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욱헌 팀장은 15년 만에 서포터스 앞에 섰다. ⓒ김욱헌 팀장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은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팀, 내가 좋아하는 선수를 위해 무료로 봉사를 해도 좋을 텐데 이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번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다. 하지만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다. 감정을 숨겨야 하고 애정도 격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 전북현대 김욱헌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강성 서포터스 모임 회장에서 이제는 점잖아야 할 구단 직원이 된 그는 무려 15년 동안 참아왔다. 그런데 그가 마침내 지난 달 26일 15년의 세월을 뚫고 경기장에서 우렁차게 전북을 위한 응원가를 선창했다. 과연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강성 서포터스 M.G.B 회장이 되다

전북 무주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주에서 생활하며 대학까지 전주로 진학한 김욱헌 씨는 1998년 전북현대 경기를 보면서 팬이 됐고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전북 서포터스 M.G.B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서포터스였다. 전북의 상징인 녹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다녔고 전북이 오랜 시간 승리를 하지 못할 때면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강성 서포터스 모임에서도 김욱헌 씨는 가장 피가 끓던 청춘이었다. 경기에서 억울하게 패했다고 생각하는 날이면 심판실을 찾아가 심판들에게 걸죽한 욕을 내뱉기도 했고 심판 출입구를 막기도 했다. 물론 전북 서포터스라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경기가 끝나면 유니폼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는 용의주도함도 잊지 않았다. 사고뭉치 M.G.B에서도 김욱헌 씨는 알아주는 팬이었다.

그는 2001년 M.G.B 회장이 됐다.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유난히 목소리가 컸던 김욱헌 씨는 서포터스 응원 리딩을 굉장히 잘했다. 물론 김욱헌 씨가 회장이 됐다고 해 점잖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강성 서포터스를 이끄는 회장이 됐으니 더 열정이 넘쳤다. 그는 아직도 2001년 수원 원정을 기억한다. “종합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면 아무리 선수들한테 욕을 해도 안 들리거든요. 그런데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전용구장이 대거 생겨났어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삼성하고 경기를 하는데 상대팀 신홍기 선수한테 막 욕을 퍼부었죠. 그 선수도 성깔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그라운드하고 관중석이 가까워서 다 들리잖아요. 제가 욕하는 걸 듣더니 딱 뒤돌아서 저를 노려보는데 저도 지기 싫어서 ‘나이 먹었으면 은퇴나 하라’면서 더 심하게 욕을 했어요.”

김욱헌 씨는 전북 축구 역사상 최초의 해외 원정인 2002년 일본 원정에도 참여했다. 지금이야 체계화 되고 규모가 커진 AFC 챔피언스리그가 자리잡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제대로 인식조차 박히지 않은 아시안 컵위너스컵이 열리던 때였다. 김욱헌 씨는 일본으로 날아가 전북이 시미즈 에스펄스와 격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전북 역사상 최초의 원정 응원이 펼쳐진 것이다. 그는 감상에 젖었다. “그때 원정 서포터스가 저를 포함해 딱 7명이었거든요. 일본에서 승리하고 준결승하고 결승전은 카타르 도하에서 했는데 그때도 딱 7명이서 원정을 떠났었어요. 결승에서는 사우디의 알 힐랄한테 연장 끝에 패했는데 고생 고생하며 소규모 응원을 펼쳤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김욱헌 씨는 누구보다도 전북을 사랑하고 M.G.B를 열정적으로 이끌던 서포터스 회장이었다.

