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포항 스틸러스는 명문 구단이다. 이견이 없다. 전북과 서울은 최근들어 빅클럽의 면모를 보이고 있으나 문자 그대로 최근의 일이다. 대한민국 축구와 역사를 함께한 포항이야말로 K리그 명문 구단이라는 타이틀 얻기에 충분하다. 포항은 그만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축구 명가다. 아니, 명가였다.

그런 포항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단지 지난 시즌 성적이 부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포항의 최근 행보는 일찍이 몰락한 명가들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잉글랜드의 명문 ‘리즈 유나이티드 AFC’가 영광을 누리던 시절을 ‘리즈 시절’이라고 표현한 것과 같이 몇 년 후에는 ‘포항 시절’이 유행어로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명가 몰락의 공통점 - 재정 악화

오랜 축구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에서도 명문 구단들이 몰락한 사례들은 찾아볼 수 있다. 공통점은 구단의 재정 악화다. 세리에의 파르마FC, FC 프로 베르첼리 1892,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 FC, 잉글랜드의 리즈 유나이티드 AFC 모두 영광의 순간을 누리며 유럽의 명문으로 도약했지만 구단의 재정악화로 ‘몰락한 명가’의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얻었다.

포항은 기업구단이다. 그들은 가슴에 포스코를 안고 뛴다. 그러나 포스코 그룹의 재정 악화가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포스코는 2008년 국제 철강경기 악화와 더불어 중국의 철강공급 증가로 사업환경이 크게 나빠졌다. 이에 대비해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는 등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부채비율이 크게 늘면서 재무적 부담이 가중됐다는 평가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철강경기의 저하, 대내적으로는 전임 회장 비리 의혹이 세간에 밝혀지며 기업신뢰도가 크게 하락했다.

포스코의 재정악화가 포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시즌은 2013년이다. 당시 장성환 사장의 석연찮은 구단 운영방침으로 인해 외국인 선수 없이 자국 선수들만으로 치른 시즌이다. 물론 포항은 외국인 선수가 없는 어려운 운영상태에서 K리그 우승이라는 값진 열매를 얻었다. 그러나 결과만으로 당시 포항의 선수단 운영을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굳이 말하자면 국내 선수들만으로 선수단을 꾸린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성격이 강하다. 포항이 더 큰 미래를 구상하고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하며 고민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수원삼성으로 이적한 신화용 ⓒ 수원 삼성

상징의 상실, ‘포항 시절’을 떠올리게 할 선수들

포항은 매년 상징과 같은 선수들을 잃고 있다. 2014년 황진성을 시작으로 이명주, 김승대, 고무열, 바로 지난 주에는 신화용을 잃었다. 황지수와 김광석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느껴질 만큼 안타까운 이적이다. 대전의 최은성이 전북 유니폼을 입은 것보다 더 큰 충격이다. 대전과 포항은 운영형태도 다를뿐더러 재정적 규모도 다른 팀이다. 그런 포항이 팀의 상징을 다른 팀에 넘겨주었다.

신화용은 현역생활을 더 이어가고 싶었고 수원은 이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다. 반면 포항은 고액연봉을 받는 신화용을 다소 부담스러워 했으며 최종적으로는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 이전에 그의 이적료를 받기 위해 움직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역 연고특색이 타국리그보다 희미한 K리그에서 로컬보이가 갖는 상징은 크다. 신화용이야 말로 포항의 상징이며 역사다. 포항은 신화용을 잡지 못하며 결국 포항의 상징과 역사를 수원에게 넘겨주었다. 그야말로 명가가 몰락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목도한 것이다.

‘포항 시절’ 막으려면 포스코와 결별을 준비해야

포스코에 개선의지가 없다면 포항은 포스코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징과 같은 선수들을 매년 떠나 보내는 구단에는 그 어떤 가치도 없으며 그 구단을 지원하는 스폰서에는 그 어떤 의미도 없다. 점차 침몰하는 회사에서 이직할 생각은 안하고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집안에 남아있는 마지막 금괴를 팔아버린 꼴이다.

수원삼성은 기업구단이지만 수원의 메인 스폰서가 제일기획으로 변경되면서 재정지원 폭이 크게 줄었다. 수원삼성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이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생력 있는 클럽으로 변모하길 원했다. 변화는 느리지만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포항이 가장 큰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유소년 시스템이다. 좋은 선수를 키우고 비싼 값에 팔아야 한다. 끊임없는 인재의 수급은 명가의 몰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K리그는 항상 슈퍼스타에 굶주려 있다. 같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은 포항 지역 출신의 선수를 지역 영웅에서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포항 시절’이 과거를 회상하는 단어가 아닌 현재를 의미하는 영광의 단어가 되기 위해서는 포스코의 몰락과 맥을 같이 해서는 안 된다. 포스코는 이미 시장에서 ‘신뢰’라는 ‘기본’을 잃었다. 포스코의 그늘 아래에서 스틸러스 또한 신화용이라는 ‘상징’을 잃었다. 잃기만 해서는 명가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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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13 AFC 챔피언스리그 ⓒ 포항스틸러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