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제재금 모금 운동’, 인천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인천유나이티드
인천이 한 건 '잔류'일까 '생존'일까. ⓒ인천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5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인천유나이티드와 수원FC의 2016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 경기.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 인천의 1-0 승리가 확정되자 관중석을 채웠던 이들이 그라운드로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인천이 극적으로 K리그 클래식 잔류에 성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밀려오는 관중을 막을 수 없던 안전 요원들이 오히려 관중의 손을 잡고 친절히 난입을 돕기도 했고 이렇게 그라운드를 밟은 관중은 선수들을 헹가래 하며 기쁨을 나눴다. 선수와 팬이 그라운드에서 함께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인천 관중의 그라운드 난입은 올 시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했고 K리그 클래식 우승 이상의 감동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인천의 감동적인 난입, 그리고 제재금 500만 원
하지만 관중 난입 행위는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제재금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관중이 그라운드에 들어오는 걸 막지 못한 구단에는 징계가 내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인천은 지난 4월 취객이 경기장에 난입해 경고 조치를 받은 일이 있었고 수원FC전에서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은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했기 때문에 징계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관중 난입 행위는 관중은 물론 그라운드에 서 있는 선수와 심판들에게까지도 위협이 될 수 있어 징계가 당연한 일이다. 인천은 수천여 명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내려와 잔류의 기쁨을 누렸던 대가로 연맹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천 구단 역시 극적인 잔류에 성공하고 관중이 그라운드에 들어와 선수들과 함께 하는 장관을 연출하자 기쁜 마음으로 “제재금 징계를 달게 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연맹은 어제(16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인천에 제재금 500만 원과 조건부 무관중 홈경기 1회 개최의 징계를 내렸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무겁지 않은 징계였다. 인천 구단이 이미 한 차례 경고 처분을 받은 상황이었고 안전사고 우려 및 재발방지 차원에서 징계가 불가피했지만 이 관중 난입이 팀의 잔류를 순수하게 기뻐하는 팬들의 애정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점이 참작됐다. 향후 1년 내 유사 관중 난입 사례가 발생하지 않으면 무관중 홈경기도 면제되는 것이니 연맹은 이번 사건을 상당히 융통성 있게 넘긴 셈이었다. 인천 구단의 실질적인 징계는 제재금 500만 원 뿐이었다. K리그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던 인천으로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징계였다. 인천 구단은 500만 원의 제재금을 흔쾌히 구단 예산으로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팬들이 나섰다. “제재금이 부당하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난입했으니 우리가 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인천 서포터스 현장팀 모임인 ‘파랑검정’에 속한 콜리더 신상우 씨는 이미 그라운드 난입이 일어난 지난 5일부터 제재금 징계를 예상하고 있었다. “K리그 클래식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뭉클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연맹의 징계 사유에 해당된다는 점도 알고 있어요.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예상하고 벌인 일이니 팬들이 전부는 책임지지 못하더라도 일정 부분은 책임지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랑검정’ 측은 연맹의 징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가 제재금 500만 원의 징계가 확정된 어제(16일) 곧바로 계좌를 개설해 인천 팬들의 제재금 모금 운동에 돌입했다.

인천유나이티드
인천 선수들은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팬들과 이렇게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인천유나이티드

구단과 선수, 팬 “우리가 내겠다”
‘파랑검정’ 측에서는 2주일 동안 모금 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제재금 500만 원을 그 전에 다 모으면 모금을 중단하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2주 동안 모금한 금액을 구단에 전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모금 첫 날인 어제 하루 동안 모은 금액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벌써 목표액인 500만 원의 절반 가까운 금액을 하루 만에 모았기 때문이다. 다들 역사적인 잔류와 가슴 뭉클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흔쾌히 모금 운동에 동참한 것이다. 어린 팬은 돼지 저금통을 털어 몇 백 원 단위까지 쪼개 모금 운동에 동참했고 한 팬은 무려 100만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인천이 올 시즌 관중이 10%가 증가할 때마다 입장 수익의 10%를 되돌려주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지난 서울전에서 이 이벤트에 당첨된 팬이 다시 구단을 위해 돈을 쾌척한 것이었다. ‘파랑검정’ 측은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운 모금 열기에 깜짝 놀라고 있다. 이렇게 제재금을 웃으면서 내는 이들이 또 있을까.

