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민축구단 명승호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세상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의 기억도 빠르게 잊혀진다.

시흥시민축구단 명승호 또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가는 존재다. 청춘FC의 일원으로 감동을 줬던 그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름마저 쉽게 기억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자신의 얼마 전 일들도 쉽게 기억하기 어렵거늘 몇 년 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를 기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는 축구선수고 축구인이었다. 시흥시민축구단 사무실에서 청춘FC의 명승호, 시흥의 명승호, 그리고 대학생 명승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금 시흥시민축구단에서 선수로 뛰면서 대학생의 삶을 살고 있어요. 현재 상명대학교 체육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밤에는 훈련하러 시흥에 와요. 그야말로 '주경야축'의 삶을 살고 있죠.

학교에서 축구를 하지 않고 K3리그에서 뛰네요?

네. 상명대는 축구부가 없어요. 그냥 저는 체육학을 전공하는 일반 학생입니다.

축구선수가 축구부 없는 학교에 있다니… 축구선수의 꿈이 없었던 건가요?

아뇨. 사실 진학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좀 겪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사실 서울대를 준비했어요. 체육특기자 전형인데 모든 구기 종목에서 4명 뽑는 시험이거든요. 나름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예비 1번을 받고 떨어졌어요. 그야말로 닫힌 문 바로 앞에 섰던 거죠. 서울대 결과 발표 전에 몇몇 대학교에서 입학 제의를 받았는데 정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저 서울대 준비 중이어서요' 하면서 다 거절했거든요. 덕분에 속칭 '붕 떠버린' 상황이 됐죠.

그래서 1년을 거의 놀았어요. 그러다가 '이제 공부를 해야겠다'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1년 놀고 그 다음 1년은 재수 공부해서 수능을 봤죠. 재수 공부라고 하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3수인 셈이죠.

그 때는 축구선수의 꿈을 거의 접은 상황이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축구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어요. 사실 청춘FC도 처음에 축구선수가 하고 싶어서 지원한 게 아니었어요.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청춘FC 선수 모집 공고가 올라왔거든요. 그 때 여름방학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도전한 거였어요. 일종의 대외활동을 위해 지원한 거죠. 나중에 자기소개서에 한 줄 써넣기 좋을 것 같잖아요.

1, 2차 테스트를 볼 때는 간절함이 없었어요. 그런데 또 하다보니 이게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운동을 하고 싶다는. 다른 사람들은 청춘FC를 '이것이 내 인생 마지막 도전이다'란 생각으로 많이 지원했더라구요. 근데 저는 이 청춘FC가 마지막 도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거의 접었던 꿈을 청춘을 통해 다시 되살린 거죠.

그리고 청춘FC 이후 명승호의 선택은 시흥시민축구단이었어요.

(오)성진이 형이랑 서울 유나이티드에 있다가 팀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청춘FC의 팬이었던 분이 시흥시민축구단에서 일하고 계세요. 그 분이 저한테 우리 구단에서 뛰어보는 것은 어떻냐고 추천을 해줬죠. 그래서 시흥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지난해부터 시흥에서 뛰기 시작했는데 작년에 비해 올해 출전 경기 수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올 시즌 선수단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시흥이 대대적으로 리빌딩을 한 것 같아요. 지난 시즌 있었던 선수들 중에서 속칭 '살아남은' 선수들이 저 포함해서 몇 안되요.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열심히 해야죠.

그는 시흥에서 자신의 꿈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 ⓒ 시흥시민축구단 제공

지금 시흥이 K3 베이직리그에 있거든요. 정말 아쉬운 점이 하나 있어요. 경기 수가 너무 적어요. 이럴 거면 굳이 승강제를 왜 하나 싶을 정도로 적어요. 한 달에 경기가 두어 번 밖에 없어요. 솔직히 지금의 두 배 정도는 해도 될 것 같아요. K리그 챌린지처럼 홈 앤 어웨이를 두 번 했으면 좋겠어요.

팬과의 인연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정도면 인기가 꽤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는 사실 인기있는 캐릭터가 아니죠. 이도한, 염호덕, 최희영 이런 선수들이 인기가 많았죠. 잘생겼잖아요. 저는 대신 옆에서 '낙수효과'를 누렸죠. (염)호덕이 형 팬들이 진짜 많았어요. 그 팬들께서 호덕이 형 선물을 준비할 때 다른 선수들 선물도 작게 준비하시더라구요. 저는 그런 선물들 받으면서 연예인 지인이 된 기분이었죠.

