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현대 김민재는 올 시즌 최고의 신인으로 꼽힌다. ⓒ전북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K리그 최강 전북현대와 U-20 대표팀의 맞대결이 열린 어제(27일) 전주월드컵경기장. 많은 이들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 중인 이승우와 백승호의 플레이에 주목했다. 안방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에서 보여줄 이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지켜본 경기였다. 하지만 화려한 경력의 이승우와 백승호를 완벽히 차단한 수비수가 있었다. 지난 해 내셔널리그 경주한수원에서 뛰었던 수비수 김민재다. 김민재는 이 경기에서 이승우와 백승호를 상대로 ‘전북의 위엄’을 제대로 선보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김민재가 45일만 늦게 태어났어도 U-20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을 만큼 어리다는 점이다. 또래와의 대결에서 김민재는 한 수 위의 기량을 선보였다. 이승우를 보러 왔다가 김민재를 보고 감탄하고 돌아갔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1년차 신인이 전북 주전으로 도약하다

김민재는 수원공고를 고교 왕중왕전 우승으로 이끌며 연세대에 진학했다. 이게 2015년의 일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곧바로 춘계대학연맹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한일정기전인 덴소컵 대표로도 뽑힌 그는 2016년 3월 곧바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에 파격 발탁됐다. 당시 연제민이 대표팀과 수원삼성에서 뜻밖의 부진을 겪자 신태용 감독이 대학생 김민재를 대표팀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알제리와의 평가전에 나선 김민재를 보고 신태용 감독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패기 있게 잘해줬다. 100% 이상 해냈다.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다. 아주 보기 좋았다.” 김민재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후 프로 진출을 놓고 학교 측과 마찰을 겪은 뒤 중퇴를 선택하게 됐다. 바로 프로에 가려던 김민재와 4학년 때까지 활약하길 바라는 학교 측의 입장이 조율되지 않은 것이다.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소속팀 없이 보낸 김민재는 최강희 감독 눈에 들어 전북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최강희 감독은 전북 1군과 2군을 오가며 김민재를 점검했고 김민재의 가능성을 봤다. “외국인 지도자들이 한국 선수를 보면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게 고개를 숙이고 축구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김민재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축구를 한다. 지금까지 봐 온 선수와는 다른 선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주 잠시 대학 무대를 경험한 게 전부인 김민재도 이동국, 김신욱 등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들과 훈련하며 귀중한 경험을 했다. “동국이 형은 등 지는 플레이가 일품이고 신욱이 형은 힘이 대단하다. 이 형들과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전북은 김민재와 곧바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선수 등록 기간이 지나 곧바로 김민재를 실전에 투입할 수 없었던 전북은 그와 계약을 마친 뒤 잠시 그를 내셔널리그 경주한수원으로 보냈다. 2016년 7월의 일이니 1년도 안 된 이야기다.

만 19세의 어린 선수였지만 김민재는 곧바로 경주한수원에서 주전으로 도약했다. 시즌 중반인 7월에 합류해 15경기에 나서며 어린 선수답지 않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내셔널리그에서도 강팀으로 꼽히는 경주한수원에서도 김민재의 활약은 빛났다. 그리고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미리 계약했던 전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김민재가 ‘스타 군단’ 전북에서도 주전을 차지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워낙 선수층이 두터운 전북은 ‘신인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험 많고 쟁쟁한 선수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막전에서부터 선발로 나선 김민재는 지금껏 벌어진 K리그 클래식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장 중이다. 21세의 어린 선수가 전북에서 주전으로 도약해 이런 활약을 펼친다는 건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김민재는 이 꿈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김민재(왼쪽에서 세 번째)는 압도적인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수비를 펼친다. ⓒ전북현대

또래를 압도하는 ‘괴물 수비수’의 등장

나는 전북이 김기희를 내보내고 김형일까지 중국으로 이적 시켰을 때 걱정이 많았다. 여기에 유망주 수비수로 평가받던 최규백까지 울산에 내줬을 때는 ‘아무리 공격진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수비수를 이런 식으로 다 내주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김민재라는 괴물 같은 수비수가 등장할 줄은 몰랐다. 김민재는 190cm에 이르는 큰 키에 86kg의 체중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브라질 축구 스타 헐크에 버금가는 대단한 신체 조건이다. 그런데 이런 선수들이 대부분 힘으로만 축구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민재는 이런 신체 조건에도 빠르고 정확하다. 커팅 능력뿐 아니라 여기에 패싱 능력까지 갖췄다. 패싱력이 거의 미드필더 수준이다. 유도 선수 아버지와 육상 선수 어머니의 신체 조건을 물려받았고 이해 능력도 빠르다. 아마도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축구보다는 미식축구나 종합격투기 선수를 했을 것만 같다. 나보다 14살 어리지만 나는 김민재를 골목길에서 만나면 나는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이다.