사실 인천 팬들은 그 동안 여러 번 사고(?)를 쳤다. 지난 2012년 열린 대전과의 홈 경기에서는 폭력 사태로 홈 경기 1회 개최권을 박탈 당했다가 재심을 요청해 무관중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지난 2013년에는 경기 후 팬 일부가 선수단과 관계자 동선인 통제구역에 진입하고 심판실 문을 두드리며 항의하며 제재금 700만 원의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몇몇 팬들의 개인적인 행동이었지만 팬 전체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행위였고 구단은 제재금 등의 징계를 그대로 떠 안아야 했다. 콜리더 신상우 씨도 구단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동안 팬들이 말썽을 많이 피워서 구단이 제재금도 많이 냈는데 이번에는 꼭 함께 제재금을 내는데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정말 많은 팬들이 잔류를 확정짓는 순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부둥켜 안고 즐거워했는데 팬 입장에서 이 제재금을 내는데 당연히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기꺼이 제재금을 내겠다”고 한 구단과 “이번에는 우리가 내겠다”고 하는 팬들이 기분 좋은 언쟁을 벌이는 동안 선수까지도 이 모금 운동에 참여해 감동은 더 커졌다. 올 시즌 인천의 부주장을 맡았던 김도혁은 팬들이 제재금 모금 운동을 벌인다는 사실을 알고 기꺼이 이 일에 동참하기로 했다. 김도혁은 “제재금을 내려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쓰는 입장이지만 부모님과 상의 후 제재금 모금에 함께 힘쓰겠습니다. 마지막 경기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잊을 수 없는 승부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멋진 역사를 만들어 주신 팬들에게 감사드리고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를 앞으로도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이 서로 제재금을 내겠다고 싸우는(?) 특이하면서도 훈훈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인천에서 이렇게 연출되고 있다.

인천유나이티드
올 시즌 인천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인천유나이티드

그라운드 안팎에서 감동적인 인천
하루 만에 절반 가까운 금액을 모금한 팬들은 구단이나 선수가 제재금을 낸다고 해도 모금된 금액 전부를 고스란히 구단에 전달할 예정이다. 콜리더 신상우 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분 좋게 모금 운동을 하고 있어요. 만약 구단에서 제재금을 낸다면 우리가 모금한 금액은 구단이 현명하게 다른 용도로 써주길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 축제를 즐긴 몫을 구단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에 대해 인천 구단 관계자도 화답했다. “팬들의 자발적인 모금운동으로 구단과 선수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제재금으로 사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고 팬들에게 다시 돌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구단은 팬들이 전달하는 모금액을 연말 서포터스 명의로 불우 이웃 돕기에 내거나 내년 서포터스 편의 제공 등으로 팬들에게 돌려줄 방침이다. 어떤 방식으로 제재금이 모이건 따뜻하고 훈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인천이 올 시즌 보여준 투지는 놀라웠다. 강등이 확실시 되던 상황에서 리그 막판 10경기 동안 6승 3무 1패라는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이며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특히나 마지막 라운드 수원FC와의 경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여기에 팬들은 극적인 잔류가 확정되자 한마음으로 뛰쳐 나와 선수들을 얼싸 안고 감격했다.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감동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구단과 선수, 팬들은 서로 이 징계로 인한 제재금을 내겠다면서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올 시즌 인천은 시즌 막판 블록버스터급 액션 영화를 찍더니 시즌이 끝난 후에는 달달한 멜로 영화까지 선보이고 있다. 인천 구단과 선수, 팬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감동적인 모습은 인천이 약체라는 평가를 받고도 어떻게 매번 K리그 클래식에 살아남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올 시즌 인천은 그라운드에서도 감동을 주더니 그라운드 밖에서도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footballavenue@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gu8dJ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