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 이전의 비극. 두 번 다시 반복되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수요일 FC서울과 FC안양의 역사적인 첫 연고 이전 더비 경기가 펼쳐진다. ⓒFC안양 공식 홈페이지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경기가 펼쳐진다. 안양LG가 서울로 연고 이전을 한 뒤 어렵게 다시 창단한 FC안양, 그리고 이제는 K리그를 대표하는 빅클럽으로 성장한 FC서울이 역사상 첫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FC서울과 FC안양은 바로 내일(19일) 저녁 7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17 KEB하나은행 FA컵 32강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친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이 역사적인 맞대결을 앞두고 이 경기에 관한 연속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 이 한 경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l 남윤성 기자] 국내축구팬들의 관심이 상암으로 집중되고 있다. 19일 수요일 오후 7시30분 ‘연고 이전’으로 맞물린 FC서울과 FC안양이 2017 KEB하나은행 FA컵 4라운드 경기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서울과 안양 두 팀의 역사적인 첫 맞대결이 성사되기까지는 무려 1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연고 이전으로 뒤얽힌 더비경기는 이미 지난 2013년에 펼쳐진 적이 있다. 2013년 1월 26일 제주의 클럽하우스에서는 제주유나이티드와 부천FC 1995의 특별한 연습경기가 펼쳐졌다. 연습경기이긴 했지만 두 팀의 경기는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400명이 넘는 축구팬들이 '직관'을 위해 제주로 향하기도 했다.

연고 이전이라는 씁쓸함으로 뒤얽혀있지만 그리고 비록 리그에서의 맞대결은 아니지만 이러한 더비 경기는 신선한 스토리가 필요한 K리그에 확실한 흥행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 결과를 떠나 매치업의 성사만으로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연고 이전 더비. 이러한 연고 이전 더비는 과연 우리 K리그에만 발생하고 있는 문제일까. 그래서 준비해봤다. 해외의 연고 이전 더비를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14년을 기다린 AFC윔블던의 복수

윔블던FC는 1889년 영국 런던의 남서부 지역에 위치한 윔블던에서 창단됐다. 1988년엔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꺾고 FA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윔블던은 86/87시즌부터 99/00시즌까지 14년간 최상위 리그에 속했던 전통 있는 클럽이었다. 하지만 2002년 5월 피트 월클먼 구단주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윔블던FC의 연고 이전을 선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윔블던FC는 80년대에 이르러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1990년 경기장을 모두 좌석으로 변경하라는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정책 발표에는 기존 홈구장인 플로 레인을 떠나 크리스탈 팰리스의 셀허스트 파크를 임대하여 사용해야했다.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4년 MK돈스로 명칭을 변경한 윔블던FC는 결국 03/04 시즌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루 아침에 응원하던 팀을 잃은 팬들은 분개했다. 그리고 팀이 연고 이전을 선언하고 한 달 뒤인 2002년 6월 AFC윔블던을 만들었다. 그렇게 9부 리그에서 새롭게 시작한 AFC윔블던은 이후 승격을 거듭했고 7위로 시즌을 마친 지난 15/16시즌엔 플레이오프를 거쳐 리그1(3부) 진입에 성공했다. 역사가 새롭게 쓰였다. 이미 강등이 확정된 철천지원수 MK돈스와 같은 리그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14년을 기다렸다. 지난 3월 15일(이하 한국시각) 펼쳐진 AFC윔블던과 MK돈스와의 리그1(3부) 38라운드 경기에서 윔블던은 라일 테일러의 결승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연고 이전으로 인한 팬들의 설움은 14년이 지나서야 씻어낼 수 있었다. ⓒAFC 윔블던 공식 홈페이지

양 팀은 이미 세 차례 맞붙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리그만큼의 위상을 갖추지 못한 컵대회가 전부였다. 더군다나 세 경기 모두 MK돈스의 홈구장인 스타디움 mk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지난 3월 15일(이하 한국시각) AFC윔블던의 홈구장 킹스메도우에서 두 팀은 역사적인 맞대결을 펼쳤다. AFC윔블던과 MK돈스 모두 중위권에 속해있어 승격과 강등의 걱정은 없었지만 경기는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영국 전역의 뜨거운 관심 속에 펼쳐진 경기에서 AFC윔블던은 2-0으로 승리하며 14년을 기다린 복수를 완성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가와사키 프론탈레

연고 이전으로 인해 라이벌 관계가 형성된 사례는 바다건너 일본에도 있다. 현재 J1(1부)에 속해있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J2(2부)의 도쿄 베르디의 관계가 그렇다. 시간은 1969년으로 돌아간다. 1969년 일본 대표 언론 중 하나인 요미우리신문은 계열사 닛폰TV와 공동 투자해 도쿄를 연고로 하는 요미우리FC를 창단한다. 거대 기업의 탄탄한 자본을 등에 업은 요미우리는 승격을 거듭했고 1978년 마침내 JSL 1부 승격을 이뤄낸다. 요미우리는 이후 1부 리그 3회, 일왕배 1회,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회 등의 훌륭한 성적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명문구단으로 성장했고 이 기간 미우라 가즈요시, 라모스 루이, 기타자와 츠요시 등 당시 일본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들을 영입하며 몸집을 불려나갔다.

