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새로운 대표팀 감독 후보에 올랐다. ⓒ인천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결국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어제(15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2017 제5차 기술위원회를 열어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을 결정했다. 그와 함께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의 원정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에 먹구름을 드리웠기 때문이다.

이제 대표팀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할 상황에 놓였다. 누군가 이 슈틸리케 감독이 떠난 자리를 메워야한다. 벌써부터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후임 감독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있다. 물론 후임 감독 중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에 대한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허정무는 감독으로 과소평가 됐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허정무 부총재만한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단 두 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야한다. 남은 시간은 석 달이 채 안 된다. 전술 실험을 할 수도 없고 새로운 선수를 테스트할 수도 없다. ‘강호’ 이란과 홈 경기를 치러야 하고 지면 끝인 우즈베키스탄과는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다.

제아무리 세계적인 명장이 와도 이 짧은 시간 동안 선수들을 파악하고 기량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 한국 축구에 믿음직한 감독이 없다는 사실은 통탄할만하지만 지금 이런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있는 자원 중 가장 검증된 자원을 써야한다. 지금 이 순간은 세계적인 명장 이름을 들먹이면서 이름값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허정무 부총재가 감독으로서 보여준 능력에 비해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박지성과 이영표 등을 과감히 기용하며 이들을 한국 축구의 핵심으로 성장시켰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한국을 원정 사상 첫 16강으로 이끌기도 했다. 전남을 FA컵 2연패로 이끈 감독이기도 하다.

나와의 인터뷰에서 김주영(허베이 화샤싱푸)은 놀라운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공격적인 재능을 뽐냈던 자신을 보고 이대로 공격수를 계속 하면 대학도 못 가지만 수비수로 전향하면 국가대표까지 할 수 있다고 포지션 변경을 추천한 게 바로 허정무 부총재였다. 김주영은 이후 실제로 성인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는 지금도 ‘허카우터의 전설’로 돌고 있다.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꼽히고 있는 허정무 부총재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월드컵 16강이 ‘선수빨’인가?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를 떠나 허정무 부총재가 국내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낸 감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허정무 부총재를 향한 여론은 좋지 않다. “선수빨로 월드컵 16강에 갔다”거나 “그 선수로 8강에도 못 갔다”고 폄하하는 이들이 많다. 이건 그냥 허정무 부총재를 인정하기 싫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무리 박지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월드컵 한 조에 묶여 16강에 진출한 건 어느 감독이 지휘했건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허정무 부총재의 성과를 마치 박지성이 이뤄 놓은 데 숟가락을 얹은 것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 선수를 뽑아서 끌고간 게 허정무 부총재인데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스페인이나 브라질은 명장이 나올 수 없다. 이미 ‘선수빨’ 아닌가.

허정무 부총재의 감독 능력은 이미 수 없이 검증됐다. 그를 부정하는 이들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럴 거면 허정무 부총재를 폄하할 게 아니라 더 능력 있는 지도자를 육성하지 못한 한국 축구 전체를 개탄해야 한다. 허정무 부총재가 행정적인 능력이 부족하거나 정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지도력을 가지고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국 축구에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성과 자체를 부정하지는 말자.

나도 2010년 남아공월드컵 준비 당시에는 허정무 부총재를 그리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그는 성적으로 능력을 입증했다. 우리는 지금 한국 축구의 주제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 축구의 수준은 대단히 높지 않다. 우리는 매일 유럽 축구를 보며 눈만 높아졌지만 우리 땅에서 알렉스 퍼거슨이나 주제 무리뉴는 아직 못 나온다. 허정무 부총재 정도면 대단한 명장이다.

신태용, 지금 이렇게 쓰고 버리면 안 된다

신태용 감독도 신임 대표팀 사령탑 물망에 올라있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기대가 큰 감독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표팀을 위해서도 그렇고 신태용 감독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다. 그는 안방에서 열린 이번 U-20 월드컵에서 기대보다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에 머물렀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도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다양한 전술적 시도와 선수들을 사로잡는 능력 등은 또래 감독 중에 가장 돋보인다.

이미 쓰러져 가던(?) 성남일화를 이끌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이끌어 낸 그는 검증이 끝났다. 차근 차근 감독으로서의 경력과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다. 신태용 감독은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 큰 일을 할 사람이다. 그가 언젠가 맡게 될 성인 대표팀의 모습이 기대된다. 적어도 신태용 감독에게 2~3년 안에 성인 대표팀을 맡을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잘못하면 아시아 최종예선 두 경기 만에 감독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아직 젊고 창창한 감독이 이 모든 위기를 짊어지고 가다가 혹 실패라도 하면 그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추락할 것이다. 홍명보 감독을 우리는 그렇게 보내지 않았나. 아직 성인 대표팀을 맡을 시점도 아니었는데 급하게 젊은 감독 한 명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그 실패는 고스란히 감독의 몫이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젊은 영웅을 잃고 싶진 않다. 신태용 감독은 한국이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세대교체를 준비하면서 다음 월드컵까지 5년의 시간을 맡겨야 하고 한국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면 월드컵 이후 4년의 시간을 부여받아야 한다. 이런 가능성 있는 감독이 단 두 경기 만에 망가지는 모습은 안 된다.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할 지금 시점은 적기가 아니다.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꼽히고 있는 허정무 부총재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선수단 빠르게 장악할 수 있어야

대표팀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대표팀을 당장 멱살이라도 잡고 끌고 가야 할 감독이 필요하다. 신태용 감독도 충분한 능력을 지닌 감독이지만 팀에 부임하자마자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을 감독이 더 필요하다. 정해성 대표팀 수석코치도 충분히 그럴 능력을 지녔지만 현 상황에서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두 경기를 채우는 건 선수단 장악 능력에 한계가 있다.

