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통신] ’51년 덕질 인생’ 행복한 축덕 아저씨 이야기


마놀로의 상징인 베레모. 축구팬들과 인증사진을 찍을 때면 늘 한쪽에서 모자를 꺼내 쓴다

현재 스페인 발렌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배시온 기자는 스포츠니어스 독자 여러분들께 스페인 축구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전달해 드립니다. 세계 3대 프로축구 리그로 손꼽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그리고 축구 없이 못사는 스페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스포츠니어스 | 발렌시아=배시온 기자]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축구펍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나와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축구를 보는 것은 모든 축구팬들에게 설레는 일이다. 특히 새벽 시간에 봐야하는 유럽축구를 자고 일어나서 볼지, 밤새고 볼지 고민하는 것보다 새벽 내내 축구만 틀어주는 곳에서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보는 일은 신나지 않을 수가 없다.

스페인에선 이런 장소를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는 평범한 레스토랑이다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엔 TV를 틀고 축구 경기를 보는 곳이 대부분이다. 축구만을 위한 펍이라기보단 축구 또한 즐길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발렌시아엔 오직 축구만을 위한 펍 하나가 있다. “Tu Museo Deportivo(너의 스포츠 박물관)”라고 의역할 수 있는 이 곳은 이미 스페인에서 유명한 ‘축덕’이 운영하는 곳이다. 51년 동안 축구와 사랑에 빠진 한 스페인 아저씨의 일생이 담긴 박물관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찬다. 이곳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일까? 축구선수만큼 유명한 축덕 사장이 있는 곳.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자신할 만한 이곳에서 축덕 아저씨와 얘기를 나눠봤다.

 

마놀로의 상징인 베레모. 축구팬들과 인증사진을 찍을 때면 늘 한쪽에서 모자를 꺼내 쓴다

사진찍으러 줄 서야하는 축구팬, 본 적 있나요

스페인 사람들에게 ‘Manolo el del bombo(북치는 마놀로)’로 알려진 마놀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인사다. 마놀로는 발렌시아 남쪽에 있는 시우닷 레알에서 태어났다. 이후 7살 때 북동부 지방인 우에스카로 이사를 갔다. 그 후 우에스카에서 축구를 보기 시작했고 그 영향으로 마놀로의 첫 번째 팀은 우에스카가 됐다. 그 다음엔 사라고사로 거처를 옮겼고, 현재 발렌시아에 정착한지 31년째다. 발렌시아CF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 옆에 조그마한 축구펍을 운영하며 지내고 있다. 벌써 28년이 된 이곳은 발렌시아의 명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스페인 사람이라도 ‘Manolo el del bombo’라고 하면 누군지 알 정도이다.

원래의 바는 현재 크기의 반 정도밖에 안됐다. 마놀로가 유명세를 타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가게를 확장했다. 일단 이곳에 방문하면 대부분의 이들은 마놀로와 사진부터 찍는다. 그 후 각자 자리를 잡고 축구를 본다. 한 때는 한 경기에 40~50명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현재는 메스타야 앞 가게들을 단속하는 경찰들 때문에 테라스를 운영할 수 없어 방문하는 이들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마놀로의 박물관은 늘 만석이고, 자리를 못잡은 사람들은 맥주 하나를 시켜 선 채로 축구를 본다.

사실 평범한 축구팬인 그가 스페인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을 시작으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한일, 독일, 남아공, 브라질 월드컵까지 빨간 스페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빵모자를 쓰고 북을 든 채 응원을 다녔다. 항상 같은 차림으로 축구장에 나타나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마놀로를 ‘El del bomb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놀로가 유명해지면서 그의 펍을 찾는 발걸음도 자연스레 늘었다. 경기장에서 만나던 이들이 직접 가게에 찾아와 인증사진을 찍는 것은 어느덧 하나의 절차가 됐다.

국제대회별 다르게 사용한 마놀로의 봄보(북)

응원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악기 중 왜 북이냐는 질문에 마놀로는 “몰라”라는 간단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51년동안 내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베레모를 쓰고 북을 치며 나의 팀을 응원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처음부터 그랬고 항상그 모습이 내 모습이다. 앞으로 바꿀 수도 없고 바꿀 마음도 없다. 그냥 북치는 마놀로가 내 모습인 것”이라고 말한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변함없이 자리는 지키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마놀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마놀로가 경기장에서 북을 안 친지는 5년이 됐다. 건강이 점점 안좋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68세인 그는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건강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작은 수술을 한 번 받았고, 잘 끝냈지만 전보다 건강이 좋은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축구는 빠짐없이 보고 북을 치지 않더라도 경기장엔 출석하고 있다. 9회 연속 월드컵 응원을 따라다닌 마놀로는 다가오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역시 같은 복장을 하고 응원에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축구와 친구로 행복한 마놀로의 삶

이 펍은 평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주말과 축구경기가 가끔 있는 수요일에나 문을 연다. 그래서 축구경기가 없는 평일에 방문한다면 허탕치는 일이 대다수다. 오로지 축구만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20평 남짓 되어보이는 펍은 온통 축구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엔 조명 대신 축구팀 머플러가 자리를 채웠고 벽면은 축구 관련 사진과 장식품, 신문 기사로 꽉 찼다. 특히 천장에 가득 찬 머플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리메라리가 팀과 세군다디비시온 A, B팀 소속은 물론 아마추어팀의 머플러까지 있었다. 스페인팀뿐만 아니라 독일, 알바니아, 멕시코 팀까지 각국에서 모인 팀의 머플러가 가득 찼다. 많은 머플러를 어떻게 모았냐는 질문에 마놀로는 “모은 것도 있지만 가게에 있는 머플러를 보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선물한 것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팀의 머플러는 아직 찾아볼 수 없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말에 다시 방문해 K리그 팀 중 갖고있던 성남FC의 머플러를 선물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이 방법으로 각국의 머플러가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이 펍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애정으로 세계 각국 축구팀의 머플러가 가득 찰 수 있던 것이다.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팬일 뿐인데 많은 이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선물까지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를 하다보니 답은 마놀로에게 있었다. 마놀로는 우에스카, 사라고사, 발렌시아와 스페인을 응원하지만 축구 자체를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펍에 방문하는 축구팬들을 가족, 친구처럼 대했다. 한 번 마놀로의 박물관에 방문한 사람은 다시 방문하게 된다. 더 이상 손님이 아닌 친구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문인지 마놀로는 가족에게 소홀했다.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살고있는 마놀로는 바 한켠에 가족 사진을 두었다. 가족들은 8월, 2017-2018 프리메라리가가 시작할 때 발렌시아에 와서 같이 경기를 보기로 했다. 그 전까지 마놀로의 가족은 축구와 펍에 방문하는 친구들인 셈이다. 형제와 딸 마누엘라 사진을 세워놓고 그리워하면서도 그는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고 한다.

“지금 내 삶에 매우 만족한다. 가족이 그리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모두 내 친구고 가족이다. 언제나 그들과 얘기하며 맥주 한 잔, 저녁 한끼를 한다. 축구경기가 있으면 내 펍에 방문하는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본다. 이 순간이 행복하다.”

si.onoff@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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