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특집] “유소년 경기장, 어른들이 쓰더라” 체육인들의 정책 제안

청와대 본관
제19대 대통령은 체육계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까 ⓒ 청와대 제공


오는 9일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꿀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불안하고 어수선한 이 시국이 이번 대통령 선거 이후 조속히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스포츠니어스>는 대통령 선거 특집 기획을 준비했다. 아무쪼록 <스포츠니어스> 특집을 통해 독자들이 대통령 선거와 체육 정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오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계 분야에서의 후보 지지 선언 및 정책 제안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온 나라가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 국가적인 축제에서 다소 소외된 분야가 있다. 바로 체육(스포츠)이다. 작년 국정농단 파문에서 일부 체육인의 비리가 함께 얽히면서 체육계가 몸을 바짝 사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목소리를 낸 인물들이 있다. 후배들과 체육계의 발전을 위해서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이들의 의견이 5월 10일 푸른 집에 전해지길 바라며 함께 들어보자.

#1 ‘공부하는 선수 양성’ 취지는 좋지만…

제안자: 최병철(’12 런던 올림픽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 동메달, 現 해설위원)
최근 몇 년 간 체육계에 떠오른 핫 이슈는 단연 ‘공부하는 선수’ 양성이다. 엘리트 체육인을 양성하기 위해 유지됐던 현 시스템은 1%의 스타 선수와 99%의 낙오자를 발생시키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1%의 바늘구멍에 들기 위해 모든 체육인이 운동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성공하면 국민적인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사회에 나와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실업자가 되는 극단적인 도박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올림픽,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대회에서의 입상으로 국위선양을 한다면 모든 것이 가려졌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엘리트 체육인 양성도 중요하지만 사회 안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체육인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스스로의 능력으로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온 정책이 ‘학생 선수들의 수업 현실화’다. 이제는 운동하는 학생들도 수업에 들어와서 다른 학생과 똑같이 배우고 같은 기준에 의해 평가받아야만 한다. 가장 기본적이자 기초적인 내용으로 취지는 정말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것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국정농단 파문이 일어나면서 체육계에도 급격한 태풍이 들이닥쳤다. 모 선수의 대학 수업 논란이 커지면서 정책이 급격하게 현장에 도입되고 있다. 대학 선수의 경우 수업을 이수하지 않으면 국가대표도 될 수 없는 구조로 변했다. 학생으로서 수업은 당연히 들어야 하지만 이를 준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지 않은 것이 문제다. 많은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태릉 혹은 진천 선수촌에서 살다시피 한다. 대학을 다니고 있는 선수들은 선수촌 일정과 학사 일정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갇혀있는 상황이다.

최근 열린 체육 관련 행사에서 한 현역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남겼다. “화상으로 수업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런 식이라면 수업을 위한 수업에 그치게 된다. 학생 선수들이 제대로 얻어갈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와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책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2 결국 체육에 대한 관심 확대가 필수다

제안자: 유승민(’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탁구 단식 금메달, 現 IOC 선수 위원)
지난해 리우 올림픽 기간 중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선수 위원으로 선출된 유승민 위원은 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차기 정부에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정책을 주문했다. 바로 체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 확대다. 유승민 위원은 “체육(운동)이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학교 교육에서도 체육은 항상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유 위원은 이어 “최근 운동선수들의 학업에 대해 이슈가 되고 있는데 반대로 일반 학생들도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체육은 소통ㆍ배려 등 사회성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만큼 정책적으로 체육 교육의 질과 양을 모두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IOC 선수위원
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현재 미국에서 IOC 관련 연수 및 업무를 진행 중이다 ⓒ Kit Mcconnell IOC 국장 트위터

유승민 위원은 “대학 입시에 체육 활동의 유무 등을 평가 항목으로 넣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체육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면 체육이 삶의 큰 부분으로 다가오면서 체육계의 발전 또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3 은퇴 후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

제안자: 오성옥(’92ㆍ’96ㆍ’04ㆍ’08 올림픽 핸드볼 여자 메달리스트, 現 여자 핸드볼 청소년대표팀 감독)
엘리트 체육이 전부였던 시절에 성장했던 선수들의 상당수는 은퇴 후 방황하게 된다. 먹고살 길이 막연하기 때문이다. 메달리스트 연금 제도가 있긴 하지만 수혜자는 많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한 분야만 바라보고 운동을 해온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직업을 선택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체육인들도 은퇴 후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픔을 주위에서 많이 목격했다. 특히 여성 체육인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성공한 여성 체육인의 숫자 자체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을뿐더러 사회적인 관심도 낮은 실정이다.