물론 드물게 알아봐주시는 분이 계세요. 특히 저한테 편지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정말 감사해서 제 방에 다 붙여놨어요. 주로 '앞으로도 계속 꿈 잃지 말고 선수 생활 했으면 좋겠다'는 응원 메세지가 많아요. 힘이 나죠. 게다가 며칠 전에 학교 앞에서 주스 사먹는데 거기서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이 "명승호 선수 아니세요?"라고 물어보더라구요. 이제 그냥 평범한 대학생인데 아직도 알아봐주시니 신기하더라구요.

저런, 청춘FC에서도 '외모패권주의'가 만연했던 거 같군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김)용섭이 형이나 (이)제석이 형 보면 딱히…. 아, 외모보다는 캐릭터가 있는 사람이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방송에도 많이 나왔구요. 대표적인 선수가 제석이 형이죠. 이 형은 냉정하게 잘생긴 건 아니에요. 좀 못생겼다고 봐야죠. 그런데 확실히 캐릭터가 있잖아요. 성격이 굉장히 독특하고 재밌어요. 저는 그런 거 절대 못해요. 만일 누가 "너에게 인기를 줄테니 이제석처럼 할래?"라고 하면 안한다고 할 거에요.

그래서 명승호를 방송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건가요?

제 분량이 굉장히 적은 건 인정해요. 청춘 멤버들도 농담삼아 "솔직히 승호는 우리 멤버 아니지 않아?"라고 말하거든요. 심지어 제 분량이 이도한의 형인 이요한보다 적다는 말도 있어요(이요한은 동생 이도한과 함께 청춘FC에 지원했다가 1차에서 떨어졌다). 제가 카메라 켜지기 전에는 정말 신나게 잘 놀거든요. 그런데 카메라가 켜질 때는 지쳐서 뒤에 나가떨어져 있어요. 사람들은 제가 말이 많다는 걸 잘 모를 겁니다. 그냥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알 거에요.

청춘FC의 MC딩동이군요. 그래도 많은 추억을 남겼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역시 낭시와 했던 경기가 제일 기억에 남죠. 제가 어시스트를 했으니까.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군요.

에이, 아쉬운 순간도 있어서 그래요. 그 당시 프랑스에 가기 전에 다래끼가 생겼어요. 연습을 하다보니 이게 계속 커지더라구요. 그래서 병원에 갔어요. 그 때 카메라가 한 대 함께 갔어요. 청춘 촬영하면서 부상으로 누가 병원에 가면 꼭 카메라가 한 대씩 같이 갔어요. 션도 (허)민영이 형도 그랬어요.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도 찍고 인터뷰도 하는 거죠. '이 때 내 분량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진료를 받기 전에 인터뷰를 했어요. "병원에서 다래끼를 째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묻길래 "경기를 위해서는 째면 안될 것 같은데 지금 이 상태로는 팀에 도움이 안되서 째야할 것 같기도 해요"라고 대답했죠. 정말 너무 커져서 앞이 안보일 정도니까요. 그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죠.

솔직히 째야 한다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그냥 다래끼래요. 당황해서 다래끼인 거 안다고 째달라고 하니까 그냥 놔두면 된다는 거에요. 정말 앞이 안보일 정도인데. 심지어 먹는 약도 처방해주지 않고 바르는 약 주면서 꾸준히 바르래요. 완치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봤더니 태평한 모습으로 "3~4주 정도 걸릴 걸요?"라는 거래요. 저는 당장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알고보니 유럽은 사람 몸에 칼을 잘 대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먹는 약도 잘 처방해주지 않구요. 결국 별 소득 없이 돌아와서 눈이 부어있는 상태로 낭시전에 나섰는데 어시스트를 하나 했죠.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시스트까지 기록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요?

사실 실력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행운의 어시스트죠. 눈도 잘 안보이는 상황에서 대충 직감적으로 '저기 성진이 형 있겠네'하고 찼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가더라구요. 낭시전 끝나고 '이번에 내 분량 대박이겠다. 많이 뽑았다'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그래서 청춘FC가 방영을 시작했을 때 친구들이 제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야, 너는 왜 하나도 안나와?"라고. 그 때까지 저는 믿는 구석이 있었죠. 낭시전이 있었으니까요. 친구들한테 "조만간 분량 폭발한다"고 허세를 부렸죠. 그런데 막상 낭시 경기가 방영되는데 병원 가서 다래끼 진료 받고 인터뷰한 게 죄다 편집을 당했더라구요. 분량 폭발할 줄 알았는데 어시스트 장면 달랑 하나 나왔어요. 그 이후부터 제가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못들고 다녔습니다…

누구는 열심히 돈을 모아서 가는 유럽인데 고작 추억이 다래끼 밖에 없다니 뭔가 아쉽지 않나요?

