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가 중국에 진출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오스카가 아니다. 브라질 축구선수 오스카다. ⓒ상하이상강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초등학교 시절 나는 감투 한 번 써보는 게 소원이었다. 어릴 때부터 잔머리 하나는 잘 굴렸던 나는 학급 임원 선거를 앞두고 부반장 후보로 한 여학생을 밀었다. 남녀 평등이라는 이유로 여자가 부반장을 하면 반장은 남자들끼리 경쟁하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부반장 생각도 없던 여학생을 후보로 추천하면서 나는 야심차게 반장을 꿈꿨다. 하지만 부반장 선거가 끝난 뒤 내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담임 선생님 말씀은 이랬다. “이번부터는 남녀 따지지 않고 다수결에 따라 반장과 부반장을 뽑기로 했어요.” 결국 잔머리를 쓰던 나는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정권을 ‘여(女)권’에 내주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잃어버린 30년을 살고 있다.

사실상 무용지물 된 아시아 쿼터

중국 슈퍼리그에 칼바람이 불 태세다. 중국축구협회가 올 시즌부터 슈퍼리그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아시아쿼터 규정과는 별도의 '로컬룰'을 적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쿼터 제도와 관계없이 경기당 외국인 선수 출전한도를 세 명으로 제한한 것이다. 외국인 선수 네 명에 아시아쿼터 한 명까지 다섯 명이 리그에 모두 출전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게 됐다. 외국인 선수를 다섯 명까지 보유할 수 있지만 이제 이 중 세 명만이 경기에 나설 수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나처럼 규정을 활용해 반장, 아니 우승 좀 해보려던 이들이 큰 고민에 빠지게 됐다. 또한 슈퍼리그는 팀당 출전명단에 23세 이하 선수 두 명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고 그 중 한 명은 무조건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갑자기 하루 아침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 이상으로 이 규정은 한국 축구에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일단 중국 슈퍼리그에서 인기를 끌던 한국 수비수들이 갈 곳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껏 한국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 네 명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따로 아시아쿼터로 활용됐다. 경쟁 범위가 일본, 호주 등의 선수들이었다. 홍정호를 비롯해 장현수, 김주영, 김기희, 김형일, 정우영 그리고 지금은 재활 중인 김영권 등이 이 범주에 속한 선수들이었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아시아쿼터는 한국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독점하다시피했다. 어차피 공격이야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기용하는 상황에서 아시아 쿼터로 듬직한 한국 수비수를 선택하는 건 슈퍼리그의 유행이었다. 부루마블로 치면 한국 수비수들은 런던이나 파리에 세운 호텔까지는 아니어도 일단 기본은 깔고 가는 ‘콜롬비아호’ 정도는 됐다.

그런데 이제 슈퍼리그에서 아시아 쿼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아시아 선수 한 명이 출전하려면 기존 외국인 선수 쿼터 하나를 잡아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제 11명 중 외국인 선수는 유럽 선수건 브라질 선수건 한국 선수건 다 똑같은 외국인 선수 카드 한 장으로 취급을 받는다. 어차피 돈 걱정은 않는 슈퍼리그에서 이 세 장뿐인 카드를, 그것도 유럽 공격수 대신 아시아 수비수로 채우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200억 원 몸값의 유럽 공격수를 대신해 그보다 훨씬 저렴한 한국 수비수를 베스트11에 넣는 건 실용성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제도는 한국 선수들에게는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대거 짐을 싸 중동이나 일본으로 향하는 선수들이 생겨날 것이고 한국으로 복귀하는 선수들도 생겨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선수들에게는 최악의 결과지만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길 일이다.

카를로스 테베스는 상하이선화에 입단한 뒤 하루에 1억 5천만 원씩 번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잤는데 이 시간 동안 테베스는 포르쉐 한 대 값을 벌었다. ⓒ상하이선화

‘아챔용 선수’ 딜레마 빠지게 될 슈퍼리그

슈퍼리그에서는 이제 팀 공격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외국인 공격수만이 판을 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슈퍼리그는 앞으로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섯 명 보유에 세 명 출전이라는 규정이 생겼지만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세 명을 빼놓고 나머지 두 자리를 채울 외국인 선수를 찾을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일확천금을 준다고 해도 선수는 뛰지 못하면 그 가치를 잃는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구단에서 연봉을 축내며 벤치를 지키는 건 원치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활용도가 적은 외국인 선수 두 자리를 채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세 명뿐인데 다섯 명의 외국인 선수에 돈을 쓰는 건 낭비고 그렇다고 남들은 다 채우는 외국인 선수 한도를 남겨 놓는 것도 걱정이다. 이 부분에서 슈퍼리그 구단들은 상당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슈퍼리그 팀들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슈퍼리그에서는 아시아 쿼터가 사라져 아시아 선수를 활용할 이유가 줄어들지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여전히 아시아 쿼터가 존재한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슈퍼리그 팀들은 AFC 챔피언스리그를 위한 아시아 선수를 따로 보유해야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 아마도 ‘AFC 챔피언스리그 전용 선수’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결승까지 진출해도 한 시즌에 13경기밖에 치르지 않는데 이 13경기를 위해 한 시즌 동안 중국에 머물고 싶어하는 선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슈퍼리그 구단이 조별예선에서 떨어진다면 이 선수는 한 시즌 동안 딱 6경기밖에 나설 수가 없다. 나같이 한 푼이 아쉬운 사람은 그래도 중국에 달려가겠지만 어지간한 선수들이 자신의 경력을 단절시키면서까지 모험을 걸 이유는 없다.

