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열리는 셰이크 카말컵 결승전에 나선 포천시민축구단 선수들의 모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한 축구팀이 머나먼 타국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 팀에 대한 관심도 적을뿐더러 대부분 언론에서도 이들을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그들 역시 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너무 홀대하고 있다. 오늘은 그 어떤 곳에서도 주목하지 않은 포천시민축구단의 한 국제대회 출전기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이들이 머나먼 방글라데시에서 느낀 고생과 감동, 그리고 성과에 관한 이야기다.

국제대회 초청장 받은 K3리그 챔피언

K3리그에서 포천시민축구단은 절대적인 강자다. 최근 5년 간 무려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별다른 우승 혜택이 없는 상황에서 대한축구협회는 K3리그 챔피언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천이 2013년 K3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협회는 포천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몰디브에서 열리는 친선경기에 포천이 K3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해 달라.” 몰디브축구협회 측에서 대한축구협회에 친선경기 참가팀 섭외를 요청했고 협회는 K3리그 챔피언에 대한 혜택을 주는 차원에서 포천에 이를 요청했다. 3박 4일 일정으로 몰디브에 가 친선경기를 치르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포천이 해외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포천은 결국 이 해외 친선경기 출전을 포기했다. 이동 경비를 비롯해 체류비 등을 포천 측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열악한 K3리그 구단이 4~5천만 원에 이르는 경비를 대면서까지 짧은 기간 해외 친선경기에 나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포천은 자체 회의를 통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 돈이면 차라리 국내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편이 낫다. 국제대회도 아니고 친선경기를 치르기 위해 수천만 원을 쓰며 몰디브까지 다녀오는 건 무리다. 우리에게는 빠듯한 예산이다.” 그렇다고 협회가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결국 포천은 2013년 아쉽게도 해외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흐를 무렵 협회에 또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주최하는 대회에 한국의 한 팀을 초청하고 싶으니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열리는 셰이크 카말컵이라는 대회였다. 그러면서 방글라데시 측은 이렇게 말했다. “가능하면 프로팀이 오는 게 좋겠다. 우리가 이동 경비와 체류비 등은 모두 지원하겠다.” 하지만 프로팀 중 방글라데시에서 열리는 소규모 대회에 나설 만한 팀은 없었다. 협회 측은 방글라데시에 통보했다. “한국 프로팀의 섭외는 어려우니 K3리그에서 손 꼽히는 강호인 포천시민축구단을 소개해 주겠다.” 포천은 지난 시즌에도 K3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협회에서는 우승팀에 대한 별다른 혜택을 주지 못해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방글라데시 측도 포천의 우승 경력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포천시민축구단은 대회 기간 내내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 명의 직원이 준비한 해외 원정 경기

포천에도 좋은 제안이었다. 3년 전 몰디브 친선경기와는 다르게 경비가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K리그 팀들은 자비를 들여 따뜻한 곳으로 가 동계훈련을 하는데 경제적으로 열악한 포천으로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전지훈련을 겸해 실전까지 치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제안은 없었다. 포천은 제안에 응한 뒤 급하게 방글라데시 원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K3리그 사상 최초로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준비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K리그 구단은 AFC 챔피언스리그 등의 해외 원정 경험이 풍부하고 구단 내에서도 업무를 처리할 직원도 많지만 포천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이광덕 본부장 혼자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협회에서는 두 명의 직원이 도움을 줬지만 협회가 주관하는 대회가 아니다보니 보조적인 업무에 그칠 뿐이었다.

