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나무 하나만 그려 넣으면 밥로스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울산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K리그 팬들은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 선수 영입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옷피셜’이 나오면 열광한다. 선수가 그 팀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옷피셜’이라고 하는데 이 사진이 나와야 확실한 영입 확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수들이 휴가 시즌이다보니 팬들을 위해 제때 이 사진을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합성 사진으로 대체하는 팀들도 상당수다. 유니폼을 입은 기존 선수 사진에 새로 영입된 선수의 얼굴을 합성해 마치 이 선수가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은 것처럼 하는 것이다. 비록 실제 사진은 아니지만 이런 합성 사진 한 장에도 열광하는 게 바로 K리그 팬들이다.

그런데 이 ‘옷피셜’이 구단별로 천차만별이다. 엄청난 수준을 자랑하는 합성 사진부터 내가 몇 시간만 배워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합성 사진까지 다양하다. 어떤 구단은 차라리 샤다라빠를 시켜서 그림으로 그리는 게 나을 만큼 발로 사진을 합성하는 구단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들 중 선수 영입 사진 합성 능력이 뛰어난 구단과 분발이 필요한 구단을 꼽아봤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시라. 나는 모든 K리그 구단 프런트의 노고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그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진지하게 보지 말고 그냥 오늘 칼럼은 재미로 한 번 쓱 읽고 넘어가 주면 좋겠다.

BEST OF BEST. 울산현대

이상했다. 내가 알기로는 분명히 지난 12월 말에는 울산 선수들이 휴가 중이었던 걸로 아는데 울산에 새로 이적한 선수들이 벌써부터 근사한 울산 유니폼을 입고 찍은 ‘옷피셜’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저 팀은 도대체 휴가도 없나’라는 생각이 들어 울산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 사진 합성입니다.” 정말 몰랐다. 아마도 스튜디오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찍은 사진이었다고 해도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 울산 엠블럼을 움켜쥐고 있는 이종호 사진을 보니 울산에서의 각오가 대단히 남다른 것처럼 보였는데 이게 다 합성으로 만들어낸 사진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김창수와 최규백 등 다른 선수들의 합성 사진 역시 실제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대단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올 시즌을 앞둔 울산현대가 공개한 선수 영입 확정 합성 사진의 수준은 대단히 뛰어나다. 단순히 감쪽 같은 사진 정도가 아니라 이 사진을 본 울산 팬들이 올 시즌을 기대할 만큼 가슴 뛰는 분위기를 잘 연출해 냈다. 이 합성 사진을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 이로운 씨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팬들은 새로 온 선수가 팀 엠블럼을 향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모습에 매료된다. 그런 느낌은 (이번 작업에서) 이종호 밖에 표현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런 작은 것 하나에도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생각이 깊고 거기에 팬심까지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 한 명이 이렇게 리그의 수준을 발전시킬 수 있다. 울산은 올 시즌 ‘누구를 데려오느냐’ 못지 않게 ‘데려온 선수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에도 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옷피셜’이라면 실제 사진보다 합성 사진이 나을 수도 있겠다.

부천FC는 이렇게 한 경기에 안 뛴 선수를 마치 경기에 나섰던 선수처럼 합성했다. ⓒ부천FC1995

BEST. 부천FC1995

지난 달 29일 부천FC는 보스니아 출신 공격수 해리스 하바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하루 뒤 그들은 깜짝 놀랄만한 수준의 첫 사진을 공개했다. 이제 이적한지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그가 부천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마치 경기장에 서 있는 듯한 사진을 팬들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알고 봤더니 이 역시도 합성 사진이었다. 물론 구단 관계자가 확인해 주기 전까지 나는 계속 이 사진을 들여다 보며 내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해리스 하바뿐 아니라 올 시즌 영입된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의 수준 높은 합성 사진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선수의 이름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신체조건과 나이, 전소속팀, 국적, K리그 통산 기록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팬들에게 첫 인사를 하는 의미 있는 보도자료였다.

선수 영입이 확정되고 이틀 안에 신속히 합성 사진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도 칭찬할 만했다. 부천이 이렇게 최근 들어 울산현대를 위협하는 합성 사진계의 선두주자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뛰지도 않은 선수가 마치 경기에 나선 적이 있었던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공개하는 이런 사진 한 장에 팬들은 기대감을 안고 시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부천의 붉은 색과 배경 등에서 중국 슈퍼리그 구단의 느낌이 다소 나기는 하지만 이런 수준의 합성된 사진이라면 언론과 팬들 모두 관심을 가지기에 앞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마도 이 정도의 합성 사진 제작 능력을 갖춘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학창시절 성적표 위조를 통해서 조기 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그냥 나오는 실력이 아닌 것 같다.

