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삼성 서정진은 전북과의 경기에서 거친 플레이를 펼쳤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당했다.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몇 년 전 부산 해운대 포장마차촌에서 로브스터를 먹은 적이 있다. 로브스터가 15만 원이라는 메뉴판 가격을 보고 시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얼마 전 출장 겸 부산에 갔다가 다시 이곳에 들러 몇 년 전과 비슷한 양의 로브스터를 한 번 더 시켜 먹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말했다. “응. 25만 원이야.” 당황한 내가 “15만 원에도 먹은 적이 있는데 25만 원은 너무한 거 아니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메뉴판의 작은 글씨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로브스터 ‘싯가’> 그렇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싯가’다. 정해진 가격이 없고 부르는 게 값이다.

서정진의 징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수원삼성 서정진이 중징계를 당했다. 프로축구연맹은 어제(17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지난 3월 11일 2017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라운드 수원과 전북의 경기에서 전북 이승기을 상대로 심한 박친 플레이를 한 서정진에게 7경기 출장 정지와 700만원 제재금의 사후징계를 내렸다. 서정진은 이날 경기에서 이승기의 오른쪽 무릎을 향해 거칠게 발을 뻗었고 결국 이승기는 한 달 이상 휴식이 필요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7경기 출장 정지와 700만 원의 제재금은 K리그에서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서정진은 오는 5월 3일 포항전까지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서정진의 파울 행위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고의적이었다는 의견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지만 나는 서정진이 고의적으로 한 파울은 아닌 것 같다. ‘고의적’이라는 표현보다는 ‘무리한’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행동이었다. 페널티 박스에서 공중에 떠 있는 공을 마르세유턴으로 컨트롤하겠다는 건 점프력도 없는 내가 더블 클러치를 해 레이업슛을 쏘겠다는 것 만큼이나 무리한 플레이였다. 이건 무리한 의도에서 범해진 반칙이라고 본다. 서정진 편을 들기 위해 그의 플레이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물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이를 고의적인 반칙으로 판단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그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고의성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무리한 플레이로 상대에게 심각한 파울을 범했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징계를 받아야 한다. 7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는 과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업자 정신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이런 플레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게 옳다. 서정진은 충분히 반성해야 하고 징계 해지 이후에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뛰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그의 파울이 고의적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고의적이지 않았더라도 그런 무리한 플레이는 당연히 징계감이다. 서정진의 무리한 플레이에 대해 연맹이 강한 징계를 내린 건 잘한 일이다. 연맹의 서정진 징계는 전혀 문제가 없다.

FC서울 고요한은 올 시즌 개막전에서 비매너 플레이를 펼쳤다는 이유로 두 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프로축구연맹

문제는 징계의 일관성이다

그런데 형평성이 너무 떨어진다. 최근 있었던 여러 논란을 살펴보자. 2015년 5월 전북 최보경은 수원 김은선의 진로를 막다가 무릎에 심한 충격을 입혔다. 당시 국가대표에까지 이름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김은선은 이 파울을 당한 뒤 아예 그해 시즌을 날렸다. 이미 공이 지나간 상태에서 김은선의 진로를 막았던 이 장면은 고의성 여부를 떠나 무리한 파울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연맹은 당시 최보경에게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2015년 4월 수원과 서울의 경기에서는 김진규가 염기훈의 왼쪽 무릎을 향해 발을 높이 들어 몸을 날렸고 염기훈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물론 김진규도 아무런 징계 없이 달랑 경고 한 장을 받았을 뿐이다.

지난 시즌에도 논란의 장면은 있었다. 서울 골키퍼 유현이 FA컵 결승 1차전 도중 수원 이종성의 머리를 손으로 가격했다. 펀칭을 하기 위한 장면이 아니라 신경질적으로 상대 선수의 머리를 가격한 것이다. 그런데 유현은 경고조차 받지 않고 넘어갔고 FA컵 결승 2차전 한 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 게 전부였다. 올 시즌 개막전이었던 서울-수원전에서 공과 상관없이 교묘하게 이종성의 다리를 건 고요한에게는 달랑 2경기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지난 해 경기 종료 후 인터뷰하는 상대팀 선수에게 잔디를 뽑아 던졌던 포항 배슬기는 출장 정지 징계 없이 제재금 500만 원이 내려졌을 뿐이다. 일관성이 전혀 없다. 누구는 교묘하게 공이 없는 상황에서 발을 걸고 손으로 가격을 해도 한두 경기 징계에 그치고 또 누구는 고의적으로 잔디를 상대팀 선수에게 집어던져도 달랑 제재금만 내려진다.

