 경기장을 찾았으면 좋겠다. ⓒKBS 방송화면 캡쳐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지난 26일 모 공중파 채널 프로그램에 나온 13살 FC서울 팬 김 양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데얀과 FC서울 구단은 그 소녀를 수소문했다. 고민 해결을 위해 사연을 신청한 소녀의 어머니는 걱정거리가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SNS에도 김 양은 화제가 됐다. 축구 팬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으며 서포터 유망주로서 주목받았다. 그래서 찾아봤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관련 방송 클립은 2개의 동영상으로, 한 편은 '축구를 매우(느낌표를 붙이며 강조했다) 사랑하는 13세 소녀'라는 제목의 클립이었고 다른 한편은 김 양이 응원가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응원가 영상이야 다들 귀엽다는 반응 일색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K리그를 좋아하는 게 마치 큰일이라도 난 양 소개된 사연에 한 번 놀랐다. 우리에겐 지극히 평범할 줄 알았던 일상이 '대국민 토크쇼'라는 공중파 예능에 나올 정도의 사연이었다. K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리그 최고 공격수의 이름을 들은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데얀이 누구야?"라며 의문부호를 붙였다.

K리그 팬이 뭐 어때서

K리그 팬들이 괴짜로 몰리는 이 현상이 불편하다. 이 방송이 묘사하는 K리그는 비주류였다. 비주류를 좋아하는 우리는 K리그와 팀을 좋아하는 '덕후'였고 우리의 일상은 그들에겐 '덕질'로 여겨졌다. 우리의 덕질은 비범하게 소개됐고 우리는 모두 '괴짜'가 됐다.

동명의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한 축구 팬을 괴짜로 소개했다. 부천FC 1995 팬인 정 씨는 '자식보다 선수들을 더 챙기는 엄마'로 소개됐다. 이 프로그램이 평소에 어떤 사연으로 어떤 사람들을 소개하는지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난 축구 때문에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전공, 학력과 전혀 상관없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만약 우리 어머니가 좀 더 답답함을 토로하는 성격이었다면 나도 저 프로그램에 나왔을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악마 서포터즈는 K리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전국으로 퍼졌다. 온 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서포터였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응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K리그 팬들을 괴짜로 생각하다니. 약간의 배신감마저 든다.

부천FC팬 정 씨가 공중파에 출연해 계를 타고 있다 ⓒ스포츠니어스

열정적인 사람들이 이상한가요?

괴짜 취급은 연예인도 가리지 않는다. 흥미로운 부분은 연예인에게는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덕질은 그저 '특이한 취미' 정도로 다뤄진다. 신기하거나 이상하긴 하지만 문제가 있거나 한심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순수한 면이 많이 부각되기도 한다.

언급했던 프로그램의 프레임을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에게 씌워보자. K리그 홍보대사로 위촉된 박재정은 가수활동은 뒤로 미뤄두고 전국의 경기장을 누비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강부자 선생님은 연기활동보다 축구 경기를 시청하느라 바쁘시다. K-POP 한류 붐을 일으켜야 할 김준수는 연예인 축구단을 꾸려 축구에 목을 매고 있다. 표창원 의원은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가끔 해설도 한다. 프로파일링과 정치는 소홀한 것 같아 걱정이다. 이게 그 프로그램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방송에 출연한 김 양은 학생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리더쉽과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다. 정 씨는 한국구조연합회 중앙본부 여성국장을 맡고 있다고 전해졌다. 우리도 경기가 없는 날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일 뿐이며 열심히 일하는 이 나라의 역군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며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단지 축구와 자신의 팀을 향한 열정을 가슴속에 품고 더 뜨겁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한편 다른 공중파 채널에서 방영했던 <능력자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특정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호기심 있게 조명하는 역할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특별한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그들의 화법은 명백하게 다르다. 이 프로그램은 아예 "모두 무언가를 좋아하는 덕후들"로 접근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 연예인과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소개하면서 "이걸 보고 공감하는 여러분도 덕후다"라고 말한다. 동시에 "여러분은 이상하지 않다"라고 위로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시원과 성나정, 조윤진은 특정 대상을 향한 열정을 보여줬고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공감했다. 삶의 여유가 없어진 이들은 '한때'의 덕질이었다고 추억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삶의 여유가 없기에 마음을 기댈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덕후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은 딱 두 부류다. 하나는 덕질에 빠졌던 자신의 과거를 흑역사 취급하는 동족 혐오의 부류, 다른 하나는 아직 한 번도 어떤 존재에 대해 열광하고 사랑하고 공부하지 못한 부류다.

당신의 H.O.T와 젝스키스는 누군가에겐 아스카이며 레이다. 방탄소년단이며 트와이스다. 이상민이며 최용수다. 류현진이며 박지성이다. 김 양에겐 데얀과 고요한이다. 정 씨에겐 부천이다. 대상이 무엇인가와는 상관없이 그 대상을 좋아함으로써 한 사람의 일상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존중받을 일이다. '마이너' 취급을 하며 한심하게 바라볼 일이 아니다. 그들은 로맨티시스트다. 그들을 향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웨딩피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부천FC팬 정 씨가 공중파에 출연해 계를 타고 있다 ⓒ스포츠니어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다

우리는 스스로 특별한 취급을 해오곤 했다. K리그를 좋아한다는 말에 "뭐 그런 걸 좋아해" 소리를 들어왔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부를 단어가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국축빠', '축덕'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들을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다.

그러나 우리는 평범하다. 남들이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맛집을 찾는 것 처럼 "오늘은 어떤 경기가 펼쳐질까" 궁금해하면서 경기장을 찾을 뿐이다. 남들이 시사와 정치 뉴스를 찾아보듯 우리는 축구 뉴스를 관찰할 뿐이다. 감명 깊었던 책을 다시 들춰보듯, 이미 봤던 영화를 두 번, 세 번 돌려보듯 지나간 경기도 하이라이트와 풀 영상을 돌려볼 수 있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열정을 쏟을 대상을 찾은 김 양에게 축하 박수를 보낸다. 일상 속에서 활력을 찾은 정 씨에게도 늦었지만 축하의 말을 전한다. 그들도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저 축구와 K리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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