녹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팀 승리를 위해 고사를 지내는 김욱헌 팀장의 모습. ⓒ김욱헌 팀장 제공

잔디 깎고 풀 뽑으며 보낸 3년의 세월

그런 김욱헌 씨에게 2002년은 운명적인 한 해였다. 구단에서 “같이 일을 해보자”고 한 것이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 김욱헌 씨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토록 사랑하던 팀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보수를 떠나 행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단이 제안한 일은 실망스러웠다. 잔디 관리라는 단순 노동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대학에서 정보경영을 전공한 김욱헌 씨가 전문성을 발휘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일은 임시직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막노동에 가까웠어요. 번듯하게 차려 입고 아침 구단 회의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 아침마다 트럭에다가 잔디 보수하시는 분들 태우고 훈련장에 가서 잡초 뽑고 라인 그리는 게 일이었거든요. 아무래도 구단에서도 서포터스가 강성이다보니 서포터스 회장을 구단에 데려다 놓으면 좀 사고를 덜 칠까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김욱헌 씨는 묵묵히 이 일을 했다. 2002년 5월부터 무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훈련장을 관리한 것이다. “임시직이었지만 팀에 이런 거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참고 했어요. 전북이 너무 좋은데 그 일을 하면서 선수들도 옆에서 보고 팀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욱헌 씨는 서포터스가 아니라 구단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2003년에 구단에서 임시직으로 일할 때 수원하고 익산공설운동장에서 경기를 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우리 서포터스가 ‘심판 죽이겠다’고 심판실로 쳐들어갔는데 저는 구단에 속한 신분으로 그 친구들을 말렸죠.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 무리들 속에서 앞장서서 난리를 피우고 싶은데 그 친구들을 진정시켜야 하는 상황이 참 복잡하더라고요. 그 다음날 신문에 그 사건이 1면으로 나왔어요.”

그는 3년 동안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고 라인을 그렸다. 당시에는 전북이 그리 큰 구단이 아니라 직원도 5~6명이 전부였을 때다. 구단 홈페이지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때였다. 정보경영을 전공한 김욱헌 씨가 구단 홈페이지 관리를 옆에서 돕기 시작했고 구단에서도 임시직이지만 묵묵히 훈련장을 관리하면서 볼멘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김욱헌 씨를 좋게 봤다. 그러면서 김욱헌 씨는 2005년 마침내 구단 정식 직원이 돼 선수단 주무를 맡게 됐다. 선수단이 불편 없이 훈련할 수 있도록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팬이었던 그가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선수들과 나란히 벤치에 앉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강성 서포터스 시절 버릇이 이따금씩 튀어 나왔다. 주무 첫 해에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 종료 후 심판에게 따지러 그라운드로 들어갔다가 연맹으로부터 제재금 징계를 당한 것이다. 아직도 그에게는 강성 서포터스의 피가 있었다.

서포터스 회장보다 더 익숙해진 홍보팀장

최강희 감독은 김욱헌 씨를 따로 불러 이렇게 설명했다. “코치진과 사무국은 흥분하면 안 된다. 그러면 선수들은 더 흥분한다. 너는 이제 서포터스가 아니라 구단 프런트다.” 김욱헌 씨는 이 말을 새겼다. 피는 들끓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절제했다. 그런데 2006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5년 전 욕을 퍼부었던 신홍기가 코치로 전북에 온 것이다. 김욱헌 씨는 도저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결국 망설이다가 신홍기 코치에게 먼저 고백했다. “사실은 2001년에 수원에서 코치님한테 욕한 게 접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신홍기 코치도 무릎을 쳤다. “아, 어디서 많이 봤다 했어. 그래 기억난다.” 김욱헌 씨는 몇 번이고 사과를 했고 신홍기 코치도 웃어 넘겼다. “나는 그전까지는 서포터스가 우리팀 응원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상대팀 선수한테 욕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지 뭐야. 이제는 다 잊었어. 우리 같은 팀에서 잘해보자고.”

