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현대미포조선의 한 팬은 세상에 딱 32장뿐인 머플러를 만들어 선수단에게 선물했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세상에는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추억이 그렇고 행복이 그렇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이 머플러도 돈으로는 가치를 매길 수 없다. 한 내셔널리그 구단과 한 팬의 추억, 그리고 행복이 여기 전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세상에 딱 32장뿐인 아주 귀한 머플러 이야기를 하려 한다.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2016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강릉시청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내셔널리그 4년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고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울산현대미포조선과 이 팀의 팬 김덕민(27세) 씨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누군가에게는 청춘이었던 울산미포

김덕민 씨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6년 울산현대미포조선 경기를 보기 위해 울산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울산현대미포조선 숙소 근처인 울산 문현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덕민 씨는 오가면서 울산현대미포조선 선수들과 자주 마주쳤다. 2005년 FA컵에서 준우승까지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김덕민 씨는 이 팀이 도대체 어떤 경기를 하는지 궁금해 직접 홈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학교 앞에서 늘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던 그 형들이 펄펄 나는 경기를 지켜봤다. 그 동네 형들은 김영후와 안성남, 양지원 등 울산현대미포조선의 주전 선수들이었다. 김덕민 씨는 울산현대미포조선의 경기를 본 뒤 이 팀에 매료됐다. 숙소 앞에서 자주 마주치던 이들이 이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고 비록 많은 팬은 아니었지만 경기장을 찾은 관중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김덕민 씨는 이때부터 울산현대미포조선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했다. 특히나 2008년 11월 12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B국민은행 2008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은 잊을 수 없다. 바로 다음 날 수학능력시험을 치러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던 김덕민 씨가 수원 원정까지 따라 나섰기 때문이다. 2009년 천안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이후부터는 울산까지 원정 경기 같은 홈 경기도 매번 빠지지 않았다. 강원도 강릉부터 인천까지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김덕민 씨는 어디든 달려갔다. 그는 비록 적은 수지만 울산현대미포조선 선수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우리 팀에도 팬이 있다는 걸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비록 내셔널리그에 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선수라는 걸 그분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디든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김덕민 씨와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올해로 무려 11년 째 함께 해왔다. 김종영, 김영기, 양지원 등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은 이제 이 팀의 코치가 됐고 그들은 올 시즌 이전까지 내셔널리그에서 무려 6번이나 우승하는 저력을 뽐냈다. 그런데 김덕민 씨에게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7월 제종길 안산시장은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안산시민축구단 창단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K리그 드래프트 제도가 없어진 상황에서 선수 수급 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울산현대미포조선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선수를 수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의하는 단계입니다.” 가뜩이나 재정 부족 등으로 팀 운영이 쉽지 않았던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이렇게 안산시민구단으로 일부가 흡수되는 형태로 결국 해체를 선언하고 말았다.

김덕민 씨가 주문 제작한 울산현대미포조선의 머플러.

‘YOU MAKE ME PRIDE’

김덕민 씨는 큰 절망에 빠졌다. 울산종합운동장이 가득 차는 꿈을 꿔 오던 그는 결국 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팀을 떠나 보내야 했다. 그런데 청춘을 다 바친 이 팀과 선수들을 그냥 떠나 보낼 수는 없었다. 늘 다른 팀 서포터스가 단체로 머플러를 흔드는 모습이 부러웠지만 워낙 규모도 작고 재정도 좋지 않아 울산현대미포조선 팬들은 지금껏 머플러를 주문 제작해 본 적이 없었다. 김덕민 씨는 떠나는 선수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로 머플러를 생각했다. 늘 다른 팀 서포터스가 흔들던 머플러를 부러워만 했던 김덕민 씨가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김덕민 씨는 감독 및 코치진을 포함한 선수단 30명의 머플러와 자신의 머플러 두 장을 더 해 딱 32장의 머플러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런 문구를 새겨 넣었다. ‘YOU MAKE ME PRIDE. 고마워 울산, 영원히 잊지 않을게.’ 김덕민 씨의 진심이었다.

김덕민 씨는 잊혀지는 게 두려웠다고 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저에게 너무나 감사한 팀입니다. 그런데 이 팀이 사라지면 언젠가는 이 행복했던 기억도 다 잊어 버릴까봐 두렵더라고요. 사람이란 게 원래 시간이 흐르면 다 잊잖아요. 이 팀을 평생 잊고 싶지 않고 선수들에게 그 동안의 고마움도 전달하고 싶어서 이 머플러를 주문하게 됐어요. 선수들이 내년이면 다 흩어질 텐데 이곳에서의 기억을 오래 간직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덕민 씨는 자비를 탈탈 털어 울산현대미포조선의 전통적인 팀 컬러에 잘 부합하는 노란색 머플러를 이렇게 준비했다. 이제 해체를 눈 앞에 둔 이 팀을 응원하는 마지막 팬이 서른 명의 선수단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 사실을 선수단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선수들은 플레이오프를 통과해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워낙 급하게 머플러 제작을 주문한 탓에 마지막 경기 때까지 머플러를 도저히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 달은 걸려야 나와요. 이게 무슨 뚝딱하면 만들어 지는 건줄 아시나요?” 지난달 29일 제작 주문한 머플러가 완성되려면 적어도 한 달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김덕민 씨는 사정사정했다. “정말 다시는 없을 경기가 열리는데 이 경기 전에는 꼭 좀 완성을 부탁드릴게요. 혹시 수량이 적어서 그러면 돈을 더 드리겠습니다.” 김덕민 씨의 간절한 부탁이 통했을까. 업체 담당자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간곡히 부탁해 한 달이 걸린다던 머플러를 단 일주일 만에 받게 된 것이다. 김덕민 씨가 이 머플러를 손에 넣은 건 경주한수원과의 플레이오프가 열리기 하루 전이던 지난 4일이었다. 김덕민 씨는 이 머플러를 챙겨 곧바로 경기가 열리는 울산으로 향했다.

