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리어트] 버스 막기 노이로제? 무분별한 비난에 우는 성남 팬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팀은 강등 직전이고…우리는 뭐만 하면 욕먹는 것 같아요”

요즘 성남의 팬들은 이래저래 한숨이 늘었다. 팀 성적도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본인들도 비판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김학범 감독이 물러난 이후 구단도 이런저런 비판에 시달렸지만 팬들 역시 마음고생 중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나 역시 그들의 고충 토로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받는 비판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칼럼을 통해 성남 팬을 위한 변명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다음은 성남 팬들이 비난받은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이다.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비난이 성남 팬들에게 쏟아졌다. 나는 비난이 폭주하는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 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 사건과 함께 내 생각을 얘기하고자 한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1. 9월 10일 탄천종합운동장. 수원 삼성과의 2016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홈 경기가 끝난 이후 성남 팬들은 선수회관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김학범 감독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뒤 김 감독의 자진사퇴가 발표됐다. “김 감독을 쫓아낸 것은 개포터(서포터를 비하하는 단어)들이다”라는 비난이 성남 팬들에게 쏟아졌다.

앞서 몇 차례 K리그에서 버스 막기가 일어난 이후 성남의 사례가 등장했다. 네 번째였다. 인천, 울산, 수원에서 서포터들의 항의가 이어진 이후였다. 세 차례의 버스 막기를 통해 당시 이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을 지필 때였다. 이 때 성남 팬들은 성적 부진으로 인해 김학범 감독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버스 막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당 논란과 겹쳐 ‘감독 면담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실 성남 팬들은 이 비판에 대해 억울할 수 밖에 없다. 그들 역시 다른 팀 팬들을 보면서 ‘우리도 버스 막기를 해야하나’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미있었던 것은 당시 성남이 원정 경기에서는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거뒀고, 홈 경기에서는 여지없이 패했다는 사실이었다. 한 팬은 당시를 떠올리며 “버스를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씁쓸하게 웃기도 했다. 결국 홈 무승이 길어지자 팬들은 ‘선수회관 앞에서 감독과의 면담’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다른 팀의 사례를 참고해 흥분하지 않고 침착한 면담이 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것은 버스 막기와 같이 선수들의 통로를 차단한 것도 아니었다.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바로 옆의 선수회관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지상의 횡단보도를 이용해 선수회관 로비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팬들과 마주하기 싫다면 탄천종합운동장의 지하 통로를 이용해 선수회관 지하로 이동하면 됐다. 팬들도 김학범 감독도 그 사실을 안다. 팬들은 굳이 선수단을 막으려 하지 않았고 김학범 감독 역시 굳이 팬들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김학범 감독은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당연했다. 팬들은 죄를 물으려고 그를 불러낸 것이 아니었고 김 감독 역시 죄인의 신분으로 끌려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감독과 팬들은 그 자리에서 “우리는 모두 성남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박수와 악수로 헤어졌다. 이 과정에서 고성이나 욕설이 오가는 일은 없었다. 양 측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팬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지만 김 감독은 그렇지 못했다. 만남이 있고 이틀 뒤인 9월 12일 성남 구단은 김학범 감독의 자진사퇴 소식을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면담과 자진 사퇴가 이틀 사이에 일어나면서 ‘팬들의 면담 이후 압력을 받아 사퇴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등장했다.

김학범
팬들과의 면담 후 김학범 감독은 자진사퇴했다 ⓒ성남FC

이러한 비판은 성남 팬들에게도 상처를 줬지만 구단과 김 감독에게도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구단은 한 순간에 팬들의 의견에 휘둘리는 구단으로 전락했고, 김 감독은 팬들의 면담으로 기분이 상해 감독직을 그만두는 옹졸한 감독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구단과 감독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추면 합리적인 비판이 가능했을 것이다. 많은 언론들이 성남의 부진을 이야기하며 감독과 구단의 관계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팬들이 감독을 쫓아낸다’는 명제 자체가 K리그에서는 성립이 어렵기 때문이다. 애꿎은 팬들에게 감독 사퇴의 책임을 지우려고 하니 무언가 이상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2. 11월 5일 포항 스틸야드. 2016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와 성남FC의 스플릿 라운드 최종전이 종료됐다. 이날 성남은 0-1로 패하며 승강 플레이오프(승강PO) 진출을 확정지었다. 경기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가진 팬들과의 면담에서 구상범 감독대행은 “선수들을 욕하지 마시고 저를 욕하시라”며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이 장면은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으로 공개됐고 “도대체 서포터 갑질이 얼마나 심하면 버스를 막고 감독에게 무릎까지 꿇게 하느냐”는 비난이 폭주했다.

구상범 감독대행의 행동으로 벌어진 논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 감독대행의 따뜻한 마음이 조명받기 보다는 ‘서포터의 갑질’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그를 지켜본 여러 축구계 관계자들은 구 감독대행을 ‘덕장’이라고 부른다. 선수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품는다는 이야기다. 이를 일반인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착하다’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의미를 확장하면 ‘마음이 여리다’고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성남이 부진하면서 나 역시 성남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지만 한편으로는 구 감독대행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행복하고 평탄한 생활을 보내다가 갑자기 김학범 감독의 자진사퇴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성인팀 감독을 맡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침몰하는 배가 쉽게 떠오르지 않으니 그가 받은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포항전이 끝난 이후 혈압 상승으로 인해 기자회견에 불참한 것은 그의 스트레스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준다.

