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27년 만에 프로선수를 배출했다. 부천FC에 입단한 이정원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내일(6월 1일)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수험생들에게 운명같은 시간이 다가온다. 바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6월 모의고사가 전국에서 시행된다.

자의든 타의든 수험생들에게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축구팬 수험생들은 축구를 놓기가 상당히 힘들다. 지금도 어떤 수험생은 공부 대신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대표의 칼럼을 정신없이 읽고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기쁘지만 소중한 독자들이 몇 달 뒤 '그 때 김현회 칼럼 읽을 시간에 공부할걸…'이라고 후회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작게나마 <스포츠니어스>가 준비했다. 6월 모의고사를 앞두고 부천FC1995 이정원을 만났다. 뜬금없이 축구 선수를 만났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수능 유경험자이자 많은 수험생들이 꿈꾸는 '서울대생'이다. 그에게 축구 얘기만큼 수능 얘기를 물어봤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그의 도전을 통해 수험생들이 조금이나마 동기부여가 되고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울대생의 소소한 입시 조언은 덤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프로 첫 데뷔전(FA컵 16강 상주 상무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사실 이렇게 제가 빨리 데뷔를 할 줄은 몰랐어요. 5월 들어 1군 훈련에 합류했거든요. 여기서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죠. 그래도 항상 생각했던 순간이 다가왔잖아요.

선수 개인적으로 데뷔전은 어땠다고 생각하나요?

처음에 약 10~15분 정도는 굉장히 긴장했어요. 긴장을 하다보니 몸이 풀리지 않았던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이제 공을 한두 번 정도 만져보고 그라운드 안을 뛰면서 긴장이 조금씩 풀어졌어요. 경기를 뛰면 뛸 수록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이겠죠?

개인적으로 제 자신에게 평점을 매기자면 약 6.5점 정도? 저는 사실 항상 생각했던 게 있어요. 만약에 데뷔전을 갖게 된다면 무조건 이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제 경기력보다는 팀이 이기는 게 가장 먼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팀이 졌어요. 그래서 제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사실 이정원 선수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요. 팬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시간을 드릴게요.

음… 저의 강점은 패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팀을 위해 희생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고 어필하고 싶어요.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는, 그리고 헌신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팬들이 이정원을 기억하는 강렬한 키워드가 하나 있어요.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이겠죠.

네. 그래서 이번 인터뷰에서 축구 얘기도 많이 물어보겠지만 공부 이야기도 많이 할 예정입니다.

어쩐지 갓 데뷔한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더라니… 알겠습니다.

그럼 대놓고 바로 공부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원래 공부를 잘하던 수재가 축구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그런 건 아니죠. 아닙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동네에서 축구 하다가 눈에 띄어서 발탁됐어요. 당시 용인시의 수지초등학교가 축구부를 창단할 때였거든요. 창단 감독님이 제게 축구를 해보라고 권유했죠. 마침 저도 축구를 좋아해서 팀에 들어가게 됐어요.

이 때 부모님이 당부하셨던 게 있어요. 공부를 꼭 같이 하라고 하셨어요.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부모님 생각은 '잘 하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공부를 놓지만 말아라'였어요. 그래서 공부를 꾸준히 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도 축구부에서 훈련 하다가 주말에 외박 받아서 과외를 받고 그랬죠.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는 약하지 않을까요?

네.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저 역시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사실 손에서 공부를 놓았던 시기가 있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사이의 시기였어요. 주변에서 "너는 나중에 축구 선수 할 건데 뭐하러 공부하냐"고 말하는 것도 있었고 저 역시 '아, 나는 커서 국가대표가 될 건데 시간 아깝게 왜 공부를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공부가 무척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 드렸어요. "저 국가대표 할 거니까 공부 안하고 운동에 전념하겠습니다"라고. 그러니까 부모님도 "그래. 그럼 네 마음대로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공부를 그만 두고 운동에만 전념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때는 시험 볼 때 문제 안풀고 OMR카드에 일자로 긋고 그랬죠.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막바지 때였어요. 3학년 선배들이 대학 진학으로 고민하는 것도 봤고 졸업한 선배들이 와서 얘기해주는 것도 들었어요. 대학에서 어떻게 운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고 대학에서 프로로 몇 명이 가고 등등… 당시 선배들은 저한테 가볍게 얘기하는 것들이었어요.

