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감독 ⓒ 베트남 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25일 천안종합운동장.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E조 2차전 프랑스와 베트남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일찌감치 승부는 결정지어졌다. 전반에만 3골을 넣은 프랑스가 후반 7분에 추가골을 넣으며 4-0으로 스코어를 벌려놓은 상태였다. 5분 만에 4골을 몰아넣는 차범근 같은 선수가 베트남에는 없었다. 패배가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베트남 선수들의 모습은 이상했다. 마치 0-0 접전 중의 선수들 같았다. 심지어 후반 29분에는 트란 딘 트롱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까지 당했다.

남의 팀 경기에는 약자를 응원하는 것이 사람 심리다. 이 경기를 중계했던 중계진도 그랬던 것 같다. 계속해서 "다음 경기를 생각해야 한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다"는 등 걱정 가득한 멘트를 쏟아냈다. 하지만 베트남 선수들에게 이 한 경기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한일 관계와 비슷한 베트남-프랑스의 악연

베트남과 프랑스의 역사는 침략과 저항으로 가득하다. 1859년부터 1885년까지 프랑스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세웠다. 이전부터 프랑스는 베트남을 노리고 있었다. 강제로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하고 허울 뿐인 독립국으로 승인하는 등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당시 했던 것과 상당히 유사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던 베트남은 결국 1946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대부분의 식민지 국가가 독립한 반면 프랑스는 식민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호찌민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약 8년 가까이 지속됐고 결국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 정부군이 항복하며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열린 회담에서 프랑스군은 미국에 중재를 부탁했다. 이로 인해 베트남은 호찌민의 북부와 서양 세력이 지원하는 남부로 분단됐다. 이는 곧 베트남 전쟁의 불씨가 됐다. 결과적으로 베트남의 근대사에서 일어났던 전쟁의 배경에는 프랑스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프랑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역사 쓰는 베트남 축구, 그리고 운명적 만남

베트남은 이번 대회가 축구 역사상 FIFA 국제 대회 첫 출전이다. 과거 2016 풋살 월드컵에 출전한 경력은 있지만 축구 대표팀이 FIFA 대회 본선에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 축구계는 들썩였다. 당연히 이 대회에 관심이 집중됐다. 뉴질랜드와의 1차전을 위해 천안에 운집한 베트남 축구팬만 약 2,000여명에 달했다.

1차전부터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가 쓰여졌다. 뉴질랜드와 0-0 무승부를 거두며 FIFA 본선 사상 첫 승점을 획득한 것이다. 경기 후 베트남 기자들은 기자회견에 들어서는 호앙 안 투안 감독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첫 골, 그리고 첫 승이었다. 베트남의 목표는 남은 두 경기에서 이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상대는 프랑스와 온두라스였다.

프랑스전을 앞두고 베트남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FIFA 대회에서 프랑스, 아니 비아시아 국가를 만날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첫 대회에서 만난 유럽 팀이 숙적 프랑스였다. 이것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U-20 월드컵 조추첨 당시에도 베트남은 프랑스와 만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베트남 국민들은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한 팬은 디엔비엔푸 전투를 패러디한 사진을 올리며 응원을 독려했다. 현재 대통령 아세안 특사 자격으로 베트남에 방문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쩐 다이 꽝 국가주석을 비롯한 베트남 측 인사들에게 "지금 한국에서 U-20 월드컵 베트남과 프랑스 경기가 열리고 있다"면서 "베트남을 응원하겠다"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베트남 축구팬이 만든 프랑스전 포스터 ⓒ 페이스북 캡쳐

물론 프랑스와 베트남의 축구 격차는 굉장히 크다. FIFA 랭킹으로 봐도 실력 차이는 상당하다. 게다가 프랑스 대표팀은 이번 대회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를 꺾을 확률보다는 패배할 확률이 컸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를 U-20 대표팀은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경기는 생각보다 풀리지 않았다. 전반전에만 3골을 실점했고 후반전에도 추가 실점을 하며 0-4로 점수 차가 벌어졌다. 하지만 베트남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친 태클을 마다하지 않았고 부상 위험에도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0-4로 점수 차가 벌어진 이후 베트남이 받은 경고 카드만 5장이었다.

경기 후 베트남 팬들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운 투혼에 대해 칭찬하면서도 효율적이지 못한 경기 운영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프랑스와의 현실적인 격차를 실감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제 이들의 관심은 마지막 3차전인 온두라스전에 집중되어 있다. 이 한 경기에 토너먼트 진출뿐 아니라 첫 골, 첫 승리가 걸려있다. 비록 우리나라 경기는 아니지만 이들의 마지막 3차전에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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