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축구연맹(AFC)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여정이 끝났다. 2014년 9월 5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지 1,015일 만의 일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국가대표팀에 전임 지도자 체제가 도입한 이래 가장 많은 시간 동안 지휘봉을 잡았다. 최장수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대부분의 감독이 그러했듯이 그의 마지막도 잿빛에 가까웠다. 그는 취임 초기 ‘갓틸리케’라는 최고의 별명을 얻었지만 거듭되는 졸전과 실망스러운 언행으로 팬들의 지지를 잃었다. 그의 발언을 시간순으로 되돌아보았다.

“선수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울려야 한다”

2014년 9월 8일 취임 후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카를로스 아르무아 피지컬 코치만을 데려오고 나머지 인원은 한국인 코치로 채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코치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며 이들의 기용을 통한 선수들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이후 코치진은 신태용, 박건하, 김봉수 코치로 구성되며 팬들의 기대를 높였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

2015년 1월 31일 2015 AFC 아시안컵 결승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1-2로 석패한 후 슈틸리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특별한 모습을 보였다. 직접 적은 메모지를 보면서 한국어로 짤막한 문장을 읊은 것이다. 애초 팬들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로 인한 여파와 짧은 부임 기간으로 아시안컵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갖지 않았다. 슈틸리케호는 예상을 깨고 결승전까지 진출하면서 엄청난 지지를 얻었고 슈틸리케 감독은 성원을 보낸 국민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감동스럽게 전했다. 슈틸리케가 ‘갓틸리케’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선수들을 A, B, C급으로 나누지 않고 동일하게 대우하는 점이 중요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5년 10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자메이카와의 친선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수훈 선수에 대한 평가를 묻자 팀 전체를 칭찬하면서 전임 홍명보 감독과 상반되는 발언을 했다. 김창수, 정성룡 등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던 선수를 감싸 안았다. 이에 팬들은 ‘실력도 좋은 감독이 말까지 잘한다’며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나타냈다.

“아마 2연패만 해도 (나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질 것”

2015년 국가대표팀이 승승장구하면서 슈틸리케는 모두가 기다려왔던 감독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그야말로 ‘갓틸리케’에 걸맞은 대우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축구판의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냈다. 그는 ‘갓틸리케’라는 별명이 유행이라는 취재진의 언급에 여론은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미래를 내다본 언급이었을까. 1년 6개월 뒤, 그 말은 100% 적중했다.

“골키퍼 다섯, 수비수 여섯으로 경기를 해도 질 수밖에 없는 팀이다”

2016년 6월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1-6으로 대패한 슈틸리케 감독은 이후 취재진과 만남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은 우리와 다른 수준에 있는 팀”이라며 “앞으로 20년 안에 스페인을 이길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골키퍼 다섯 명과 수비수 여섯 명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해도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대라고 스페인을 한없이 치켜세웠다. 슈틸리케 감독과의 길었던 허니문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스페인이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팀이라도 하더라도 한 국가의 대표팀 감독으로서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소리아 발언으로 국민은 슈틸리케 감독에게 등을 돌렸다 ⓒ 아시아축구연맹(AFC)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2016년 10월 12일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경기가 끝난 뒤 대한민국 축구계가 들썩였다. 패배도 패배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충격적인 기자회견 내용 때문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진했던 경기력에 대해 카타르의 공격수 세바스티안 소리아를 언급하며 원인을 대표팀 선수들의 개인 기량으로 돌렸다. 선수들과의 신뢰가 깨지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실제로 일부 선수는 여러 채널을 통해 감독의 발언에 아쉽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경기 직후 팬들의 신뢰를 급속히 잃으며 위기를 맞았다.

“예전에는 전술 변화가 없다고 비난, 이제는 자주 바꾼다고 논란이 있는 것 같다”

2017년 3월, 참사로 기억되는 중국 원정에서의 0-1 패배 직후 슈틸리케호는 홈에서 시리아를 상대로 졸전 끝에 1-0 신승을 거두며 월드컵 본선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다. 월드컵 최종예선에 들어서며 언행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슈틸리케 감독은 시리아전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거침없는 발언을 내뱉었다. 전술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경기 중 전술 변화는 한 번밖에 없었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리아전을 마친 뒤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에 대해 논의했으나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재신임했다.

“팀의 내부 상황을 외부로 발설하는 선수는 과감하게 조치하겠다”

재신임이 결정된 뒤 슈틸리케 감독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을 점검한 뒤 귀국 인터뷰에서 팀 내 기강을 강조하며 내부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발언이 전해지자 계속되는 자신의 실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오로지 언론과 국민에게 비치는 모습에 과도하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갓틸리케’ 시절 나왔다면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을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가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상황이었다.

“아직 두 경기가 남았다”

‘설마설마’했던 카타르 원정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 뒤 슈틸리케 감독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진 사퇴에 대한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며 남은 두 경기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어 부진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홈에선 우리가 모두 이겼다”며 자신을 변호하기도 했다. 많은 축구 팬들은 한때 추앙했던 ‘갓틸리케’의 180도 다른 모습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동시에 나타냈다. 이 자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그의 마지막 인터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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