하지만 J리그가 공식 출범한 1993년 요미우리의 홈구장 사용과 연고지에 문제가 발생한다. 요미우리는 도쿄를 연고지로 유지한 채 J리그 참가를 희망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홈경기를 치렀던 국립 경기장은 특정 프로팀의 소유가 불가능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요미우리는 결국 근처의 가와사키로 연고를 이전하며 팀 명칭을 베르디 가와사키로 변경한다.

14년을 기다렸다. 지난 3월 15일(이하 한국시각) 펼쳐진 AFC윔블던과 MK돈스와의 리그1(3부) 38라운드 경기에서 윔블던은 라일 테일러의 결승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연고 이전으로 인한 팬들의 설움은 14년이 지나서야 씻어낼 수 있었다. ⓒAFC 윔블던 공식 홈페이지

가와사키에 새롭게 자리 잡은 베르디 가와사키는 출범 직후부터 J리그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하지만 1996년 일왕배 우승을 마지막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1999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베르디가 속했던 가와사키 시가 재정적인 문제로 팀의 운영을 포기하면서 베르디가 도쿄로 연고 이전을 신청한 것이다. J리그 연맹은 가와사키 시에 이미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J1 승격을 이뤄냈다는 점과 새로운 도쿄 더비의 형성을 통한 J리그의 부흥을 이유로 베르디의 연고 이전을 승인한다. 결국 2001년 베르디 가와사키는 도쿄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팀의 명칭까지 도쿄 베르디 1969로 변경했고 베르디를 응원하던 가와사키 시의 축구팬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거주 지역의 팀만을 진정한 나의 팀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짙었던 몇몇 팬들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심정으로 당시엔 규모와 명성이 한참 부족했던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복잡하고도 기묘한 연고 이전을 통해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도쿄 베르디 사이엔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지금은 비록 각각 다른 리그에 속해있는 두 팀이지만 2001년 이후 맞붙은 7차례 대결에서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4승 3무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연고 이전으로 인한 팬들의 설움을 되갚아주고 있다.

축구 종가 영국의 연고 이전 형태

연고 이전으로 형성된 더비라고하기엔 부족함이 있지만 연고지 이전 문제는 축구 종가 영국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진 영국의 경우 축구팀이 지금과 같은 독립된 형태로서의 구단이 아니라 공장 혹은 기업의 작은 소모임에 불과했다. 선수와 팬들은 공장의 노동자 또는 직원이었다. 당시 이뤄진 연고지 이전은 공장의 이전 또는 합병에 의해 이뤄졌으며 형태를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즉, 지금과 같은 ‘팬들이 주가 되는 구단’이라는 것이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큰 반발 없이 연고이전이 이뤄질 수 있었고 그 사례도 무수히 많다.

영국의 연고 이전의 대표적인 예로는 아스날이 있다. 아스날의 시작은 1886년 런던 남부에 위치한 울위치의 군수 공장 근로자들이 만든 축구 소모임인 ‘다이얼 스퀘어’에서 시작됐다. 이후 1893년엔 ‘울위치 아스날’로 명칭을 변경한 뒤 풋볼 리그에 가입하며 프로 구단의 모습을 제법 갖춰갔다. 하지만 아스날이 더 큰 구단으로 성장하기에 울위치 지역은 규모가 너무 작았고 경기장을 관중들의 수에도 제한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로 재정난에 시달리던 아스날은 결국 1913년 2부 리그로 강등된 뒤 하이버리로 연고지를 이전한다.

14년을 기다렸다. 지난 3월 15일(이하 한국시각) 펼쳐진 AFC윔블던과 MK돈스와의 리그1(3부) 38라운드 경기에서 윔블던은 라일 테일러의 결승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연고 이전으로 인한 팬들의 설움은 14년이 지나서야 씻어낼 수 있었다. ⓒAFC 윔블던 공식 홈페이지

아스날이 연고지를 하이버리로 이전하면서 지리적 근접성을 이유로 런던에는 새로운 더비 관계가 형성이 됐는데, 약 7km 근처에 토트넘을 연고로 하는 토트넘 핫스퍼가 위치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치열함으로 가득찬 영국의 축구 전쟁 아스날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는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더비매치로 자리 잡았다.

연고 이전의 비극,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연고지 이전의 문제는 우리나라 프로스포츠에서 종목을 망라하고 발생했다. 상업성이 보장되는 서울로의 무작정적인 이전 노력, 후원 기업의 변화에 따른 연고지 이전, 열악한 경기장 여건으로 인한 이전 등 프로 구단의 연고지 이전은 다양한 이유와 갖은 형태로 이뤄졌다. 물론 개중에는 성공한 이전도 있고 실패로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는 이전도 있다. 하지만 구단과 팬 모두가 윈윈하는 성숙한 형태의 이전은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기업의 후원에 상당부분 의지하는 우리나라 프로구단의 특성상 구단이 그저 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리그 전체의 긍정적인 발전과 구단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라도 본질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연고지 이전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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