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미세먼지 가이드라인 필요하다

미세먼지 농도가 하늘을 찔러도 경기는 취소되지 않는다 ⓒ SBS 8시 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최악의 미세먼지가 황금연휴를 덮쳤다. 사람들은 일기예보에 따라 이번 주말 동안 외출을 꺼렸다. 그런데 K리그는 일정대로 진행됐다. 5월 6일 토요일은 최악의 미세먼지 농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모두 7경기가 열렸다. 이제 국내 축구도 돔구장이 필요하다고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은 미세먼지 농도에 따른 경기 진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완고한 경기 진행, 선수들 건강 망친다

미세먼지는 단순한 기상 현상을 넘어 거의 재해 수준이다. 우선 선수들 건강이 걱정이다.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은 마스크를 쓴 상태로 몸을 풀었다. 그러나 휘슬이 울리면 모두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 일반 사람들보다도 더 가쁜 호흡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 입장이다. 국민 모두가 조심스러워하는 미세먼지는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노출된다.

미세먼지에는 세계 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인 BC(Black Carbon)가 포함되어있다. 오랫동안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면역력이 저하돼서 감기, 천식, 기관지염 등의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심혈관 질환, 안구 질환, 피부 질환 등 각종 질병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선수들은 이제 사방에서 날아오는 태클로 인한 부상도 걱정해야 하고 각종 질병도 걱정해야 한다. 태클은 피하면 되는데 미세먼지는 답이 없다. 등에 산소통을 달고 뛸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선수들은 끊임없는 호흡과 땀 때문에 몸 안의 수분도 계속 배출된다. 수분이 부족하면 호흡기 점막이 건조해져 미세먼지의 침투가 쉽다. 일반인에게도 하루 1.5L 이상의 수분 섭취가 권장된다. 선수들은 휘슬이라도 불고 선수교체라도 해야 물을 마실 수 있다. 선수들의 호흡기를 지켤 수 사람은 아무도 없다.

5월 6일자 전국 미세먼지 농도ⓒ한국환경공단

창문을 닫고 가급적 외출을 삼가야 하는 관중들

환경부에 따르면 미세먼지 예보가 ‘나쁨’ 또는 ‘매우나쁨’인 경우 어린이와 노인, 호흡기 질환자 등은 외출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외출할 때에는 식약처 인증 마스크를 권고하고 있다.

높은 미세먼지 농도도 K리그 팬들은 말릴 수 없었다. 팬들은 경기가 열리면 가야 한다. 경기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관중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관중들도 있었다. 호흡기는 마스크로 보호한다고 해도 눈과 피부는 막을 길이 없다. 축구장에 왔는데 ‘너의 눈, 코, 입’을 다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축구 하나 보겠다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더 대단하다. 최악의 미세먼지 농도를 기록한 6일(토) K리그 경기를 보러 온 총관중 수는 27,686명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날들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지난 3일(수) 석가탄신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만 26,261명이 모였다. 별 차이가 없다. 축구를 볼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이 안 되는데 아무리 홍보하고 마케팅을 해봐야 소용없다.

5월 6일 경기를 치른 주요 3개 구단 최근 홈 경기 관중 수 추이 ⓒ스포츠니어스

6일 열린 경기에 찾아온 관중 수를 경기장 별로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봤다. 대구FC와 전북 현대 모터스의 경기가 열렸던 대구 스타디움에는 3,295명이 찾아왔다. 대구는 상대가 서포터들을 잔뜩 거느리고 다니는 전북이었는데도 올 시즌 대구 스타디움 최소 관중 수를 기록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5,732명이 찾아왔다. 안산 와~스타디움은 1,184명으로 올 시즌 최소관중을 기록했으며 서울 이랜드 FC가 홈으로 쓰고 있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은 올 시즌 처음으로 1천 명 이하인 987명이 찾아왔다. 같은 날 옆 경기장에서 열리는 두산과 LG의 잠실 라이벌 전에서는 아침부터 약 900장의 취소표가 나왔다. 대기 상황에 따라 경기 시간과 날짜를 바꿨다면 구단들은 더 많은 홈 관중 유입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홈경기를 치른 구단들은 무슨 죄인가.

가이드라인 마련하고 일정 조율해야

‘대승적 차원’ 좋아하는 한국 축구가 정작 한국 축구의 자산인 선수들 건강관리에 이렇게 무심하고 소홀해서야 되겠나. 심각한 대기 질 저하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무리하게 진행해 팬들과 언론의 질타를 받은 것이 2007년부터다. 그런데 아직도 세부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황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200㎍/㎥를 넘어가면 악천후를 넘어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다.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럴 거면 규정도 소용이 없다.

5월 6일 미세먼지 농도는 천재지변 수준이었다 ⓒ한국환경공단

축구를 거의 종교로 인식하는 유럽도 폭우, 폭설이 경기장과 선수, 관중 안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경기를 취소한다. K리그는 지진으로 그라운드가 갈라지지 않는 이상 경기를 취소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K리그뿐만 아니라 대표팀 경기도 마찬가지다. 이미 미세먼지 농도에 따른 경보 기준도 마련되어있지 않은가.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미세먼지 ‘주의보’ 이상이 예상되면 경기를 취소하는 등 세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intaekd@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zfprg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