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민축구단 골키퍼 김덕수는 이틀 전 이런 명장면을 연출했다. ⓒ파주시민축구단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무명의 한 축구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학창시절 내내 단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없고 몇 번의 시련을 겪으며 축구를 그만둘 위기까지 맞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팀에서는 전력외 취급을 받았고 그마저도 방출 당해 갈 곳이 없었지만 혼자 자비를 들여 운동을 하며 꿈을 쫓았다. 그리고 그는 거짓말처럼 ‘별들의 잔치’라는 K리그 올스타전에 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또 다시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가 이틀 전 거짓말 같은 골을 넣었다는 사실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금부터 골키퍼 김덕수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첫 번째 이야기였던 <'스키장 알바'에서 올스타가 된 사나이, 부천의 김덕수> 편부터 돌아본다면 그 감동은 더할 것이다.

[기사 보러가기] '스키장 알바'에서 올스타가 된 사나이, 부천의 김덕수

올스타전 깜짝 활약, 그리고 다시 찾아온 시련

2013년 6월 거짓말 같은 올스타전 활약으로 주목 받았던 김덕수는 그해 시즌이 끝난 뒤 팀을 떠나야 했다. 2013년 부천에서 2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으로 도약했지만 감독 교체 과정에서 결국 팀과 함께하지 못했다. 팀에서 방출 통보를 받고 나왔다가 다시 부천으로 테스트를 받으러 갔지만 이 과정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받고 부천과 완전히 작별해야 했다. 이후 김덕수는 갈 곳 없는 친구들을 모아 연습경기도 하고 풋살장을 빌려 경기 감각을 유지하지 위해 노력했다. 개인 훈련을 하면서 태국 이적을 추진했다. 하지만 태국에서도 딱히 골키퍼를 구하는 팀은 없었다. 경남FC와 수원삼성 등에서 K리그 올스타전 활약을 펼친 김덕수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관심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2013년 6월 모두의 관심과 박수를 받으며 올스타전에서 맹활약한 김덕수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선배의 조언을 들었다. “청주중학교 코치 자리가 났으니까 이리로 와.” 김덕수는 그렇게 2014년 7월 청주중학교 코치로 일하면서 8월에는 청주직지FC로 잘 알려진 K3리그 청주FC 선수로 등록하게 됐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올스타전에 출전해 깜짝 활약했던 김덕수는 그렇게 1년 사이 온갖 고생을 하며 K3리그로 내려오게 됐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졌고 그는 또 다시 철저한 무관심 속에 K3리그로 향했다. 김덕수는 다시 이곳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은퇴를 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중학교 코치로 일하면서 숙소 생활을 같이 하다 보니 평일 저녁 훈련에는 제대로 참여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개인 운동을 통해 꾸준히 몸 관리를 했다. 김덕수는 그렇게 2015년 시즌까지 청주FC 골문을 지켰다.

그러다 2016년 시즌을 앞두고 K3리그 김포시민축구단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한 번의 시련이 시작됐다. 주전에서 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나이도 어느덧 30살이 돼 있었다. 무엇보다도 군대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더 이상 군 입대를 연기할 수도 없었고 팀에서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2016년 5월 훈련소에 입대해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와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치 받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며 운동을 계속 더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김포에서 더 이상 희망을 보지 못한 그는 결국 팀을 떠나야 했고 사회복무도 잠시 멈췄다. “분할 복무라는 제도가 있어요. 김포에서 나온 상황인데 다른 팀을 알아보기 위해 분할 복무를 신청하고 3개월 정도 쉬었죠.” 올스타전에서 깜짝 활약을 펼쳤던 김덕수를 사람들은 모두 잊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축구를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김덕수는 부천 소속이던 지난 2013년 K리그 챌린지 올스타로 선발돼 '전설' 김병지와 한 그라운드에서 뛰는 영광을 누렸다. ⓒ부천FC1995

다시 골문 앞에선 골키퍼 김덕수

그러다 그가 찾아낸 팀은 K3리그 파주시민축구단이었다. 올 1월 김덕수는 파주시민축구단으로 이적해 다시 골키퍼 장갑을 낄 수 있게 됐다. 낮에는 파주시청 체육청소년과에서 근무하면서 밤에는 운동을 해야 했다.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자비를 들여 운동을 하면서 잠깐 세상의 빛을 봤던 이 무명의 골키퍼는 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거의 없는 K3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하지만 K3리그라고 해서 만만한 건 아니었다. 그가 속한 파주시민축구단에는 쟁쟁한 골키퍼 경쟁자가 있다. 과거 울산현대에서 김영광, 김승규와 함께 경쟁해 10경기나 출장한 이희성도 파주시민축구단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이다. 4년 전 올스타전 깜짝 활약이 K3리그에서의 주전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었다. 경력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이희성도 김덕수 만큼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덕수는 올 시즌 K3리그 개막전인 청주시티FC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섰다. 비록 팀은 0-3으로 패했지만 김포에서 계속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그로서는 의미 있는 선발 출장이었다. 이후 K3리그 2라운드 전주시민축구단과의 원정경기에서 이희성이 골문을 지키게 돼 벤치를 지킨 김덕수는 지난 18일 벌어진 2017 하나은행 FA컵 2라운드 이천시민축구단전에서는 선발로 나서 팀의 1-0 승리를 잘 지켜냈다. 그리고 김덕수는 지난 29일 FA컵 3라운드 청주시티FC와의 경기에도 또 다시 선발로 낙점됐다. 이미 K3리그 개막전에서 김덕수에게 세 골이나 빼앗아 간 청주시티FC는 지난 시즌 K3리그에서도 3위에 오른 강팀이었다. 김덕수는 개막전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이를 갈았다. “그 경기에서 너무 허무하게 졌어요. 이번에는 꼭 이기자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경기는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전반 13분 만에 청주시티FC 김준영의 감아차기에 선취골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김덕수는 개막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런데 전반 종료 직전 파주 김주빈이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1-1로 마무리됐고 이 점수는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1-1 무승부 상황에서 연장전에 들어갔다. 지난 시즌 K3리그 3위 팀인 청주시티FC를 상대로 파주는 잘 싸웠고 김덕수도 선방을 이어갔다. 하지만 연장 후반 10분 또 다시 청주시티FC에 한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코너킥 상황에서 차승민의 슈팅이 파주 골망을 가른 것이다. 살짝 나와 있던 김덕수가 주춤하는 사이 헤딩 슈팅한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골로 연결되고 말았다. 남은 시간은 연장 5분 뿐이었고 결국 이대로 무너지나 싶었다. 파주로서는 시간이 없었다.

