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틸러스 선수단이 울릉도에 방문해 어르신들에게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포항스틸러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K리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은 무척이나 많다. 물론 K리그에는 심판 문제를 비롯해 흥행, 중계, 경기력 등 개선해야 할 문제가 많다. 하지만 K리그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부분에 대해 칭찬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K리그에도 분명히 희망적인 부분이 있고 좋은 정책도 있지만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 못한 걸 못했다고만 할 게 아니라 잘한 것도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지 않아야 할까. 그래야 K리그가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발전할 수 있다. 올 시즌 K리그가 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꼽아봤다.

1. 그라운드에 물 뿌리기

“잔디에 물을 많이 뿌려주세요.” 지난 3월 K리그 구단들 주장 모임인 주장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이다. 선수들의 부상도 방지하고 보다 빠른 경기 진행을 유도하기 위한 선수들의 요청사항이었다. 프로축구연맹은 주장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7라운드부터 경기 시작 전은 물론 하프타임에도 그라운드에 많은 양의 물을 뿌리게 됐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과 감독들은 이를 반겼다. 부산 조진호 감독은 “경기력 향상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경기 시작 전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이제 K리그의 명물이 됐고 무지개라도 뜨면 관중은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하프타임 공연 도중에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스프링클러 때문에 웃음꽃이 피기도 한다.

그라운드에 물을 충분히 뿌린 뒤 긍정적인 평가를 받자 연맹은 이를 규정으로 명시했다. 지난 달 29일 연맹 이사회가 ‘그라운드 살수(물 뿌리기)에 관한 연맹 경기규정 제2조 제6항’을 개정한 것이다. 이전까지 홈팀 자율에 따라 이뤄지던 그라운드 살수는 앞으로 경기 감독관이 수립한 계획에 따라 진행하게 됐다. 경기장을 관리하는 관리사업소 측이 물을 많이 뿌리면 잔디가 잘 패이는 등 관리 비용과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지만 연맹은 “길게 봐야 한다”면서 지자체의 협조를 이끌어 냈다. K리그가 최근 들어 경기력이 떨어져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밥을 남기면 루카가 가만히 있질 않을 것이다. ⓒ안산그리너스

2. 구단들의 사회 공헌 활동

포항스틸러스는 지난 달 28일 프로스포츠구단 최초로 울릉도를 방문했다. 2박 3일 동안 울릉도에 머물면서 학생들에게 축구 클리닉을 열고 사인회도 개최했다. 학생들에게 포항 마스코트가 새겨진 기념품도 전달했다. 이뿐 아니라 포항 선수들은 울릉군 축구 동호인과 친선 경기도 치렀다. 울릉도에 사는 축구 동호인들이 손준호와 강현무 등 현역 선수들과 축구를 해볼 기회는 생전 처음이었다. 올 시즌 한 골을 넣을 때마다 쌀 6포를 적립해 모으게 된 120포의 쌀 중 무려 60포를 울릉송담실버타운에 전달했고 요양원 청소도 했다. 최순호 감독은 어르신의 발을 씻겨드리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생각난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포항의 울릉도 방문은 큰 의미가 있었다.

포항뿐 아니라 다른 K리그 구단 역시 올 시즌에도 사회 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안산그리너스는 지역내 병원을 찾아 배식 봉사 활동을 하기도 하고 양로원을 찾기도 한다. 몬테네그로에서 온 루카는 배식 봉사 활동을 하면서 한국어로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를 할 정도로 봉사가 익숙해졌다. 아산무궁화 선수단은 연고 지역 내 과수원을 찾아 배꽃을 뿌리고 인공 수준 작업을 하기도 했고 전북현대는 유소년 선수들이 노인 복지 시설로 총출동해 따뜻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K리그는 이렇게 연고 지역민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루 아침에 성과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런 노력이 언젠가는 큰 결실을 맺지 않을까. 참고로 포항 2년차 미드필더 이래준은 울릉도 아저씨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며 3골을 넣었다. 아주 잔인하게.

3. 홍보대사 박재정

나는 지금껏 K리그 홍보대사 임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대부분의 홍보대사가 처음에는 그럴 듯하게 언론에 보도됐지만 ‘용두사미’로 끝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K리그 홍보대사로 임명된 박재정은 올 시즌에도 대단히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K리그 최고의 영입은 박재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재정은 매주 경기장을 찾아가 팬들에게 인사했고 사인을 받으러 온 아이들을 구단 용품점으로 데려가 한턱 쏘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축구 칼럼을 쓰며 내 자리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K리그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고 그로 인해 K리그는 대중에게 확실히 홍보되는 중이다.

박재정은 K리그 전 구단 경기장 방문이라는 공약 실천을 위해 올 시즌에도 쉴 틈 없이 달리고 있다. 지난 달에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아 인천의 상징과도 같은 단어인 “투게더”를 외치기도 했다. 자신이 한 공약을 지키는 최고의 홍보대사다. 이런 박재정을 영입한 연맹의 선견지명에도 박수를 보내야 하고 무엇보다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홍보대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재정에게는 더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지난 달 ‘2017 월간 윤종신 5월호’에 담긴 박재정의 신곡 ‘여권’도 우리가 많이 사랑해주자. 그게 K리그에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준 박재정에 대한 K리그 팬들의 의리 아닐까. 노래 좋더라.

