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가 아시안게임에서 이렇게 메달을 딸 가능성이 열렸다. ⓒWESG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e스포츠를 열정적으로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 친구들과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잘하기 위해 연구했었고 지금도 명절이면 고향 친구들과 만나 <스타크래프트>로 술 내기를 한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당구장에 가면 아재 취급을 받았고 PC방에 가야 1학년 새내기다웠다. 우리에게 e스포츠는 혁신이었고 유행이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고 지금도 할 줄 아는 게임은 없지만 e스포츠를 높이 평가한다. FC서울 경기가 열리는 날도 아닌데 서울월드컵경기장 앞 도로가 꽉 막혔고 이게 ‘롤드컵’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e스포츠 시장을 존중한다.

종목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보도된 소식은 의아하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e스포츠를 2022년 항저우 대회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OCA는 내년 열리는 아시안게임에는 e스포츠를 시범 종목으로 채택한 뒤 그 다음 아시안게임인 2022년에는 정식 종목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이제 PC방에 가는 걸 혼내는 부모님께 “운동하러 간다”고 해도 될 날이 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e스포츠가 아무리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돈이 되는 시장이라지만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e스포츠는 그들의 길을 걸어가야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에 들어오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건 어떤 게임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느냐의 문제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아니면 <디펜스 오브 디 에인션츠>(이하 <도타2>)? 아니면 <피파>? 아예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게임이 숱하게 많은데 이 중에 특정 게임을 골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는 건 형평성이 많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육상처럼 이 게임을 다 세분화 해 각 게임마다 메달을 걸고 싸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다가 e스포츠가 육상과 수영 다음으로 아시안게임에서 많은 메달을 걸고 경쟁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 게임을 OCA가 정식 종목으로 정해도 OCA는 공정성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종목의 연속성도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 업계는 빠르게 변한다. 4년이면 <스타크래프트>가 먹었던 시장을 <롤>이 차지했다가 <도타2>가 빼앗을 정도로 e스포츠 시장은 변화가 심하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은 보통 개최 2년 전에는 정식 종목 채택을 마쳐야 한다. 2020년에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채택을 마무리해야 한다. 지금이야 <롤>이나 <도타2> 등이 언급되지만 2020년에는 이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또한 정식 종목 채택 이후 2년이 지나면 또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육상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을 테지만 e스포츠는 대회가 개최되는 4년마다 아예 다른 형태로 등장해야 한다. 이건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에 들어오는 데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과연 <도타2>가 20년 뒤에도 있을까.

세이크 아흐마드 알파하드 알사바 OCA 회장의 모습. OCA는 e스포츠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롤>과 <도타2>는 공공재가 아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육상이나 수영, 체조 등은 해당 국제연맹에서 룰을 조금씩 바꿀 수는 있다. 그런데 e스포츠는 전적으로 게임 제작사가 정한 방식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만약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피파> 시리즈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고 가정해 보자. 매년 새로운 시리즈를 내놓는 <피파>에서 <피파2022>에 어떤 새로운 기술을 추가할지, 어떤 버그가 생길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걸 IOC나 OCA가 아니라 전적으로 일개 게임 제작사가 맡아 아시안게임, 올림픽 메달 유무를 가른다는 건 공정성에 어긋난다. 차라리 <테트리스> 같은 단순한 게임이라면 모를까 복잡한 요즘 게임은 더더욱 게임 제작사의 영향력이 세다. 공인된 스포츠 단체가 아니라 게임 제작 업체가 만든 룰이 아시안게임으로 들어오는 건 거부감이 든다.

더 큰 문제가 있다. e스포츠는 공공재로 볼 수 없다는 거다. 이게 바로 치명적인 약점이다. 축구나 야구, 농구 등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에 나서는 모든 종목은 공공재다. 이들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 들어오고 어딘가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해 이 종목을 만든 이들이 돈을 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e스포츠는 다르다. 사기업이 만든 콘텐츠이고 당연히 이 게임을 사용하는 데 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IOC나 OCA가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위해 그 종목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 아무리 요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아마추어리즘을 망각하고 상업화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기본적인 올림픽 정신을 아예 잃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둑이나 체스가 아시안게임에 들어오는 것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바둑이나 체스는 그래도 공공재다.