부천FC는 이렇게 한 경기에 안 뛴 선수를 마치 경기에 나섰던 선수처럼 합성했다. ⓒ부천FC1995

BAD. 서울이랜드

서울이랜드는 꽤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선수 영입시에도 선수가 유니폼을 입고 구단 엠블럼 앞에서 굉장히 멋있는 포즈를 취한 사진을 지금껏 쭉 제공해 왔다.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영입 소식이었다. 특히나 잠실종합운동장 오륜 마크 앞에서의 영입 ‘인증샷’은 서울이랜드만의 전통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속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합성사진이 아닌 실제사진으로 쭉 영입 소식을 알려오던 서울이랜드가 최근 공개한 첫 합성사진 작품(?)을 접하니 심히 당황스러웠다. 파라과이 태생 공격수 빅토르 마르세리노 아키노를 영입했다는 보도를 보며 서울이랜드가 ‘발합성’의 신흥강자를 노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키노는 영입 확정 사진에서 강동원도 울고 갈 얼굴 크기를 자랑한다. 흡사 9등신은 돼 보인다. 신체 비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발로 합성했기 때문이다. 선수의 신체를 삐죽빼죽하게 잘라서 어색한 배경과 붙여 버린 점도 별로 성의가 없어 보인다. 팬들이 축구 커뮤니티에 재미 삼아 올릴 법한 수준이다. 물론 이 정도 퀄리티의 합성 사진을 올릴 때는 “발합성 주의. 재미로 해봤어요. 욕하지 마세요”라는 글도 반드시 첨부하는 게 예의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다. 서울이랜드의 승격을 이끌겠다”는 각오까지 공개한 아키노가 결국 베네수엘라의 다른 팀과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아키노가 자신의 영입 확정 합성 사진을 본 뒤 마음을 바꾼 건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부천FC는 이렇게 한 경기에 안 뛴 선수를 마치 경기에 나섰던 선수처럼 합성했다. ⓒ부천FC1995

WORST. 전남드래곤즈

‘발합성의 최강자’라면 역시 전남드래곤즈를 따라올 구단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선수 영입 발표 사진 합성 실력은 이제 실소와 당황, 어이없음의 수준을 넘어서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이제는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해야 할 만큼 전남의 철학은 뚜렷하다. ‘우리는 극사실주의에 반기를 든다.’ 전남의 사진 합성 실력은 이제 예술의 경지라고 봐야 한다. 그 누가 전남의 합성 사진에 돌을 던질 것인가. 현실과 가상세계, 현실과 합성을 넘나들며 우리가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전남은 이들을 혼동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건 현실이고 이건 합성이다. 그러니 더 이상 현실에 없는 합성에 속지 말라.’ 명색이 프로구단에서 발표하는 공식 영입 소식인데 그들의 합성 사진은 충격적이다. 전남의 합성 사진을 보면 선수 이적에 대한 충격보다도 합성 사진의 퀄리티에 대한 충격이 더 크다.

그 전설적인 작품 중 최고는 역시나 박기동 영입 때였다. 2013년 박기동을 영입한 전남은 신속하게 보도자료를 냈는데 이메일을 열어본 이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초 오락실에서 하던 ‘버추어 사커’에나 나올 법한 큰바위 얼굴이 떡하니 노란 전남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율은 물론 피부색도 전혀 맞지 않는 ‘발합성’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박기동의 키가 191cm인데 이런 얼굴 크기라면 키가 아마도 207cm 정도는 돼야 한다. 누군가는 “그래도 2013년 합성 사진 하나 가지고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이후 레안드리뉴와 송경섭 감독 등 블록버스터급 합성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 전남은 최근에는 또 한 번의 대박을 쳤다. 그것도 박기동을 수원에 내주고 받은 연제민으로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스토리를 더했다. 역시나 전남은 우리의 기대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 이 정도면 이제 장인 정신으로 인정해 줄 필요도 있다.

부천FC는 이렇게 한 경기에 안 뛴 선수를 마치 경기에 나섰던 선수처럼 합성했다. ⓒ부천FC1995

K리그 모든 구단 관계자들이 고생하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조금 더 팬들을 위한 성의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좋은 선수를 데려오는 것도 좋지만 데려온 선수를 팬들에게 더 좋은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도록 활용하는 방안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수 영입을 확정 발표하면서 공개하는 사진은 이 선수가 팬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사진이니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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