이때부터 김욱헌 씨는 더 온화해졌다. 팀을 사랑하는 방법이 꼭 골대 뒤에서 목 놓아 응원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된 것이다. 그런 방법 역시 멋졌지만 김욱헌 씨는 구단 프런트로서 다른 방식으로 구단을 사랑해야 했다. “2006년에 리그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제가 예전부터 봐왔던 서포터스 친구들이 최강희 감독님을 많이 욕했어요. 그런데 옆에서 지켜본 최강희 감독님은 그렇게 욕을 먹을 만한 분이 아니고 너무 좋은 분이셨거든요. 하지만 그걸 또 서포터스에 설득할 수도 없더라고요. 감독님은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데 팬들은 또 그걸 몰라요. 이것도 제가 나서서 감독님 입장을 대변할 수도 없잖아요. 그때 ‘이렇게 말할 수 없는 상황도 있구나. 내가 감정을 내세워서 흥분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됐죠. 경기 끝나고 화가 난다고 상대팀 버스를 가로 막거나 심판을 잡으러 뛰어오는 서포터스를 보면 그 마음을 다 알지만 이제는 그 친구들을 잘 달래야 하는 게 제 일이 됐습니다.”

2005년 정식으로 주무가 돼 구단에 입사한 그는 2007년까지 주무를 지내다가 2008년부터는 홈 경기 총괄 담당자가 됐다. 전북현대 후원의 집 담당도 맡았고 2012년부터는 홍보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지난해까지 홍보팀장을 맡다가 올해 유소년 팀장으로 보직을 바꿨다. 유소년 총괄 팀장이 된 올해부터는 보급반에서 18세까지 유소년팀 운영을 담당하게 됐고 세일즈 마케팅 업무까지 도맡아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전북 팬들은 그를 홍보팀장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M.G.B 김욱헌 회장보다 김욱헌 홍보팀장이라는 직함이 더 자연스럽다. 물론 구단에서 임시직을 포함해 무려 15년 동안 함께하면서 김욱헌 팀장은 90분을 온전히 축구에 집중하던 서포터스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홈 경기 총괄 담당을 할 때는 제대로 홈 경기를 앉아서 볼 수 없이 바빴고 유소년 업무를 맡게 된 올해부터는 원정경기도 따라가기에 무리가 있다. 홍보팀장 시절에도 할 일이 많아 서포터스석을 찾기가 어려웠다.

녹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팀 승리를 위해 고사를 지내는 김욱헌 팀장의 모습. ⓒ김욱헌 팀장 제공

다시 15년 만에 응원을 이끌다

김욱헌 팀장은 2011년 알사드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잊지 못한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단판 승부에 4면을 꽉 채운 홈 관중은 전북을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2000년대 초반이었다면 아마 김욱헌 팀장이 머리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가장 앞장서서 응원가를 불렀을 테지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후반 막판 전북이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욱헌 팀장은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우승 단상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게 홈 경기 총괄 담당인 그가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승부차기 끝에 전북이 알사드에 패하자 김욱헌 팀장은 알사드가 우승 세리머니를 할 수 있도록 시상대를 만들고 꽃가루를 뿌려줬다. 앞뒤 안 가리고 감정을 먼저 표출했던 강성 서포터스는 세월이 흘러 이렇게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구단 프런트가 돼 있었다. 그는 이렇게 알사드의 우승 세리머니를 다 준비해 준 뒤 그라운드를 몰래 빠져 나와 펑펑 울었다. 비록 김욱헌 팀장은 감정을 숨겨야 할 구단 프런트지만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뒤에는 여전히 그 누구 못지 않게 뜨거운 피가 끓는 M.G.B였기 때문이다.

김욱헌 팀장은 지난 26일 벌어진 전북현대와 알아인의 AFC 챔피언스리그 2차전이 열리는 아랍에미리트로 떠났다. 구단에는 서포터스 담당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이 따로 있었지만 김욱헌 팀장에게 서포터스 담당 업무를 도우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한국에서 약 200여 명의 서포터스가 대거 원정 응원을 오기 때문이었다. 경기 며칠 전 여행을 겸해 일찌감치 아랍에미리트에 도착한 이도 있었고 경기 당일 새벽에 도착하는 이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안전하게 경기장까지 안내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구단에서는 김욱헌 팀장과 서포터스 지원 차량을 두바이몰로 보내 서포터스 인원을 체크하고 간식을 챙기고 경기장까지 모셔오는 업무를 배정했다. 그렇게 전북의 녹색 유니폼을 입은 200여 명이 두바이 시내에 등장하자 현지인들이 깜짝 놀랐다. 김욱헌 팀장처럼 열정적으로 전북을 응원하는 이들이 이만큼 늘어난 것이다.

