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라탄의 계보를 잇는 정통 스트라이커는 등장할 수 있을까? ⓒ Nationale Calcio

[스포츠니어스 | 남윤성 기자] 축구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과거의 축구는 현대보다 전술적으로 훨씬 단순했으며 수비보다 공격이 우선시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축구 규칙이 개정되면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비의 중요성이 증가했고 전술의 패러다임 또한 크게 바뀌었다. 최근의 전술은 더욱 복잡한 다양성을 띠고 있다. 수비수들은 공격 전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공격수들은 앞선에서부터 팀 전체의 압박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 쉬지 않고 뛰어다닌다. 현대 축구에서는 수비가 곧 공격이며 공격이 수비의 시작이다.

과거 뛰어난 공격수에 대한 지표는 단순히 득점을 많이 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현대의 공격수는 득점을 노리다가도 순간적으로 최전방 수비수 역할까지 수행해야한다. 골만 넣을 줄 아는 공격수는 반토막짜리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축구는 결국 득점으로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다. 양 팀이 완벽한 수비를 펼친다면 경기는 0-0으로 끝이 나지만 3골을 실점해도 4골을 득점한다면 경기에서 승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리그앙에 공통점이 많은 두 명의 선수가 있다. 우선 1986년 2월 10일과 1987년 2월 14일 생으로 나이와 생일이 비슷하다. 국적은 같은 남미대륙의 콜롬비아와 우루과이다. 별명은 ‘엘 티그레(호랑이)’와 ‘엘 마타도르(투우사)’며 각각 스페인과 이탈리아 무대를 호령하고 같은 해인 2013년 리그앙에 입성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득점으로 자신들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타고난 골잡이다.

El Tigre

라다멜 팔카오는 아르헨티나 명문 리버플라테에서 동물적인 득점 감각을 선보이며 ‘엘 티그레’란 별명을 얻었다. 이후 FC포르투로 이적해 유럽에 진출한 팔카오는 두 시즌동안 72골을 터뜨리며 유럽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1년 4,000만유로(한화 약 620억)의 이적료에 AT마드리드로 이적한 팔카오는 91경기에서 70골을 터뜨리며 인간계 최강 공격수라 불렸다. 그리고 2013년 이적료 6,000만유로(한화 약 880억원)에 명가 재건을 꿈꾸는 AS모나코에 합류했다.

맨유에 임대를 갔던 팔카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모나코로 이적한 팔카오는 19경기에서 11골을 터뜨리며 득점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리그컵 경기에서 수비수의 태클에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진 것이다. 리버플라테 시절에 이은 두 번째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6개월간의 재활을 마치고 그라운드에 복귀한 팔카오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임대 이적하며 재기를 꿈꿨다. 하지만 두 번의 십자인대 부상은 전성기 때의 모습을 잃게 만들었다. 맨유에서 적응에 실패한 팔카오는 재임대로 합류한 첼시에서도 10경기 동안 1골에 그쳤고 결국 올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모나코로 복귀했다. 쫓겨나듯 복귀한 팔카오는 모나코에서 완벽하게 부활했다. 현재까지 24경기에서 18골을 터뜨리며 모나코의 리그 선두를 이끌고 있다. 동료의 크로스 타이밍에 맞춰 문전으로 달려들어 득점하는 모습은 예전의 그 엘 티그레다.

El Matador

카바니는 2005년 우루과이의 다누비오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2006년 이탈리아의 팔레르모로 이적해 재능을 나타낸 카바니는 골문 앞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며 ‘엘 마타도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 나폴리로 이적한 카바니는 3년간 138경기에서 104골을 기록했고 12-13시즌엔 리그에서 29골을 터뜨리며 세리에A 득점왕에 올랐다. 날카로운 움직임과 득점력으로 우리나라 축구팬들 사이에서 ‘갓바니’라고 불리기 시작한 카바니는 2013년 6,400만유로(한화 약 800억원)의 이적료에 파리생제르망에 입성한다.