그의 어릴 적 꿈은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현실이 됐다 ⓒ 부천FC1995

그런데 저는 이게 남 얘기 같지가 않은 거에요. 정말 '내가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나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죠. 결국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OMR카드에 줄도 긋지 않기 시작했죠. 하지만 수학은 정말 힘들었어요. 예전부터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 과목은 포기했어요. 저 알고보면 '수포자(수학 포기자)'입니다.

고3 때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훈련을 하루에 3번 하고 공부까지 해야 하니까요. 운동을 하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수업 때는 절대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일단 할 수 있는 공부는 무조건 하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저녁에 하는 훈련은 개인 훈련이어서 공부와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죠.

예를 들어서 월, 수, 금에 저녁 훈련을 한다면 화, 목에는 야간자율학습(야자)에 들어가는 거죠. 그 다음주는 반대로 야자 세 번, 훈련 두 번 이런 식으로요. 물론 시험 기간에는 일주일 내내 공부를 했죠. 이런 부분은 학교 감독님, 선생님들과 얘기해서 일정을 잘 조절해 소화했어요.

수험생 생활을 하면서 '서울대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가요?

네. 사실 그 당시에 몸이 너무 약했어요. 키는 180cm가 넘는데 몸무게는 60kg대였어요. 당장 프로로 갈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대학에 우선 가야하는 상황이었죠. 물론 서울에 좋은 대학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서울대에 가지 못하면 제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학벌'을 생각하겠지만 저는 학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내가 축구를 안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축구가 아니라면 나는 밥은 먹고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때는 축구 선수가 첫 번째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생계 걱정, 현실적인 걱정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결국에 첫 번째 도전에서 떨어지고 재수를 하게 됐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자신감도 많이 줄었어요. 그러면서 삶에 대한 고민을 더욱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결국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죠. 재수 학원에서 공부하고 체대 입시 전문 학원에 가서 체력 운동만 시켜달라고 해서 열심히 체력 단련만 했죠. 공은 혼자 밤에 조금씩 찼어요.

그나저나 서울대는 어떻게 들어가나요? 공부도 운동도 잘해야 하나요?

제가 입시를 치를 때는 구기 단체 종목에서 4명을 뽑는 수시 전형이 있었어요. 일반인들이 아니라 운동만 한 선수들 중에서 뽑는 거죠. 문제는 이 전형이 굉장히 경쟁이 치열해요. 한 종목에 정원이 배정되어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축구, 야구, 농구, 럭비 등 모든 구기 종목 통틀어서 4명 뽑는 거에요. 축구 선수가 한 명도 뽑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이 경쟁에서 살아남아도 수능을 봐야해요. 이 전형에 최종 합격하기 위해서는 두 과목에서 4등급 이상이 나와야해요. 사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웃을 겁니다. 별 거 아닐 수 있거든요. 4등급 두 개 나오는 것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운동에 굉장히 투자를 많이 한 사람들이 공부까지 해야 하기에 결코 쉽지가 않죠.

결국 이정원 선수는 서울대에 입성했어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어릴 적 '프로 입성'의 꿈은 오히려 더 멀어진 것 아니었나요?

그건 서울대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요? 사실 1학년 때는 조금 힘들었어요. 제가 다니던 중학교, 고등학교는 꽤 잘하는 팀이었거든요. 경기만 나가면 거의 이겼어요. 이기는 게 당연할 정도였죠. 그런데 서울대는 그렇지 않아요. 자주 져요. 게다가 경기를 지는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요. 제가 아무리 무언가 하려고 해도 지는 상황이 많아서 마음이 좀 아팠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서울대에 갔기 때문에 제가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학생 때는 제가 멘탈이 굉장히 약했어요. 게다가 축구를 한다는 사실이 저를 억누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여기에 오면서 축구를 다시 제대로 해보고 싶다. 진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제가 고등학생 시절 서울대 간다고 했을 때도 아무도 못간다고 했어요. "네가 무슨 서울대냐"면서. 그런데 저는 제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고 도전하고 싶으면 도전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이런 생각이 대학 막바지 때도 작용했어요. 프로에 가고 싶어서 4학년 때는 틈만 나면 운동했고 오전에도 수업에 잠깐 얼굴만 비추고 다시 나가서 운동했어요.

