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FC는 오랜 우여곡절 끝에 다시 K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부천FC1995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부천 축구는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다. 부천 팬들은 한때 가장 열정적인 팬들을 보유했던 부천SK가 2006년 연고이전을 한 뒤 암흑기를 겪다가 2008년 부천FC1995라는 팀으로 극적인 부활을 알렸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부천FC는 무려 5년 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K3리그에서 고군분투했고 2013년 마침내 프로화를 선언하고 K리그 챌린지에 입성하게 됐다. 이 우여곡절만 해도 한국 축구사의 굵직한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극적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몸소 겪었던 한 남자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부천FC가 창단한 뒤 9년 동안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전 경기 관람’의 기록을 써 내려 가고 있는 김영준 씨(34세)에 관한 이야기다. 김영준 씨의 행보가 곧 부천FC의 역사이기도 하다.

삶의 절반, 부천SK가 떠나다

김영준 씨는 고등학교 시절인 1999년 우연히 목동운동장에서 부천SK 경기를 접하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축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부천SK 경기 입장권을 얻어 목동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접한 축구는 신세계였다. 부천SK 서포터스 ‘헤르메스’가 펼치는 조직적인 응원도 장관이었고 이날 경기에서 연장 승부 끝에 골든골로 승리한 부천SK의 경기력도 매력적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무승부가 관중의 외면을 받는다는 이유로 연장 골든골과 승부차기까지 펼치던 시절이었다. 김영준 씨는 이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집이 서울 개봉동이었는데 부천SK 경기를 딱 보고 열혈 부천 팬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고등학생이어서 경기장에 가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최대한 경기장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고등학생이던 김영준 씨에게 ‘헤르메스’ 형아(?)들은 서포터스의 로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 시즌 동안 팀의 모든 경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본다는 건 우리에겐 로망과도 같은 일이야. 단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팀과 1년 내내 함께한다는 거 참 멋지지?” 김영준 씨는 이때부터 큰 다짐을 했다. ‘대학생이 되면 나는 부천SK의 모든 경기를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겠어.’ 그리고 2002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이 일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2002년에 열린 부천SK의 모든 경기를 다 현장에서 지켜본 것이다. 당시 정규리그 27경기는 물론 리그컵 8경기와 FA컵 2경기 등 모두 37경기를 ‘직관’했다. 전남 광양과 부산 원정도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2003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일리그로 치러진 44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본 김영준 씨는 FA컵 4경기까지 포함해 무려 48경기 모두 현장에서 응원했다.

‘헤르메스’ 동료들도 놀라기 시작했다. 전 경기 관람이라는 로망에 대해 스치듯 이야기 했을 뿐인데 김영준 씨가 두 시즌 동안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부천SK 경기에 개근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서포터스에서는 ‘그때 그 경기에서 누가 골 넣고 몇 대 몇으로 이겼는지’ 궁금하면 포털 사이트 검색보다도 훨씬 더 빠른 김영준 씨에게 묻곤 했다. 김영준 씨는 부천 축구의 모든 걸 함께 했기 때문에 포털 사이트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른 데이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김영준 씨는 결국 2004년 군대에 입대했고 그의 ‘한 시즌 전 경기 관람’ 기록도 여기에서 잠시 멈춰야 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뒤에 다시 이 기록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부천SK가 2006년 2월 제주로 연고이전을 감행했다는 것이었다. 삶의 일부, 아니 절반 이상이었던 부천SK의 연고이전은 충격 그 자체였다.

김영준 씨(맨 왼쪽 흰 유니폼)는 부천FC의 역사를 함께 써내려 가고 있다.