오성옥 감독
‘우생순’의 주역 중 한명인 오성옥 감독은 은퇴 체육인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밝혔다 ⓒ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국가에 헌신한 선수들에 대한 후속 정책 및 조치를 제안한다. 전문 체육 교사나 체육 관련 전공 직책을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특혜라는 의혹이 발생하지 않게 철저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필수다. 최근 생활 체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정책과 일자리가 늘어나는 추세다. 엘리트와 생활 체육으로 나누어져 있던 각 분야의 협회들도 하나로 통합된 만큼 새로운 정책을 낼 수 있는 적기다.

예를 들어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 체육인들에게 육아와 병행하며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초등학교에 여교사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의 체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또한 체육인들의 참여가 하나의 답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 자격증 부여가 아니더라도 체육 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마련해준다면 가능한 일이다. 일자리 창출과 국민의 체력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도록 차기 정부의 현명한 정책을 기대한다.

#4 유소년‘만’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

제안자: 김병지(’98ㆍ’02 월드컵 축구 남자 국가대표, 現 해설위원)
10여 년 전의 이야기다. 수도권의 한 도시에 사비를 들여서 유소년 축구 시설을 건립했다. 지자체에 기부하면서 내건 첫 번째 조건은 당연히 ‘유소년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잘 지켜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유소년 축구의 활성화와 발전을 위해 만든 시설이 어른들을 위한 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실상을 알아보니 운영 주체와 어른들의 논리가 아이들을 밀어내 버렸던 것이다.

항의했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돌아오는 답변은 황당했다. 예약 구조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오히려 설립자 본인이 시설을 방치하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이야기였다. 나중에는 내가 시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왜곡된 소문까지 돌았다. 사비를 들인 시설도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데 다른 유명인들의 이름을 딴 시설은 더욱 나쁜 처지에 놓여있을 것이다. 체육인들이 정치적인 관계에 상대적으로 어둡다는 점을 기득권 세력이 이용한 것이다. 이는 축구에만 해당하는 현상이 아니다. 사실상 모든 체육 시설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축구, 야구, 배드민턴 등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전국적으로 많이 증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시설들에서 유소년은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이다. 시설 대부분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아이들이 시설을 사전 대여해서 이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소리다. 그러다 보니 유소년 시설이라고 만들어놔도 결국엔 어른들만의 시설로 전락하게 된다. 직접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유소년 체육은 매우 중요하다. 다들 인식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체육 시설이 필요한 때이다.

#5 e스포츠, 국가적으로 키워야 한다

제안자: 홍진호(前 프로게이머 및 프로게임단 감독, 現 방송인)
e스포츠의 중요성은 이미 산업적으로도 증명됐다. 이는 한류로 일컫는 문화콘텐츠 수출에서 e스포츠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으로 확인할 수 있다. e스포츠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선수로서 게임 산업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다. 충분한 지원과 의지가 있으면 지금보다도 더욱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보면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쟁력과 달리 e스포츠가 국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아직도 아쉬운 점이 남는 게 사실이다. 물론 게임이 가지고 있는 단점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장점 또한 풍부한 것이 게임인데 이러한 부분은 많이 가려져 있어 아직도 사회적인 인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로 시작한 국내 e스포츠 산업은 초창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소 정체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롤드컵 현장 사진
e스포츠는 취미를 넘어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 라이엇게임즈

중국,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는 e스포츠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적으로 지원하면서 나날로 경쟁력이 커지고 있다. 반면 우리는 지원보다 규제를 확대하면서 경쟁력이 올라갈 수 없는 구조가 됐다. (2022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종목으로 채택됐는데?) 그만큼 e스포츠의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동안 선수들과 팬들이 국내 e스포츠의 판을 키워왔다.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과 정책으로 세계와 경쟁해야 할 때이다.

체육 관련 정책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현장에 있는 체육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부터다. 새로운 대통령이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위 인물을 비롯한 다양한 체육 관련 종사자들의 제안에 귀 기울이고 현실에 맞는 정책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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