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우리팀에 야유, 상대팀에 환호 ‘빅버드에서 생긴 일’

수원삼성 경기 전 모습
수원삼성은 과연 '명가'로서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수원월드컵경기장=김현회 기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가 끝나고 수원삼성 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순간 경기장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뒤 이 야유룰 퍼붓던 수원 팬들이 갑자기 환호하더니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했다. 다름 아닌 상대팀 선수의 이름이었다. 우리 팀 선수에겐 야유를 보내고 상대팀 선수에겐 환호하는 참으로 이상한 일은 오늘(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과연 빅버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빅버드’로 돌아온 홍철과 조지훈
수원삼성은 이날 경기 전까지 3무 1패를 기록하며 여전히 리그 첫 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인천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는 후반 3-1로 앞선 상황에서도 두 골이나 연이어 허용하며 또 다시 첫 승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특히나 계속해서 후반 막판 골을 내주며 ‘SEO TIME’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와중에 인천전에서도 문선민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자 팬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축구 수도’이면서 강팀으로 평가받는 수원삼성이 이렇게 1승도 힘겨워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날 상주와의 경기가 펼쳐진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축구 수도’라는 별명답지 않게 적은 관중이 찾았다. 2만 명은 가볍게 들어차던 수원월드컵경기장에 5천여 명의 관중만이 경기장에 들어찼을 뿐이다. 하지만 서정원 감독은 조나탄과 박기동을 동시에 선발로 기용하는 강수를 두며 첫 승을 노렸다. 전반 초반 조나탄이 완벽한 기회에서 헛발질을 하며 득점 기회를 놓쳤지만 주도권은 수원이 쥐고 있었다. 수원은 활발하게 상주 골문을 위협했고 상주도 날카로운 역습으로 수원을 괴롭혔다.

이날 상주에는 수원을 상대로 특별한 경기를 치르는 선수가 둘이나 있었다. 바로 수원에서 뛰다가 올 시즌을 앞두고 군에 입대한 홍철과 조지훈이었다. 친정팀을 상대로 경기를 치르는 이 둘에게는 빅버드로의 귀환이 무척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나 홍철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개막전이었던 강원FC와의 홈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홍철은 이후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스로를 ‘3군’이라고 표현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3군’에서 모든 걸 내려 놓고 열심히 컨디션을 끌어 올리기 위해 준비했다.”

홍철의 뼈아픈 농담, “페널티킥 하나 주겠다”
홍철은 올 시즌을 앞두고 훈련소에 입소한 뒤 곧바로 개막전에 나섰다. 스스로는 컨디션에 큰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훈련소 생활 이후 복귀한 K리그는 만만치 않았다. 김태완 감독은 “훈련소에 다녀온 뒤 아직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홍철을 과감히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홍철이 할 수 있는 건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홍철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밖에서 얼마나 많은 걸 누렸는지 느끼게 됐다. 군인 신분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3군으로 내려가니 내가 잘난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모든 걸 내려놓고 운동만 생각했다.”

개막전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하던 홍철은 이번 수원삼성전을 너무나도 기다려 왔다. 지난 시즌까지 4년 동안 수원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그는 원소속팀 팬들을 향해 꼭 인사하고 싶었다. 김태완 감독은 “홍철이 ‘꼭 이번 경기에는 기용해 달라’는 의지가 강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김태완 감독은 개막전 이후 네 경기 만에 홍철을 선발로 내세웠다. 그렇게 홍철은 군 입대 때문에 빅버드를 떠난 이후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다시 빅버드에 서게 됐다. 컨디션 난조로 후보로 떨어졌던 그가 벼랑 끝에서 다시 기회를 잡은 곳이 다름 아닌 빅버드였다는 건 우연 치고는 절묘했다. 홍철은 “감독님께서 배려해 주신 것 같다”며 웃었다.

홍철의 상황도 좋지 않았지만 더 좋지 않은 건 수원의 상황이었다. 올 시즌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수원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경기 전 홍철은 지난 시즌까지 동료로 한 팀에서 뛰었던 이정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경기를 앞두고 서로 편하게 장난을 치는 분위기였다. “제가 수원을 위해서 페널티킥 하나 줄게요.” 첫 승에 목마른 이정수도 “수원을 위해 사고 한 번 쳐 달라”고 장난으로 화답했다.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수원의 암울한 상황에 대한 뼈아픈 농담이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하니 눈빛이 달라졌다. 홍철은 이렇게 말했다. “페널티킥 하나 준다고 장난도 쳤지만 경기가 시작하면 적이잖아요. 제가 입고 있는 유니폼에 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홍철은 이날 왼쪽 측면에서 부지런히 상대팀을 공략했다. 몇 번이나 날카로운 돌파와 크로스로 수원을 괴롭혔다.