슈퍼리그 팀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화려한 공격력의 외국인 공격수들도 있었지만 묵묵히 이를 뒷받침하는 김영권 같은 한국인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슈퍼리그는 이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런 한국인 수비수들, 더 넓은 의미로 아시아 쿼터 선수들의 활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구단이 바보가 아닌 이상 1년에 수십억 원씩 줘 가며 6경기 남짓 나설 선수를 데려올 수도 없고 선수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한 시즌을 통으로 날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슈퍼리그에 갈 리가 없다. 가뜩이나 슈퍼리그로 가는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한 시즌 동안 몇 경기 하지도 않고 수십억 원을 버는 ‘아챔용 선수’로서의 길을 택한다면 그 선수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중국에서도 배울 게 많다”는 핑계도 안 통한다. “중국 음식이 맛있어서 중국으로 이적했다”는 핑계 말고는 댈 핑계가 없어진다.

카를로스 테베스는 상하이선화에 입단한 뒤 하루에 1억 5천만 원씩 번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잤는데 이 시간 동안 테베스는 포르쉐 한 대 값을 벌었다. ⓒ상하이선화

장기전 관점에선 ‘현명’ 단기적으론 ‘난감’

슈퍼리그 입장에서는 문제점이 이게 다가 아니다. 이제 슈퍼리그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과 기량은 상향 평준화 될 것이다. 어차피 세 명을 세계적인 외국인 선수들로 꽉꽉 채울 테니 광저우헝다나 상하이상강이나 베이징궈안이나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고 아시아 쿼터로 팀 전력을 다른 팀들보다 더 끌어 올리기도 어렵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기량이 더 좋은 국내 선수들을 모셔오기 위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포르투갈 3부리그 출신으로 유럽 무대에서 별다른 활약도 못한 장청둥이 이적료 약 260억 원에 허베이 입단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니 이 얼마나 깜짝 놀랄만한 일인가. 장청둥은 연봉도 17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아마 기성용이 중국인이었으면 연봉 500억 원에 이적료 2,000억 원도 꿈이 아니었을 것이다. 앞으로 조금이라도 실력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중국은 자국선수 영입에 거액을 투자할 것이다. 이 방법이 아니면 다른 팀보다 앞서 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디 다음 생에는 공 좀 차는 중국인으로 태어나자.

물론 지금까지 중국의 정서를 보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앞으로 중국에 귀화선수가 판을 치는 일도 전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2000년 통계에도 중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은 941명에 불과할 정도로 중국은 귀화에 엄격한 입장이지만 시진핑의 의지와 돈이 맞물리면 정책적인 귀화가 이뤄지지 말란 법도 없다. 실현 가능성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아마도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슈퍼리그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국내 선수들의 거품이 심해지고 벤치를 지켜야 하는 초고액의 외국인 선수들이 늘어난다면 귀화 이야기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이뤄질 것이다. 실제로 2013년 광저우헝다 공격수 무리키도 귀화 논쟁이 펼쳐진 적이 있고 장쑤 순톈에서 7년이나 활약한 브라질 수비수 엘레이우송도 인터뷰를 통해 중국으로의 귀화 의사를 밝힌 적도 있다. 중국 체육총국 소속 차오징웨이도 외국인 선수의 귀화 정책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광저우 무씨’나 ‘장쑤 엘’씨의 시조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슈퍼리그가 현명한 길을 택한 건 맞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그 자리를 국내 유망주로 채워야 뿌리가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천천히 이뤄져야 한다. 3월에 시즌이 시작하는데 시즌 개막에 맞춰 각 구단이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1월이 돼서야 이 제도를 갑자기 발표하면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니 각 구단들도 까라면 깔 테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문제점에 대한 대비책도 없이 이렇게 중요한 규정에 제약을 걸어버리는 건 참 난감한 일이다. 아마도 오늘 아흐메도프의 집은 초상집 분위기일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로 아시아 최고 미드필더라는 평가를 받는 오딜 아흐메도프는 얼마 전 상하이상강과 계약했는데 이 팀에는 현재 오스카와 헐크, 엘케손이 버티고 있다. 아흐메도프는 이제 이들과 똑같은 자리에서 경쟁해야 경기에 나올 수 있다. 아마도 올 시즌 슈퍼리그에서는 아흐메도프라는 이적료 100억 원 짜리 주전자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흐메도프 입장에서는 학창시절 반장 선거에서 물 먹은 나는 비교도 안 될 날벼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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