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헝다는 압도적인 팬층을 자랑한다 ⓒ 慕尼黑啤酒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K리그 팀들의 경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무 3패에 그쳤기 때문이다. 수원삼성만이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1-1로 비겼을 뿐 FC서울과 울산현대, 제주유나이티드는 모두 패하고 말았다. 반면 중국 슈퍼리그는 대회에 나선 광저우 헝다와 상하이 상강, 장쑤 쑤닝이 모두 승리를 챙기며 3전 전승을 기록했다. 혹자는 K리그가 중국 슈퍼리그처럼 투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슈퍼스타의 부재’를 문제로 꼽고 있다. 왜 중국 슈퍼리그처럼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 같은 세계적인 선수를 보유하지 못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다들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를 논하지만 나는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패배보다 더 굴욕적인 게 있다

중국 슈퍼리그처럼 K리그에도 세계적인 스타가 대거 영입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현 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시장 규모가 다른데 중국처럼 투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카를로스 테베스 같은 선수를 영입해서 쓰는데 1주일에 8억 원을 주는 중국처럼 투자하는 건 불가능하다. 언론에서 “우리도 중국 슈퍼리그처럼 슈퍼스타가 필요하다”고 하는 건 전혀 현실성이 없는 지적이다. K리그에서 그런 외국인 선수가 활약했던 건 마침 브라질의 경기 침체가 이어진 상황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빨(?)을 받았을 때 뿐이다. 당시 도도와 마그노 같은 선수들은 아마도 K리그에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다. 슈퍼스타가 필요한 건 다 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우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 같은 선수들은 절대 K리그에 올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지금 우리가 주목할 게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선수들 타령하고 있는 건 여자친구도 없는 내가 트와이스의 정연이나 아이오아이의 전소미 같은 여자친구를 만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런 여자친구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나타난다. 현실을 직시하자. 이렇게 아리따운 여성들은 이미 돈 많고 능력 있는 광저우나 상하이 친구들이 다 만나고 있다.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런 슈퍼스타 타령이 아니라 중국 슈퍼리그 팬의 열기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엄청난 돈에 밀리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홈에서도 제대로 된 응원 열기 한 번 내뿜어 보지 못하고 굴욕을 당했다는 건 두고 두고 자존심이 상해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고 걱정도 안 한다. 그저 골을 넣은 슈퍼스타만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과의 원정경기에 찾아온 상하이 팬들은 무려 500여 명이었다. 조직적으로 응원을 펼쳤고 상하이가 승리를 거두자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서울 팬들의 응원 역시 대단했지만 상하이도 밀리지 않았다. 해외로 500여 명이 단체 응원을 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들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서울까지 날아와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제주월드컵경기장의 분위기는 더했다. 장쑤 팬들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악천후 속에서도 무려 1000여 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손에 꼽을 만큼 적었던 제주 팬들과 비교하면 장쑤 팬들의 응원 열기는 엄청났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은 장쑤를 응원하는 팬들의 쩌렁쩌렁한 응원 소리로 홈과 원정이 바뀐 듯한 느낌을 줬다. 경기에서 진 게 굴욕이 아니라 홈 분위기를 원정팀에 내준 게 굴욕이라면 더 큰 굴욕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큰 굴욕은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도 우리는 “슈퍼스타가 없어서 졌다”고 정신승리하는 거다.

중국의 축구 열기는 엄청나다. 한국과 중국의 경기가 펼쳐지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이렇게 중국인으로 가득차는 게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됐다. ⓒ중국축구협회

비바람 부는 평일에 모인 천 명의 원정 팬

중국인이 워낙 전세계적으로 많이 분포해 있으니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국 현지에서 온 팬들뿐 아니라 서울이나 제주도에 사는 중국인들도 꽤 많이 경기장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쑤 팬들이 몰리면서 제주-장쑤전이 열리던 날 제주로 가는 비행기는 평일인데도 계속 만석이었다는 점은 무슨 의미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팀 경기를 보기 위해 중국 현지에서도 날아왔고 국내 여기저기에서도 제주도까지 날아왔다. 물론 수원삼성 팬들도 일본으로 날아가 인원수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렸음에도 쩌렁쩌렁한 응원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열정은 대단하지만 500명씩, 1000명씩 모여 해외 원정에서 힘을 보여주는 중국 슈퍼리그 팀들의 위력이 부러운 건 사실이다. 심지어 광저우 헝다는 내달 1일 수원에서 열리는 수원삼성과의 경기에서 3000여 명 이상의 팬이 올 것이라면서 벌써 수원 구단에 협조 요청까지 보냈다.