김덕민 씨가 주문 제작한 울산현대미포조선의 머플러.

“‘응원단장’ 덕민이한테 보답해야지. 허허.”

2위인 울산현대미포조선은 3위인 경주한수원과 비기기만 해도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가는 유리한 상황이었고 이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이 김덕민 씨에게 다가와 인사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하려는 사이 김덕민 씨가 세상에 딱 32장 뿐인 머플러를 선수들에게 건넸다. 선수들도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에 놀란 표정이었다. 선수들 입장에서도 이런 머플러 선물은 처음이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거기에다가 어쩌면 마지막 경기가 됐을지도 모를 경기에서 이겨 두 번의 챔피언결정전에 나서게 된 선수들로서는 뜻하지 않는 머플러 선물이 더 고맙게 느껴졌다. 이 머플러에는 김덕민 씨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YOU MAKE ME PRIDE. 고마워 울산, 영원히 잊지 않을게.’ 선수들은 한 명의 팬이 선물한 머플러를 모두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 채 이날을 기념했다. 이 귀중한 선물과 역사적인 사진은 이렇게 완성됐다.

“그거 뭐야? 어디서 그런 걸 단체로 구했어?” 울산현대미포조선 김창겸 감독은 경주한수원전이 끝난 뒤 선수들이 단체로 머플러를 하고 돌아오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한 선수가 말했다. “글쎄 덕민이가 이걸 직접 주문 제작해 왔더라고요. 여기 감독님 머플러도 있어요.” 머플러 선물을 받은 김창겸 감독은 감격했다. “허허, 그 녀석 참. 뭐 또 이런 걸 다 선물해주고 그래.” 김창겸 감독은 밤새 이 멋진 머플러를 선물한 김덕민 씨에게 어떤 말로 고마움을 대신할까 고민하다가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고맙고 감사해. 이 말밖에…. 내가 살아 가면서 덕민이란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구나. 감사해.” 늘 어디건 따라와서 울산현대미포조선을 응원하는 김덕민 씨를 향한 김창겸 감독의 진심이었다. 김창겸 감독은 김덕민 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FA컵을 하는데 혼자 와서 북을 두드리고 응원을 하더라고. 너무나도 고마운 친구니까 이름을 꼭 좀 기사에 크게 써줘. 김.덕.민이야. 김.덕.민.”

그리고 선수단에게 머플러 선물이 전달되고 나흘 뒤 강릉시청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열리는 순간 김덕민 씨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김창겸 감독이 김덕민 씨가 선물한 머플러를 목에 두른 채 벤치에서 경기를 지휘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김창겸 감독은 머쓱해 했다. “선수들은 경기하는데 목에 이걸 두르고 경기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감독인 나라도 두르고 있는 게 우리 ‘응원단장’ 덕민이한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 허허. 그게 맞는 거잖아.” 김덕민 씨는 이 모습을 보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저라는 팬을 이렇게 기억해 줄지도 몰랐어요. 사실 저를 알아주길 바라고 한 일이 아닌데 너무 고맙더라고요. 저는 그냥 팬 중 한 명일 뿐인데 너무 감동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강릉시청을 2-1로 제압하고 4년 연속 우승 및 내셔널리그 7회 우승, 그리고 역사상 마지막 우승에 단 한 걸음을 남겨 놓게 됐다.

김덕민 씨가 주문 제작한 울산현대미포조선의 머플러.

세상에 딱 32장 뿐인 머플러

2차전은 지난 12일 강원도 강릉에서 열렸다. 선수들은 강릉 원정을 떠나면서 동료들과 서로 확인한 게 하나 있다. “너 머플러 챙겼어?” “당연히 챙겼지. 너는?” 다들 김덕민 씨가 선물한 머플러를 잊지 않고 강릉까지 가지고 가자고 굳게 약속한 것이다. 물론 이날도 김창겸 감독은 머플러를 두른 채 벤치에서 경기를 지휘했고 결국 울산현대미포조선은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역사적인 마지막 우승을 달성했다. 울산현대미포조선 돌고래 축구단 역사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머플러를 두른 김창겸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은 곧장 김덕민 씨에게로 달려가 부둥켜 안았다. 머플러를 다 같이 펼치고 역사에 남을 마지막 기념 사진도 찍었다. “이런 멋진 머플러와 이런 멋진 추억을 선물해줘 고맙다”는 선수들을 향해 김덕민 씨는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죠. 저한테는 너무나도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준 선수들이니까요.” 그렇게 김덕민 씨와 울산현대미포조선 선수단의 소중한 추억도 지난 12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머플러는 세상에 딱 32장 뿐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유럽 빅클럽의 머플러는 아니지만 이 머플러에 담긴 의미는 충분히 그 이상이다. 이 머플러에는 누군가의 지도자 생활 중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이 담겨 있고 누군가의 선수 생활 중 가장 눈부셨던 활약이 담겨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가장 소중한 청춘이 담겨 있기도 하다. 김덕민 씨의 말처럼 그들은 누군가의 자부심이었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비록 울산현대미포조선의 역사는 끝났지만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YOU MAKE ME PRIDE. 고마워 울산, 영원이 잊지 않을게.’ 세상에 딱 32장뿐인 머플러에 적혀 있는 글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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