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삼성은 이제 이 클럽하우스를 한 달 넘게 비워줘야 한다. ⓒ수원삼성블루윙즈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많은 전문가들이 K리그가 위기라고 한다. 경기력은 형편없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졸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투자도 부족하고 감독들의 능력도 부족하다. 외국인 감독 한 명 없는 폐쇄적인 K리그는 점점 고인 물이 돼 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도 이런 문제점들을 아주 근엄하게 지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잘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오늘은 K리그가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힘겹게 버텨왔는지 그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려 한다. 이런 문제부터 따져봐야 하는데 늘 “투자가 부족해 K리그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뻔한 소리만 해선 절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K리그는 지금 희생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다.

다음 달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20여 일간 열리는 U-20 월드컵 하나 때문에 지금 K리그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렇게 청소년 대회 하나 열겠다고 리그 자체가 파행 운영돼야 할 정도로 K리그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는 중이다. 유럽 축구 선진국에서 U-20 월드컵이 열린다고 프리미어리그나 프리메라리가가 피해를 입는 일이 있을까. 주최 측에서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개최국에서도 리그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K리그는 이 U-20 월드컵 하나 때문에 온갖 피해를 당하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한다. 그게 지금껏 우리가 K리그를 대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 K리그가 투자하고 발전하는 걸 바라는 건 이기적인 것 같다.

평일 낮 경기 해야 하는 ‘아시아 챔피언’

먼저 전북현대를 살펴볼까. 전북은 K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성장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김진수까지 데려오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전북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쓰던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 홈 경기장이 U-20 월드컵 개최 경기장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결국 전북은 쓰러져 가는 전주종합경기장을 임시 홈 경기장으로 쓰고 있는데 사실 이 경기장은 지난해 철거될 예정이었을 정도로 낙후됐다. 심지어 조명탑이 없어 야간 경기도 못한다. 잔디와 관중석, 라커룸 등 내부 시설을 대대적으로 교체해 겨우 겨우 K리그를 치르고 있다. 철거 예정이던 구닥다리 경기장이 졸지에 K리그 최고 인기팀 홈 경기장이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추억도 한 두 경기지 전북은 여기에서 석 달을 살아야 한다.

당연히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쓸 때에 비하면 관중수도 떨어졌고 경기 집중도도 떨어졌다. 올 시즌 시작부터 전주종합경기장을 홈으로 쓴 전북은 6월 21일까지는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박탈당했으니 망정이지 이 대회에 나갔더라면 AFC 챔피언스리그는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를 뻔했다. AFC가 전주종합경기장에 사용 불가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전주를 기반으로 하는 팀이 이 청소년 대회 때문에 광주까지 가 홈 경기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전북은 화장실 시설이 열악해 아예 내부 화장실을 쓸 수 없는 전주종합경기장 밖에 간이 화장실을 설치해 겨우 겨우 버티고 있다. 매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프로 구단이 관중에게 제공할 서비스가 부족하지만 어디에 하소연 할 수도 없다. 늘 이럴 때마다 나오는 ‘대승적인 차원’이라는 말 때문이다.

전북은 청소년 대회 때문에 심지어 평일 낮 경기까지 치렀다. 조명 시설이 없어 부천FC와의 FA컵 32강전을 평일 낮 3시에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홈 이점을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보여준 부천의 경기력과 투혼을 높이 평가하지만 만약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관중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저녁에 이 경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전북에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북은 이런 소리를 할 수 없다. 이게 다 전세계 청소년들이 모이는 축구 축제를 위해 대승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한국은 그렇다. 청소년 대회 때문에 K리그 최고 인기 팀이 자리를 내주고 철거 예정인 경기장으로 옮겨 관중수가 뚝 떨어져도 희생해야 한다. 한국에서 K리그는 늘 후순위였기 때문이다. 전북의 평일 낮 경기? 그것보다 우리는 U-20 월드컵이 중요하다.

