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선전을 바라만 보는 K리그가 되고 마는가 ⓒ JTBC3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K리그가 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해 4팀 중 2팀(전북현대, FC서울)만이 16강에 진출한 데 이어 올해는 제주유나이티드만이 가까스로 16강 무대에 안착했다. ACL의 2009년 현 체제 개편 이래 최악의 성적이다. K리그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시아 무대에서 드러난 ‘하향 평준화’

최근 축구계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간단명료하다. 리그 자체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같은 리그 안에서는 경기력 논란 정도로 끝나지만, 대륙 대항전으로 나갔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가장 중요한 지표인 성적이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올해 ACL에 참가한 FC서울, 수원삼성, 제주유나이티드, 울산현대의 기록을 이를 증명한다. 네 팀의 합산 성적은 9승 5무 9패로 승률이 절반에 이르지 못한다. 제주를 제외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세 팀은 합쳐서 6승 4무 7패를 거뒀는데 서울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조 1위인 일본 우라와레즈를 꺾은 것을 빼면 나머지 5승이 모두 조별 최하위 팀에게 거둔 승리다. 토너먼트는커녕 조별리그에서도 경쟁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동아시아에 할당된 8강의 네 자리가 모두 K리그 팀으로 채워졌던 2010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따로 없다.

사실 이번 ACL에서의 부진은 예측된 바 있다. 디펜딩 챔피언인 전북현대가 심판 매수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출전권이 박탈되면서 ACL에 관한 준비가 전혀 안 된 울산이 대타로 출전했다. 또한 K리그 클래식 챔피언인 서울의 전력 보강이 경쟁 팀보다 미약하게 이뤄지면서 많은 전문가가 고전을 예상했다. 이제는 ‘허리 졸라매기’가 팀 색깔로 자리 잡은 수원은 최근 몇 년에 비해 따뜻한 겨울 이적 시장을 보냈지만, 그라운드 안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2011년 이후 6년 만에 ACL 무대에 나선 제주만이 알찬 전력 보강에 성공했고 이는 리그와 ACL 두 대회에서 선전하면서 그 결실을 보고 있다. 끝나지 않고 있는 K리그의 경제 한파가 경쟁력 약화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수단의 전력이 약해지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전력에는 ‘코치진’도 포함된다

선수단의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지면 강해지고 낮아지면 약해지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ACL 판도를 보면 선수단뿐만 아니라 선수단을 이끄는 코치진의 능력 또한 경쟁의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과시하고 있는 중국 슈퍼리그는 두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그리고 최용수까지 능력을 검증받은 감독이 중국 축구 자체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동안 ACL에서 부진했던 일본 J.리그의 변화 또한 같은 맥락이다. J.리그는 감바오사카를 제외한 세 팀이 모두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네 팀이 16강에 진출했던 2009년 이후 최고 성적이다. 이전에도 세 팀이 16강에 진출했던 적은 있지만 모두 1위로 올라간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J.리그는 중국과는 반대로 자국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경험과 능력을 쌓아 올리면서 ‘ACL에 약하다’는 편견을 깨고 있다.

서울 황선홍 감독은 ACL에서 언제 날아오를 수 있을까 ⓒ 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서울 황선홍 감독은 ACL 무대에서 작아지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수원 서정원 감독은 2013년 부임 이래 4번의 ACL 무대를 밟았지만 2015년 16강 진출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울산 김도훈 감독은 부임 당시부터 논란이 일었고 ACL 무대 또한 처음이었다.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던 제주 조성환 감독만 유일하게 첫 ACL 무대에서 인상 깊은 성적을 내고 있다.

우리 지도자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 다만 이들이 정말 수준급의 능력을 보여서 현재의 자리에 올랐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긴 힘들 것 같다. 황선홍 감독 이외에는 현재 보직 이전의 경력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해외 리그,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을 고용할 때 검증된 자를 먼저 찾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K리그는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 또한 흔쾌히 ‘Yes’라고 말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

행정적 지원 또한…

최근 몇 년간 K리그의 ACL 위기설이 대두될 때마다 현장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도 리그와 병행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살 혹은 핑계로도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꼭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당장 옆 나라인 중국과 일본을 봐도 ACL 진출 팀에 대한 배려는 축구협회 차원에서 이뤄진다. 중국은 아예 ACL을 위해 리그 스케줄을 1주일 단위로 비우는 ‘통 큰’ 행정적 조치로 유명하다. 일본 또한 ACL을 병행하는 팀에 한해서 주말 경기를 금요일로 앞당기는 등의 배려를 하고 있다.

K리그에서는 상대 팀과의 일정 협의로 간혹 리그 경기가 연기되기도 하지만 프로축구연맹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은 미비한 실정이다. 덕분에 ACL에 나가는 팀에게 4ㆍ5월은 ‘죽음의 달’로 불리곤 한다. 리그, ACL, FA컵을 모두 소화하다 보니 주중-주말 경기가 연이어서 이어지는 강행군이 펼쳐진다. 이 행군 속에서 호주 원정이라도 껴있으면 말 그대로 지옥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이 펼쳐질 경우 일부 팀에서는 앞선 리그 경기나 호주 원정 경기 중 둘 중 한 경기를 포기하는 식으로 선수단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쉽게 간과하는 점이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있다. 언론의 관심이다. 언론이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국민적인 관심도가 달라진다. 이는 현장에서 몸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 중국 팀이 국내로 원정을 오면 원정 취재진이 국내 취재진보다 훨씬 많은 경우가 대다수다. 분명 국내에서 펼쳐지는 경기지만 원정팀 골대보다 홈팀 골대 뒤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이 더 많다. 안타까운 풍경이다.

서울 황선홍 감독은 ACL에서 언제 날아오를 수 있을까 ⓒ 프로축구연맹 제공

작년까지는 지상파 3사의 케이블 스포츠 채널이 ACL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영상 생중계를 접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한 방송사가 독점 중계권을 구매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경기 시간이 겹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경기는 생중계가 이뤄지지만, 나머지 한 경기는 후반 생중계 혹은 녹화중계로 전파를 탄다. 아랍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 채널을 수소문해 저화질의 중계를 접해야 하는 몇 년 전의 상황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일시적인 부진이 아닌 장기 침체의 시작?

이처럼 K리그가 이번 ACL에서 부진한 점에 대해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고 또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부진의 요소가 말끔히 해결될 수 있냐’는 점이다. 선수단의 전력 약화, 코치진의 역량 부족, 언론의 부족한 관심 등은 K리그가 ACL을 평정했던 몇 년 전에도 꾸준히 나온 지적이다. 다들 경고했지만, 누구도 소매를 걷고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올해의 상황은 장기 침체로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현재 축구계를 볼 때 구단들이 갑자기 자금을 쏟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도자에 대한 투자도 내부의 사정을 들며 대다수의 구단이 현재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행정적인 지원인데 현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TV 중계, 취재진 확대 등 언론의 투자도 여느 때처럼 자본의 논리 앞에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다.

결국 피해는 또 ‘팬’에게 간다. 일본, 중국 팀은 둘째 치고 한 수 아래로 봤던 동남아 팀에게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감당해야 하는 건 팬들의 몫이다. ‘이러려고 ACL 해외 원정 응원을 갔나’라는 자괴감이 몰려올 수도 있다. 구단도 속상하고 선수단도 속상하지만, 팬은 고객이다. 고객에게 충분한 서비스와 만족도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것은 사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에만 개혁과 혁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K리그에도 절실함 속의 변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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