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나이티드 정운은 결국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카타르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 뛸 선수 24명을 공개했다. 이정협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이근호가 오랜 만에 대표팀에 합류했다는 점이 눈에 띄고 이창민과 황일수 등 제주유나이티드를 이끄는 선수들의 발탁도 돋보인다. 최근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양동현(포항스틸러스)이 뽑히기 않은 게 다소 아쉽지만 공격과 미드필더진의 구성은 대체적으로 수긍할 만했다. 하지만 딱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제주의 핵심 수비수인 정운이 차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K리그에서 가장 돋보이는 수비수 정운

정운은 지난 시즌부터 K리그에서 가장 핫한 수비수다. 지난 시즌 32경기에 출장해 1골 5도움을 올리며 제주 왼쪽 측면을 책임진 정운은 올 시즌에도 부상으로 한동안 고생했지만 벌서 8경기에 출장하며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리백과 포백을 번갈아 쓰는 제주에서 정운은 스리백의 윙백 역할과 포백의 풀백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다. 수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스리백시 공격적인 성향으로 미드필드에 가까운 공격력도 선보인다. 왼발 크로스와 슈팅 능력도 K리그에서는 최정상급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K리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를 꼽으라면 당연히 정운이고 그 다음이 김민재(전북)다. 정운의 단점이라면 지난 시즌부터 중요한 순간에 이따금씩 부상을 당한다는 것 정도다.

정운은 크로아티아에서 귀화 제의를 받은 걸로도 유명하다. 2013년 크로아티아에 진출한 정운은 이스트라에 입단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고 이듬해에는 크로아티아 유력지가 선정한 리그 최고의 왼쪽 풀백으로 선정됐다. 2015년 크로아티아 상위팀 RNK스플리트로 이적한 정운은 유로 2016 본선을 앞두고 크로아티아축구협회의 귀하 제의를 받았다. 당시 다보르 수케르 크로아티아축구협회장은 "저렇게 좋은 선수가 왜 한국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운은 “언젠가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면서 크로아티아의 귀화 제의를 거절했고 2016년 한국에서 인정받으려는 마음으로 제주에 입단했다. 정말 영화 같은 스토리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과거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다. 브라질이건 잉글랜드건 아무리 좋은 나라에서 귀화 제의가 왔다고 하더라도 이게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면 그냥 축구팬들의 안주거리 정도다. 그 동안 축구계에는 천재도 많았고 해외 유명 리그에서 뛰는 유망주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 선수들을 당장 성인 대표팀에 뽑으라고는 못 한다. 중요한 건 ‘크로아티아의 귀화 제의를 받았던 선수’라는 과거의 화려한 꼬리표가 아니라 현재 실력이다. 그런데 나는 정운이 이런 화려한 꼬리표가 아니라 현재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뭐 불과 몇 년 전 이야기지만 전설처럼 내려오는 귀화 제의를 내 귀로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크로아티아에서 뛰는 모습을 실제로 본 것도 아니니 그 이야기는 길게 못 하겠다. 그런데 그냥 지금 모습 자체로도 정운은 엄청나다.

정운은 앞으로 얼마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대표팀에 뽑힐 수 있을까. ⓒ제주유나이티드