김덕수는 부천 소속이던 지난 2013년 K리그 챌린지 올스타로 선발돼 '전설' 김병지와 한 그라운드에서 뛰는 영광을 누렸다. ⓒ부천FC1995

골키퍼 김덕수의 거짓말 같은 골

연장 후반 14분 파주가 세트피스를 얻었다. 1-2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김덕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격에 가담했다. 하지만 청주시티FC는 이 공을 끊어내고 역습으로 연결했다. 비록 청주시티Fㅊ의 공격이 무위에 그쳤지만 골대를 비우고 나온 김덕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마지막 기회도 이렇게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왔다. 연장 후반 종료 직전 오른쪽 측면에서 파주가 다시 한 번 세트피스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미 한 번 역습에 호되게 당했지만 김덕수는 또 다시 공격으로 올라갔다. 더 이상은 잃을 게 없었다. 그리고 조인형이 올린 프리킥을 김주빈이 헤딩슛으로 연결한 뒤 청주시티FC 골키퍼가 쳐낸 공이 김덕수 발 밑에 떨어졌다. 김덕수는 몸을 날리며 오른발로 이 공을 골문으로 밀어 넣었다. 늘 공을 막기만 하던 골키퍼 김덕수가 연장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하는 명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지금껏 골 세리머니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김덕수는 두 팔을 벌리고 막 뛰었다. 이 기가 막힌 골에 동료들도 김덕수를 얼싸 안았다. “얼떨떨 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넣어 본 골이거든요.” 골키퍼 김덕수에게 득점은 낯선 일이었다. “김병지 선배님이 골을 넣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소름 돋는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만 했지 제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요. 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김덕수는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승부를 승부차기까지 이어갔다. 김덕수는 승부차기에서도 상대 첫 번째 키커의 공을 막아내면서 승기를 굳혔다. “상대가 선축이었는데 첫 번째 공을 막아내고는 ‘이 경기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파주 역시 첫 번째 키커가 실축을 했지만 청주시티FC의 두 번째 키커가 찬 공도 허공으로 향했다. 김덕수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꼬였다. 파주에서 연이어 실축을 한 것이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김덕수는 한 골을 막아내는 선방을 선보였지만 1-3으로 패하고 말았다. 기가 막힌 골까지 기록한 김덕수의 활약도 빛이 바랬다. 김덕수는 “골 넣은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친구들도 잘 모른다”면서 “축하 연락도 거의 안 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FC안양이 호남대를 꺾으며 FC서울과의 맞대결을 확정지었고 부천FC도 2년 연속으로 전북현대와 만나는 대진이 완성돼 관심은 다 그쪽으로 쏠렸다. 220여 명의 적은 관중이 지켜본 경기에서 골키퍼가 골을 넣었다는 사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도되지 않을 만큼 관심이 없었다. 그가 4년 전 K리그 올스타전에서 깜짝 활약을 펼쳤던 김덕수라는 사실은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김덕수는 부천 소속이던 지난 2013년 K리그 챌린지 올스타로 선발돼 '전설' 김병지와 한 그라운드에서 뛰는 영광을 누렸다. ⓒ부천FC1995

“소집 해제되면 테스트나 갈 수 있을까요”

김덕수에게 “골까지 넣었는데 영웅이 될 기회를 놓쳐 아쉽겠다”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영웅이 되길 바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영웅 소리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김덕수는 꿈 같은 골을 기록했지만 금방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은 경기에 다시 나갈 수 있게 돼 좋습니다. 선수는 그래도 경기장에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올해 제 나이가 서른한 살 이에요. 중간에 잠깐 분할 복무까지 신청하고 3개월을 쉬어서 내년 8월까지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해야 합니다. 사회복무가 끝나면 서른두 살인데 그때가 되면 어디 다른 팀에 테스트나 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운동은 더 하고 싶은데 그 기회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계속 해봐야죠. 포기하지 않고 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올스타전에서 반짝 활약을 펼치고 잊혀진 선수겠지만 김덕수는 지금도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눈물 겨운 도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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