K리그 인기팀 전북현대는 올 시즌 개막 이후 줄곧 이 전주종합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집까지 내준 수원, 떠돌이 된 K리그 팀들

수원삼성은 아예 선수들이 먹고 자고 훈련하는 클럽하우스까지 내줘야 한다. ‘대회 시작 최소 2주 전부터 구장 등을 비워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대회 개막이 한참 남았지만 다음 달 6일까지는 방을 빼야 하는 처지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수원은 훈련장으로 화성종합운동장과 용인축구센터 중 일정이 맞는 곳을 알아보고 있고 K리그도 모두 원정경기로 치러야 한다. 더군다나 내달 9일 광저우헝다와의 원정경기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을 위한 마지막 승부를 치러야 하는 수원은 응원은커녕 오히려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 때문에 더 힘든 경기를 해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수원은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다 중국으로 출국한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전세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광저우 선수들이 보기에 집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수원 선수들은 얼마나 가엾어 보일까. 이런 승부에서 이기면 그게 진짜 기적이다.

수원은 가뜩이나 K리그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아 힘든 상황에서 이제 리그 4연전을 모두 원정에서 치러야 한다. 여기에서도 원하는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수원이 올 시즌 완전히 하위권에 눌러 앉을 수도 있지만 그 지긋지긋한 ‘대승적인 차원’ 때문에 어디에다 하소연을 할 수도 없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만약 수원이 광저우를 제압하고 16강에 오를 경우 5월 23일이나 5월 30일에 16강 홈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수원을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 경기를 치르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결국 수원FC 홈 경기장인 수원종합운동장을 잠깐 빌리는 것으로 협의 중이다. 수원종합운동장도 U-20 월드컵 훈련장으로 사용돼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르면 안 되지만 그나마 FIFA와 AFC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겨우 가능해진 일이다. 집도 절도 없는 선수들이 광저우에 가서 이기는 것도 힘든데 16강에 가도 남의 집에서 경기를 해야 하니 이런 상황에서 성적이 나오길 바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아직 K리그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해 걱정이 많은 인천유나이티드도 희생한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물론 훈련장으로 쓰고 있는 승기구장까지 U-20 월드컵에 내준 채 원정 5연전을 치러야 한다. 1승이 절실한 인천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다. 하지만 ‘대승이’가 얼굴을 들이미는데 이를 거부할 방법은 없다. 제주유나이티드 또한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쓸 수 없게 돼 제주종합경기장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조명 시설이 없어 낮 경기를 할 수밖에 없고 결국 FA컵 16강 수원삼성전을 평일 낮에 치러야 한다. 조기 축구도 아니고 평일 낮에 FA컵을 하는데 구단이 무슨 마케팅을 하고 홍보를 하나. 물론 제주도 이 기간 동안 K리그에서는 원정 4연전을 치르는 기이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만약 제주가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르면 이 경기도 낮에 치러야 한다. 관중석이 텅 빈 평일 낮에 열리는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면 다른 나라 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럴 땐 그냥 “제주 관중이 사고를 쳐 무관중 경기를 하게 됐다”고 거짓말하기로 우리 다 같이 약속하자.

K리그 인기팀 전북현대는 올 시즌 개막 이후 줄곧 이 전주종합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U-20 월드컵에 다 내준 K리그

대전시티즌도 클럽하우스에서 나와야 한다. 이뿐 아니라 홈 경기장인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도 U-20 월드컵 차지가 됐고 K리그 경기를 할 수가 없어 한밭운동장을 알아봤지만 여기도 U-20 월드컵 참가팀들이 훈련장으로 쓰기로 해 결국 떠돌이 신세가 됐다. 대전은 FA컵 16강을 대전월드컵경기장이 아니라 충남 보은공설운동장에서 치르기로 했고 돌아갈 집도 없어 아예 보은공설운동장 주변에서 대회 기간 동안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게 과연 프로팀이 할 일인가. 이뿐 아니다. WK리그도 희생한다. WK리그 인천현대제철도 홈 구장인 인천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을 U-20 월드컵에 내주고 무려 7경기 연속 원정을 떠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위로해 주진 않는다. 이 땅에서 중요한 건 대표팀과 국제 대회일뿐 K리그나 WK리그의 희생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FA컵이 평일 낮에 열려도 누구 하나 지적하는 이도 없다. 원래 한국에서는 축구를 이렇게 하는 거다.

