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보다 중요한건 행복’, 정충근은 도전이 두렵지 않다


낭트 정충근
정충근은 낭트에서 축구를 즐기는 방법을 배웠다. 자신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축구 스타일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남윤성 기자

[스포츠니어스 | 남윤성 기자] 매년 적지 않은 수의 국내축구 유망주들이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성공적으로 안착해 프로무대에 데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낯선 환경, 새로운 문화, 언어 장벽, 치열한 생존경쟁 등의 문제는 아직은 또래와의 어울림이 익숙한 소년들의 타지생활을 더욱 외롭고 지치게 만든다. 때로는 이승우와 백승호, 이강인과 같이 소속팀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팬들의 관심과 기대 속에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리그와 팀에 속한 선수들은 누구보다 고독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다.

낭트 이적 후 잊혀졌던 정충근

지난 2013년 18살 유망주 정충근이 프랑스 1부리그 클럽 FC낭트와 프로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주영, 정조국, 남태희, 이용재 이후 해외파 진출이 끊겼던 프랑스 무대였기에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출전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근황조차 접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한명의 유망주가 잊혀져가는 듯 했다.

그러던 2015년 11월 기회가 찾아왔다. 해외파를 꾸준히 주시하던 신태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올림픽 대표팀에 소집된 것이다. 오랜만에 정충근의 이름을 접한 축구팬들은 그의 활약을 기대했다.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한두 살 많은 형들이었어요. 형들은 객관적인 실력도 뛰어났고 연령별로 계속해서 발을 맞춰왔기에 서로 플레이와 움직임의 호흡이 좋았어요.”

“반면 저는 오랜만에 소집되다보니 호흡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어요. 다른 선수들도 제 스타일이 낯설었는지 패스가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지만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며 웃었다. 아트사커의 본고장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던 정충근과 지난해 프랑스 낭트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의 축구인생은 이제 시작이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한 정충근의 프랑스 축구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프랑스 에이전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강구중 10번

정충근이 속했던 강구중학교는 당시 지역 명문 포철중학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만큼 강했다. 그중에서도 정충근은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10번을 달고 뛰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말리그 경기가 끝나고 그에게 낯선 외국인이 다가왔다. 現에이전트 대표와 동행한 프랑스 에이전트는 테스트를 제안했다. 평소 해외 리그를 동경했던 15살 소년은 망설임이 없었다. 부모님 또한 적극적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향한 곳은 리그앙 명문 보르도였다. 이어진 테스트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선보이며 감독과 코치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사진은 함께 생활할 가족에 대한 지원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짐을 쌌다. 귀국 이틀 전, 에이전트가 마지막 테스트를 제안했다. 그리고 낭트로 향했다. 낭트는 가족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정충근의 영입을 희망했다. 이적을 확정 짓기까지 상당한 운도 따랐다. “테스트를 위해 낭트로 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너무 좋았어요. 보통 트레이닝을 소화하면서 테스트가 진행되거든요. 근데 때마침 토너먼트 대회가 있어 선수등록 없이 바로 경기에 뛸 수 있었어요. 첫 경기부터 바로 투입됐는데 결과적으로 우승도 했고 최우수상까지 받았으니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밖에요.”

낭트 정충근
정충근은 경기에 나설 수 없었던 지난 2년간 현지적응에 집중했다. ⓒ남윤성 기자

당시 정충근이 출전했던 대회는 ‘U17 몽테규 대회’로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한두 살 많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렇게 리그앙 전통 명문구단의 노란색 유니폼을 입게 된 정충근은 부푼 꿈을 안고 낭트에 입성했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만18세 이하 선수 해외이적 금지’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때문에 2년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묵묵히 훈련하며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맘 편히 적응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자고 생각했어요. 이 기간 학교에 열심히 다니면서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현지적응에 집중했어요. 2년간 경기에 나설 수 없었지만 선수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며 프랑스의 축구스타일을 파악하려 노력했습니다. 개인운동을 통해 몸집도 키웠죠. 팀에서는 조만간 징계가 풀릴 테니 조금만 더 힘내라고 했지만 결국 2년을 다 채우고 나서야 경기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낭트가 리그앙 전통의 명문구단인 이유