방글라데시 측에서는 선수단 규모를 31명으로 해줄 것으로 요구했다. 23명의 선수와 8명의 임원으로 선수단을 꾸려야 했다. 그런데 방글라데시 측의 행정력은 극히 떨어졌다. “나흘 뒤인 토요일까지 선수 등록 및 참가 신청 준비를 마무리 해달라.” 미리미리 사전 통지한 것도 아니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포천도 미숙한 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여권이 없는 선수들까지도 있었다. 포천은 어쩔 수 없이 당장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여권 소지자들 위주로 원정에 나설 선수를 뽑았다. “여권 있는 사람들 손 들어봐.”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팀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K3리그 사상 최초로 국제대회에 나서게 된 포천은 모든 게 생소했다. 당연히 이렇게 좌충우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은 점심 식사 이후로는 비자 발급 업무를 중단해 구단 직원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전 7시부터 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 비자 신청을 해야 했다. 방글라데시 측의 행정력이 워낙 떨어져 대회 주최 측 홈페이지에 포천 구단 직원이 일일이 선수 등록을 해야 하는데 워낙 현지 인터넷 사정이 느려 무려 9시간 동안이나 선수 등록에 매달리기도 했다. 한 선수당 등록 시간이 20분이 넘게 걸렸다. 선수들 입장에서도 국제대회 참가는 생소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는 선수들은 병무청에서 출국 허가서를 받아야 했고 따로 직장에 다니는 선수들도 미리 회사에 양해를 구한 뒤 일정에 맞춰 휴가를 내야 했다. 모든 게 번거롭고 생소한 일이었지만 구단 측과 선수들 모두 최초의 국제대회 참가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포천시민축구단은 대회 기간 내내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파주NFC를 눈 앞에서 놓치다

협회에서는 포천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생각이었다. 2월 18일 대회 개막에 맞춰 이틀 전인 16일 출국이 예정돼 있는 포천 선수들에게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출국 하루 전인 15일 국가대표팀 버스를 포천으로 보내 선수들을 태우고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1박 2일의 훈련을 제공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파주에서 다시 포천 선수들이 출국하는 인천국제공항까지 국가대표팀 버스로 이동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포천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시설에서 잔디를 밟고 그곳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게 꿈만 같은 일이었다. 방글라데시에 가는 것보다 파주트레이닝센터에 가는 걸 더 기대했던 선수도 있다. “마치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랄까요. 너무나 기대가 컸어요.” 포천 선수들은 이렇게 방글라데시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방글라데시 측에서 출국 불과 며칠 전에 이런 공문을 보낸 것이다. “16일이 아닌 15일에 출발하는 티켓을 보냈습니다. 15일에 출발해 주세요.” 뒤죽박죽이었다. 포천에서 방글라데시 측에 이유를 물어보니 딱히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동 경비와 체류비 등을 모두 대기로 한 주최 측 일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은 다시 직장에 양해를 구해 휴가 일정을 조정해야 했고 병무청에도 다시 출국 허가를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하며 하루를 보내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광덕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름대로는 우리도 착실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일정이 바뀌면서 다 꼬이고 말았다. 우리는 국제대회 출전이 처음이었는데 시행착오가 많았다.”

어렵사리 출국한 포천 선수들은 홍콩을 경유해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 내렸다. 여기에서 소형 비행기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치타공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다카에 도착하니 환승을 하는 게 아니라 안내자가 이들을 버스로 안내했다. “이 시간에 비행기가 없어 호텔에서 하루 묵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정에는 없는 숙박이었다. 그런데 선수들은 다카의 호텔에 가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호텔은커녕 모텔도 아닌 시골 여인숙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씻을 수도 없어 대충 하루를 버텼는데 방글라데시 축구협회와 숙소 측이 제대로 소통을 하지 않아 호텔 측에서는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포천 선수들은 격전지인 치타공으로 향했다. 김재형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K3리그 대표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국가대표이기도 하다. 악조건을 이겨내고 착실히 대회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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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하고 살벌한 분위기의 치타공

