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람과 무앙통의 2017시즌 첫 맞대결 ⓒ 부리람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요즘 AFC 챔피언스리그(ACL)의 화두는 단연 태국의 무앙통 유나이티드다. 항상 ACL에서 태국은 변방으로 여겨져왔다. 꾸준히 한 팀씩 조별리그에 출전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던 것이 태국 축구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올 시즌 ACL에서 무앙통 유나이티드는 한 경기를 앞두고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태국 축구의 성장이 피부로 와 닿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태국 팀에 패하는 것이 'X 팔린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2015년 부리람 유나이티드가 성남FC를 잡았고 올 시즌 역시 무앙통이 울산 현대를 꺾었다. 태국 축구가 이제는 복병 그 이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태국 프로축구는 갈 길이 멀다. 하위권 팀이나 하부리그 팀들은 최근에도 해체와 승격 거부로 홍역을 앓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태국 최상위 팀은 아시아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시아 무대에서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비결은 바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신화를 써내려간 무앙통 유나이티드

2006년까지 무앙통은 'FC 글로블렉스 노리요리'라는 이름의 그저 그런 팀이었다. 하지만 2007년 이 구단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시암 스포츠라는 태국의 한 스포츠 미디어 기업이 이 팀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무앙통 유나이티드로 바꾸고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이 기업은 스포츠 관련 위성 TV 채널과 유명 잡지 <포포투>의 태국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등 꽤 규모가 큰 기업이다.

2007년 무앙통은 새로 신설된 3부리그에 참가했다. 첫해부터 15승 5무 2패라는 성적을 거두며 1위를 차지, 2부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기세가 오른 무앙통은 승격팀으로 참가한 2부리그에서도 19승 8무 3패의 성적을 거뒀다. 1위로 최상위 리그인 타이 프리미어리그(TPL, 2017년부터 T1으로 전환) 승격에 성공한 것이다.

TPL에 승격하자 모기업은 적극적으로 선수 보강에 나서며 팀을 지원했다. 당시 벨기에에서 뛰고 있던 태국 축구 스타 티라텝 위노타이와 PEA(現 부리람)의 스트라이커 로나차이 랑시요를 데려왔다. 게다가 2008년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해 화제가 됐던 티라신 댕다도 TPL 개막을 앞두고 친정 무앙통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공격진을 갖춘 무앙통은 거침이 없었다. 결국 당시 강호로 손꼽혔던 촌부리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19승 8무 3패 승점 65의 기록으로 2009 TPL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3부리그 팀이 3년 만에 TPL 우승컵을 거머쥐는 동화 같은 스토리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무앙통은 태국의 신흥 강호로 군림하게 된다.

부리람 르네상스의 시작, 네윈 치드촙

무앙통이 신화를 만들고 있을 때 부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리람의 전신 팀인 PEA(지방전력공사)는 부리람이 아닌 아유타야 지방을 연고지로 삼고 있던 팀이었다. 2008년에 팀 역사상 처음으로 TPL 우승컵을 거머쥐었지만 그다음 시즌에서는 9위에 그쳤다. 강호 또는 명문이라 부르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

2009년 12월 이 팀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새로 부임한 구단주가 팀을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그는 바로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 중 하나인 네윈 치드촙이었다. 태국 정치계에서 그의 별명은 '배신자'였다. 탁신 전 태국 총리의 측근이었지만 2006년 쿠데타로 탁신 정권이 붕괴되자 "탁신은 왕정을 부정하는 공화주의자다"라며 탁신의 반대편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결국 그는 2009년 부정부패 혐의로 5년 동안 정치활동을 금지 당했다. 이때 그가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축구였다. 그는 PEA를 인수해 자신의 고향 부리람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팀 이름도 부리람 PEA로 변경했다(이후 부리람 유나이티드로 다시 변경). 그는 이 팀을 통해 다시 한 번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자 했다. 탁월한 정치 감각을 바탕으로 그는 부리람에 많은 스폰서들을 유치하며 팀을 키워냈다.

이러한 투자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0년 리그 2위로 시즌을 마친 부리람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4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공교롭게도 유일하게 놓친 2012 시즌의 우승 팀은 무앙통이었다). 축구의 재미에 눈을 뜬 네윈은 2012년 아예 정계를 은퇴하고 오직 부리람 운영에만 전념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태국 축구의 중심은 무앙통에서 부리람으로 넘어왔다.

자존심 상한 무앙통, 태국판 갈락티코를 구현하다

무앙통의 반격은 2016 시즌 시작됐다. 모기업인 시암 스포츠가 태국 축구에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하면서 BEC테로와 파타야 유나이티드를 함께 인수했다. 동시에 세 개의 팀을 운영하는 셈이다. 하지만 시암 스포츠의 포커스는 무앙통에 맞춰져 있었다. 일단 부리람을 잡고 봐야 했다. BEC테로와 파타야 유나이티드의 알토란 같은 선수 대부분을 무앙통으로 보냈다. 게다가 부리람에서 태국 대표팀 주장 티라쏜 분마탄까지 데려왔다.

