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해외, 특히 유럽의 축구 선진국에서는 '펍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경기장 직관이 어려운 팬들이 맥주를 파는 술집에 모여서 다같이 TV로 경기를 본다. 한국에서도 축구를 테마로 하는 펍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 리버풀 펍으로 유명한 '봉황당' 등이 있다. 물론 K리그 구단을 테마로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한국, 그리고 서울에 CSL 펍이 있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정말로 있다. 서울 대림동에 옌볜 푸더 팬들을 위한 펍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여긴 또 뭐하는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직접 찾아가봤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지금부터 옌볜 푸더 펍을 독자들께 소개한다.

뒤통수를 맞은듯한 첫 만남

2호선 대림역에 내려 1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좌측에 대림중앙시장 골목이 보인다. 이 골목에 들어가는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한국에서 중국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속칭 '차이나타운'이 이곳에 있다. 여기서부터는 한국어 대신 중국어가 훨씬 많이 들린다.

상당수 한국인들은 '차이나타운'이라 불리는 동네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과 한국인은 모두 동양인이다. 입만 열지 않는다면 국적을 쉽게 구분할 수 없다. 게다가 여기는 한국이다.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이곳에서 뭔가 해코지를 당할 것 같다는 불안감은 가질 필요가 없다. 서울에서 이렇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렵다. 걱정 말고 즐기자.

대림중앙시장의 거리를 쭉 내려가면 옌볜 펍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밖에서 바라볼 때는 저곳이 '옌볜 펍'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맥주를 파는 술집으로 보인다. '역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는 어쩔 수 없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문에 선명하게 옌볜 엠블럼이 붙어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크게.

살다가 옌볜 엠블럼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한국에서 ⓒ 스포츠니어스

알고보니 이운재도 찾았던 맛집이네

펍의 문을 열자 축구를 테마로 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군데군데에는 역시 옌볜의 엠블럼과 머플러가 걸려있다. 가게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중국 동포인 사장이 한국말로 묻는다. "축구 보러 오셨어요?". 그렇다고 하니 경기 보기 좋은 좌석으로 안내한다. 중계가 있는 날에는 일반 손님과 축구팬을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한국에 사는 중국 동포들과 중국인들을 겨냥해 만들어진 곳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사소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메뉴판이다. 메뉴판에는 온통 중국어로 가득하다.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이곳의 사장과 종업원은 중국 동포다. 한국어가 가능하다. 한국인 방문이 자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메뉴에 대한 설명과 안주에 대한 조언을 함께 해준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물어보자.

"대부분 한국 분들은 꼬치를 많이 드세요". 펍 사장의 조언이었다. 요리들이 전체적으로 중국 현지의 입맛에 맞춰 만들기 때문에 향신료를 많이 쓰는 편이다. 자극적일 수 있다. 그나마 한국인 입맛에 최대한 맞는 것이 꼬치 요리다. 하지만 이것 또한 자극적이기 때문에 1인분만 먹고 가는 한국인이 많다고 사장은 덧붙였다. 이곳에서 요리를 먹는 것이 하나의 도전일 수 있지만 열린 마음으로 시도해보자. 이운재 코치도 다녀간 맛집이다. 가게 한쪽 구석에 이운재 코치가 다녀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중의 양꼬치 전문점보다 이곳 양꼬치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CSL 팬이 부러울 수 밖에 없는 중계 퀄리티

대형 TV를 통해서는 중국 현지의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화질은 최고였다. 자리만 잘 잡는다면 최고의 관람 환경에서 경기를 볼 수 있다.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TV 바로 밑 자리만 아니라면 어느 자리에 앉아도 축구를 볼 수 있기는 하다. 경기 시간이 다가올 수록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 옌볜 펍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중국 동포들이 일요일에는 출근을 위해 펍에 오는 것보다 휴식을 취하는 것을 택한다. 특히 옌볜의 이날 경기는 오후 8시 35분에 시작했다. "토요일 경기에는 바글바글하다"는 것이 한 옌볜 팬의 설명이었다.