그는 서포터스를 경기장까지 안전하게 안내한 뒤 그냥 서포터스석에 자리를 잡았다. 구단 프런트에 배정된 좌석이 따로 있었지만 서포터스와 따로 떨어져 경기를 보는 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만에 서포터스와 함께 응원을 시작했고 마침내 10년 만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승이 확정된 뒤 시상식이 열리기 전까지 서포터스가 기다리는 동안 현재 M.G.B 콜리더 조동호 씨가 김욱헌 팀장을 불렀다. “형. 잠깐만 이 앞으로 와봐요.” 조동호 씨 역시 김욱헌 팀장과 함께 초창기부터 M.G.B 활동을 하던 이였다. 그는 김욱헌 팀장을 관중석 앞쪽으로 부르더니 서포터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분이 15년 전 M.G.B 회장입니다. 오랜 만에 응원 리딩을 한 번 맡겨 봐도 되겠습니까.” 여기 저기에서 “좋다”고 했지만 15년 동안이나 이 피를 숨기고 살아왔던 김욱헌 씨는 부끄러워했다. 그러자 서포터스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북 홍보팀장에서 콜 리더로’

김욱헌 팀장이 15년 만에 목소리를 가다 듬고 선창했다. “전진하라 전북!” 그러자 녹색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따라했다. “전진하라 전북!” 김욱헌 팀장이 또 다시 외치자 서포터스가 따라외쳤다. “승리하라 전북!” 하지만 오랜 만에 서포터스 앞에 선 김욱헌 팀장은 콜리더 답게 서포터스를 바라보지 못하고 부끄러워 경기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선창과 후창을 반복하는 응원가 한 곡이 끝난 뒤 조동호 씨가 옆에서 한 번 더 거들었다. “형답게 한 번 해줘요.” 김욱헌 씨는 뒤를 돌아 서포터스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한 번 숨을 크게 내쉰 뒤 15년 전처럼 우렁차게 외쳤다. “전북 승리!” 그의 눈앞에 있던 전북 서포터스가 따라 외쳤다. “전북 승리!” 김욱헌 팀장이 “전북 승리하라!”는 구호를 “전북 승리했다!”로 바꿨더니 서포터스도 똑같이 외쳤다. 이렇게 15년 만에 서포터스 앞에서 응원을 주도한 김욱헌 팀장은 응원가를 부르며 결국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2001년에 7명이 원정을 갔던 게 생각났어요. 15년 만에 우리 원정 응원을 올 정도로 열정적인 우리 팬이 이렇게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고요.”

김욱헌 팀장에게 이번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전북이 아시아 정상에 선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15년 만에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목이 터져라 다시 응원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 셀 수도 없이 규모가 커진 서포터스를 보면서 또 한 번 울컥했다. 김욱헌 팀장은 이제 전북 프런트로 더 큰 꿈을 꾼다. “취미가 직업이 되니까 좋은 것도 있지만 즐기고 싶을 때 같이 즐길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번 결승전에서는 정말 오랜 만에 서포터스로 돌아가 즐긴 것 같아요. 앞으로는 프런트로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요즘 전북 팬들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시즌권이 5만장, 10만장씩 팔릴 때까지 우리 프런트가 노력해야죠. 전북 경기가 끝나면 전주 사람들이 모두 축구 이야기만 할 수 있는 곳이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 예전에는 경기장에서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는데 이제는 그런 목소리가 안 나오데요. 응원가도 가물가물하고. 허허.” 김욱헌 팀장은 이제 전북을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졌지만 전북을 사랑하는 크기는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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