지난 2010년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KeSPA)가 e스포츠 공공재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지적재산권 문제로 제작사인 블리자드와 갈등을 빚던 KeSPA는 “축구공을 만든 아디다스가 월드컵에 축구공 사용료를 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며 “<스타크래프트>도 공공재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논란이 심해지고 블리자드가 강력히 반발하자 결국 KeSPA는 기자 간담회까지 열고 공공재라는 표현에 대해 왜곡이 있었다고 물러섰다. 당시 KeSPA는 “e스포츠가 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스포츠의 영역에 속하며 스포츠는 일반 공중에 대한 시청권(Public viewing)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을 뿐 <스타크래프트> 등 'e스포츠 종목 게임 자체가 공공재'에 해당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세이크 아흐마드 알파하드 알사바 OCA 회장의 모습. OCA는 e스포츠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돈만 밝히는 OCA, 돈이면 다 되는 알리바바

e스포츠가 공공재가 아니라는 건 아시안게임 입성에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으면 e스포츠는 아시안게임에 들어올 수 없다. 게임 제작사가 “누구든 우리 게임을 대회에 써도 좋다. 이제부턴 공공재다”라고 밝힌다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은 다 게임 제작사로 들어간다. 특정 게임이 전세계 스포츠인의 축제에 입성하면 그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광고 효과를 누리기 때문이다. 수익까지도 모두 국제e스포츠연맹(IeSF)에 돌려줄 게 아니라면 e스포츠가 축구나 야구 같은 모두의 스포츠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게임 제작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수익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아무리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이 상업화가 됐다고 하더라도 특정 게임 회사에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서 e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다는 건 너무 노골적인 상업화다.

그런데도 OCA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걸까. 다 돈 때문이다. OCA가 이번에 알리스포츠라는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알리스포츠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자회사로 2016년에 총상금 규모만 40억 원이 넘는 세계 e스포츠 대회인 WESG를 개최한 바 있다. 알리바바는 IOC와도 올림픽 공식 스폰서 계약을 맺었는데 2028년까지 총 6차례 올림픽에서 전자상거래와 클라우드 서비스 분야를 공식 후원하면서 약 5억~6억 달러(약 5,705억~6,846억) 규모의 투자를 할 계획이다. 알리바바는 e스포츠가 올림픽에 입성하기 위한 전단계로 아시안게임을 후원하며 e스포츠의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채택이라는 일을 이뤄낸 것이다.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알리바바와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기 위한 OCA, IOC의 무리수다. 중국의 거대 기업이 이제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판도까지도 흔들고 있다.

아무리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상업화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포츠가 아닌 종목까지 끌어 들이는 건 반대다. 돈만 되면 부루마블이건 윷놀이건 다 스포츠라면서 정식 종목이 될 수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벌써부터 알리바바와 경쟁 업체인 텐센트에서 제작한 <롤>은 아예 2022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아니 세상에 어떤 스포츠가 라이벌 회사를 의식해 정식 종목에서 빠진다는 말이 나오나. 이건 기본적으로 스포츠가 아니라 장사꾼들의 이해타산이 맞아 이뤄진 결정이다.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스타크래프트> 세대이고 지금도 <스타크래프트>가 다시 부활하길 바라는 사람이고 e스포츠를 존중하는 사람이지만 이건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e스포츠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너무 노골적으로 OCA와 IOC가 상업화되고 있는 결정적인 단면이기 때문이다.

세이크 아흐마드 알파하드 알사바 OCA 회장의 모습. OCA는 e스포츠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e스포츠의 아시안게임 입성에 반대한다

이건 OCA의 획기적인 변화 때문에 이뤄진 일이 아니라 그냥 돈만 쫓는 그들의 행태 때문에 이뤄진 일이다. 이걸 꼭 e스포츠를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과 e스포츠를 스포츠로 취급하지도 않는 꼰대의 대결로 몰고 가지는 말자. ‘페이커’가 병역 혜택을 받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다. <롤>이 <도타2>보다 인기가 더 많으니 <롤>이 정식 종목이 될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지도 말자. 본질을 잘 살펴야 한다. 심지어 OCA가 내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 핸드볼을 빼겠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돈이 안 된다고 1976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치러지는 핸드볼을 빼면서 e스포츠를 받아들인다는 건 정신 나간 일이다. 핸드볼이 없는 아시안게임에 <도타2>와 <롤>이 웬말인가.

차라리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을 나눈 것처럼 IOC나 OCA가 바둑, 체스, e스포츠 등을 묶어 게임 올림픽을 독자적으로 개최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할 것이다. e스포츠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닐 텐데 돈만 쫓는 OCA와 알리바바는 지금 이상한 일을 꾸미고 있다. OCA는 돈만 쫓고 있고 알리바바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이런 황당한 일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OCA와 알리바바는 돈만 된다면 ‘미연시’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할 기세다. 나는 e스포츠의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채택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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