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서 가장 불쌍한 축구팬을 소개합니다

세 팀 유니폼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축구장의 분위기가 가장 좋을 때는 언제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홈 팀이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경기장의 분위기는 가장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반면 홈 팀이 이기지 못하면 아무리 재미있고 신나는 이벤트가 있어도 분위기가 축 쳐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기지 못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 축구장은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곳이 되어버린다.

어느 날 <스포츠니어스>에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한 축구팬이 세 팀의 시즌권을 샀는데 저주에 걸린 것처럼 이기는 경기를 못보더라”는 내용이었다. 제보한 독자는 “수도권 팀이 유난히 부진하는 이유는 저 사람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순간 동정심과 함께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그래서 그 저주의 당사자인 A씨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만나서 반갑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축구를 좋아하고 영화 ‘아수라’를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냥 평일에는 일하고 축구 하는 날에는 축구 보면서 산다.

당신이 ‘불쌍한 축구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그런가?

나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이번 시즌에 K리그 팀 시즌권을 세 장 샀는데 승률이 형편 없어서 그런 것 같다. 한 팀 시즌권을 세 장 산 게 아니라 세 팀의 시즌권을 한 장씩 샀다. ‘A씨의 저주’라는 등 별 말이 다 나오는데 나는 괜찮다.

K리그 시즌권
구매할 때만 해도 이럴 줄은 몰랐을 것이다 ⓒ 본인 제공

왜 시즌권을 세 장이나, 그것도 각자 다른 팀 시즌권을 샀는가? 도대체 어느 팀 팬인가?

성남FC와 서울 이랜드, 수원 삼성의 시즌권을 샀다. 딱히 한 팀을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K리그 경기를 전체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굳이 가장 호감 가는 팀을 꼽으라고 한다면 친한 친구들이 많이 응원하고 있는 성남FC다. 성남 경기 때는 축구를 보러 가는 것도 있지만 친구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방문하는 이유도 있다.

성남과 서울 이랜드 시즌권은 예전부터 샀다. 집에서 가깝다는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하지만 올해 두 팀이 이러고 있으니 내년은 좀 고민된다. 수원 삼성은 올해 회사를 옮기면서 샀다. 마침 사무실이 경기장 근처였다. 특히 수원은 AFC 챔피언스리그(ACL)에 나가니 평일에 퇴근하고 보러가면 딱이지 않겠는가? 사실 이건 그냥 핑계다. 맨날 수원 경기장 가면 길게 줄서는 게 짜증나서 홧김에 시즌권을 샀다.

시즌권을 세 장 샀다고 하면 다들 ‘부르주아’라는 얘기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프로야구 KBO리그에 비하면 K리그 시즌권 정말 싼 거다. 게다가 이것저것 선물도 안겨준다. 이 정도 가격에 주말을 책임져준다면 충분히 만족한다. 합리적이니까 산 거다.

합리적으로 구매했다고 하지만 썩 주말이 즐겁지는 않을 것 같다. K리그로 한정했을 때 수원은 4무 1패, 서울 이랜드는 1승 1무 4패, 성남은 2무 4패다. 합쳐서 1승 7무 9패다. 이긴 경기 본 적 있는가?

유일한 1승을 직관했다. 서울 이랜드와 안산 그리너스의 경기였다. 정말 심장 터질 뻔했다. 그 때까지 3월 한 달 동안 이긴 경기를 한 번도 못봤다. 후반 24분 김민규가 골을 넣고 나서 후반 35분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선수들 모습을 보니 페널티 박스 안에서 파울하고 페널티킥을 내줄 기세였다. 그래서 ‘그래 그냥 한 골 먹고 3월 무승 한 번 가보자’란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는데 다행히 이겼다.

문제는 그 이후로 또 세 팀이 귀신같이 이기질 못하고 있다. 아는 지인들은 ‘고사라도 한 번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주말만 되면 세 팀의 경기 결과를 예의주시한다. 한 수원 팬 지인은 ‘우리 시즌권 잘라버리고 FC서울 시즌권을 사면 안되냐’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제 돈 없다. 시즌권 세 장 산 것으로 충분하다. 알아서 이겨줬으면 좋겠다.

그 많은 경기 중에 가장 속이 쓰렸던 경기를 꼽아달라

얼마 전 성남과 부천 경기가 제일 아쉬웠다. 사실 그 날 수원 경기장에 갔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수원에서는 상주와의 경기가, 성남에서는 부천과의 경기가 있었다. 회사에 볼일이 있었던 것도 있지만 요즘 수원에서 출석도장 이벤트가 있어서 도장도 찍고 경기도 볼 겸 수원으로 갔다. 근데 전반 초반만 봤는데 느낌이 쎄한 거다. 수원이 이번에도 못이기고 성남이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도 ‘성남에 오라’고 했다.

두 팀의 경기장이 그렇게 먼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곧바로 성남으로 갔다. 경기를 보는데 성남이 굉장히 잘하는 거다. 특히 공격이 유난히 안풀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황의조가 동점골을 넣고 나서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 보일 정도로 뛰고 패스도 손발이 맞더라. 상당히 기대를 했다. 비록 1-1 상황이었지만 ‘비겨도 이 정도면 다음경기부터 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실점하더라. 나도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즐겁자고 산 시즌권이 고통을 안겨주는 것 같다. 혹시 세 장의 시즌권 중에 잘라버리고 싶은 시즌권은 있는가?

자를 거면 세 장 다 잘라버렸다. 뭘 하나만 자르는가. 굳이 돈 아까운 팀을 고르자면 서울 이랜드를 꼽겠다. 크게 팬심이 없는 것이 제일 영향을 끼치지만 경기력이나 분위기가 살지 않는 것 같다. 강렬한 느낌이 없이 조용히 사그러든다고 해야할까? 그런 부분이 아쉽다.

그렇다면 반대로 물어보겠다. 가성비 하나만큼은 최고인 시즌권은 무엇인가?

수원이다. 이번에 수원 시즌권을 Ws석으로 샀다. 14만원인데 이걸 티켓으로 사면 한 경기에 2만원이다. 딱 7번만 가면 본전 뽑을 수 있다. 다른 팀은 7경기 만에 본전 뽑기 쉽지 않다. 굳이 시즌권과 함께 주는 선물은 비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각 구단이 주는 아이템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김진태와 그분
‘왜 울어요, 우리가 지지 않았는데 왜 울어요’. 수원과 대구가 비겼을 때 그의 마음은 이랬다고 한다 ⓒ 김진태 의원 페이스북, 본인 제공

사실 이기는 게 시즌권자에게는 최고의 가성비 아니겠는가. 힘을 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세 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길 바란다

먼저 수원. 자본이 있는 팀 아닌가. 선수 영입 등을 통해 구단과 리그를 활성화 시켰으면 좋겠다. 특히 구단주님, 말 그만 사시고 프로 스포츠에 투자좀 해줬으면 좋겠다. 성남은 부천전에 보여줬던 열정을 시즌 내내 보여줬으면 좋겠고 서울 이랜드는… 굉장히 아쉽지만 김병수 감독을 믿는다. 만들어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마지막 질문이다. 4월 13일에 수원과 홍콩 이스턴의 ACL 경기가 있다. 직관할 예정인가?

당연하다. 2승 찬스다. 조나탄 이름이 영문으로 마킹되어 있는 ACL 버전 수원 홈 유니폼까지 입고 갈 거다. 혹시 비겨도 내 탓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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