구상범 감독대행
데뷔전 승리의 환한 미소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 성남FC 제공

그는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약 340km 떨어진 포항까지 먼 길을 함께 와준 팬들에게 내놓은 결과물이 ‘승강PO 진출’이었으니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해당 영상과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팬들이 요구한 것은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였지 “무릎을 꿇으십시오”가 아니었다. 하지만 구 감독대행은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구 감독대행이 팬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지 팬이 갑질하는 것을 드러내는 사례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팬들의 버스 막기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선수단과 팬 모두 서로에게 예의를 지켰다. 팬들은 세이프 라인 밖에서 구 감독대행과 김두현 주장 두 사람에게만 면담을 요청했고 두 사람은 이에 응했다. 대화가 끝난 뒤에 두 사람은 버스에 올라탔고 팬들은 물러났다. 이것이 과연 비난 받아야 할 일인가? 일부 네티즌들은 “감독이 무릎까지 꿇어햐 하냐”는 반응을 내놓았다. 하지만 구 감독대행은 승강PO 진출이라는 결과가 무릎을 꿇어야 할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나는 도저히 비난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

성남 팬들의 한숨, “성적도 안좋은데 욕까지 먹는다”

올 시즌 K리그에는 ‘버스 막기’ 바람이 불었다. 성적이 신통치 않은 팀의 선수단은 성난 팬들에게 가로막혔고 감독들은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극심한 성적 부진으로 감독, 또는 선수단이 팬들 앞에서 사과하거나 해명하는 일은 전 세계 프로 스포츠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올 시즌 K리그는 유난히 심했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버스 막기’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대표 역시 이를 놓고 칼럼을 쓰기도 했다.

[김현회] ‘버스 막고 항의’도 팬의 당연한 권리다

나는 성남 팬들의 행동이 굉장히 성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면담을 요구하면서 쌍욕과 비속어를 퍼붓지 않았고 감독의 말을 경청했다. 감정이 북받치는 사람은 다른 팬이 제지했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했을 법한 감독과 선수단에게 이러한 말을 잊지 않았다. “면담을 요구한 것은 성남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어떠한 책망이나 비방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골대 뒤에서 묵묵히, 그리고 선수들이 더욱 힘을 낼 수 있도록 성원하겠습니다”.

코칭 스태프와 선수단 역시 그들의 요청에 성심 성의껏 응답했다. 정기적으로 구단 프런트와 팬들이 간담회를 갖다보니 이러한 소통의 문화가 선수단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이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들은 비교적 빠르게 반응하면서 더 커질 수도 있는 일을 조기에 별 탈 없이 마무리했다.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비단 K리그 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 스포츠 팬과 구단에게 ‘버스 막기나 청문회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하나의 모범 답안을 제시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은 심하게 비난받고 있다. 한 성남 팬은 내게 “요즘 성남 팬 하기 너무 힘들다. 정당한 면담 요청도 욕을 부지기수로 먹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정도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면 정말로 서포터란 존재는 가무단에 불과하고 구단에 돈을 꼬박꼬박 갖다 바치면서 아무 소리 못하는 노예나 다름 없다.

내가 버스 막기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일부 과격한 행동을 보며 ‘저건 갑질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편함을 느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성남의 사례는 이들과 다르다. 만일 성남 팬들이 비속어를 퍼붓거나, 적어도 김학범 감독이나 구상범 감독대행에게 반말을 하며 항의했다면 나 역시 앞장서서 비판했을 것이다.

버스 막기는 무조건 안돼? 불편한 소통도 결국 소통이다

K리그 팬들의 버스 막기가 논란이 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버스 막기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다. 버스 막기와 같이 선수단을 비판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전후 사정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진다. 이 과정에서 팬은 블랙 컨슈머, 시위꾼이 되어있고 롯데리아에서 빅맥 찾는 이상한 소비자 취급을 받는다.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미소가 가득할 수 없다. ‘소통을 늘리고 팬과의 접촉이 많아져야 한다’는 말은 긍정적일 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더라도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꼭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예의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선을 지킨다면 서로 간의 적극적인 소통은 권장해야 한다.

성남 팬
비가 와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남의 팬들 ⓒ 성남FC 제공

물론 서로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제나 서로 행복한 상황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를 원만하게 잘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그러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성남 구단과 팬들의 모습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래도 “버스 막기는 답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계속해서 면담을 요구하는 팬들을 비난 하겠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아마 팬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과거 KBO리그의 사례처럼 경기장에 발길을 끊을 수도 있고, 다른 팀으로 갈아타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행동을 권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성적이 형편 없어도 날씨가 속칭 X랄 맞아도 때가 되면 유니폼을 챙겨입고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바보같은 팬들이 바로 K리그 팬들이기 때문이다.

wisdragon@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Vj7Rt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