지자체가 소유하고 있는 경기장의 가장 우선 순위는 그 지역 프로팀이어야 한다. 함께 공존하고 계속 함께 가야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U-20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지역은 이를 다 해결할 인프라도 없으면서 욕심을 냈다. 이게 바로 지자체가 K리그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국제 이벤트를 위해 홈 경기장의 오래된 주인을 내쫓는 게 우리 축구의 현실이다. 심지어 인천은 문학월드컵경기장과 인천아시아드가 있음에도 인천유나이티드의 홈 경기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내줬다. 이제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쓸 수가 없는 제주유나이티드는 지난 27일 오전에 중국 장쑤 쑤닝 원정에서 돌아온 뒤 클럽하우스가 있는 서귀포에 도착해 잠시 훈련을 하고 30일 버스로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제주종합운동장에서 K리그를 치러야 한다. 홈 이득을 하나도 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국제 이벤트가 있으니 K리그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양보하라고 한다.

클럽하우스를 내주는 건 더한 일이다. 수원삼성 클럽하우스는 삼성전자 소유다. 이 시설을 U-20 월드컵에 내줄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걸 내줘야 한다. 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고 수원시에도 이득이 되는 일이라는 시선이 팽배하기 때문에 “우리 구단 자산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가는 매국노 소리를 듣는다. 남의 자산인 클럽하우스까지도 빼앗아가는 나라에서 자국 리그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우리 동네 이장 생일 파티를 해야 하니 당신 집 좀 비워달라”는 황당한 일이 현실이 됐다. 국제 이벤트 때문에 원정 4연전, 5연전을 치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나면 또 이 팀들은 홈 4연전, 5연전이 예정돼 있다. 세상에 어떤 리그에서 한꺼번에 원정을 이렇게 우르르 다니다가 또 홈 경기를 이렇게 연이어서 치르나. 국제 이벤트 한 번 때문에 아예 올 시즌 K리그 자체가 비정상적인 운영을 하게 됐다.

K리그 인기팀 전북현대는 올 시즌 개막 이후 줄곧 이 전주종합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이렇게 희생만 강요하는 리그에 누가 투자하나

U-20 월드컵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런 대회를 통해 축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나고 지자체도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 건 좋다. 하지만 그 피해를 온전히 K리그가 떠안아서는 안 된다. 근사하게 지어놓고 쓸 일이 없는 경기장이 전국에 넘쳐난다. 그런데도 K리그가 꾸준히 치러지고 있는 경기장까지 빼앗아가며 굳이 국제 이벤트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공생? 공생은 같이 사는 게 공생이다. K리그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데 이게 무슨 공생인가. 클럽하우스까지 빼앗아 가는 데도 K리그는 늘 그렇듯 ‘대승적인 차원’이라는 그럴싸한 말 때문에 또 다시 희생해야 한다. 자국 리그도 이렇게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나라에서 U-20 월드컵 한다고 대중의 축구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관심이 생기겠나. 이래놓고 K리그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치면 K리그 탓이나 하고 있다. 클럽하우스는 민박집이 아니다.

요즘 K리그가 위기라면서 내놓는 말들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근본적으로 K리그가 늘 희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왜 K리그는 당연히 희생되어야 한다고만 받아들이는가. 이렇게 푸대접 받는 리그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투자 부족이 문제라고만 한다. 선수들을 영입하고 홈 경기장을 잘 꾸며 마케팅 좀 해보려 하는데 몇 달씩 경기장에서 나가라고 하고 클럽하우스도 민박집으로 쓰겠다고 나가라고 하는데 누가 이런 리그에 투자를 하겠나. K리그에 투자가 부족한 근본적인 문제는 어쩌면 이번 U-20 월드컵을 앞두고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다. A매치를 한다고 리그 도중 선수들을 빼내 갈 때부터 지금까지 K리그는 늘 희생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다. K리그에 헐크나 오스카가 오면 뭐하나. 클럽하우스에서 쫓겨나고 철거 예정이던 공설운동장에서 평일 낮에 공 차는 헐크와 오스카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런 나라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헐크나 오스카가 올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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