우리는 슈퍼스타가 없어서 슈퍼리그에 점점 밀리는 게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부족해서 그들에게 밀리고 있는 거다. “슈퍼스타가 있으면 K리그에도 많은 관중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중국 슈퍼리그 팬들은 성적과 관계 없이 바보처럼 팀을 응원한다. 그들의 실력이 하찮았을 때도 이런 마인드 하나 만큼은 꼭 유럽 축구팬들 못지 않았다. 2010년 당시 현장에서 만난 허난 젠예 팬들을 기억한다. 약체로 손꼽히던 허난은 수원삼성과 AFC 챔피언스리그 한 조에 속해 수원 원정을 왔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2000여 명의 허난 팬들이 수원월드컵경기장 S석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응원하는 건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 같은 슈퍼스타도 아니었다. 당시 허난에는 한국인 선수 송태림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했다. “송태림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이게 그들의 마인드다.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있어서 그 팀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은 팀 자체를 응원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열기가 모이고 힘이 모여 슈퍼스타도 영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웨인 루니를 영입해 주면 경기장에 가볼게. 한 번 영입해봐”라는 마인드가 아니라 열정을 가지고 온전히 축구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니 재벌들도 축구에 투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차피 팔짱 끼고 슈퍼스타 타령이나 하는 이들은 정작 슈퍼스타가 K리그에 와도 한두 경기 보고 만다. 중국 슈퍼리그는 팬들의 열기에 보답하는 구단의 투자와 슈퍼스타 영입이라는 순환 구조를 이미 갖췄다. 단순히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 몇 명 영입된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이런 순환 구조를 갖췄다는 게 무서운 거다. 비바람이 부는 평일 해외 원정에 1000여 명씩 오는 게 결코 특별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게 무서운 거다.

중국의 축구 열기는 엄청나다. 한국과 중국의 경기가 펼쳐지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이렇게 중국인으로 가득차는 게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됐다. ⓒ중국축구협회

“슈퍼스타 없다”는 핑계는 그만

지난 주 부산 출장을 갔다. 강원FC의 연습경기를 지켜보고 선수 취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강원FC와 옌볜푸더의 연습경기를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연습경기임에도 옌볜에서 무려 10여 명의 팬들이 직접 찾아와 응원을 보냈기 때문이다. 옌볜에는 물론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 같은 선수들은 없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K리그 클래식에서 욕이란 욕은 다 먹던 하태균이었다. 비록 세계적인 스타는 없지만 옌볜 팬들은 하태균을 ‘하신’으로 모시며 열정을 다했다. 이미 두 달 전에 제주도 전지훈련 소식을 듣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던 팬들은 옌볜의 전지훈련지가 부산 기장으로 변경되자 모든 스케줄을 바꿔 부산 기장으로 달려왔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강등만 피해도 성공인 ‘약체’ 옌볜도 리그 원정경기에는 3000여 명씩 출격한다. 이런 소중한 팬들이 있는 팀이라면 경제적 가치를 알아보고 구단이 먼저 투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과정은 다 싹 생략한 채 “슈퍼스타가 없어 K리그가 슈퍼리그에 밀리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만약 K리그 팀 중 원정경기에 이렇게 매번 3000여 명씩 팬들이 몰리는 팀이 있다면 투자자가 생기고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를 영입 못할 이유가 없다. 팬이 몰리고 돈 냄새가 나면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기업들은 투자를 한다. 그저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며 “K리그는 슈퍼스타가 없어서 중국 슈퍼리그에 상대가 안돼”라고 신세한탄이나 하는 이들이 꼭 이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중국이 바보여서 축구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열정적인 팬들을 보유하고 있고 그 팬들이 모여 시장을 형성했다. 그러니 돈이 자꾸 축구에 몰리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모든 걸 간과하고 그들이 시장이 크다는 것만 부러워한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하는 건 중국 슈퍼리그에 헐크나 오스카, 하미레스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원정경기에도 수천 명씩 따라다닌다는 사실이다. 금수저 친구가 예쁜 여자를 만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둘 중 하나다. 어차피 돈으로는 안 되니 열심히 노력해서 개천의 용이 되거나 평생 부러워하거나 둘 중에 고르면 된다. 자, 이제 어떻게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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