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에 나가는 선수들을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할 가능성도 생겼다. ⓒ대한아이스하키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남과 북이 다시 교류를 시작하려면 그건 아마 스포츠부터 일 것이다. 스포츠는 이념과 사상, 종교를 뛰어 넘는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청소년 월드컵에서 남북 단일팀이 보여준 감동도 여전히 기억한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이 스포츠로 하나가 돼 부둥켜 안고 기뻐하는 모습은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표현할 수 없는 멋진 장면이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아마도 스포츠가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나는 스포츠의 힘을 믿는다. 스포츠는 남북 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년에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는 건 반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회식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나 역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이후 냉랭해진 남북 관계가 다시 개선되어야 하고 스포츠가 남북 관계 개선에 훌륭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이번 동계올림픽은 아니다. 단순히 남과 북이 한 팀을 이뤄 사이좋게 치를 대회도 아닐뿐더러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 반대한다.

단일팀으로 피해 입는 선수 생겨선 안 된다

동계올림픽 유일의 단체전인 아이스하키에 남북 여자 선수들이 섞인 팀을 구성하자는 안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엄청난 피해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2014년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고 무려 3년째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직 평창 동계올림픽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남북 단일팀이 구성된다면 이 선수 중 절반은 짐을 싸고 나가야 한다. 이 자리를 북한 선수들이 대신해 올림픽에 나가기 때문이다. 이 올림픽을 위해 젊음을 바친 선수들의 피해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정당한 자격으로 올림픽 출전 선수를 가려야 하는데 대한민국 선수라고 피해를 입고 북한 선수라고 혜택을 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여자 아이스하키 전력차는 상당히 크다. 대한민국은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지만 북한은 출전권도 없다. 대한민국은 지난 4월 북한을 상대로 3-0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1991년 포르투갈 청소년월드컵 당시에는 어땠을까. 대한민국과 북한이 나란히 아시아 지역예선을 통과한 뒤여서 남북 모두 대회에 나설 자격이 있었다. 이 두 팀이 이후 단일팀에 합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 예선조차 불참했던 북한 아이스하키가 갑자기 단일팀이라는 이유로 올림픽 무대에 서는 건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들은 원래 올림픽에 나올 의지도 없었다. 우리 선수들은 대회 개막을 기준으로 4년 동안 전력을 끌어올리고 인생을 걸었는데 그냥 경험 삼아, 취미 삼아 올림픽에 나오는 이들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면 안 된다.

이제 단체전 스포츠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단일팀이 구성되는 건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조직력이 무엇보다도 중시되는 단체전에서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팀이 합쳐졌다가 쪼개지는 건 선수와 그 종목에 대한 실례다. 아예 남과 북 스포츠 단체가 통합하면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예를 들어 대한아이스하키연맹과 북한아이스하키연맹이 통합 운영돼 처음부터 같이 선수 육성에 힘쓰고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시키고 올림픽에 도전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벤트 형식의 단일팀은 의미가 없다. 그 어떤 종목도 마찬가지다. 교류 한 번 없다가 큰 대회가 열리니 부랴부랴 몇 번 손발 맞춰보고는 한반도기를 흔들며 아리랑을 부르면서 감동 쥐어짜는 일은 하지말자. 이런다고 통일은 오지 않는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20일 평창올림픽 주사무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체부

평창올림픽, 남과 북 덩치 차이가 크다

단일팀이라는 게 어찌 보면 참 웃기다. 1991년 포르투갈 청소년월드컵 당시에도 대한민국 선수들은 거의 다 수비수로 뽑았고 북한 선수들이 대거 공격수로 포진했다. 한 팀에서도 이렇게 확실히 구분을 지었다. 전력을 그래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한 팀에서 갈고 닦았던 조직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단일팀 안에는 단일팀 같지 않은 역할 분배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3년 동안 오직 이 대회를 위해 준비한 여자 아이스하키는 어떨까. 조직력을 맞춰왔는데 공평하게 절반의 자리를 북한 선수들에게 내주는 것도 웃기고 그렇다고 형식적으로 북한 선수 몇 명만 데려와 놓고 단일팀이라고 하는 것도 웃긴다. 이런 이벤트 형식의 단일팀은 별로 매력이 없다. 그냥 앞으로 단체전은 서로 알아서 하자. 차라리 결승에서 남과 북이 대결한다는 각오로 서로의 발전을 이루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올림픽에서 남과 북이 개회식과 폐회식에 나란히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 입장하는 건 어떤가. 나는 이 장면은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많은 노력과 시간, 고민 없이도 작은 이벤트로 큰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남북 단일팀도 한반도기를 흔들며 ‘우리는 하나다’라는 걸 보여주려는 목적 아닌가. 그렇다면 남북 동시 입장 정도로도 그 효과는 충분하다. 남과 북 선수들이 서로 웃으며 손을 잡고 올림픽 개회식에서 행진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감동적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남북 스포츠 교류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은 동시 입장이라고 판단하고 추진했으면 한다. 스포츠 이벤트에서의 남북 동시 입장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혹은 남북 관계가 냉랭해졌다고 멈추지 말고 지속적으로 수십 년은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 동계올림픽을 보면 상황이 좀 다르다. 아무리 좋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남북 동시 입장은 어렵다. 북한이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종목이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는 9월 열리는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에서 북한의 한 조가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나서는 게 전부다. 만약 이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권을 얻지 못하면 북한은 자력으로 이번 올림픽에 나설 수가 없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올림픽 출전권을 따서 남북 동시 입장이 가능해졌다고 상상해보자. 대한민국 선수 수백 명과 북한 선수 두 명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한다? 그리고 이걸 남북 동시 입장이라고 감동스러워한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어느 정도 덩치가 맞아야 하는데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과 북이 덩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그냥 이번 올림픽은 북한 응원단 파견 정도로 만족하자.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20일 평창올림픽 주사무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체부

남북 스포츠 교류,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앞서 말한 것처럼 스포츠는 남과 북이 화해무드로 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오늘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과 남북 동시 입장에도 반대하고 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조금 더 제대로 된 맥을 짚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이렇게 이벤트성으로 한두 번 남과 북이 손을 잡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지속성이 필요하고 정기적인 교류를 해야한다. 남과 북이 서로 엇비슷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인기도 높은 축구 어떤가. 월드컵에 단일팀을 구성하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리 말고 경평전을 부활시키면 아주 그림이 좋다. 대학 축구, 여자 축구, 실업 축구, K리그 등 모든 축구는 충분히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하다. 대신 조건이 있다. 1년에 한 번이면 한 번, 이렇게 정기적으로 만나야 한다.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이 아이스하키를 통해 교류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갑자기 올림픽이 되니 손을 잡는 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훈련 교류도 실시하고 경기도 하고 담당 직원들도 만나야 단일팀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다른 분야에선 다 못해도 스포츠는 이걸 유일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스포츠가 가진 힘을 믿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이번 정부가 길게 내다봤으면 한다. 단일팀이나 도시 입장 등 이런 이벤트 몇 번으로는 부족하다. 사랑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제대로 ‘썸’도 타지 않고 갑자기 사귀자고 하면 그 사랑이 이뤄지나. 자꾸 전화 통화도 하고 ‘카톡’도 하고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셔야 한다. 우리는 지금 그 과정 없이 사랑을 이루려고 하고 있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