TV에서는 경기 시작 약 30분 전부터 중계를 시작한다. 경기장의 전경을 보여주고 최근 경기 결과나 주요 선수 등 양 팀의 전력 분석이 이어진다. 킥오프 직전 급하게 중계를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TV와는 다르다. 미리 시청자에게 경기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한다.

살다가 옌볜 엠블럼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한국에서 ⓒ 스포츠니어스

옌볜 푸더는 이날 톈진 취안젠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시즌 초반 1무 2패를 기록하며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옌볜이었다. 톈진 취안젠은 올 시즌 CSL로 승격한 팀이다. 하지만 엄청난 돈을 퍼부으며 알렉산드로 파투를 영입하는 등 전력이 급상승한 팀이기 때문에 옌볜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으로 보였다.

이를 감안한듯 이곳에 있었던 옌볜 팬들의 소망 또한 '1승'이었다. '지지만 않으면 만족'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굉장히 잘 싸우던 옌볜은 한 번의 수비 집중력 저하로 결승골을 실점하며 0-1로 패했다. 옌볜의 시즌 첫 승은 또다시 다음으로 미뤄야했다.

이곳은 옌볜, 그리고 축구팬들의 해방구

사실 축구 펍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즐겁게 축구를 보며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옌볜 팬들은 경기 도중 잔을 부딪치며 옌볜의 구호를 외치고 응원가를 불렀다. 아무도 눈쌀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함께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매주 그들의 월드컵을 즐기고 있었다.

매번 술집에서 조심스럽게 '저기… 축구좀 틀어주세요' 했다가 5분 만에 뒷자리 아저씨의 '거 야구좀 봅시다'란 말을 꽤 많이 들어봤다. 특히 CSL을 틀어주는 곳은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옌볜 팬들에게는 이곳이 친목의 장이자 유일하게 자신의 팀을 마음껏 응원할 수 있는 해방구인 셈이다.

경기를 한창 보던 도중 화장실에 갈 일이 생겼다. 90분 동안 맥주를 신나게 마시면서 한 번도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또다시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TV에서는 크게 들리지 않던 중계가 화장실에서는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이었다.

여기에도 펍의 작은 배려가 숨어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순간 경기는 끊긴다. 따라서 최소한 오디오를 통해서라도 고객들이 경기에 대한 정보를 끊기지 않고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어를 모른다면 어쩔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중국어로 중계되기 때문에 화장실에서도 중국 중계진의 목소리가 들릴 뿐이다.

축구팬들의 비밀 명소로 추천합니다

사실 이곳에 방문하기 전, '옌볜 펍'에 대한 막연한 편견 같은 것이 존재했다. '옌볜'이라는 지역명을 듣게 되면 뭔가 구수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게다가 먼저 이곳을 다녀간 선구자와 같은 한국인들이 찍은 사진에는 펍 천장에 북어가 매달려있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굉장히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펍이었다.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분위기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사장의 큰 결단이었다. 옌볜 팬이었던 그는 몇 개월 전 일반 맥주집을 본격적으로 축구, 특히 옌볜의 펍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 현지의 축구 펍 프랜차이즈를 한국에 들여왔다. 옌볜 펍은 사실 해당 프랜차이즈의 '한국 1호점'인 셈이다. "물론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장사가 잘 되는 편은 아닙니다"라고 이곳의 사장은 말했지만 굉장히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었다.

옌볜의 경기가 없는 날이나 시간대에는 CSL의 경기를 틀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옌볜 경기 시간에 맞춰서 찾아가면 월드컵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느 곳보다 신나고 정겨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CSL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축구 펍의 분위기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한 번 찾아가봐도 좋을듯 하다. 참고로 <스포츠니어스>의 다음 회식 장소 역시 이곳이 유력하다.

옌볜 푸더 펍 정보

상호 : UNCLE 13 BAR-B-QUE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디지털로37길 8, 4층(대림동 1066-125)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