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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서울월드컵경기장=명재영 기자] FC서울이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AFC 챔피언스리그(ACL) 2017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호주의 웨스턴시드니에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조별리그의 절반을 돈 시점에서 승점을 전혀 쌓지 못한 서울은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

관중 수가 서울의 현실을 말했다

서울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모인 인원은 4,769명이었다. 구단 역사상 ACL(개편 이후) 홈경기 최소 관중 기록이었다. 이전 기록은 지난해 4월 20일에 열린 태국의 부리람유나이티드전의 5,109명이었다. 쌀쌀했던 날씨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서울의 부진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2월 21일, 스타군단이 뭉친 중국의 상하이SIPG을 홈으로 불러들여 2017시즌의 문을 연 서울은 18,764명 앞에서 패배를 당했다. ‘이제 첫 경기일 뿐’, ‘상대가 워낙 강했다’ 등의 생각을 위안으로 삼았지만 2번째 경기는 더 심각했다.

3ㆍ1절을 하루 앞둔 2월 28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로 원정길을 떠난 서울은 우라와레즈에 2-5라는 치욕적인 스코어를 남기고 돌아왔다. TV 스포츠 채널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된 이 날 경기에서 서울은 전반 20분 만에 무려 4골을 허용했다. 충격적이었다. 지난 시즌 16강에서 만나 극적인 경기를 펼치며 팬들에게 함박웃음을 안겼던 서울은 없었다. 우라와레즈의 복수상대가 되어 두들겨 맞는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용과 결과 모두 실패였다.

서울의 이번 시즌 ACL 전망이 어렵다는 걸 팬들도 직감해서였을까. 이날 킥오프 시간인 오후 7시 30분이 임박해서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어느 때보다도 썰렁하고 차가웠다. 일반석은 정 가운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어있었으며 서포터즈 수호신이 모이는 북측 골대 뒤 구역 또한 한산했다. 시작부터 기존의 홈경기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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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더욱’ 참혹했다

황선홍 서울 감독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내세울 수 있는 필승의 라인업을 꺼내들었다. 부상으로 나올 수 없었던 곽태휘와 박주영을 제외하면 최상의 선발이었다. ACL의 초반 부진을 이겨내고 리그에서 상승세를 보였던 서울이기에 ‘그래도 이길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지난 2경기에서 무려 9골을 내준 팀이었다. K리그 팀이 호주 원정을 크게 부담스러워 하듯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웨스턴시드니는 다소 힘을 뺀 선발 라인업을 꺼내 들었다. 1995년생의 조슈아 소트리오와 1997년생의 라클런 스캇이 투톱을 이뤘다. 이 두 선수는 시드니의 유망주로 분류되는 자원이다. 그러나 평균 나이 31세로 풍부한 경험을 장점으로 내세운 서울의 수비진들은 이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서울이 원톱 데얀에게 좋은 패스를 연결하지 못해 고전하는 사이, 시드니의 미드필더들은 두 명의 어린 공격수에게 적재적소의 패스를 연결했다. 소트리오와 스캇이 수비진 사이를 자유자재로 공략하며 서울의 골문을 향해 뛰어나가자 서울의 중앙 수비수인 오스마르와 김동우는 속수무책으로 결정적인 기회를 잇달아 내줬다.

패기로 가득 찬 두 선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반 23분 김동우와 오스마르를 절묘하게 따돌린 스캇이 침착하게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40분에는 신광훈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핸들링 반칙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줬고 스캇의 선제골을 도운 테리 안토니스가 서울의 골망을 흔들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0-2로 전반이 끝나자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해졌다. 모두가 지난 슈퍼매치처럼 완전히 달라진 후반 45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후반 18분 소트리오가 오스마르와 김치우의 틈을 뚫고 환상적인 로빙슛으로 황선홍 감독에게 절망을 안겼다.

전광판의 스코어가 0-3으로 바뀌자 경기가 30여 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떠나는 관중들이 속출했다. 홈팬들의 분노 속에서 서울이 2골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추격에 나섰지만 끝내 경기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추가시간 4분 마지막 코너킥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고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탄식마저도 없는, 그야말로 초상집과 같은 한기만이 느껴졌다. 정적 뒤에는 수호신의 "정신 차려 서울"이라는 구호가 경기장을 감쌌다.

서울 황선홍 감독의 표정은 기자회견 내내 어두웠다

대한민국 챔피언의 3패, 그리고 K리그

머나먼 원정길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따낸 시드니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황선홍 감독이 홀로 외롭게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은 뒤 경기 소감을 묻는 질문이 들어왔지만,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끝난 뒤 “실망스럽다”며 “너무 쉽게 실점을 한 것이 경기를 어렵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고 정말 짧게 경기에 대한 평을 남겼다. 3연패로 ACL의 조기 탈락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분명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황 감독의 표정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수비진과 골키퍼, 그리고 부상 선수까지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황 감독은 신중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령탑으로서 입을 아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회자가 마지막 질문을 얘기하자 K리그 팀들의 이번 시즌 ACL 부진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 황 감독에게 향했다.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 감독이 진솔한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 중국을 포함해 다른 국가 구단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K리그 구단들의 경기력은 조금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황 감독은 앞의 발언에 이어서 “K리그의 모든 구단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대회를 대비해서 준비를 더욱 해야 한다”고 말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번 시즌 ACL에 나서는 K리그 4팀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가장 큰 충격은 역시 서울이다. K리그 챔피언으로서 시작부터 3패를 안고 가는 경우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K리그 4팀이 현재까지 ACL에서 지금까지 승리를 거둔 경기는 3경기다. 패배는 그 두 배인 6경기다. 그리고 그 6경기 중 절반이 서울의 몫이다. 지난 시즌 4강에 갔던 서울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hanno@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