치타공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살벌했다. 지난해 치타공에서 IS테러가 일어났고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김정남이 암살되면서 방글라데시 또한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포천 선수단이 도착하자 20여 명이 경찰이 배치돼 이들을 경호하기 시작했다. 숙소 밖으로는 아예 나갈 수도 없었다. 심지어는 훈련 과정에서 공이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도 선수들은 이 공을 주우러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최악의 상황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치타공 도착 첫 날 제공된 훈련장에 가보니 경악 그 자체였다. 맨땅 수준의 그라운드 사정은 둘째 치고 경기장 한 가운데에서 인부들이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 다음 제공 받은 훈련장은 흙먼지가 너무 심해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는 곳이었다. 도로는 물론 도시 전체에 아스팔트가 깔려 있지 않은 흙길이 대부분이다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흙먼지가 날렸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다. 선수들 대부분이 해외에서 경기 경험이 없다보니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조식은 호텔 음식을 먹어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점심과 저녁은 식사가 너무 부실했다. 사흘 정도는 그럭저럭 현지 음식으로 버텼지만 나흘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선수들이 버티질 못했다. 한국에서 사간 즉석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운동을 이어갔다. 구단 측에서는 선수들을 위해 한인식당을 알아봤지만 이마저도 마땅치 않았고 결국 그나마 한식을 먹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그런데 김치찌개 1인분이 18,000원이었다. 구단 측에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래도 선수들은 잘 먹이자”면서 눈물을 머금고 이 초고가 김치찌개를 선수들에게 한 끼 제공할 수 있었다. 열악한 K3리그 구단 입장에서는 김치찌개 식사 한 끼마저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포천 선수들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따뜻한 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방글라데시 한인회에서 포천 선수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금을 모금한 것이었다. 고국에서 온 선수들에게 많은 돈은 아니어도 따뜻한 식사 한 번 대접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한인회에서는 너무나도 귀한 5만 다카를 쾌척했다. 우리 돈으로 75만 원이었다. 음식 문제로 고생하던 선수단은 한인회의 도움으로 제육볶음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몰디브, 아프가니스탄, 네팔, 키르기스스탄 등 국가의 1부리그 소속팀 혹은 챔피언 8개 팀이 모인 아시아축구연맹 공인 대회 셰이크 카말컵에서 유일하게 4부리그 팀으로 출전한 포천은 그렇게 머나먼 타국에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대회 규정상 외국인 선수는 5명 등록에 4명까지 경기에 나설 수 있었고 다른 팀들은 외국인 선수를 꽉꽉 채웠었지만 포천은 유일하게 외국인 선수 없이 경기를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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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처음 마주한 방글라데시 소년들

첫 날 훈련을 하는데 방글라데시 소년 두 명이 경계의 눈빛으로 포천 훈련장을 찾았다. 15세의 바슈다스와 13세의 아슈다스 형제였다. 이 형제는 포천 선수단이 훈련할 때 볼스태프, 흔히 말하는 볼보이를 하기 위해서 훈련장을 찾은 것이었다. 치안이 불안해 공이 훈련장 밖으로 나가면 선수들이 주워올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경찰이 공을 주우러 다닐 수도 없으니 훈련장 주변에 사는 이 형제를 알음알음 소개 받아 데려온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소년들은 돈을 받고 볼보이를 하는 게 아니라 축구 구경도 하고 공을 주워오면서 한 번씩 공을 찰 기회가 생기니 무보수로 일을 도운 것이었다. 이렇다 할 놀거리가 없는 방글라데시 시골 마을에서 한국의 축구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으니 이 소년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는 없었다. 그런데 이 소년들을 지켜본 포천 선수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두 소년 모두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다녔기 때문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구단 관계자가 가지고 있던 간식을 내줬다. 선수들에게 제공할 초콜릿과 초코바, 초코파이 등을 두 소년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소년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간식을 주머니에만 넣을 뿐 먹질 않았다. 구단 관계자는 ‘얘네들이 의심을 하나’ 싶어서 소년들 앞에서 초코바 하나를 까 먹었다. “맛있어. 너희들도 먹어봐. 괜찮아. 나쁜 거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이 두 소년들은 끝까지 간식을 먹지 않았고 첫 날 열심히 공을 주운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구단 관계자가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시고 누나랑 셋이 산대요. 누나한테 가져다 준다고 먹질 않았대요.” 구단 관계자는 이 두 소년의 모습에 감동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이 소년들은 훈련장을 찾아 열심히 공을 주워왔고 포천 구단에서 선물한 간식을 챙겨 누나에게로 달려갔다. 그렇게 무려 12일 동안 포천 선수들과 이 두 소년은 정이 들었다.