수원삼성 경기 후 선수단
수원삼성은 올 시즌 아직도 첫 승을 올리지 못했다. ⓒ수원삼성

수원 향한 야유, 홍철 향한 환호
후반 중반 홍철은 공격 진영에서 돌파하다 수원 조원희에게 걸려 넘어졌다. 그러자 수원 팬들은 자신의 선수 이름을 연호했다. 홍철이 아닌 조원희였다. “조원희. 조원희.”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홍철이 넘어지면 수원 팬들은 그를 넘어트린 선수에게 야유를 퍼부었겠지만 홍철은 이제 상대팀 선수였을 뿐이다. 홍철은 경기 도중 수원 팬들로부터 몇 차례 야유를 들어야 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가 상대팀 선수였기 때문이다. 원한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결국 이날 경기에서 수원과 상주는 한 골도 넣지 못하고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적지에서 거둔 승점 1점이 상주에는 나쁜 결과가 아니었지만 또 다시 안방에서 첫 승 사냥에 실패한 수원으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수원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 앉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유를 퍼부었다. 아직도 1승조차 거두지 못하고 승리에 대한 의지도 보여주지 못한 수원 선수들을 향한 홈 팬들의 질타였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수원 팬들의 야유는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이뤄졌다. 수원 선수들이 일반석에 인사를 하고 골대 뒤를 채운 ‘프렌테 트리콜로’에 인사를 하기 위해 걸어가는 순간부터 야유는 더 커졌다. 일부에서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지만 야유 소리가 더 컸다. 선수들이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팬들은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머문 이들을 향해 야유를 이어갔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였다. 수원 선수들은 이 야유에 고개를 푹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이 순간 홍철과 조지훈이 수원 팬들을 향해 걸어갔다. 불과 몇 초 사이의 일이었다. 홍철과 조지훈은 지난 시즌까지 함께 했던 동료들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수원 골대 뒤를 채운 팬들이 갑자기 환호를 보내며 홍철과 조지훈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은 다른 팀 선수지만 지난 시즌까지 함께 했던 선수들을 그리워하고 응원하는 목소리였다. 홍철과 조지훈은 팬들 앞까지 다가가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그들이 돌아선 뒤에도 수원 팬들은 지금은 수원 선수가 아닌 이 두 명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우리 팀 선수에게는 야유를 하고 상대 팀 선수에게는 환호하는 특이한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상주상무 홍철
경기가 끝난 뒤 만난 홍철이 복잡미묘했던 감정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감사한 일”
경기가 끝난 뒤 수원 서정원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팬들의 야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나와 선수들 모두 반성하겠다.” 상주 김태완 감독은 친정팀을 향해 좋은 모습을 선보인 홍철과 조지훈을 칭찬하면서 수원 팬들에게 부탁했다. “수원 팬들이 이 두 선수를 잊지 않고 있었으면 좋겠다.” 개막전 이후 컨디션 난조로 기회를 잡지 못했던 홍철은 공교롭게도 친정팀과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게 될 것 같다. 비록 그는 지금 수원 선수가 아니지만 수원 팬들의 뜨거운 환호는 바닥까지 떨어졌던 홍철이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수원 선수들이 야유를 받고 홍철과 조지훈이 그 옆을 지나가며 그 야유가 이 둘을 향한 환호로 바뀌는 순간은 수원 팬들의 지금 심정을 잘 보여주는 특별한 장면이었다.

홍철은 경기가 끝난 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수원 팬들이 수원 선수들이 아닌 자신에게 환호하는 장면을 보고는 “수원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요즘 수원의 성적이 좋지 않으니 일부러 나에게 더 환호를 보내준 것 같다”고 했다. 수원 선수들을 향한 질타가 자신의 향한 과한 환영으로 이어졌다는 나름대로의 분석이었고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러면서 홍철은 이렇게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게 제가 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팬들이 저를 그리워하고 빨리 돌아오길 원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수원 팬들에게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수원 선수들과 그들의 팬, 그리고 상대팀 홍철은 이렇게 빅버드에서 아주 묘하게 만났다. 우리 팀에 야유를 보내고 상대 팀에 환호한 그들의 모습은 이번 라운드의 가장 절묘했던 장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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