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 전력분석관이 대표팀에서 사퇴했다. ⓒFC서울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불과 6개월 전 대표팀의 차두리 전력분석관 선임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차두리는 A급 지도자 라이선스가 없어 대표팀 코치에 오를 수 없었지만 대한축구협회가 편법으로 그에게 코치직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A급 라이선스 없이는 대표팀 코치진으로 합류할 수도 없고 벤치에 앉을 수도 없는데 협회에서는 차두리를 전력분석관으로 임명해 사실상의 코치직을 수행했다. 나는 칼럼을 통해 대표팀에서 ‘형님 리더십’ 운운하며 선수들하고 친한 사람을 데려다가 편법으로 코치직을 시켜주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협회가 차두리를 전력분석관으로 임명한 건 여론 무마용 카드라고 주장했다. 대표팀이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인기가 좋고 안티가 없는 차두리를 대표팀에 데려와 여론을 돌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협회의 이같은 의도는 100% 먹혀들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차두리 리더십’을 떠들어댔고 팬들도 차두리의 등장에 환호했다. 나는 이게 편법에 여론 무마용이고 거기에 경험 없는 인물이 대표팀 코치가 됐으니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지만 안티 없는 ‘영웅’ 차두리의 이같은 등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차두리는 결국 전력분석관이라는 편법으로 대표팀에 들어온지 6개월 만에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김현회] '가짜 대통령'도 모자라 '가짜 전력분석관'이라니 ← 보러가기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차두리 선임 당시 “타이틀만 전력분석관을 달았을 뿐 벤치에서 대표팀에 필요한 소통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편법이라 생각된다면 날 비판해 달라”고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차두리 선임은 실패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차두리가 대표팀에 필요한 소통을 해주길 바랐지만 6개월 만에 그는 사직서를 던지고 팀을 떠났다. 편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도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발언한 이용수 위원장이 어떤 방식으로건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니 세상에 한 국가의 최고 레벨에 있는 성인 대표팀 지도자를 뽑는데 이런 식의 편법이 난무하고 그걸 제대로 지적하는 이 하나 없다는 게 얼마나 기가 찬 일인가. 편법 선임이 실패로 돌아갔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하나 없다.

어차피 예견된 일이었다. 이용수 위원장은 차두리 선임 당시 이런 말도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A라이선스를 내년(2017년)에 획득하면 정식 코치로 올려주겠다.” 그런데 차두리는 이번에 전력분석관에서 사임하면서 “당분간 A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을 받는 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독일에 머물며 A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가 A급 지도자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는 한국과 해외를 오가야 한다는 걸 협회가 몰랐을 리 없다. 이제 와서 “해보니 바빠서 안 되겠다”는 건 애들 핑계에 불과하다. 편법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감수해야 했던 문제를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 자격이 없는 이를 편법으로 선임했을 때는 이 정도 일도 예견한 것 아닌가.

더 화가 나는 건 차두리 선임 당시에는 마치 그가 현역에라도 복귀하는 것처럼 성대하게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난리 부르스를 추던 협회가 사임 소식은 달랑 보도자료 한 장으로 알렸다는 점이다. 이제 와서 차두리를 활용한 여론 무마용 카드가 그 역할을 다 한 건가. 취임할 때는 마치 방패막이라도 될 것처럼 나섰던 협회와 이용수 위원장은 이제 뒤로 쏙 들어갔다. 마치 차두리를 한국 축구를 구할 ‘형님’처럼 포장했던 이들은 그의 퇴장은 달랑 몇 줄짜리 보도자료로 대신했다. ‘영웅’ 차두리를 전면에 내세워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을 피했던 협회가 이 정도로 책임감이 없다는 건 극히 실망스럽다. 6개월 전 성대하게 차두리 선임을 밝혔던 협회라면 그의 쓸쓸한 퇴장에 대해서도 당당히 전면에 나서야 한다.

슈틸리케호는 표류하고 있다. ⓒ jtbc 방송화면 캡쳐

차두리의 잘못도 있다

대체적인 여론은 “차두리도 슈틸리케 감독과 대표팀이 답답해서 그만뒀을 것이다. 차두리도 참다 참다 내린 결정일 것”이라는 거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차두리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물론 자격이 부족한 그가 처음부터 선택하면 안 되는 자리였지만 그 논란을 감수하고 선택한 자리라면 차두리가 끝까지 책임을 졌어야 한다. 성인 대표팀 코치는 그렇게 무슨 잠깐 썸 타듯이 6개월 만에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처음엔 “후배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지도자 교육에 전념하느라 못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그 정도는 각오하고 선택했어야 하는 자리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이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는 걸 파악하고 이 독이 든 성배를 안 마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가 한 번 선택한 걸 무르는 순간 차두리의 선택을 옹호해선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차두리의 선택이 화가 나기보다는 안타깝다. 이렇게 또 한국 축구의 스타 한 명이 대표팀에서 쓴 맛을 보고 떠났다. 가만히 놔두면 몇 년 뒤 한국 축구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던 홍명보 감독도 마찬가지고 차두리도 마찬가지다. 협회가 아직 지도자로 완성되지도 않은 인물들을 너무 빨리 쓰는 바람에 이들은 지도자 생활을 하며 실패를 경험하고 말았다. 한국 축구를 위해 소중히 활용해야 할 인재를 협회가 급할 때 쓰는 희생양 정도로 생각하는 것만 같다. 홍명보 감독보다야 덜하겠지만 차두리도 이제는 편법 논란에 책임감 없는 지도자로 비춰질 걸 생각하니 안타깝다. 협회는 차두리를 굳이 6개월 만에 이런 이미지로 만들었어야 했을까. 차두리의 무책임한 선택도 안타깝지만 이런 현실을 자꾸 만드는 협회의 선택에는 화가 난다.

