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판 막장 드라마? 상하이-우라와의 기묘한 삼각 관계

선화 우라와 티셔츠
선화와 우라와의 친선 관계를 나타내는 티셔츠 ⓒ WILD EAST 캡쳐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지난 2월 저는 독자 여러분들께 AFC 챔피언스리그(ACL)의 훈훈한 미담을 전해드린 적 있습니다. ACL 조별 예선에 나서는 상하이 상강의 팬들이 우라와 레즈 원정팬들에게 응원전 형식의 교류를 제안한다는 내용이었죠.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 칼럼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상하이 팬의 깜짝 제안, ‘따뜻한 ACL’을 향한 메세지

그리고 약 1개월이 지났습니다. 상하이 상강과 우라와 레즈의 1차전은 3월 15일에 이미 열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상하이 경기장에서 정말로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을까요? 당시 상하이에서 일어났던 흥미로운 상황과 함께 우라와 레즈와 상하이 두 팀의 삼각 관계를 여러분들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상강 버리고 선화와 손잡은 우라와 레즈

3월 15일 상하이 상강의 홈 구장인 상하이 체육장에서 ACL 조별리그 상하이 상강과 우라와 레즈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중·일전이라는 내셔널리즘이 짙게 배인 관심과 함께 ‘이들이 정말 교류를 하며 훈훈한 장면을 만들어낼 것인가’란 관심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날 양 팀 팬들의 교류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와 함께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당시 우라와 레즈의 원정 서포터 석에는 중국인들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 중국인들은 다름 아닌 상하이 선화의 팬들이었습니다. 지역 라이벌인 선화 팬들이 우라와 레즈를 응원한 것이죠. 현지 언론의 추가 보도는 없었지만 선화와 우라와 팬들은 함께 응원을 하고 경기 후 술집으로 이동해 양 팀의 우정을 기원하며 술잔을 들었다고 합니다.

상강 팬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을 것입니다. 기껏 응원을 통한 교류를 제안하며 예의 있게 편지를 작성해서 보냈는데 우라와 레즈 팬들이 보여준 모습은 거절을 넘어서 뒤통수를 친 것 같다고 할까요? 하지만 이 상황은 상하이 상강 팬들이 상하이 선화와 우라와 레즈의 관계를 몰랐던 것도 일부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하이 선화와 우라와 레즈 팬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중국과 일본의 강성 팬, 상하이 선화-우라와 레즈

축구팬, 특히 K리그 팬들이라면 ‘울트라스’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울트라스 문화는 이제 강성 서포터를 칭할 때 부르는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울트라스 서포터를 보유하고 있는 K리그 구단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에도 울트라스 문화가 존재합니다. 과격한 울트라스도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구단 또는 팬들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두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울트라스 집단이 바로 상하이 상강과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 그룹입니다. 이들의 충성심은 그 누구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팬들이 빚어낸 사고 또한 많습니다.

우라와 레즈는 이미 K리그 팬들에게는 유명합니다. 전범기(욱일기)를 소지하고 경기장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홍염 밀반입 등 다양한 사고의 중심이었습니다. 특히 ‘JAPANESE ONLY’ 사건은 전 세계적 망신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라와 팬 소모임 중 11개가 해체됐죠. 하지만 모임만 해체됐을 뿐 사람들의 성향은 여전합니다.

상하이 선화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지역 라이벌인 상하이 상강에 대한 적의는 대단합니다. 지난 시즌 ACL에서 멜버른 빅토리와 상하이 상강이 맞붙은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는 상강 팬들의 원정 응원석 옆에 비슷한 숫자의 선화 팬들이 앉아있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선화 팬들은 ‘상하이의 대표는 오직 선화’라는 구호와 현수막을 펼쳐보이며 상강을 끊임없이 자극했습니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던 멜버른 팬들은 싸움 구경에 신났지만 말이죠.

상하이 선화 멜버른
남의 경기에서 당당히 디스 걸개를 펼쳐든 선화 팬들 ⓒ 웨이보

10년 전부터 시작된 선화-우라와의 인연

두 팀의 팬들 모두 울트라스 성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울트라스 팬들은 타 팀 팬들과의 충돌도 잦습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가장 울트라스 성향이 강한 중국과 일본 구단 팬들이 서로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러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를 알기 위해서 시계를 10년 전인 2007년으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2007년 4월 25일 상하이 유안쉔 경기장에서 ACL 조별리그 E조 4차전 상하이 선화와 우라와 레즈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경기는 양 팀 모두 득점없이 0-0으로 끝났죠. 경기를 마치고 중국 현지 숙소로 돌아온 우라와 팬들은 상하이 팬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우리 지금 거기로 가고 있다. 나와라”.

우라와 팬들은 잔뜩 긴장했습니다. 경기 이후 두 팀의 서포터가 단체로 얼굴을 마주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들이 마주칠 때는 싸울 때 뿐이죠. K리그 팬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상하이 팬의 문자를 받은 우라와 팬들은 ‘그들과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단단히 준비 했습니다.

드디어 상하이 팬들이 우라와의 숙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그들은 손에 아무것도 들린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굉장히 호의적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상하이 팬들은 우라와의 응원에 큰 감명을 받고 우라와 팬들과 교류를 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잔뜩 긴장했던 우라와 팬들은 안도의 웃음을 지었습니다. 결국 밤새 두 팀의 팬들이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 팀 팬들 교류의 시작입니다.

이후 양 팀 팬들의 우정은 꽤 돈독해졌습니다. 2009년 ACL에서 처음으로 두 팀의 합동 응원이 있었습니다. 당시 ACL에서 상하이 선화는 J리그 가시마 앤틀러스와 한 조였습니다. 선화가 가시마 원정을 왔을 때 그곳에는 우라와의 팬들이 있었습니다. 우라와 팬들은 선화와 함께 합동 응원을 하며 지난 추억을 되새겼습니다. 특히 가시마가 우라와의 라이벌이라는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이번 선화 팬들의 우라와 응원은 2009년의 보답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양 팀의 서포터 클럽이 공식적으로 교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 팀과의 교류를 지양하는 울트라스의 특성 상 클럽 지도부는 타 팀 팬과의 교류를 권장하지 않을뿐 아니라 공식적으로 추진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쌓여서 양 팀 팬들 간에는 서로 친근감이 생긴 것이죠.

‘애국보다 중요한 건 라이벌 팀 망하는 것’

상하이 선화와 우라와 레즈 팬들의 우정은 해외에도 알려졌습니다. 영국 ‘가디언’ 지는 두 팀의 우정을 소개하며 ‘중국 팬들은 일본 팀과 싸울 때는 애국자로 변신하지만 상하이 선화 팬들은 그런 관념을 부정했다’는 평을 내놓도 했죠. 애국심이 강조되던 ACL에 ‘애국보다 중요한 건 라이벌 팀 망하는 것’이라는 선화 팬들의 마인드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굉장히 흥미로운 삼각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상하이 상강의 구애를 우라와 레즈가 뿌리치고 상하이 선화와의 우정을 더욱 다졌습니다. 이제 상강의 팬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관심이 갑니다. 자국 리그 안에서의 라이벌 관계로 인해 서로 동맹과 유사한 관계가 맺어지고 끊기는 이 상황은 서로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들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선화와 우라와의 단계는 아니지만 해외 팬과 K리그 팬 간의 교류가 조금씩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K리그 내에서도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고 있고 K리그 구단들이 ACL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런 사례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ACL의 흥미를 더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ACL의 스토리가 쌓여가면서 하나의 역사가 되고 또다른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ACL에서 또 어떤 스토리가 만들어질지, 그리고 K리그는 ACL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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