다시 그가 축구장으로 돌아오다

2006년 군대에서 제대한 김영준 씨는 ‘헤르메스’ 동료들과 함께 부천FC 창단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08년 그들은 직접 구단을 창단했다. 바로 부천FC1995였다. 비록 부천SK 시절처럼 대기업이 후원하는 넉넉한 팀이 아니라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K3리그 팀이었지만 김영준 씨는 다시 응원할 팀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그는 아직도 2008년 K3리그 개막전을 잊지 못한다. “경주시민축구단과의 경기였어요. 팀이 없어지고 정말 고생 끝에 다시 일어서서 갖는 첫 경기였거든요. 이제 다시 축구를 볼 수 있고 응원할 수 있는 팀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김영준 씨는 여전히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로 이 경주시민축구단과의 승부를 꼽는다. 비록 사람들의 관심이 덜한 K3리그 경기였고 훗날 더 대단한 무대에서의 경기가 펼쳐질 수는 있어도 김영준 씨에게는 이 경기만큼 의미 있는 경기는 없을 것이다.

김영준 씨는 다음 경기도, 그 다음 경기도 직접 경기장으로 가 부천FC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았다. 강원도 삼척은 물론 전남 영광, 경상북도 경주, 경상남도 창원 등 부천FC가 나서는 K3리그는 어떤 경기도 가리지 않고 함께 했다. K3리그 뿐 아니라 과거 부천SK 선수들과 신생 부천FC 선수들이 격돌하는 친선전에도 빠지지 않았다. 김영준 씨는 2008년 부천FC가 유니폼을 입고 뛴 30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다. 2009년에도 마찬가지였다. K3리그 전,후기 32경기는 물론 심지어 대한축구협회 시범 풋살리그 9경기도 모두 현장으로 달려가 응원했다. 부천FC 선수들이 부천 유니폼을 입고 나선 경기였기 때문에 그는 지체하지 않고 한 걸음에 풋살 경기장까지 내달렸다. 그는 이 해에도 무려 43경기를 현장에서 부천과 함께 했다.

K3리그에 머물면서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내 팀이 생긴 건 좋지만 막상 현장에서 응원하다보니 K3리그의 현실에 부딪혀 떨어져 나가는 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정을 떠나면 경기장 사정도 극히 열악했고 진행 요원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부천FC 창단 후 천지가 개벽해 축구계가 발칵 뒤집히고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 것 같았지만 부천FC의 현실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K3리그였다. 하지만 김영준 씨는 단 한 경기도 거르지 않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원정 응원을 가면 무슨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도 할 정도로 K3리그 사정이 열악했거든요. 특히 2011년이 참 힘들었어요. 우리 성적도 좋지 않아서 팬들도 적게 오셨는데 그럴 때면 ‘나 혼자만 이렇게 응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K3리그는 이틀 만에 경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정말 힘들더라고요.” 장거리 원정 때는 단 세 명만이 원정을 떠난 적이 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김영준 씨(맨 왼쪽 흰 유니폼)는 부천FC의 역사를 함께 써내려 가고 있다.

‘직관’ 위한 김영준 씨의 눈물 겨운 노력

K3리그 소속이던 부천FC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K3리그뿐 아니라 전국체전 예선에도 참가해야 했다. 물론 김영준 씨는 부천FC가 참가하는 경기였으니 당연히 이 대회까지도 함께 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부천FC가 나선 전국체전 경기도 남자일반부 선발전 5경기 전부도 경기장에서 지켜봤다. 김영준 씨는 2군을 활용하며 사실상 버린 대회 취급 받던 챌린저스리그(K3리그) 컵대회에도 빠진 적이 없다. 외장 업체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평일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서 연차와 휴가를 모두 쪼개 쓸 정도다. “연차를 모두 쪼개 써서 남들 다 가는 휴가는 없다고 봐야 돼요. 사실 K3리그 시절에는 회사에 연차를 쓰면서도 다른 핑계를 댔죠. 주변에서 저를 한심하다고 생각할까봐요. 주말에는 결혼식이 많잖아요.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도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지인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축구장으로 갔죠.” 부천FC에 모든 걸 바친 그는 휴가와 지인 결혼식까지도 모두 반납했다.

