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수원삼성과 이상호, 더 으르렁거려도 된다


서울 이상호
이상호는 이제 완벽한 서울 선수가 됐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이상호가 수원삼성 골문을 향해 골을 넣는다. 그리고 FC서울 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서울 팬들은 이상호의 이름을 연호한다. 수원 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 인사하러 오는 이상호에게 야유와 함께 ‘패륜송’을 부른다. 아마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헛소리냐고 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이 됐다. 수원에서 뛰던 이상호가 서울로 이적한 것도 충격적인데 하필 서울 데뷔전 상대가 수원이었고 또 하필이면 이상호가 이 경기에서 극적인 동점골까지 넣었다. 드라마로 쓰기에도 너무 진부한 스토리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상호는 어제(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FC서울과 수원삼성의 경기에 출전해 팀의 귀중한 동점골을 이끌어 냈다. 여기서 말하는 ‘팀’은 어색하게도 수원이 아니라 서울이다. 윤일록의 슈팅이 골문 방향으로 흘렀지만 선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다. ‘한 골 주웠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상호의 집중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아마 나처럼 집중력이 없는 이들은 그 상황에서도 공을 허공으로 날렸을 수도 있다. 이상호는 골을 넣은 뒤 상대팀이 누구인지 잠깐 잊은 듯 세리머니를 하려다가 멈췄고 서울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기쁨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상호의 입은 귀에 걸려있었다. 표정까지도 숨길 수는 없던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상호가 반대편 골대까지 전력 질주해 수원 팬들 앞에 벌러덩 누워 도발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그랬다면 경기장에 물병이 쏟아지고 욕설이 난무하는 전쟁통이 됐겠지만 라이벌전에서는 이런 묘미도 있어야 하는 법 아닌가. 물론 이상호가 수원 팬들에게 도발하는 행위를 했더라면 열정적인 수원 팬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는 없다. 아마도 큰 사고가 터져도 단단히 터졌을 거다. 이관우가 대전에서 수원으로 옮긴 뒤 첫 골을 넣고 수원 팬들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거수 경례 세리머니를 했을 때도 참 어색했지만 충격적이었는데 누군가 수원에서 서울로 옮겨 수원 골문에 골을 넣고 화끈한 세리머니를 했더라면 아마도 K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굵직하게 장식하지 않았을까.

수원 이상호
수원삼성 시절 FC서울을 울렸던 이상호. ⓒ프로축구연맹

이상호가 더 화끈하게 도발했다면 좋았겠지만 그가 이번 슈퍼매치에서 보여준 예의 있는 모습도 충분히 이해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이상호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그는 충분히 전 소속팀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이상호는 수원 팬들 앞으로 가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다. 물론 야유가 터져 나오고 ‘패륜송’이 울려 퍼졌지만 이상호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예의를 지켰다. 골을 넣은 뒤 잠시 세리머니를 하려다가 움찔하고 멈춰선 그의 모습을 봤을 때 사실 이상호는 속으로 엄청 기뻐했을 것이다. 그런 속마음을 숨기고 수원 팬들의 야유를 들으며 인사까지 한 이상호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아마 이상호는 자기가 ‘패륜송’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호는 철저하게 수원 선수였다. 수원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SNS를 통해 여러 차례 흔히 말하는 ‘북패’에 대한 디스도 날렸다. “우리는 예전부터 라이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반칙왕은 북패”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자신이 서울 유니폼을 입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제3자도 그렇게 느끼는데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그런데 이상호는 극적으로 서울 이적이 성사된 뒤 서울 팬들에게 사죄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상호에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는 팬들에게도 SNS 메시지를 보내 “철없던 시절 일을 죄송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FC서울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 팬들 입장에서는 이상호가 철이 너무 오래 동안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수원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선수가 그렇게 디스하던 라이벌 팀으로 옮기고 입장을 바꿨다는 건 라이벌전의 분명한 흥행 요소다.

이상호는 이번 수원전에서 처신을 잘했다. 조금 더 과하게 수원에 도발했으면 더 엄청난 스토리를 썼겠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조금은 무리한 요구다. 그도 살아야 할 거 아닌가. 물론 이상호에게 이번 슈퍼매치는 끝이 아니다. 아직 그에게 슈퍼매치는 많이 남아 있다. 첫 만남에서 수원에 예의를 다했으니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 어차피 뭘 해도 수원 팬들은 이상호를 욕할 테고 이제 이상호는 제 갈 길을 가면 된다. 수원 팬들이 이상호에게 야유를 하건 말건 서울 팬들은 이상호를 우리 팀 선수라고 생각하고 응원하면 된다. 이상호가 다음 슈퍼매치에서도 또 골을 넣고 ‘서울 동료’들과 기뻐하면 수원 팬들은 배신감이 들어 욕을 하겠지만 이상호의 행동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이제 그는 서울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상호
이상호 말에 따르면 이때는 철이 없었을 때였다.

이상호가 앞으로 슈퍼매치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이적 후 첫 슈퍼매치에서의 임팩트가 워낙 컸으니 이제는 그가 슈퍼매치에서 뭘 해도 다 이야깃거리가 된다. 또 골을 넣어도, 아니면 양 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하는데 서울 편을 들어도, 아니면 혹여 퇴장을 당해도 이상호가 하면 그 임팩트가 배가 된다. 앞으로 이상호는 처음부터 서울 선수였던 것처럼 서울에 충성심을 다하고 수원 팬들은 이상호에게 변절자라는 이유로 야유를 퍼부으면 된다. 첫 만남에서 예의를 차렸으니 이게 ‘뭐는 되고 뭐는 안 되고’ 하는 건 없다. 수원 팬들은 변절자인 이상호를 싫어할 이유가 충분하고 이상호는 이제 서울 팬들의 응원을 받는 서울 선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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