정운이 올 시즌 보여준 엄청난 경기력

‘귀화 전설’이 아니라 본 것만 이야기하겠다. 지난 시즌 정운은 K리그 최정상 풀백으로 우뚝섰다. 활동량도 대단했고 한 박자 빨리 예측해 상대를 방어하는 수비력 또한 일품이었다.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크로스와 프리킥까지 겸비해 공수 양면에서 쓰임새가 훌륭한 선수였다. 지난 시즌 K리그 대상 시상식 베스트11 수비수로 그가 선정됐을 때 의문을 나타낸 이들은 없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최고의 왼쪽 수비수다. 올 시즌에는 더 물이 올랐다. 감바 오사카와의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최종전에서는 정운이 기막힌 침투로 골을 뽑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후반에는 상대의 결정적인 슈팅을 몸을 던져 막아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슈틸리케 감독은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올 시즌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난 상주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믿을 수 없는 프리킥 골은 뭐 한 순간의 임팩트라고 폄하해 보자. 크로아티아 귀화 전설도 과거 이야기니 지나간 일이라고 넘겨보자. 이런 특별한 이야기와 한두 장면을 빼고서라도 정운은 현존하는 K리그 최고의 풀백이다. 이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를 설명하려면 과거의 경력을 조명하는 게 먼저일 텐데 나는 정운의 현재만 놓고 봐도 이 선수는 충분히 대표팀에 뽑힐 만한 자원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정운은 이번에도 결국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정운은 “처음에는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는 날이면 스마트폰을 보면서 기다렸는데 이제는 실망이 커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뚝뚝 묻어난다.

이번에 왼쪽 측면 자원으로 뽑힌 전문 수비수는 김진수(전북현대)와 박주호(도르트문트) 뿐이다. 이 둘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사실 호펜하임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김진수를 낮게 평가한 적도 있었지만 유럽파는 그래도 유럽파다. 김진수도 그렇고 김보경도 그렇고 유럽 무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힘든 시기를 겪다가 K리그로 돌아온 선수들이 펄펄 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왜 유럽 빅리그의 선택을 받았는지 느끼게 됐다. 기본적인 실력이 있으니 유럽에서도 불렀던 거다. 김진수가 전북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도 이견이 없고 박주호도 만약 K리그에서 뛴다면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주전 경쟁에서 밀렸어도 유럽 빅리그의 선택을 받았던 이들은 기본적인 기량은 이미 검증이 됐다.

정운은 앞으로 얼마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대표팀에 뽑힐 수 있을까. ⓒ제주유나이티드

정운이 대표팀 예비 명단에도 없는 이유는?

하지만 최근 컨디션을 따지고 보자면 과연 정운이 박주호에 비해 떨어질 게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박주호는 작년 10월 이후 팀 내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며 도르트문트의 공식 경기에서 모습을 볼 수도 없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도르트문트 2군 경기에 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그러면서 믿을 수 없는 골까지 뽑아내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정운이 전혀 밀릴 게 없다. 이거 리그의 수준 차이를 떠나 개인의 현재 기량을 따져볼 때 꼭 비교해야 할 부분이다. 과연 계속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이제 2군 경기에 나서게 된 유럽파와 K리그에서 꾸준히 뛰며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선보이는 선수가 있다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리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에 더 중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정운이 대표팀에 가지 못한 걸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서 더 의아한 건 정운이 아예 대표팀 예비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엔트리 24명 중 혹시 모를 부상 등에 대비해 6명의 예비 명단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정성룡(가와사키)과 오재석(감바 오사카), 김기희(상하이 선화), 고명진(알 라얀), 권창훈(디종), 정조국(강원) 뿐이었다. 정운은 여기에도 없었다. 과연 정운이 예비 명단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부족했던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이 제주 선수들을 오랜 시간 지켜봤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정운이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는 건 내 보는 눈이 잘못 됐거나 슈틸리케 감독이 잘못 선택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틀렸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나는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선수 선발이야 감독 고유의 권한이지만 과연 이게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끊임 없는 비판이 필요하고 나는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정운은 할 만큼 했다. 공격과 수비 모든 부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보여줬다. 거기에다가 미친 듯한 프리킥 골까지 넣으며 진가를 알렸다. 왼쪽 수비수가 이 이상 더 보여줄 건 없다.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하기도 불가능에 가깝고 그렇다고 게임처럼 50m를 질주해 골을 넣을 수도 없다. 정운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모든 걸 다 보여줬고 대표팀에 뽑힐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도 정운은 이번에도 대표팀에 가지 못했다. 과연 대표팀의 문은 모든 선수들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는 것일까. 슈틸리케 감독에게 묻고 싶다. “정운이 여기에서 뭘 어떻게 더 해야 선택하시겠습니까.” 정운은 지금의 기량으로도 충분히 대표팀에 가야할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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