이는 곧 경기력으로 나왔다. TPL에서 벌어진 두 차례 맞대결에서 무앙통은 홈에서 3-2, 원정에서는 3-0 승리를 거뒀다. 2010년대 들어 무앙통이 TPL에서 부리람에 상대 전적 우위를 점한 것은 이 시즌이 처음이었다. 이에 힘입어 무앙통은 숙적 부리람을 승점 5점 차로 제치고 TPL 우승컵과 함께 2017 ACL 조별리그 직행 티켓을 따냈다.

2017년 무앙통의 활약은 현재진행형이다. 태국 기업인 시암시멘트그룹(SCG)이 스폰서로 합류하면서 더욱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ACL과 T1에서 모두 순항 중이다. 하지만 부리람과의 올 시즌 T1 첫 번째 경기에서는 0-2로 패했다. T1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아무래도 뒷맛이 씁쓸할 수 밖에 없다.

어른 싸움이 번진 양 팀의 라이벌 스토리

공교롭게도 양 팀은 엇갈리는 점들이 많다. 팀 컬러도 정 반대고 무앙통은 기업체의 지원을 받는 팀, 부리람은 정치인의 지원을 받는 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게다가 우승컵마저 공평하게 네 개씩 나눠가졌다(PEA 시절 우승컵까지 합하면 부리람은 다섯 개). 하지만 라이벌이라는 것은 단순히 두 팀의 실력이 비슷하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양 팀 사이에 치고받을 만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들은 태국 최고의 팀들답게 스토리마저도 화끈하게 만들어냈다.

무앙통과 부리람이 태국 축구의 강호로 떠오르면서 구단 수뇌부 사이에 종종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것이 라이벌 관계의 시작이었다.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태국 축구계의 정치 구도를 알아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태국 축구협회(FAT)의 주요 요직은 시암 스포츠와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시암 스포츠는 앞서 언급했듯이 무앙통의 모기업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앙통과 FAT 간에 어떤 의혹이 있었을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부리람은 굴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부리람의 구단주 네윈은 왕년에 잘 나갔던 정치인이었다. 오히려 무앙통을 향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키웠다. 네윈은 툭하면 리그 스케줄과 심판 배정에 관해 무앙통과 FAT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FAT는 시암 스포츠의 TV 채널을 통해 부리람을 맹비난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라이벌 의식이 강하지는 않았다. 그저 '윗선들의 알력 싸움' 정도로 봤다.

주무도 아니고 코치도 아니며 감독은 더더욱 아니다. 이 사람이 부리람 구단주 네윈이다 ⓒ 부리람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조금씩 곪아가던 양 팀의 관계는 2011년 결국 터졌다. 2011년은 부리람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해다. 부리람은 구단 역사상, 아니 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 무앙통은 TPL 3위에 그치며 ACL 진출권도 따내지 못했다. 두 팀의 성과가 극명하게 엇갈린 셈이다.

부리람은 리그 종료 두 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확정 지었다. 남은 두 경기는 무앙통과의 홈경기, 그리고 치앙라이 원정 경기였다. 부리람은 들떴다. 일찍 우승을 확정 지은 덕분에 홈 경기, 그것도 숙적 무앙통이 보는 앞에서 우승 기념행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FAT가 찬물을 끼얹었다. "우승 행사를 홈경기 때 하겠다"는 부리람의 요청을 거부한 것이었다. FAT에서 트로피를 주지 않으니 우승 행사를 할 수 없었다. 결국 FAT 주관의 공식 우승 행사는 부리람의 시즌 마지막 경기 장소인 치앙라이에서 열렸다.

이 때 부리람의 대응이 압권이었다. 당시 TPL 우승 트로피 수여식은 초청 손님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회장 데이브 리차드가 참석하는 등 꽤 성대하게 열렸다. 나름 FAT가 신경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시상대에 트로피를 받으러 나온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그것도 선수가 아닌 구단 직원이었다. 이렇게 부리람은 항의의 뜻을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그리고 이때부터 두 팀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라이벌의 필요성, 두 팀이 증명하고 있다

부리람과 무앙통은 태국 1부리그(T1)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통의 강호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T1을 호령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하지만 1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두 팀은 태국 축구를 넘어 아시아 축구에서도 인정받는 팀으로 성장했다.

그 비결은 바로 두 팀 간의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구단주부터 팬들까지 '저 팀은 무조건 이긴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지 않기 위해서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고 어느 것 하나 상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구단 운영도, 경기력도 성장하게 된 것이다.

올 시즌도 두 팀은 우승컵을 놓고 싸울 전망이다. 아직 2017 T1은 10라운드 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벌써 무앙통과 부리람은 승점 1점 차로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즌이 끝날 때쯤 두 팀은 태국 축구의 각종 우승컵을 놓고 더욱 치열하게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경쟁자가 있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지만 때로는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부리람과 무앙통이 바로 그렇다. 태국 축구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는 사이에 그들은 아시아에서도 경쟁력 있는 팀으로 발돋움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태국 축구, 그 중심에는 부리람-무앙통의 '라이벌 의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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