청춘FC가 유럽을 가긴 했는데 정말 외국이라는 느낌이 없었어요. 그냥 한국의 시골 동네랑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거든요. 특히 저희는 학교같은 곳에서 숙소 생활을 했는데 심지어 저희가 체류할 당시 그 학교가 방학이었어요. 가뜩이나 사람 없는 곳인데 학생들마저 없는 거였죠. 기껏해야 외국인 감독이나 선수들 몇 명 보이면 괜히 "하이, 봉쥬르" 이런 말 하는 게 전부에요.

별로 유럽이라는 생각이 안들었어요. 하루종일 훈련 열심히 하고 저녁이 되면 그 때서야 가끔 '아… 여기 벨기에였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유럽은 해가 길더라구요. 오후 10시에도 대낮 같았어요. 언젠가는 다시 여행올 겁니다. 아, 그 전에 제 소원 중 하나가 월드컵 직관이거든요.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보러 갈지 고민 중입니다. 금전적인 문제는 시흥에서 도와주면 해결될 것 같은데 요즘 대표팀이 월드컵 예선에서 불안한 모습이라 걱정입니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대학생이네요. 청춘FC 이후 학교로 돌아갔을 때는 어땠나요?

같은 과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했어요. 특히 교수님께서도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학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교수님께서 우리 학과 소개를 하면서 "우리 과에 청춘FC에 나왔던 명승호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정작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 얘기 들으면 참 뿌듯해요. 티는 내고 싶지 않은데 제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참 어려워서 표정이 자꾸 얼굴에 드러나요.

하지만 청춘FC로 인해 신입생의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지 못한 건 아쉬웠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진짜 과팅이나 미팅을 나가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제가 1학기는 다녔지만 신입생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캠퍼스 라이프 즐겨보신 분은 아실 거에요. 과팅이나 미팅 이런 건 신입생 때 바짝 하고 그 이후로는 뚝 끊기잖아요. 아예 잡아주질 않죠. 저는 분명히 청춘FC 끝나고 1학년 2학기로 복학했는데 학번은 벌써 2학년이더라구요.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것 같아요.

이 인터뷰를 보면 학과 선후배들이 과팅이나 미팅을 주선해주지 않을까요?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요. 과팅이나 미팅은 딱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소개팅을 하고 싶어요. 기자님도 좋은 분 주위에 있으면 소개좀 시켜주세요.

그럼 이 자리를 빌어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제가 재밌는 사람이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저는 오시는 분 막지 않고 가시는 분은 잡습니다. 그렇다고 매달리는 스타일은 전혀 아닙니다. 한 번 저희 시흥시민축구단 경기에 놀러오세요. 명승호 선수 보러 왔다고 하면 팬서비스 확실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축구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연애까지 노리다니 욕심쟁이 아닌가요?

축구와 공부를 함께 하는 것 솔직히 힘들죠.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둘 중 하나에 올인하는 것이 맞는 방향일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축구선수가 축구에만 신경 쓰지 뭐하러 공부를 하냐'고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성인 선수들은 하루 종일 연습에 매달리지는 않아요. 오전에는 쉬거나 병원에 가고 오후부터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죠. 저는 오전에 휴식 대신 공부를 선택한 거죠.

명승호 선수의 이런 모습이 언젠가 결실을 맺길 바라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명승호의 계획과 목표를 알려주세요.

당분간은 이렇게 '주경야축'의 삶을 살 것 같아요. 조만간 공익근무요원 복무도 해야 하니깐요. 물론 프로 선수의 꿈은 아직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시흥 구단은 선수들이 더 좋은 팀으로 간다면 기꺼이 보내줄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시흥에서 오래 남아 선수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시흥이 저를 자르지 않는다면요.

일단은 올 시즌 팀이 우승해서 K3 어드밴스리그로 승격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고, 개인적으로는 50% 이상 출전해서 팀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아직 경기를 많이 못뛰고 있어요.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죠. 앞으로 더 자주 경기장에서 멋진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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