과거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두 번이나 감독대행을 했던 김봉길 현 초당대 감독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벤치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건 감독대행이나 정식 감독이나 마찬가지지만 감독대행과 정식 감독우 선수들이 나를 대하는 자세가 다르고 나도 선수들을 대하는 자세도 다르다.” 이 상황에서 감독대행으로 팀을 꾸리거나 대표팀 감독 경험이 없는 이가 갑자기 대표팀을 지휘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첫 번째는 안정이고 두 번째는 검증이다.

허정무 부총재의 대표팀 감독 부임을 우려하는 시선도 충분히 살펴봐야 한다. 일단은 2012년 인천유나이티드 이후 5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걸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협회 부회장과 연맹 부총재로 꾸준히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살폈다. 여전히 대표팀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기성용을 비롯해 구자철, 이근호, 이청용 등은 그가 2010년에 중용했었고 지금도 대표팀을 꾸준히 오가고 있다. 누구보다도 이 선수들을 여전히 잘 아는 감독이다.

또한 허정무 부총재가 인천유나이티드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에 머물렀던 걸 우려하는 이들도 있는데 어떤 감독이나 가는 팀마다 성공을 거둘 순 없다. 거스 히딩크 감독도 한국 대표팀을 맡기 직전 레알 베티스에서 스페인, 브라질 대표선수들을 이끌고 1승 6무 6패를 기록하며 경질되고 말았다. 한 시기 기록만 뚝 떼어서, 특정 한두 경기만 뚝 떼어서 감독을 평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또한 반대 의견도 존중하지만 반대를 하려면 그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허정무만 아니면 된다"는 주장은 곤란하다.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꼽히고 있는 허정무 부총재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이건 허정무의 욕심이 아니라 희생이다

선배 축구인이면서 기득권 세력을 쥔 이들을 보고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그들을 그리 좋게 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능력까지 폄하하거나 이 상황을 부정하며 도움의 손길조차 내밀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한국 축구가 위기에 있을 때야말로 선배 축구인이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경험 많은 선배 축구인 도움을 좀 받자.

사실 내가 허정무 부총재였으면 이미 선수와 감독이로 이룰 거 다 이뤘는데 대표팀이 다시 부른다고 해도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단 두 경기로 지금껏 쌓은 명성이 한꺼번에 날아갈 수도 있고 설령 성과를 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다고 해도 그냥 ‘원포인트 릴리프’ 정도로 밖에 역사에 남지 못할 수도 있다. 허정무 부총재 입장에서는 안 하는 게 훨씬 이득인 도박이다. 이건 이제 명예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희생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허정무 부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대표팀 감독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한국 축구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제안이 온다면 주위 분들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미 이룰 걸 다 이뤘는데 한국 축구가 위기일 때 모든 명예를 걸 수 있는 선배 축구인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가 대표팀 감독이 되건 안 되건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뒤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한국 축구에 오점이 남는다 해도 그건 어느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허정무 부총재 이후 아직도 믿을만한 지도자를 육성하지 못한 시스템의 잘못이고 한국 축구의 잘못이지 뜬금 없이 다시 대표팀 감독 후보 물망에 오른 허정무 부총재는 아무 잘못이 없다.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꼽히고 있는 허정무 부총재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모든 힘을 한 곳으로 모을 때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떠났고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사퇴했지만 아직 기술위원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위원장이 임명되면 논의 후 현 기술위원들의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분위기가 잠잠해지면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동반 책임을 져야할 기술위원들은 또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나갈 때 나머지 기술위원들도 나가라.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만 책임을 씌우지 말고 책임질 사람들은 다 같이 책임을 지라는 거다. 기술위원들도 대표팀 선수 선발과 전력 분석 등에 실패해 대표팀이 지금 이 지경이 되는데 책임이 있다. 누가 후임 감독이 되건 후임 감독 선임까지만 마친 뒤 기술위원들은 일괄적으로 물러나야 한다. 그게 한국 축구를 위한 길이다.

나는 허정무 부총재의 복귀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할 수도 있고 의외의 인물이 낙점될 수도 있다. 허정무 부총재를 비롯해 누구 한 명이라도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 한 명이 낙점을 받으면 단점이 장점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비판보다는 응원을 보내려 한다.

아무리 한국 축구에 문제점이 산적해 있더라도 지금은 모든 힘을 모아 대표팀에 보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허정무 부총재의 대표팀 감독 선임을 지지하지만 다른 인물이 그 자리에 앉더라도 일단은 믿고 응원하려한다. 지금부턴 분열되면 끝이다. 힘을 모으자. 그리고 누가 감독이 되건 일단 우즈벡전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적인 응원을 보내자. 까더라도 그 이후에 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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