그 사이 키르키즈스탄 팀과 개막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둔 포천은 이후 두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2위로 4강에 진출했다. 4강 상대는 홈팀이자 지난 대회 우승팀 치타공 아바하니였다. 2만여 명이 넘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일방적으로 홈팀을 응원했다. 축구 실력도 부족하고 살아가는 환경도 녹록치 않았지만 방글라데시의 축구 열기 만큼은 대단했다. 경기 내내 파도타기 응원을 끊이질 않을 정도로 이들의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그런데 이날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며 흔들리던 포천은 전반 43분 상대 파울로 얻은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동점골을 연결했고 후반 2분 결승골까지 뽑아내며 적지에서 감격적인 승리를 따냈다. 디펜딩 챔피언을 제압하고 대회 결승에 오른 것이다. 포천은 이 8개 팀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 팀이 됐다. K3리그 최초로 국제대회에 참가해 얻어낸 대단한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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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인 결승전 일정

그런데 이때 또 다시 주최 측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통보를 받게 됐다. 3월 1일에 결승전을 치를 예정이었는데 결승전이 다음 날인 2일로 변경되더니 막상 결승전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결승전이 또 하루 밀려 3일에 치러진다는 것이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포천 선수단이 3월 3일 밤 10시 반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1일 경기가 3일로 변경된 이유를 물으니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수상님께서 결승전을 관전하시기로 해 수상님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 3일에 결승전을 치르겠다.” 이미 일정이 확정된 상황에서 포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오후 6시 반에 시작하기로 한 경기 일정을 조금만 앞당겨 달라고 부탁했고 주최 측에서도 “그러면 경기 시간을 5시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촉박하지만 그래도 5시에 경기를 시작하면 밤 10시 반 비행기를 타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재형 감독이 경기 전날 기자회견에 참석하니 또 말이 바뀌어 있었다. “다시 6시 반에 경기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구단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6시 반에 경기를 해서 8시 반에 마치고 시상식을 한 뒤 선수들이 샤워를 하고 9시 반에 공항으로 출발하면 겨우겨우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복잡한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대회 공식 SNS에 “내일 경기는 5시에 시작한다”는 공지가 다시 뜬 것이다. 그런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최 측에 확인해 보니 “SNS에 공지가 잘못 떴다. 경기 시간은 6시 반이 맞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3월 2일, 그러니까 경기 전날 밤 10시에 다시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와 “5시 경기로 시간이 다시 변경됐다”는 연락이 왔지만 30분 뒤에 또 다시 연락이 왔다. “잘못 전달됐다. 경기 시간은 6시 반이다.”

결국 포천 선수들은 모든 걸 내려 놓았다. “5시에 경기를 하면 고마운 일이지만 일단은 6시 반 경기라고 생각하고 있자.” 포천 선수들은 다음 날 오전에 몰수패를 피하기 위해 다시 한 번만 더 경기 시간을 확인하자는 결론을 내린 채 방글라데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리고 경기 당일 주최 측에 확인해 보니 6시 반 경기로 확정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포천 구단 프런트는 통역을 통해 방글라데시 축구협회에 전화를 해 이런 말을 했다. “혹시 모르니 경기가 끝나면 비행기를 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주셨으면 한다.” 일처리는 답답해도 정은 끈끈한 방글라데시에서는 “경기가 끝나면 공항까지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도록 경찰을 동원해 도로를 통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우여곡절 끝에 포천은 비행기 이륙 네 시간을 앞두고 대망의 결승전을 치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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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소년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경기