밥을 남기면 루카가 가만히 있질 않을 것이다. ⓒ안산그리너스

4. 프런트의 ‘열일’

K리그 구단은 지금껏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특히 올 시즌 K리그 구단의 ‘열일’이 돋보인다. 특히나 관중 없는 구단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울산현대 프런트는 ‘약빤’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포항까지 가 울산-포항전 홈 경기 현수막을 걸며 도발하기도 했다. 경기장에는 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응원할 수 있도록 통천을 설치했고 햇빛 때문에 관람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받아들여 이 통천의 위치를 대대적으로 옮기기도 했다. 선수들 출입구는 울산의 상징인 호랑이 모양으로 꾸몄다. 지금껏 보지 못한 ‘열일’ 중이다. 연맹은 KEB하나은행과 손잡고 ‘K리그 팬사랑 적금’도 만들었다. 돈만 있으면 이 적금에 넣고 싶은데 돈이 없다.

부산아이파크는 ‘레전드’ 김주성과 안정환을 경기장에 초대하는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특히나 방송 활동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안정환을 어렵게 모셔 흥행에 성공한 건 박수를 보내야 한다. 부천FC 또한 과거 부천 축구를 이끌었던 니폼니시 감독을 홈 경기에 초대하기로 했다. 전혀 연락이 닿질 않았지만 과거 니폼니시 감독이 마지막으로 지도자 생활을 했던 러시아 구단에 편지까지 보내 결국 그를 초청할 수 있었다. 포항은 해병대 응원단에게 열띤 호응을 받는 무랄랴가 경고누적으로 결장하자 해병대와 함께 응원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전북-포항의 ‘레트로 매치’는 ‘열일’의 결정판이었다. 이제 구단들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프런트의 연봉이 올랐나. 왜 이러나.

5. 경기 홍보 포스터

요즘 K리그 경기 홍보 포스터를 보면 ‘이거 너무한다’ 싶을 정도다. 경기력과 경기장 시설, 심판 수준 등에 비해 포스터의 퀄리티가 좋아도 너무 좋기 때문이다. 경기 포스터만 봐도 전투력이 샘솟을 정도다. 과거 전북, 성남 등의 포스터 정도가 관심을 끌었다면 이제는 다른 구단들도 포스터 제작이 힘을 쏟고 있다. 비장한 각오를 지닌 포스터부터 선수들을 나이트클럽 출연진으로 패러디한 재미있는 포스터까지 다양하다. 적어도 포스터의 수준 만큼은 우리도 유럽 빅리그 부럽지 않다. 아니, 나는 K리그가 그 이상이라고 자부한다. 단순한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 홍보 포스터는 구단 역사와 라이벌, 상대 전적 등을 모두 고려해 한 장에 담아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인데 올 시즌 K리그에서는 이 작업이 너무나도 멋지게 이뤄지고 있다.

전북은 열악한 전주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지는 경기를 ‘레트로’로 잘 포장했는데 이는 홍보 포스터가 크게 한몫했다. 전주종합운동장 시절 마스코트였던 공룡을 다시 불러들여 잠자던 공룡의 느낌을 낸 건 신의 한 수였다. 부천은 상주상무와 아산무궁화전을 앞두고 “외박을 저지하라”는 포스터를 제작해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설레발은 필패”라는 말이 있지만 올 시즌 K리그에서는 경기를 앞두고 상대에 멋지게 도발하는 이런 화끈한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만은 긍정적인 사실이다. 이제 숙제는 선수들에게 던져졌다. 선수들이 이 포스터 수준에 걸맞는 경기력만 보여주면 된다. EPL도 포스터를 이렇게는 못 만든다.

밥을 남기면 루카가 가만히 있질 않을 것이다. ⓒ안산그리너스

6. 사라지고 있는 공짜표

K리그를 돈 주고 관람하는 게 억울했던 시대도 있었다. 나에게도 “공짜표 좀 구해달라”는 지인들의 문의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부터는 K리그에서 공짜표가 사라지고 있다. 공짜표가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더 줄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는 “K리그를 돈 내고 관람해야 한다”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특히나 구단들이 시즌권 마케팅을 펼치면서 공짜표 근절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나 연고 지역 자치단체장이 나서 시즌권을 구입하며 홍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게 긍정적이다. 2015년 수원삼성이 공짜표 근절 운동을 시작하자 염태영 시장은 “나부터 동참하겠다”면서 3년째 시즌권을 구입했고 형평성을 고려해 수원FC 시즌권도 샀다. 시즌권 부자다.

올 시즌에도 공짜표 근절을 위한 시즌권 구매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안산FC와 FC안양FC은 제종길 안산시장과 이필운 안양시장이 각각 시즌권 1호 구매자로 나섰다. 부산아이파크는 부산에 연고를 둔지 34년 만에 처음으로 시장이 시즌권을 구입하기도 했다. 부산 서병수 시장은 올 시즌을 앞두고 구단의 시즌권 구입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시민구단이 아닌 기업구단인 탓에 부산시장에게 시즌권 구입을 제안하기 꺼렸던 부산에서 시즌권을 구입한 첫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시즌권 구매 운동이 펼쳐지고 시장들이 솔선수범하면서 점차 공짜표에 대한 인식도 사라지고 있다. 지금도 어렵게 구하면 구할 수 있지만 그래도 올 시즌에는 과거보타 공짜표를 구하는 게 어려워졌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K리그는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은 많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이런 희망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못한 건 과감히 비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칭찬에 인색해서도 안 된다. K리그가 잘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무리 악재가 터져도 결국 이 K리그를 품어야 할 건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힘을 내자.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수도 없는데, 늘 K리그는 위기라고 했는데도 우리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질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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