지난 2015년 5월 상대팀 선수를 쫓아가서 주먹질을 한 한교원에게 내려진 징계가 6경기 출장 정지에 제재금 600만 원이었다. 따지고 보면 서정진이 했던 무리한 반칙보다 한 번 상대를 가격했다가 다시 따라가 한 번 더 주먹질을 한 한교원의 사례가 훨씬 더 고의적이다. 하지만 한교원은 6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당했고 서정진에게는 7경기 출장 징계가 내려졌다. 도무지 일관성이라는 게 없다. 경기 도중 폭행을 가한 선수의 징계 수위가 더 약하니 당연히 이번 징계 수위에 대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서정진 징계 자체만 놓고 보면 선수 보호를 위해 이런 강한 처벌을 환영하지만 전례를 따져보면 당연히 일관성을 느낄 수 없다. K리그에서는 발을 이용한 무리한 파울보다 고의적인 주먹질이 더 징계가 가볍다. 계속 이러면 이건 K리그가 아니라 ‘K1리그’다.

FC서울 고요한은 올 시즌 개막전에서 비매너 플레이를 펼쳤다는 이유로 두 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프로축구연맹

부상 정도에 따라 징계가 달라지는 건 아닌가

서정진은 경기 도중 퇴장 당하지 않았다. 원래 다이렉트 퇴장은 두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지는데 퇴장을 당하지 않았으니 ‘2+5 징계’라는 해석도 있다. 퇴장에 합당한 두 경기 출장 정지와 이후 거친 플레이에 대한 5경기 추가 징계라는 해석이다. 반면 한교원은 해당 경기에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해 자동적으로 두 경기 출장 정지가 내려져 ‘2+6 징계’를 받았으니 더 무거운 처벌이라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요한은 어떨까. 경기 도중 공과 상관없이 상대 선수에게 슬쩍 발을 걸어 넘어트린 이 행위는 심판에게 발각됐더라면 퇴장감이다. 하지만 퇴장 없이 넘어간 이 장면을 사후 분석해 고요한에게는 단 두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경기 도중 퇴장을 당한 것과 다를 게 없는 징계일 뿐이다. ‘2+5 징계’건 ‘2+6 징계’건 일관성이 없으니 수긍하기가 어렵다.

누구는 퇴장으로 인한 두 경기 출장 정지에 사후 징계까지 받았고 누구는 이를 합산해 한꺼번에 중징계를 당했다. 그런데 누구는 가벼운 징계로 넘어가고 또 누구는 징계를 아예 받지도 않는다. 누가 억울하고 말고의 문제를 삼으려는 게 아니다. 반칙의 경중을 따지면 더 심한 반칙이어도 연맹 상벌위원회 마음대로라는 게 문제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 것과 경합 도중 발로 상대에게 해를 끼친 것, 그리고 손으로 상대 뒤통수를 가격한 것에는 당연히 무겁고 가벼움의 징계 기준이 있을 텐데 연맹에는 이런 기준이 없다. 그러니 서정진의 징계에 대해 “쟤네들은 더한 파울도 가벼운 징계로 넘어갔는데 왜 우리만 중징계를 받아야 하느냐”는 팬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억울해 보이거나, 아니면 특혜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말이 나온다.

만약 서정진이 그 거친 파울을 똑같이 했는데 이승기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거나 가벼운 부상에 그쳤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서정진에게 이런 중징계가 내려졌을까. 이런 중징계를 내리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만약 이승기가 바로 털고 일어나 논란이 커지지 않았더라면 이번 징계 역시 유현이나 고요한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맹은 상대의 부상 정도에 따라 징계 수준을 결정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조남돈 상벌위원장은 서정진에게 중징계를 내리면서 “앞으로 경기장 내 난폭한 행위 및 심판 판정에 대한 불필요한 항의 시 엄단하겠다”고 했는데 지금껏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징계를 내렸던 걸 보면 별로 신뢰가 가질 않는다. 수 많은 팔꿈치 사용과 깊은 태클에도 부상이 발생하지 않으면 넘어갔던 게 연맹 아닌가.

연맹 징계, ‘싯가’ 말고 ‘정찰제’로 해야

다시 말하지만 서정진은 합당한 징계를 받았다. 서정진 입장에서 억울할 것도 없고 그의 편을 들 생각도 없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거친 플레이는 엄단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맹의 이번 징계에 대해 말이 많은 건 그 동안 연맹이 아무런 기준 없이 징계 수위를 정했기 때문이다. 계속 이렇게 강하게 나왔으면 서정진의 7경기 출장 정지도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지금 각종 축구 커뮤니티의 팬들은 이 징계를 가지고 물고 뜯으며 싸운다. 한교원의 주먹질 논란이 회자되고 유현의 뒤통수 가격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지금껏 일관성 없게 마음대로 징계를 내린 연맹 때문이다. 가뜩이나 부산 해운대 포장마차촌에 가면 메뉴판에 써 있는 ‘싯가’가 사람 간 보는 것 같아 짜증나는데 K리그의 징계에도 ‘싯가’가 등장하면 안 된다. K리그 징계에는 ‘싯가’가 아닌 ‘정찰제’가 필요하다. 로브스터가 25만 원인 거 알았으면 나는 그냥 게맛살을 사 먹었을 것이다.

*'싯가'가 아니라 '시가'가 맞는 표현이지만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 맞춤법에서 어긋나는 '싯가'라고 표기한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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