맨유에 임대를 갔던 팔카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카바니는 PSG에서 첫 시즌에만 25골을 터뜨리며 완벽하게 적응해나갔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카바니를 향한 팬들의 비난은 거세졌다. 나폴리에서 원톱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날카로운 모습을 선보였던 카바니였지만 PSG에서는 스리톱의 측면에서 플레이해야 했다. 왕으로 입단해 전설이 되어 떠난 이브라히모비치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한 모습으로 쉬운 찬스의 득점을 놓치고 동료들과의 호흡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움직임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득점도 충분히 기록했지만 심리적인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던 카바니가 올 시즌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았다. 맨유로 이적한 이브라히모비치를 대신해 원톱 스트라이커로 출전하기 시작한 카바니는 리그에서 21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고 올 시즌 총 28경기에 출전해 29골을 기록하며 경기당 1골이 넘는 득점력을 자랑하고 있다.

맨유에 임대를 갔던 팔카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난 30일(이하 한국시각)에는 PSG와 모나코가 리그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향후 리그 우승 타이틀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경기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몇몇 언론사는 이번 경기를 파리와 모나코의 경기가 아닌 ‘카바니와 팔카오의 대결’이라 표현했다. 그만큼 양 팀에서 두 공격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경기에서는 카바니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추가시간 베르나르도 실바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1-1 무승부로 종료됐다.

주연을 만드는 특급 도우미들

지난 낭트전 2골에 이어 모나코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을 기록한 카바니는 21골로 리그 득점선두를 유지했다. 이미 자신의 리그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한 카바니의 목표는 이브라히모비치의 리그 최다득점 기록인 38골이다. 지원은 충분하다. 카바니가 올 시즌 터뜨린 29골 중 크로스에 의한 득점은 18골로 전체의 62%에 이른다. 이 중 올 시즌 합류한 우측 윙백 토마스 므니에는 4골을 어시스트하며 특급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카바니의 18골 중 14골이 좌우 윙백의 크로스에서 터져 나왔다. 퀴르자와, 막스웰, 오리에, 므니에로 구성된 PSG의 좌우 윙백은 활발한 오버래핑에 이은 크로스로 카바니의 득점 행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모나코는 현재까지 펼쳐진 22경기에서 65골을 기록하며 유럽 5대리그 중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터뜨렸다. 특히 바카요코, 르마르, 베르나르드 실바 등 젊은 자원들의 창의적인 플레이와 활동량은 모나코를 리그 선두로 이끌고 있다. 주앙 무티뉴 대신 주장완장을 찬 팔카오는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주장과 고참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중이다. 하프라인에서부터 빌드업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동료들이 침투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등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주어 팀 전체의 시너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팔카오가 올 시즌 기록한 18골 중 6골은 크로스에 의한 득점이다. 특히 함께 투톱으로 출전하는 발레르 제르망은 팔카오에게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뛰어난 호흡을 자랑하고 있다. 이어 골대 앞 혼전 상황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기록한 득점이 3골, 역습 기회에서 기록한 득점은 3골로 다양한 상황에서 득점을 뽑아내고 있다.

정통 공격수는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다

국내의 몇몇 축구팬들은 팔카오와 카바니의 득점 행진이 가능한 이유로 리그앙의 속도와 수비수들의 수준을 지적한다. 물론 리그앙은 프리미어리그에 비하면 경기의 속도는 느린 편이며 라리가에 비하면 전술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세리에A에 비하면 수비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만약 어떤 공격수가 리그앙으로 이적한 이후 갑자기 커리어 하이의 활약을 펼친다. 이때 우리는 리그앙의 수준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팔카오와 카바니는 과거 라리가와 세리에A에서도 비슷한 득점 페이스를 기록해왔다. 오히려 이들의 득점 행진의 비결은 심리적인 부분에서 기인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카바니는 올 시즌에서야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에서 뛰기 시작했고 팔카오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팀에서 자신감을 되찾아가고 있다.

관중ㄴ들은 화려한 기술과 유기적인 팀플레이에 의한 득점에 환호하지만 때론 팔카오와 카바니처럼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단번에 흐름을 뒤바꾸는 득점을 바라기도 한다. 득점 후 격정적인 세레모니로 자신의 모든 기쁨을 표현하는 두 선수의 모습은 현대 축구에서 정통 공격수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정통 공격수는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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