2014년 출범한 슈틸리케호에는 신태용, 박건하, 김봉수 코치가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팀을 떠났다. 심지어 지난 3월 선임된 이운재 코치는 3개월 만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인선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성균관대에서 감독직을 잘 수행하던 설기현 감독이 파견이라는 편법으로 대표팀 코치로 합류하기도 했다. 성균관대는 설기현 감독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으며 버텨야 한다. 슈틸리케호에서 출범 이후 계속 함께하고 있는 코치는 카를로스 아르무아 뿐이다. 교통 정리가 전혀 되질 않고 있으니 이런 팀이 안정적으로 굴러갈 리가 없다. 능력 있는 감독은 팀을 옮길 때마다 자신과 함께 하는 코치진을 대거 데려와 임기 내내 함께하는데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툭하면 코치가 나가고 새로 들어온다. 감독의 문제이면서 협회의 문제다.

슈틸리케호는 표류하고 있다. ⓒ jtbc 방송화면 캡쳐

아직도 교통정리 안 된 슈틸리케호

최근에는 정해성 코치가 대표팀에 합류했다. 두 번이나 월드컵 본선 무대를 경험한 능력 있는 지도자다. 나는 그의 지도력을 믿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슈틸리케 감독과 정해성 코치의 사이가 우려스럽기도 하다. 정해성 코치는 이미 감독으로도 오랜 시간 경험을 쌓은 지도자다. 2004년부터 감독 생활을 한 그는 제주유나이티드와 전남드래곤즈 등 쟁쟁한 팀의 지도자로 이미 산전수전 다 겪었다. 보좌 역할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팀을 이끈지 오래된 감독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는 하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팀을 지휘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 팀에 감독이 두 명이 있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선수 선발이나 용병술은 슈틸리케 감독 고유의 권한이지만 의견이 강한 국내 지도자와 할 말은 하는 외국인 지도자가 의견을 놓고 충돌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정말 조심스러운 예측이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은 크라머 감독을 총감독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곧바로 기존 코치진과 갈등이 생기고 말았다. 원래 올림픽 대표팀을 맡았던 김삼락 감독과 크라머 총감독이 대립한 것이다. 이 둘은 훈련 방식과 전술에서도 마찰을 빚었고 결국 한 식탁에서 밥을 먹지 않고 따로 식사를 할 정도로 틀어졌다. 한 팀에 두 명의 감독이 있었고 결국 크라머 총감독은 올림픽 본선도 치르지 못한 채 중도 사퇴하고 말았다. 정해성 감독, 아니 코치가 충분히 현명한 지도자이기 때문에 잘 대처할 테지만 한 팀에 성향이 짙은 감독 두 명이 한솥밥을 먹게 한 협회의 선택은 이번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건 슈틸리케 감독과 정해성 코치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협회의 잘못이다.

나는 애초에 성인 대표팀에 ‘형님 리더십’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두 살 먹은 애들 공차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들이 ‘형님’이 이끈다고 의지할 리는 없다. 하지만 협회가 정작 누군가에게 ‘형님 리더십’을 원했다면 차두리가 대표팀을 떠날 때 새로운 ‘형님’을 찾았어야 했다. 차두리가 맡았던 역할을 누군가는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들 알아서 소통하고 훈련하는 다 큰 어른들 사이에 ‘형님 리더십’이란 게 필요할 리 만무하지만 협회는 차두리 선임 편법 논란 속에서도 이 ‘형님 리더십’을 꿋꿋이 어필했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이제 다른 지도자의 추가 선임 없이 지금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차두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렇게 포장하던 ‘형님 리더십’은 이제 대표팀에서 사라지는 건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형님 리더십’ 따위는 없었던 건가. 그것도 아니면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형님 리더십’을 실패라고 판단한 건가. 어떤 식의 해석이건 협회의 실수다.

대표팀 단면 보여주는 차두리의 사퇴

차두리를 편법으로 데려와 ‘형님 리더십’ 운운하며 포장하고 여론을 무마시킨 것도 큰 문제였고 그런 차두리가 6개월 만에 사직서를 내고 나간 것도 책임감 없는 행동이었다. 순간 순간의 모든 선택이 다 잘못됐다. 대학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있던 설기현 감독을 파견이라는 황당한 형식으로 빼온 것도 문제였고 정해성 코치의 선임 역시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을 내포한 의아한 선택이다. 정상적인 운영 없이 이렇게 논란만 가중시키는 지도자 선임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팀이 제대로 흘러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 아닐까. 협회와 대표팀이 이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이를 제대로 잡아줄 여론이 없다는 것도 걱정이다. 6개월 만에 끝난 차두리 전력분석관의 대표팀 생활은 이 모든 단면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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