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K리그 올스타전의 모습. 별들의 잔치임에도 관중석에 빈자리가 많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아직도 과거 K리그 올스타전을 추억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동국과 안정환, 고종수 등 화려한 별들이 출전해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을 관중으로 꽉 채웠을 때의 기억은 여전히 강렬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펼쳐진 올스타전은 시청률이 무려 20.4%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스타전 때마다 선수와 팬은 물론 팀 닥터까지 나와 함께 계주를 즐기던 모습은 올스타전의 하이라이트였다. 캐논슛 콘테스트에서 골키퍼 김병지가 1등을 차지했을 때는 경악하기도 했다. 올스타전에는 이런 추억들이 많이 묻어있다. 하지만 이건 다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요즘 올스타전은 큰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가기로 한 K리그 올스타

이 와중에 프로축구연맹은 올 시즌 올스타전을 독특하게 치르기로 했다. 오는 7월 29일 베트남에서 K리그 올스타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K리그 올스타가 베트남 U-22 선발팀과 경기를 하면서 K리그라는 브랜드를 국제무대에 널리 알리고 동남아 등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장기적인 노력의 일환이라는 게 연맹의 설명이다. 참신한 발상이고 그들의 노력도 응원한다. 동남아 시장을 꾸준히 공략하겠다는 의지도 좋다. 이런 시도 자체에 반대를 할 생각은 없다. 만약 올스타전이 어떠한 방식으로 무조건 열려야 한다면 이렇게 동남아를 돌며 경기를 하는 게 가장 참신하고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올스타전이 어떤 방식으로건 지속되어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앞으로는 K리그가 올스타전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별로 의미도 없고 그렇다고 K리그 선수들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지도 않는 이런 이벤트성 경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부 선발과 남부 선발로 팀을 나눠 안정환과 이동국, 고종수가 나오고 각 팀 팬들은 골대 뒤에 모여 함께 어깨동무를 하던 시대는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K리그는 이제 올스타전의 추억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더 이상 올스타전은 K리그에서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다. 그냥 번거로운 연례행사가 되고 말았다.

이런 K리그 올스타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이벤트였을까. ⓒ프로축구연맹

올스타전, 방향 잃은 지 벌써 10년

올스타전은 한 2005년까지가 딱 좋았던 것 같다. 중부 선발과 남부 선발로 나눠 축제 분위기로 치러진 올스타전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2006년에는 부천SK의 제주 연고이전에 반대하는 서포터스가 올스타전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이후에는 서울에서만 열리는 올스타전에 대한 항의 표시로 K리그 각 구단 서포터스가 대거 보이콧을 선언했다. 정작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K리그 팬들이 떠난 자리를 누가 메울 수 있을까. 가뜩이나 마니아들의 리그로 평가받는 K리그가 팬들의 관심 없이 성공적인 올스타전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다. 2007년 올스타전 이후 중부 선발과 남부 선발로 나뉘어 치러지던 이 경기는 그 맥이 끊기고 말았다.

이후부터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올스타전 흑역사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2008년과 2009년에는 K리그 올스타와 J리그 올스타가 조모컵이라는 이름으로 맞붙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올스타전 특유의 훈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없었다. K리그와 J리그가 자존심을 놓고 싸우다보니 진검승부 형태가 됐다. 이런 경기에서 현영민이 경운기 드리블을 선보이고 김용희가 가발을 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장 최악의 올스타전은 조모컵이 폐지된 2010년 펼쳐졌다. K리그 올스타와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경기를 치렀는데 이 경기는 K리그 올스타가 아닌 메시를 위한 무대였다. 온통 메시만 주목했고 심지어 MVP도 메시가 탔다. K리그 선수들의 축제에 이방인이 MVP까지 받는 모습은 부끄러웠다.

2012년과 2014년 올스타전은 눈 앞에 보이는 걸로만 봐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주인공은 K리그 올스타가 아니었다. 2012년에는 2002 한일월드컵 10주년 기념으로 결성된 ‘팀2002’가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았고 2014년에는 현역 은퇴를 선언한 ‘팀박지성’이 주인공이었다. K리그 클래식 올스타와 K리그 챌린지 올스타가 격돌한 대결도 의미는 있었지만 정례화 되지는 못했다. K리그 선수들과 팬의 축제가 되어야 할 올스타전에서 메시가 MVP를 받고 히딩크 감독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박지성에게 모든 시선이 간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었다. 연고이전 반대 시위를 벌이던 2006년, 그리고 서포터스가 보이콧을 선언한 2007년을 기점으로 올스타전은 이렇게 지금까지도 10년 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K리그 올스타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이벤트였을까. ⓒ프로축구연맹

‘위 아 더 월드’는 K리그에 더 이상 없다

그러면 누군가는 “다시 서포터스를 잘 설득해 경기장으로 부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 됐다. 한참 오래 전이야 뭐 그래도 안양 팬들과 수원 팬들이 골대 뒤에 같이 모여 눈인사를 나누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됐지 지금은 이런 ‘위 아 더 월드’는 절대 일어날 수가 없다.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가는 주먹다짐이나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다시 중부 선발과 남부 선발로 나눠 서울 팬과 수원 팬이 같이 ‘사자후’를 외치고 포항 팬과 울산 팬이 함께 ‘잘가세요’를 부른다? 차라리 남북통일이 더 빠를 것이다. 이건 내가 장담한다.