그러니까 주변의 교수님들이나 동기들이 이상한 애로 취급했죠. "너 지금 4학년인데 나중에 뭐하려고 그러냐"면서 정신 차리라고 했죠. 하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을 거라고 말했어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한 것이 더욱 잘된 것 같아요. 아직 학교 졸업은 못했어요. 10학점을 덜 채웠거든요.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입학 초에는 잘못된 생각을 좀 했어요. 서울대가 약하니까 제가 가면 막 활약해서 서울대도 저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프로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울대에 들어간 덕분에 제가 이렇게 프로 무대를 밟을 수 있었네요.

최근에는 서울대를 나와서 프로 무대를 밟는 사례를 찾기 힘들어요. 다른 학교에 비해서요.

저 말고 한 명 있기는 해요. 성남FC에서 뛰고 있는 이건엽이 같은 학교 출신이에요. 저 역시 쉽지 않았죠. 여러 군데 테스트를 보면서 '떡밥만 던져주면 바로 문다'는 각오였어요. 불러주면 무조건 감사한 마음으로 가겠다는 거죠. 결국 부천에서 테스트를 본 후에 동계 훈련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고 계약까지 하게 됐어요.

정말 공부만큼 동계 훈련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여기서 살살 하면 죽도 밥도 안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의 세계는 정말 냉정하고 자기가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하는 곳이었어요. 제가 뭐 있겠나요.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죠. 그리고 결국 프로 계약을 했을 때는 정말 서울대 간 것보다 훨씬 좋았어요.

앞으로의 활약 또한 기대하겠습니다. 그런데 고3 수험생들이 6월 모의고사를 눈 앞에 두고 있어요. 선수가 아닌 입시 선배로서 노하우같은 것이 있나요?

아… 평가원 주관의 모의고사니까 중요하죠. 제 기억으로는 6월 모의고사 성적이 거의 수능 성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쉽게 점수가 오르지 않더라구요. 그만큼 중요하다고 볼 수 있죠.

수험생 시절을 더듬어보면 저는 2월부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6월 모의고사까지 약 4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 때는 다들 열심히 해요. 초반이고 한창 기세가 좋을 때니까요. 그리고 6월 모의고사가 터닝 포인트라고 볼 수 있어요.

모의고사 성적을 받아들 때가 되면 날씨도 더워지고 공부할 수 있는 체력도 많이 떨어져요. 점수를 더 올리고 싶어도 몸이 힘드니까 쉽지 않죠. 그래서 재수생들은 6월 모의고사 본 후에 점수가 잘 안나온 사람은 안나온 대로, 잘 나온 사람은 잘 나온 대로 만족하거나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9월 모의고사가 또 다가오고 그것마저 마치면 이제는 진짜 수능이죠. 여기서 더 치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해요. '공부는 체력이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축구 선수에게 이렇게 수험 생활의 비법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그래도 운동을 하다보니 공부가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특히 겨울에 추울 때는 히터 틀어주고 여름에 더울 때는 에어컨 틀어주니까 '여기는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지만 수험생들이 한창 고생하고 있는 시기라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수험생들에게 지금 이 시기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몰두해야 해요. 사실 약 1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물론 그 시간 자체는 힘들어요. 하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를 이겨내고 얻는 성취감이 엄청나요. 그 짜릿한 성취감을 위해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고 싶어요. 솔직히 이 인터뷰도 안봤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제 다시 선수 이정원으로 돌아와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아직 이정원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겠죠?

네. 적어도 20대에는 축구에 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요. 제가 축구 선수로 살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시험해보고 싶어요. K리그 클래식 승격도 해보고 싶고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어요. 뭐든지 끝없이 올라가보고 싶어요.

사실 이런 인터뷰는 조금 부끄럽습니다. 제가 축구로 무언가를 보여드려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거든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경기에 더 많이 나가고 싶어요. 경기에 나가서 진짜 잘해야죠.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요. 이곳 부천에 있으면서 팬들의 열정을 느껴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열정에 어서 하루빨리 보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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