어제 경기에서 김민재가 보여준 능력은 대단했다. 신체 조건이 훌륭한 U-20 대표팀 조영욱이 김민재와의 몸 싸움에서 한 방에 떨어져 나가는 모습은 김민재가 얼마나 괴물 같은 수비수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승우와 백승호가 김민재에 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1996년 11월생인 김민재는 45일만 늦게 태어났으면 U-20 대표팀에 승선할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1997년 1월생부터가 U-20 대표팀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래 선수들과의 맞대결에서 김민재는 자신보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인지도도 높은 이승우와 백승호보다도 더 안정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K리그 최강팀 전북에서 1년차 신인이 이렇게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한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인데 그래서 나는 어제 경기가 더 궁금했다. 과연 김민재가 또래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기량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민재는 차원이 다른 플레이로 프로 무대의 수준을 보여줬다. 언뜻 보면 둔해 보이는 체격이지만 플레이가 굉장히 깔끔했다. 어제 경기에서 골까지 넣은 이야기는 굳이 크게 언급할 것도 없다.

또래 선수들을 무슨 고등학생 대하듯 부수는 김민재의 플레이는 충격적이었다. 성인 대표팀 주축 수비수인 홍정호와 김영권도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고 이후 대표팀으로 성장하는 등 화려한 길을 걸었지만 그들의 등장 당시에도 이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21살 선수가 이동국과 김신욱, 에두, 김보경, 최철순, 이용, 조성환, 정혁, 에델, 이재성, 김진수, 신형민, 이승기가 뛰는 팀의 주전이 된다는 건 가끔 스포츠 만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 올 시즌 비슷한 장면에서 두 번의 페널티킥을 내주는 등 경험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되지만 21세에 전북의 주전이 된 김민재의 엄청난 성장 속도를 감안한다면 이 유일한 단점도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베테랑’ 양동현을 상대로도 속임 동작을 통해 공을 차단해 내고 염기훈과 산토스, 조나탄 등 리그 최고 공격수들도 꽁꽁 묶은 김민재는 나이를 속인 건 아닌지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 경험 많은 수비수가 이 정도 해내도 엄청난 건데 김민재는 21세의 나이로 이걸 해내고 있다. 가뜩이나 상대를 압도하는 체격을 갖춘 김민재가 삭발을 하고 공격수에게 덤벼든다면 성깔 있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움찍할 것이다.

김민재(왼쪽에서 세 번째)는 압도적인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수비를 펼친다. ⓒ전북현대

김민재는 자신감 얻고 신태용호는 자극받았길

많은 이들은 하루 빨리 이승우가 성인 대표팀에 발탁돼 경험을 쌓길 바라고 있다. 나도 물론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최근 보여준 김민재의 경기력과 어제 입증한 실력이라면 이승우보다는 김민재가 먼저 성인 대표팀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승우는 공격수라 조커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더 커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김민재는 경기에 나서지 못해 걱정이 큰 중국파 수비수들과 지금 당장 경쟁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성장 가능성을 떠나 지금 수준으로 높고 봐도 밀릴 게 없다. 여기에 같은 팀의 조성환이나 김진수, 이용, 이재성 등 수준 높은 수비수들을 통해 배우고 김신욱과 이동국 등과 훈련하면서 경험을 쌓는다면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어린 나이에 돈을 쫓아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고 결혼해 아내를 폭행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이야기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수비수가 세트피스에서 득점을 올리지 않는 이상 눈에 띄기가 쉽지 않은데 김민재는 불과 K리그 몇 경기 만에 수비력만으로도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설레게 하는 어린 선수의 등장은 오랜 만이다. 나는 천재 선수가 등장했다고 난리를 피울 때마다 호들갑 떨지 말라는 신중한 입장이었지만 김민재의 등장과 성장은 충격 그 자체다. 지금까지의 모습은 ‘사기 캐릭터’에 가깝다. 21세의 리그 1년차 신인이 전북의 주전으로 도약한 것도 그렇고 같은 또래에서 대한민국 최고라는 선수들을 가볍게 압도해 버리는 기량 또한 믿을 수가 없다. 이승우와 백승호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이 또래 선수 중 이승우와 백승호를 가장 잘 아니 좀 비교를 해보겠다. 이 둘이 뛰는 무대는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인 스페인이라는 점 때문에 완벽한 비교가 될 수는 없지만 아직도 이승우와 백승호는 유망주 소리를 들으며 “더 기다려보자”는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이들보다 불과 몇 달 빨리 태어난 김민재는 벌써 전북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이승우와 백승호가 잘못 성장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김민재가 벌써 성인 무대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게 대단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김민재의 어제 경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가 한눈을 팔지 않고 이 기세로만 성장한다면 한국 축구와 전북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또한 한 편으로는 또래 선수인 김민재와 맞부딪혀 프로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했을 U-20 대표팀 선수들도 어제 경기를 통해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제 유망주 소리를 들으며 조금 쉬어가도 될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부턴 성인 무대에서 뭔가 보여줘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고 한 살 형인 김민재는 벌써 그걸 해내고 있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어제 경기가 김민재에게는 자신감을 찾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고 U-20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자극제가 됐으면 좋겠다. 원래 선의의 경쟁은 분한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김민재를 통해 U-20 대표팀 선수들이 분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한 살 많은 형이 이렇게 자리 잡은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U-20 월드컵에서 뭔가 보여줬으면 좋겠다. 지난해 강철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의 김민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연령대에 김민재만한 수비수는 없다. 이런 수비수는 또 찾기 어렵다.” 김민재는 이제 사고만 치지 않고 경험만 잘 쌓고 삭발만 하면 완벽하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