나쁘게 볼 것도 없다. 원래 이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참 전 옛날이야 라이벌 의식도 적고 서포터스 문화도 아직 잡혀 있지 않았으니 가능했던 일이지 지금은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이렇게 K리그 올스타전이 서포터스를 위한 축제가 되길 원한다면 그건 슈퍼매치나 동해안 더비, 서울-안양전 등 K리그의 모든 스토리를 다 포기할 때나 가능하다. 세상은 변했고 더 이상 K리그에 ‘위 아 더 월드’는 없다. 제주가 AFC챔피언스리그 결승에 가도 그 모습이 싫은 부천 팬들이 부천 중동에 모여 상대인 중동 팀을 응원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게 요즘 세상이다. 앞으로 K리그 팬들이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골대 뒤에서 축제를 벌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아스널 팬과 리버풀 팬이 서로 경기 끝나고 기념으로 유니폼 바꿔 입는 소리 하지 말자.

올스타전은 더 이상 국내에서 정례화 된 체계로 흥행을 할 수가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 10주년을 맞아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거나 박지성 같은 세계적인 선수의 은퇴식을 겸하거나 메시를 데려오지 않는 이상은 메리트가 없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주인공은 K리그가 아니라 늘 초대 손님이다. 중부 선발과 남부 선발의 대결처럼 하나의 방식을 정해서 꾸준히 치를 수 없는 이벤트가 됐는데 이걸 국내에서 계속 유지하는 건 의미도 없을뿐더러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다. 굳이 올스타전을 지속해야 한다면 이번처럼 동남아 순회 공연(?)을 하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이긴 하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를 달았다. ‘올스타전을 굳이 해야 한다면’이다.

이런 K리그 올스타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이벤트였을까. ⓒ프로축구연맹

베트남에서 열리는 올스타전, 잘 될까?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을 수두룩하다. K리그는 이제 중반으로 접어들었고 여름을 맞아 더위와도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올스타에 선발된 선수들은 7월 29일 베트남까지 날아가 올스타전을 치르고 귀국해 나을 만에 K리그 경기를 치러야 한다. 올스타에 뽑히는 건 선수에겐 대단히 영광인 일이지만 과연 이번 올스타전에 앞장서서 나가려는 이들이 있을까.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한데 K리그를 널리 알리자는 ‘대승적인 차원’의 희생을 또 감수해야 한다. 올스타 선발은 팬 투표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팬들이 라이벌팀 선수들에게 몰표를 줄 수도 있다. 과연 순수한 의미의 올스타가 선발될지도 의문이고 체력적인 문제도 상당한 부담이다.

베트남 국적의 쯔엉(강원FC)이 K리그 올스타에 뽑힐 건 뻔한데 아직 K리그에서 이렇다 하게 뭘 보여주지도 못한 쯔엉이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상식적이지는 않다. 나는 쯔엉이 K리그에서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지만 이 상황에서 쯔엉을 베트남으로 데려가 전면에 내세우는 건 별로다. 맨유에서 마케팅용으로 영입했다며 그렇게 조롱하던 동팡저우가 아시아 투어 때 중국으로 가 맨유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했던 걸 좋게 바라본 이는 없지 않은가. 동남아 시장 개척에 대한 의지는 대단히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막상 베트남에서 쯔엉을 앞세운 K리그 올스타전의 그림이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쯔엉이 자연스럽게 K리그에서 이름을 알려야 가능하다. 하나 더 최악의 상상을 해보자면 여기에 동남아에서 인기가 좋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멤버나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를 올스타에 포함시켜 경기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건 정말 최악이다.

그래서 나는 ‘올스타전을 굳이 해야 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단 것이다. 올스타전이라함은 일반팬들의 유입을 위한 홍보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동안 K리그를 아껴준 충성도 높은 팬들을 위한 서비스 개념이 더 강해야 한다.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K리그 경기장을 지켜준 팬들이 우선이다. 선수와 팬, 팀 닥터가 함께 모여 계주를 하던 것도 사랑을 보낸 팬들을 위한 서비스였다. 하지만 K리그의 충성도 높은 팬들은 이 이벤트를 별로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게 일반팬들의 유입을 위한 좋은 홍보 수단으로 쓰이는 것도 아니다. 2013년 올스타전 당시 ‘팀 챌린지’ 소속으로 눈부신 선방을 선보인 당시 부천FC 소속 골키퍼 김덕수가 길거리를 다니면 “그때 그 김덕수 선수 맞으시죠?”라고 묻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올스타전이랍시고 남의 나라 축구 좋아하는 이들의 카메라에 메시를 담게 해주는 게 K리그 홍보는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올스타전과 작별하자

그리고 솔직히 말해 명색이 ‘올스타전’인데 이동국을 빼면 전국구 스타도 없다. 이제는 별로 메리트가 없는 이벤트다. 그러니 이제는 그냥 K리그 올스타전을 폐지하면 안 될까. 축구팬들을 위한 축제 무대는 겨울이 되면 홍명보 감독이 주최하는 자선 축구로도 충분해 보인다. 굳이 시즌 중에, 그것도 매번 어떻게 흥행을 시켜야할지 방식을 바꿔가며 머리를 싸매면서 이 추억을 끌고 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냥 그만하자. 이쯤 하면 오래 잘 끌고 왔다. 1년 전 나에게 이별 통보를 했던 그녀의 마지막 문자를 받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이제는 웃으며 이 일을 추억할 수 있다. 그때 마지막 문자는 이랬다. “그동안 행복했어. 오빠 같은 사람 또 못 만날 거야. 하지만 그냥 추억 속으로 묻어두자. 우리 이대로 가다가는 점점 더 추한 모습을 보고 헤어질 것 같아.” 우리도 올해 베트남으로 이별여행을 떠났다가 이제는 K리그 올스타전과 작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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