지금은 비록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지만 낭트는 한때 프랑스 무대를 호령했었다. 때문에 낭트의 유니폼에는 1부리그 우승횟수를 뜻하는 8개의 별이 새겨져있다. 또한 낭트는 프랑스 내에서도 구단의 시설과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발달되어있기로 유명하다. 정충근은 이러한 점들이 선수들에게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낭트는 프랑스 내에서도 손꼽힐 만큼 높은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하다보면 동기부여도 잘되고 말 그대로 축구할 맛이나요. 의료기관도 잘 발달해있고 전문 마사지사도 따로 있어요. 유니폼을 빨아서 개인 라커에 정리해주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에요. 관리와 존중을 받는 느낌이 저절로 들어요. 게다가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구단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니까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재밌습니다.”

실제로 방문한 낭트구단의 크기는 굉장했다. 웬만한 한국의 대학교보다 넓고 큰 시설을 자랑했다. 유소년을 위한 학교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몇몇 직원들이 출근해 잔디를 깎고 물을 뿌리는 등 클럽하우스를 관리하고 있었다. 오전 훈련시간이 가까워지자 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내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최근까지 허리부상으로 휴식을 취했던 정충근도 오랜만에 훈련을 소화했다.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아 훈련막판 지친기색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몸놀림은 가벼웠다. 모든 선수들이 밝은 모습으로 훈련에 임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낭트 정충근
낭트는 다양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훈련에 임했다. ⓒ남윤성 기자

“4부리그의 다른 팀들은 보통 주3회 훈련하고 주말 경기를 치러요. 하지만 낭트는 훈련을 굉장히 체계적으로 진행해요. 예를 들어 화요일 오전엔 체력 훈련, 오후엔 웨이트 훈련으로 신체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수요일은 연습게임을 통해 실전감각을 키워요. 목요일은 가벼운 웨이트와 마사지 그리고 경기전날엔 공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실시하죠. 낭트는 공을 만지는 훈련의 횟수가 다른 팀에 비해 적은편이에요. 때문에 이렇게 한번 훈련할 때 선수들의 집중도가 굉장히 높아요. 공으로 실시하는 훈련이 적다고 특별히 부족함이 느껴지지는 않더라고요.”

프랑스에서 즐기며 축구하는 방법을 배우다

15살 유망주가 프랑스에 발을 내딛은 지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시간을 돌이키던 정충근은 그렇게나 오래됐냐며 놀란 모습이었다. 6년간 그가 느낀 프랑스는 어떤 리그일까. 동양인으로서 겪었던 어려움이나 차별은 없었을까. “프랑스 리그의 특징이요? 단순히 말해 피지컬이 전부에요. 제가 낭트에 왔을 땐 굉장히 마른 체형이었거든요. 버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개별적으로 웨이트를 많이 했어요. 프랑스는 이민자에 대해 정책적으로 관대해서 선수들의 국적이 다양해요. 특히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피지컬이 중요시돼요. 그리고 훈련 때 태클이 거침없이 막 들어와요. 처음엔 겁도 났고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만큼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뜻이었어요.”

낭트 정충근
깊은 태클도 거침없이 들어와 처음엔 당황했다. 하지만 그만큼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말이 통하자 선수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남윤성 기자

“그리고 선택에 대한 존중을 많이 해줘요. 예를 들어 패스하지 않고 드리블을 하다 공을 뺏겨도 ‘괜찮아’, ‘잘했어’라면서 자신감을 북돋아주기 때문에 실수해도 ‘다시 해보자’는 자신감이 생기죠. 누구의 지적도 없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니까 장단점을 고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고 상황대처능력 또한 많이 길러지는 것 같아요. 한번은 경기에서 상대를 굴욕스럽게 제쳐내고 골을 넣은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선수도 분했는지 저한테 시누아(프랑스어로 중국인을 의미)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관중들도 저를 중국인이라 생각했는지 조롱하는 말투로 중국말 비슷하게 야유를 보냈어요. 여기 사람들은 제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 못하니까 그랬던 거겠죠. 그 외엔 프랑스 자체가 다인종국가이기 때문에 기분 나쁠 만한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적은 없어요.”