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훈련을 마친 뒤 포천 프런트는 12일 동안 볼보이로 고생한 두 소년에게 축구공을 선물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눈빛의 이 소년들은 12일 동안 선수단과 함께하며 이제는 포천 선수들을 삼촌처럼 따르고 환하게 웃었다. “이제 이거 가지고 여기에서 실컷 놀아. 우리는 이제 너희들하고 작별해야 돼.” 이 형제는 축구공이 생겼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잘 안 됐음에도 선수들이 한 번씩 이들을 안아주고 손을 흔드니 이 두 소년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축구공을 선물 받고 기뻐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12일 동안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축구를 구경하고 공을 한 번씩 차볼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선수들과 함께 한 이 형제를 선수들은 마지막으로 안아주고 헤어졌다. 다음 날 결승전에 대한 부담도 있고 결승전 킥오프 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정든 두 소년과의 정성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6시 반에 경기가 시작해 결승전이 끝나면 어떻게 공항까지 내달려야 하는지 시간표를 짜기에 분주했던 구단 관계자들의 회의 도중 한 가지 안건이 더 올라왔다. “그 소년들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헤어질 거면 그래도 용돈이라도 좀 챙겨주고 올 걸 계속 두 소년의 눈빛이 떠오른다”고 한 이도 있었다. 결승전 킥오프 시간도 머리가 아팠지만 그러면서도 12일 동안 정든 이 두 소년에게 마지막 선물을 해주기 위한 의견을 모았다. “그러지 말고 이 형제를 내일 경기장으로 데리고 오자.” 이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이런 기회가 또 오지 않을 거 같으니 이왕이면 경기장 VIP 티켓을 받아서 관람하게 하자.” 점점 더 구체적이고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 내용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럴 거면 아침에 호텔로 불러 식사도 대접하자. 그동안 고마웠고 정도 들었는데 좋은 음식을 한 번은 먹이고 싶다.” 그렇게 포천 선수들과 프런트는 방글라데시 시골 마을에 사는 두 소년을 위해 마음을 모았다.

결승전 아침, 비장한 각오의 선수들 사이로 두 소년이 등장했다. 바로 그 바슈다스와 아슈다스 형제였다. 전날 훈련장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선수들과 두 소년은 반갑게 인사했다. 벌써 가족이 된 분위기였다. 선수들은 이 두 소년에게 생에 처음 맛보는 호텔 음식을 대접했고 축구화와 스타킹, 지난 시즌 K3리그 우승 기념 티셔츠 등을 선물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두 소년은 입이 귀에 걸렸다. 그렇게 두 소년은 선수단과 함께 결승전이 열리는 치타공 아지즈 스타디움으로 향했고 K3리그 우승 기념 티셔츠를 입고 VIP석에 앉아 삼촌들을 응원했다. 불과 12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던 이 두 소년은 어느덧 포천의 열정적인 팬이 돼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을 가득 채운 3만여 명의 관중 중 90% 이상은 상대팀인 몰디브를 열정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준결승에서 홈팀을 제압한 포천이 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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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보다 힘겨웠던 공항 가는 길