그리고 2013년 마침내 부천FC는 5년 간의 K3리그 생활을 마감하고 프로화를 선언, K리그 챌린지에 입성했다. 김영준 씨는 부천SK를 응원하던 시절 이후 갈 일이 없던 광주종합운동장과 수원종합운동장, 안양종합운동장 등을 다시 밟으며 감회에 젖었다. 특히나 그는 올해 FA컵 32강 포항스틸러스전 위해 찾은 스틸야드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왜, 저 어렸을 때는 스틸야드 원정을 가는 게 우리의 로망이었어요. 그때는 우리나라에 축구 전용 구장이 없을 때니까 스틸야드 가는 길은 설레고 그랬죠. 제 기억으로는 부천SK 시절 2002년 아디다스 컵대회 포항 원정에서 이기고 그 이후로는 이겨본 적이 없거든요. 이번 FA컵 응원을 위해 스틸야드로 가는데 가는 길도 너무 설렜고 경기도 2-0으로 이겼어요. 부천FC가 다시 돌고 돌아 스틸야드로 가 15년 만에 승리를 따내고 왔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영준 씨는 부천FC가 K리그 챌린지에 입성한 뒤 올해까지 무려 네 시즌 동안에도 전 경기 개근을 했다. 이제 홈인 부천종합운동장은 안방처럼 느껴질 만큼 편하고 K3리그부터 K리그 챌린지까지 전국 모든 축구장도 대부분을 경험했다. 하지만 특히나 올해에는 프로축구연맹이 K리그 챌린지 활성화와 관심 유도를 위해 월요일에도 경기를 편성하면서 김영준 씨의 고생은 더 이어졌다. “K3리그 때는 부천FC 기사가 별로 안 뜨니까 회사에도 핑계를 대고 연차를 쓸 수 있었는데 K리그 챌린지 입성 이후에는 부천FC가 유명해지니 이제는 거짓말하고 연차를 쓸 수도 없게 됐어요. 이제는 연차를 쓰면 회사에서도 ‘또 축구보러 가는구나’하고 다 알아요. 올 시즌에는 경기수도 많고 ‘먼데이 나이트 풋볼’이라고 월요일 경기까지 생겨서 전 경기 관람하는데 애를 좀 먹었습니다. 그래도 K3리그 시절도 겪으면서 고생했는데 팀이 프로에 오니 너무 기쁘죠.”

김영준 씨(맨 왼쪽 흰 유니폼)는 부천FC의 역사를 함께 써내려 가고 있다.

‘9년 개근’ 부천의 322경기를 모두 ‘직관’한 남자

김영준 씨는 부천SK 시절까지 포함하면 11년 동안 부천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선수들의 모든 경기를 관람했고 부천FC만 따져도 창단 이후 지금까지 9년 동안 열린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응원했다. 부천FC의 역사를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함께한 것이다. 김영준 씨가 관람한 부천FC 경기는 자그마치 322경기에 달한다. 축구가 직업인 선수들도 한 시즌 전 경기 출전은 노력과 행운이 따라야 가능할까 말까한 일인데 한 팬이 자비를 털어 이 모든 경기를 응원한다는 건 놀라움을 넘어 위대한 일이다. 감독이 바뀌고 선수가 바뀌고 속한 리그가 바뀌었어도 김형준 씨는 9년 동안 늘 같은 자리를 지켰다. 김영준 씨는 9년 동안 한결 같이 부천FC와 함께한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서는 ‘이제 경기장에 가는 강박감이 생긴 거 아니냐’, ‘의무감 때문에 가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이제 부천FC가 하는 경기를 보지 않는 게 더 힘들어요. 좋아서 가는 거지 전혀 힘든 건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아마 제가 부천FC 선수들을 위해 경기장에 가지 않는다면 저한테 갑자기 좋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 부모님께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천채지변이 일어나거나 셋 중 하나일 겁니다. 이게 아니라면 저는 계속 부천FC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볼 생각입니다. 이제는 부천FC가 제 삶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부천FC 창단 이후 9년 동안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무려 322경기를 함께 한 김영준 씨는 부천FC의 역사와도 같은 존재 아닐까. 이런 열정적인 팬들이 있기 때문에 부천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부천FC는 이런 든든한 팬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게 더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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