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우려했던 일이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25일 중국 헤롱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전에서 대한민국이 홈팀 중국에 0-1로 무너졌다. 2010년 2월 23일 EAFF 동아시안컵에서 0-3로 완패한 이후 역대 중국전 두 번째 패배다. 참사에 가까운 이 날 패배로 대한민국의 러시아행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부임 기간과 반비례하는 경기력 그리고 성적

2014년 9월 부임한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한때 찬사만이 따라붙었던 적이 있었다. 부임 후 국내 리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장을 누비는 모습과 국가를 대표하는 팀의 원칙을 준수하는 모습에 많은 축구 팬들이 지지를 보냈다. 성적 또한 준수했다. 충분한 적응 기간도 가지지 못한 채 치른 2015 AFC 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호는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내며 찬사를 받았다. 이른바 ‘늪 축구’로 불리며 어떻게든 승리를 따내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아시안컵 이후에도 슈틸리케호는 성공적으로 달려가는 듯 보였다. 16경기 무패 및 10경기 무실점 행진으로 기록적으로 많은 성과를 냈다. 딱 거기까지였다. 작년 6월을 기점으로 슈틸리케호에 대한 여론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1-6으로 대패한 것이 시초였다. 단순히 대패의 스코어가 문제는 아니었다 . 국가대표로서 이해하기 힘든 기본적인 실수, 호흡 부재 등이 연달아 나타나면서 2014년 여름과 같은 실망을 국민에게 안겼다. 그래도 팬들은 ‘강팀을 상대로는 처음이니까’라는 위안거리로 팀을 감싸주었다.

2017년 3월 23일은 또 다른 치욕의 날로 한국 축구사에 남게 됐다 ⓒ JTBC 중계 캡쳐

슈틸리케호에서 쌓였던 문제는 최종예선 무대에서 한꺼번에 터졌다. 지난해 9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의 1차전에서 3-2 신승을 거두며 불안감이 커졌다. 3-0 리드 상황에서 두 골을 연달아 실점하며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팬들은 가슴을 부여잡고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이후 시리아전과 카타르전 또한 아슬아슬한 경기력으로 승점 4점을 겨우 추가했다. 지옥의 원정으로 꼽히는 이란 원정에서는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패배를 거두고 돌아왔다. 2차 예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전력 차이가 좁혀지자 슈틸리케호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라진 철학과 원칙’

아이러니하게도 슈틸리케 감독은 24일이 되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긴 재임 기간을 보낸 감독이 된다. 2014년 9월 24일에 부임한 뒤, 31개월 동안 팀을 지휘하면서 기존의 허정무 감독의 기록(2008년 1월 1일~2010년 6월 30일)을 뛰어넘게 된다.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긴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특히 외국인 감독을 상대로는 유독 잔혹했던 국가대표팀이기에 의미가 있는 성과다.

슈틸리케 감독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운 기록이지만 팀에는 지금 무엇이 남았는가. 당장 러시아행이 어려워지고 있다. 자칫하면 월드컵 본선 연속 진출 기록이 8회에서 멈출 수도 있다. 네 번의 최종예선 경기가 남은 현재, 이제는 정말 한 번만 미끄러져도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초심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리그에서 잘하면 얼마든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염기훈, 정조국 등 적지 않은 선수들의 사례로 이미 깨졌다. 오히려 조광래, 홍명보 전 감독과 같이 ‘묻지마 해외파’ 기용을 떠올리게끔 하는 선수 선발이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말이 많았던 코치진 구성도 결과적으로 실패에 가까워지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부임한 카를로스 알베르토 아르무아 코치는 초창기 수석코치로 알려졌으나 추후 피지컬 코치만을 수행한 이력이 알려지며 논란을 자초했다. 전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던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이 각급 대표팀 차출로 슈틸리케 감독 곁을 떠난 뒤, 그가 행한 인사(人事)는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경력이 전무한 차두리, 설기현 코치를 불러들이며 선수단의 내부 단속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국가대표팀 코치진에는 신태용 감독과 같은 안정감과 노련함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설상 본선 무대에 가까스로 진출한다고 해도 슈틸리케 감독이 근 1년 동안 보여주고 있는 모습으로는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자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할 당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이번 감독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다. 짧은 재임 기간으로 본인의 색깔을 채 보여주지도 못하고 짐을 싼 감독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전임 홍명보 감독의 실패도 본인 스스로 많은 논란을 자초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래서 슈틸리케호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경기력이 좋지 않아도, 최종예선에서 부진이 이어져도 끝까지 믿어준다는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2017년 3월 23일은 또 다른 치욕의 날로 한국 축구사에 남게 됐다 ⓒ JTBC 중계 캡쳐

하지만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중국전 패배로 이 여론도 이제는 힘을 잃을 듯하다.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고 최강희 감독이 소방수로 부임했던 2012년을 그 누구도 되풀이하고 싶지 않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 체제로 월드컵 본선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사라지기는커녕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에 있어서 월드컵은 단순히 세계적인 잔치에 함께하는 것 이상으로 축구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9월 5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 선수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감독을 바꾸면 대책이 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거꾸로 묻고자 한다. 지금 감독을 믿고 가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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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 ⓒ 이란축구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