모든 환경이 포천에는 최악이었다. 3만여 명의 관중은 열정적으로 상대팀을 응원했고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해본 적 없는 K3리그 선수들로서는 그에 대한 부담감이 대단했다. 또한 앞으로 네 시간 뒤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점도 선수들로서는 마음 놓고 경기를 하는 데 방해요소였다. 그렇게 포천은 몰디브 1부리그 팀 TC스포츠클럽과 결승전을 시작했고 힘든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포천 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태극기를 흔드는 관중이 3만 관중 사이에 군데군데 보였기 때문이다. 홈과 원정 관중석에 대한 구분이 없어 한 쪽에 모여 있지는 않았지만 서른 명 정도는 돼 보였다. 교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응원은 더 특별했다. 특히나 몇몇 관중은 업체에서 제작한 태극기가 아니라 손수 그리고 색칠한 태극기를 걸어 놓고 응원을 펼쳤다. 선수들은 대한민국 대표라는 자부심을 안고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경기는 쉽지 않았다. 전반 18분 만에 선제골을 내준 포천은 이후 저력을 발휘하며 연달아 두 골을 뽑아냈지만 후반 38분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승부 자체도 긴장감이 넘쳤지만 그라운드 밖에 있는 백업 선수들과 프런트는 더 애간장이 녹았다. 10시 반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연장 승부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애타는 마음도 모르는지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결국 상대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이 이어지면서 포천은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아쉬움을 느낄 틈도 없었다. 10시 반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9시 반에 경기가 끝났고 이대로 가다가는 치타공에 발이 묶일 게 뻔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은 대충 수건에 물만 묻혀 땀을 닦아내기 시작했고 경기에 나서지 않은 선수들이 시상식에 참가해 메달을 수상했다. 준우승 트로피는 통역사가 대신 받았다.

선수들은 숨도 고르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그 촉박한 와중에도 빼놓으면 안 되는 게 있었다. 바로 바슈다스, 아슈다스 형제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잠시 버스에 오른 형제는 선수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워낙 시간이 없어 오랜 시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진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경찰의 통제를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3만 관중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가까스로 경기장에서 벗어난 시간은 10시 정각이었다. 교통을 통제해 줘 버스가 빠르게 달리기는 했지만 워낙 교통 법규를 어기는 게 일반적인 현지 사정상 불쑥 불쑥 차가 끼어들어 사고 위험도 몇 번이나 느꼈다. 그런데 공항을 코앞에 두고 또 한 번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버스가 고장으로 멈춰선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25분이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5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버스는 멈추고 말았다.

포천시민축구단은 대회 기간 내내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포천시민축구단은 대회 기간 내내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K3리그 챔피언, 당당하게 싸웠다

선수 일부는 뒤 따라오던 선수단 짐을 실은 소형 버스에 올라탔고 나머지 선수들은 선수단 버스를 호위하던 경찰용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 미친 듯이 공항으로 내달린 소형 버스와 경찰 트럭은 선수들을 공항에 내려줬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포천 선수단은 마치 그라운드에서 달리던 것처럼 출국장으로 내달렸고 미리 방글라데시 축구협회가 협조를 공항 측에 요청한 덕분에 별다른 출국 수속을 밟지 않고 여권만 확인한 채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K3리그 사상 최초로 AFC가 인증한 국제대회에 나섰던 포천시민축구단은 우여곡절을 겪고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별로 없다. 우리는 늘 화려하고 빛나는 곳만 조명하기 때문이다. 비록 포천은 국내에서 많은 박수를 받지 못했지만 머나먼 타지에서 고생하며 K3리그 대표, 국가대표로서 당당하게 싸웠고 이제는 올 시즌 K3리그에서 사상 최초의 6회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선수들과 함께 현지에서 함께 한 포천 이광덕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따뜻한 나라에서 훈련을 하고 외국 팀들과 겨룰 수 있게 돼 실력이 한층 더 성장한 것 같다. 행정적인 면에서는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한 이들이 많았지만 정 많은 방글라데시 분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처음 겪은 해외 원정이라 생소하고 어려웠는데 이제 한 번 경험해 봤으니 다음에는 더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꼭 우승 트로피를 들고 바슈다스, 아슈다스 형제와 기념 사진을 찍어 추억을 남겨주려고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포천시민축구단은 머나먼 타국 땅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훌륭한 실력은 물론 방글라데시 시골 마을의 두 소년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또한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준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면서 누군가에게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첫 국제대회였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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