“해외에 진출하면 그 나라의 환경과 문화에 새롭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요. 언어도 배워야하고요. 그게 성인이라면 좀 더 힘들 것 같아요. 조기에 해외로 진출한 경우 언어와 문화, 축구스타일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기에 현지 적응이 좀 더 쉽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에서 축구를 배우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 한국에선 볼 수없는 유형의 선수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유럽은 축구에 대한 환경과 생각이 정말 달라요. 한국은 훈련량도 많고 체력위주로 진행 되서 괴롭고 힘들었어요. 반면에 프랑스는 기술적인 부분을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쳐요. 훈련이 효율적이고 실전처럼 진행되기 때문에 선수들도 집중하게 되고 개성과 자유를 존중해줘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충근의 축구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리그앙의 렌, 릴 그리고 낭트는 프랑스 내에서도 가장 체계적인 클럽 시스템을 갖추었기로 유명하다. 낭트의 경우 유소년부터 기술적인 부분과 패스플레이를 강조하기 때문에 자신과 잘 맞는다고 이야기한 정충근은 롤모델로 아스날의 메수트 외질을 꼽았다. “팀에서는 주로 오른쪽 윙을 맡고 있어요. 개인적으론 패스플레이가 편하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상황을 만들어내는걸 선호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플레이로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외질이 롤모델이에요. 스피드에 자신이 있고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는 움직임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단점으로는 피지컬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체력이 부족해서 수비가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낭트 정충근
국가대표 타이틀을 좇기보단 지금처럼 행복한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정충근의 목표다. ⓒ남윤성 기자

프랑스 구단이 ‘프로페셔널 클럽’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을 준수해야한다. 예를 들어 구단은 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자체적인 경기장을 소유하고 있어야하며 2군을 포함한 각 연령대 팀을 운영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한다. 2군팀은 1군팀과 같은 리그에 속할 수 없으며 3부리그로 승격할 수 없다. 즉, 프로구단의 2군팀은 4부리그 또는 5부리그에 속해있다. 지금은 비록 4부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1부리그 클럽의 유소년들은 이와 같은 단계를 거쳐 1군에 진입하기에 정충근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성인무대로 올라온 지 이제 두 시즌밖에 안됐어요. 계약기간도 많이 남아있어 조급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능한 빨리 1군에 데뷔하고 싶어요. 데뷔는 아직 못했지만 꾸준히 콜업되어 훈련을 소화하고 있어요. 2군 선수들 중에서는 1군과 훈련하는 횟수가 제가 가장 많아요. 오가며 1군코치를 자주 만나는데 주시하고 있으니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훈련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쟁을 통해 보다 내실 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고 유럽축구를 더 오래 경험하고 싶어요. 여기서 최대한 오랫동안 살아남는 게 목표입니다.”

에필로그

정충근은 지난 12월 일본 2부리그의 요코하마FC로 이적했다. 그는 요코하마 구단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입단 소감을 밝혔다. “저는 누구보다 승리를 향한 의지가 강합니다. 올해로 벌써 프로 5년차이기에 신인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낭트에서 계약 첫해 1부리그 승격을 경험했습니다. 이번에도 요코하마의 일원으로 1부리그 승격을 돕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17일 본지 기자와의 후속 인터뷰에서 정충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기에 출전하기 위한 팀을 찾다보니 일본으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아쉬움이 남지는 않느냐고요? 낭트에서 활약한 6년간 손에 잡힐 것 같았던 1부리그 데뷔를 하지 못해 아쉽긴 하죠. 입대를 생각하기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국내 이적은 계획에 없었습니다. 낭트에서의 경험을 살려 현 소속팀 요코하마와 함께 1부리그로 승격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날아간 정충근은 올 시즌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skadbstjdsla@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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